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금요일), 9시 15분경에 집을 나와서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상봉역의 경춘선 승강장에서 10분쯤 기다리다가 10시 4분경에 춘천행 광역 전철을 탄다. 경춘선이 광역 전철로 바뀐 이후로는 처음 타 보는 것이다. 산행에 본격적으로 취미를 붙인 2004년도부터 가평의 연인산과 석룡산, 춘천의 삼악산과 검봉산, 봉화산, 그리고 홍천의 팔봉산 등 경기도 북부와 영서의 여러 산들을 다니기 위해 애용하던 철도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서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광역 전철이 되어 물가 상승에 역행하여 파격적으로 싸진 교통비에는 서민의 입장으로서 흡족한 마음으로 반기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운행횟수도 늘었지 않은가. 그런데 광역 전철이 된 경춘선도 ITX 청춘열차가 통과할 때에는 역과 역 사이에 멈춰 서서 몇 분간 연착하게 된다. 고속으로 달리는 ITX 청춘열차를 위해 광역 전철이 잠시 양보를 하는 것을 보니 과거에 단선이라서 마주 오는 기차가 있으면 연착해서 지정된 도착시각보다 10분쯤 늦어져서 가평 버스터미널에서 드물게 운행하는 산행지 들머리까지의 버스를 놓쳐서 택시를 타고 들머리까지 갔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역사의 명칭으로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는 김유정역을 빠져 나오니 11시 24분경, 특이하게 기와지붕의 한옥으로 단장한 역사의 모습이 전주역을 떠올리게 한다. 역사의 바로 앞에는 여기서 왼쪽으로 400미터만 가면 김유정문학촌이라는 안내판이 높게 설치돼 있다. 왼쪽으로 걷다가 차도 사거리에서 차도를 건너 직진하면 김유정문학촌이 나오는데 차도를 건너서 왼쪽으로 꺾어져 시내버스 정류장 앞까지 가 보니 정류장의 건너편에 폐역이 된 구 경춘선의 김유정역이 초라한 역사만 쓸쓸하게 남아 있다.

   20세기 초, 일제의 식민지였었던 시대에 활약했었던 단편소설가 김유정의 생가와 전시관, 작은 공원이 조성돼 있는 김유정문학촌에 들어서니 마당에서 닭싸움을 시키는 아이와 이를 지켜보는 아이의 동상이 가장 먼저 눈앞에 다가온다. 김유정의 단편소설인 ‘동백꽃’에 나오는 한 장면이리라.

   먼저 오른쪽 가장자리의 전시관에 들어가서 김유정의 짧은 생애와 작품 활동, 이루지 못한 사랑 등을 읽어 보다가 나와서 디딜방아와 농기구, 살림도구 등이 있는 곳과 외양간을 둘러보고 나서 김유정의 생가에 들어가 본다. 1908년, 그 당시 가난한 시골이었던 춘천시 신동면 증리 실레마을에서 넉넉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서 잘사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초가지붕을 얹고 굴뚝을 낮게 만들어서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던 부모 슬하에서 대학교를 중퇴하고 귀향하여 야학을 가르치면서 작가 활동을 한 그는 1937년에 가난과 병고 속에 요절하고 만다.

   생가 안을 차근차근히 둘러보다가 나와서 초가지붕을 두른 정자와 작은 나무다리가 있는 연못을 보면서 선조들의 미적 감각에 공감하다가 벤치에 앉아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김유정문학촌을 빠져 나오니 어느새 40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기와지붕 장식으로 특이하게 멋을 부린 김유정역.

 

  

   옛 김유정역.

 

  

   김유정문학촌의 안내판과 출입문.

 

  

   닭싸움.

 

    

   전시관.

 

  

   디딜방아.

 

  

   살림 도구들.

 

  

   살림 도구와 농기구들.

 

  

   김유정의 생가.

 

  

   부엌.

 

  

   절구와 방아.

 

  

   ㅁ 자 구조의 한옥 안마당에 있는, 방충 기능도 겸했다는 난방용 아궁이의 낮은 굴뚝.

 

  

   창고.

 

  

   김유정문학촌 안에서 바라본 금병산.

 

  

   정자와 연못.

 

  

   외양간과 디딜방아가 있는 곳.

 

  

   닭싸움을 시키는 아이.

 

   김유정문학촌의 바로 앞에는 커다란 등산로 안내판과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A코스 나들목이 있다. 여기서 금병산 정상을 가리키는 왼쪽 길로 나아가면 곧 차도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방향표지판이 가리키는 왼쪽 길로 5분쯤 나아가면 또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은 농장과 카페로 들어가는 길이다. 역시 왼쪽으로 꺾어지면 곧 또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은 외곽도로로 빠지는 길이라서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비포장의 임도가 시작된다. 임도는 곧 약수터 갈림길을 만나고 여기서 왼쪽으로 꺾어져서 10분쯤 임도로 나아가면 금병산 정상으로 향하는 왼쪽의 등로와 비포장의 임도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오른쪽의 실레이야기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의 금병산 들머리가 나온다.

