금성산(金城山·530m)과 비봉산(飛鳳山·671m)

 

08/03/21 금욜 쾌청한 하루...

 

* 산울림님,고은님과 함께 번개산행

* 승용차 편으로^^

* 금성산 주차장(9:40)~금성산 정상(10:40)~봉수대터(11:15)

   ~비봉산(12:25)~수정사(2:05)~주차장 산행종료(2:50)

 

*화이트 데이 행사 관계로,지난 광양 매화마을 꽃놀이 차원의 산행이후에

산에 목말라 하던차에 아침 일찍 금오산 산행을 구상하다가 기왕이면...

의성 금성산을 산행후 인근의 산수유 마을 개화 상황을 정탐할겸

번개 산행을 ...다행이 산울림님이 어려운 상황에도 기꺼이 합류를

해주시어 함께 즐거운 산행이 되었습니다

 

 금성산 입구에서본 오늘의 종주코스

 

 

 

 ♣ 경북 의성군의 너른 벌판 위에 마주보고 우뚝 선 금성산(金城山·530m)과 비봉산(飛鳳山·671m)은

우선 산 높이와 산행 시간은 초행자가 선뜻 나서도 될 만큼 부담이 없다.
두 봉우리의 해발고도는 산꾼들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으면서 늠름함을

잃지 않는 500~600m대에 산행시간은 대여섯 시간 정도.

들머리에서 보면 두 봉우리는 독립된 봉우리로 보이지만

막상 능선길은 연이어 내달릴 수 있고 두 봉우리의 경계인 안부능선에는

 천년고찰 수정사로 내려서는 길이 열려 있다. 따라서 어느 봉우리에서

올라도 체력이 부칠 경우 두세시간 정도만 산을 탄 뒤 수정사로 하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두 봉우리의 전체 형태는 말발굽 모양으로 원점회귀 코스가 가능하다.

경북 의성 비봉산(671m)은 봉황이 날아가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비봉이라

이름 붙여진 이 산은 이름만큼이나 날렵한 9개의 봉우리를 따라

춤추듯 흘러내리는 암릉미가 압권이다. 날등으로 깎아세운 천길 낭떠러지

단애가 아찔하며 벼랑에 뿌리박은 노송들의 수백년 인고가 더욱 푸르다.

남근석과 호랑이굴 박쥐떼가 볼거리를 더하며 한 점 막힘없는 사위가 '

유쾌 상쾌 통괘'의 조망감을 안겨준다. (한국의 산천에서) 

 

금성산에서본 비봉산의 위용

 

맑은 날씨덕에 저 멀리 팔공산 주 능선의 단아한 모습에 마음을 던져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삼한 시대에 쌓았다는 성벽은 허물어져 형체만 남아 있고

보이는 시각에 따라 산 능성이의 화려함에 초반부터 급경사인 금성산의

등로이지만 멋진 풍광에 매료되어 힘들준 모르고 전진합니다

 

 

 

정상 부근에서 한겨울 힘든 시련을 견뎌온 할미꽃이 얼굴을 내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넘 바닥에 붙어있어 인물 보기가 마땅칠 않습니다

 

 

○ 금성산-삼한시대 최후의 격전장
정상 팻말에 "530.1 고지는 영니산, 금학산, 천진산, 금성산 등으로 불리며,

산 전체가 흑요석으로 덮여 있고, 장산에는 부근 최대의 길지(명당)로 알려진 500여 평의 분지가 있습니다  

전하는 말로는 조문국 최후의 격전장" 이라 적혀 있는데,

삼한시대 부족국가였던 조문국이 신라에 병합될 때 최후의 격전을 벌였던 곳랍니다.

 흑요석은 금성산 일대에서 화산 활동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사화산 입니다

 

 

*금성산의 전설

금성산은 영남에서 가장 많은 풍수 일화를 간직한 산이라 할수 있다. 그 산 자체에 대한 다양한 풍수 해석도 해석이려니와,

무엇보다고 그 방대한 산자락 골골마다에 들어앉아 있는 수많은 마을들이 지닌 각양각색의

 명당설이 마치 풍수 전람회장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당설을 바탕으로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진기한 이야기가있다.


이 금성산 산정에 묘(무덤)을 쓴다면 석달동안 이 산을 둘러싼 지역 일대에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들고 묘를 쓴 사람은 갑자기 운수가 대통하여 큰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 고종때 이 지방에 심한 한발이 든 적이 있었다.
나라를 통틀어 보아도 전국 각 지방에는 비가 내려 가뭄이 말끔하게

가셨는데 이 지방만은 빠뜨려 놓고 말았다. 그래서 논과 밭은 메말라 갔고

곡식은 타죽어 가니 농민들은 메말라 죽어가는 곡식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비를 기다리다 지쳤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농민들은 금성산 산정을 향하여 모였다.
"금성산을 파헤쳐라" 고 외치며 모여든 인근 주민의 수는 수백이 넘었다.


사실 이산은 밖에서는 깎은 듯한 적벽으로되어있으나 산꼭대기에는 그 넓이가 600~700평이나 되는 모래밭이다.
진노한 주민들은 모래금을 찾듯이 산정을 뒤졌다.

그 결과 길이 10m의 땅속에서 조그마한 석곽을 발견하니 주민들의

울분은 한 순간에 폭발되고 석곽 속의 사람머리는 산 아래로 팽개쳐졌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이 진노하고 검은 구름이 사방으로 뒤덮어 버리고 그렇게도

목마르게 기다리던 단비가 산과 들, 논밭에 함빡 내려졌다고 한다.


무덤을 쓴 사람은 그 후 모 지역에 가서 재수 대통하여 무더기 돈을 벌어 큰 부자가 되어

고향에서 논과 밭, 과수원을 사서 잘 살게 되었다고 하며

그 후 그는 그성산 음덕에 보답할 것을 결심하여 학교가 없는 금성면에

학교를 세우는 등 큰 사업을 하였다고도 한다.(한국의 산천에서)

 

봉수대 터에서 만난 의성 모 관공서 직원분들의 기념촬영

좀더 멋지게 흔적을 남겨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비봉산 정상에는 "태극기 휘날리며~~~"

서울 경기도 지역의 산에서 종종 볼수있었지만 중부 이남지역에서는 잘 볼수없는

광경이었기에 느낌이 새롭습니다.

바람도 거의 없는 날이어서 힘차게 휘날리는 순간을 잡으려 시간투자도 많이 했건만 ㅊㅊㅊ

 

 

 

<여인의 턱> 이란 바위에서 조망된 모습입니다.

근데 뭐가 여인의 턱인지? 요리보고 조리봐도???

 시원스레 펼쳐지는 산그리메와 눈 시리도록 파란하늘이 금성~비봉산 종주내내

산꾼의 마음을 붙들어 놓네요...이런날은 정말 하산하기 싫습니다

혼자 있었으면 아마도 저녁노을까지 함께하고, 하산하여야 아쉬움이 덜 할것 같은 맑은 하늘입니다

 

천년고찰 수정사 인근의 노루귀...

 

 

 

 

 

*수정사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비봉산 자락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다.

 신라 신문왕 때 의상이 창건했다. 1481년(조선 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수량사로,

신경준(1712~1781)이 지은 <가람고>에는 수정사라 적혀 있다.
사내 유물로 사명당 유정과 전홍, 응규 등의 영전이 전한다. 절 근처에 유정이 왜군과 싸우던 금성산성이 있는데,

이 산성은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수정사를 뒤로 하고 하산하면서 아쉬움에 고운 하늘 한번 더 바라다보며...

 

산수유 마을에서...

 

경북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숲실마을. 일명 '산수유마을'로도 불리는 이 곳은 '숲실'이라는

그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옛 고향의 추억을 되살릴 법한 순박한 시골 마을...

 아직은 양지 바른곳에서 노랗게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였고 마늘밭에서 일하시는

할머니 말씀에는 열흘 정도는 있어야 만개 할것 같다고 하네요...

 

 

 

 

쥐라기 공원^^ㅋ

 귀가길에 지나다 들른 공룡 발자욱 화석 전시장...의성에도 이런 공룡 발자욱 화석이

있는줄 모르고 지나가다 횡재를 한 기분입니다.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뚜렸한 모양은 아니지만 수만년 전의 흔적을 실물로 보는건

처음이어서 한참을 뜯어봤습니다...

 

귀하고 의미있게 보낸 하루 해는 벌써 서쪽 하늘로 마지막 붉은 빛을 남기며 숨을 죽이고

산메 목말라 하던 마음의 갈증도 해소되고, 뒷풀이로 푸짐한 저녁 식사로 허기진 배도

두루뭉실하게 되어 허리춤도 풀어헤치고, 간간이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에 넉넉한 미소를 지어봅니다.

 #  by  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