   들머리에서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다가 통나무다리로 계곡을 건너서 마른 계곡을 끼고 오르게 된다. 금병산의 등로에는 곳곳의 나무줄기에 여러 종류의 나무들의 명칭과 그 나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적어 놓은 작은 안내판들이 설치돼 있어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안내판을 읽는 재미도 산행의 맛에 더해진다.

   유유자적하게 산길을 걷노라면 초여름 날씨라서 더위에 땀이 많이 나지만 등로는 울창한 나무들에 둘러싸인 그늘진 길이고 산들바람이 자주 불어와서 땀을 식혀 주어 쾌적한 기분으로 산행을 지속하게 된다.

   한참 오르다보면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안부 사거리에 이르는데 이곳은 동백꽃길과 금 따는 콩밭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뻗은 능선은 실레이야기길로 이어지는 길인데 그 길의 왼쪽에는 조그만 샛길이 나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들이 다니다가 왕래가 끊겨서 없어진 길인 듯한데 어느 개념도상에 ‘무너진 산판길’이라고 표기해 놓은 길이다.

   안부 사거리의 방향표지판이 있는 곳에 주저앉아 쉬다가 동백꽃길로 나아가면 지금까지는 능선과 계곡, 비탈이 섞인 길을 걸어 올라왔지만 뚜렷한 능선길을 오르게 되고 완만한 오르막의 동백꽃길 초입에는 금 따는 콩밭길의 갈림길이 나 있다.

   둔덕 같은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육산인 금병산에서는 보기 드문 짧은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서 마침내 능선 삼거리가 있는, 해발 652 미터의 금병산 정상에 닿는다.

 

  

   커다란 등산로 안내판과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김유정문학촌 앞의 A코스 나들목.

 

  

   비포장의 임도가 끝나고 금병산 정상으로 가는 등로가 시작되는 들머리 - 오른쪽으로는 비포장의 임도가 이어지는 실레이야기길이 계속됨.

 

  

   계곡을 건너는 통나무다리.

 

  

   뽕나무의 명칭 유래를 가르쳐 주는 안내판.

 

  

   동백꽃길이 시작되는 안부 사거리의 방향표지판.

 

  

   왼쪽 오르막은 동백꽃길, 오른쪽 내리막은 금 따는 콩밭길.

 

  

   육산인 금병산에서는 보기 드문 바위지대.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능선 삼거리에서 왼쪽을 보면 목제 데크 전망대가 설치돼 있는 금병산 정상이다. 춘천 시내와 주변의 산들이 조망되는 전망대에서 조망을 하다가 내려서면 전망대의 왼쪽 밑에 정상표지석과 삼각점이 설치돼 있다. 동쪽으로는 원창고개에 이르는 봄봄길, 서쪽으로는 자신이 올라온 동백꽃길, 남쪽으로는 산골나그네길이 이어지는 능선 삼거리의 바로 밑에는 헬리포트가 설치돼 있다.

   정상 부근의 그늘진 곳에 앉아 빵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며 30분쯤 쉬다가 헬리포트로 내려와서 완만한 내리막의 산골나그네길에 들어선다.

 

  

   동백꽃길과 산골나그네길, 봄봄길이 갈라지는, 금병산 정상 바로 밑의 삼거리.

 

  

   정상에 설치돼 있는 목제 데크의 전망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춘천 시내.

 

  

   전망대의 왼쪽 밑에 설치돼 있는 정상표지석과 삼각점 - 해발 652미터.

 

  

   정상 바로 밑의 헬리포트.

 

  

   정상 바로 밑의 방향표지판.

 

  

   헬리포트에서 바라본 정상 전망대와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삼거리.

 

   산골나그네길은 대체로 완만한 편이지만 가파른 내리막도 몇 군데 있는 능선길이다. 정상에서 15분쯤 내려서면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사거리가 나오는데 개념도를 보니 왼쪽은 새고개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금 따는 콩밭길과 만무방길로 내려가는 길, 직진하는 길은 산골나그네길이 계속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그런데 방향표지판에는 직진하는 길이 저수지로 가는 길이라고 표기돼 있어서 산행객들에게 혼동을 준다. 저수지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내려가서 만무방길로 가는 게 가장 가까운 길인데 방향표지판을 보니 직진하는 길에 달아 놓았었던 표지판은 부러져서 없어진 상태다. 방향표지판의 정비가 필요한 곳이다.

   직진해서 계속 능선길을 나아가면 왼쪽에 큰 철탑이 설치돼 있는 곳을 지나게 되고 능선을 오르내리다가 쉴 곳을 찾게 되는데 마침 한 봉우리에 닿아서 그 봉우리에 앉아서 한참 쉬게 된다. 털썩 주저앉아서 빵과 함께, 얼려 왔지만 슬러시가 된 과일 주스를 먹는데 이 냄새를 맡고 큰 말벌 한 마리가 주변을 선회하며 위협적으로 윙윙거리는데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봉우리를 내려와서 3분쯤 나아가니 직진하는 길 위에 철탑이 설치돼 있고 산골나그네길이 끝나는 삼거리에는 방향표지판과 나무 벤치 두 개가 설치돼 있다. 여기서 쉬었다면 벤치에 앉아서 말벌에 시달리지도 않고 더 편히 쉬었을 텐데...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내려가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이 지속된다. 비탈길을 구불구불 내려가면 길은 어느덧 빽빽한 잣나무숲길로 바뀌고 왼쪽에 벤치들이 많이 설치돼 있는 쉼터를 지나서 잣나무숲이 끝날 즈음에 비포장 임도인 실레이야기길과 만나는 삼거리의 나들목에 이른다.

 

  

   금 따는 콩밭길과 만나는 사거리.

 

  

   사거리의 잘못 설치돼 있는 방향표지판 - 직진하는 길은 산골나그네길(능선길)이고 저수지로 가는 길은 오른쪽으로 꺾어져 내려가는 길(계곡길)임.

 

  

   대체로 완만한 편이지만 가파른 내리막도 몇 군데 있는 산골나그네길.

 

  

   산골나그네길이 끝나는 철탑 삼거리 직전의 봉우리.

 

  

   나무 벤치 두 개와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철탑 삼거리.

 

  

   철탑 삼거리의 방향표지판.

 

  

   잣나무숲길.

 

  

   비포장 임도인 실레이야기길과 만나는 삼거리.

    

  

   잣나무숲이 시작되는 지점의 나들목.

 

   나들목에서 방향표지판이 김유정역을 가리키는 왼쪽 길로 나아가면 곧 임도 삼거리가 나오는데 역시 왼쪽으로 꺾어져서 잠시 흙길의 임도로 나아가면 오른쪽에 내리막의 갈림길이 나 있고 그 짧은 내리막을 내려오면 다른 임도와 만나게 된다. 삼거리 바로 밑의 삼거리인 셈이다. 삼거리 바로 밑의 삼거리에는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데 개념도를 꺼내 보니 만무방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내려가니 곧 아스콘 포장의 임도로 바뀌고 커다란 등산로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임도는 다시 비포장으로 바뀌는데 아늑하고 평화로운 전원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임도를 다 내려오니 커다란 등산로 안내판과 주차장이 설치돼 있는 B코스의 나들목이다. 여기서 차도를 따라 잠시 내려오면 김유정이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중퇴한 후에 귀향해서 야학을 가르쳤다는 금병의숙터에 금병복지회관이라는 아담한 2층 건물이 세워져 있고 그 오른쪽에는 사각정 옆에 김유정의 업적을 기념하는 김유정 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사각정에 앉아서 느긋하게 쉬다가 역 쪽으로 좀 더 내려오면 춘천시 신동면 증1리의 실레마을 표지석이 있는데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 이 마을의 모습이 움푹한 떡시루 같아서 증리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 게 강원도 사투리로 실레마을이 되나보다. 표지석을 지나니 곧 김유정역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아직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각이고 그리 힘겨운 산행도 아니라서 술 생각도 별로 나지 않지만 아까 김유정역 부근의 한 음식점의 유리창에 도토리전을 크게 써 붙여 놓은 것을 기억하고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도토리전의 맛이 어떨지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 음식점을 찾아가서 춘천막걸리 한 병과 도토리전을 주문한다. 도토리전은 얇은 반죽에 배추김치를 넣은 것과 쪽파를 넣은 것이 한 장씩 나오는데 쪽파가 약간 덜 익어서 그런지 내 입맛에는 배추김치를 넣은 게 한결 낫다. 김유정이 한들 주막에서 즐겨 먹었다는 알싸한 춘천막걸리와 함께 먹는 쌉싸름한 도토리전의 맛이 참으로 토속적이고 운치가 있다. 오랜만에 보는 양은대접에 막걸리를 따라 마시니 예스러운 풍류까지 느껴진다고나 할까. 막국수도 한 그릇 먹을까 했었지만 배가 불러서 막걸리와 안주를 다 비우고 일어나 김유정역에서 전철을 타고 귀가한다.

   오늘의 산행에는 총 5시간 30분 가량 걸렸고 이 중에서 김유정문학촌 관람과 휴식에 쓴 약 2시간을 제외하면 순수한 산행시간은 약 3시간 30분에 불과한 짧은 산행이었다. 강원도의 산답지 않게 유순한 산길은 동네 야산을 좀 길게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방향표지판도 대체로 잘 설치돼 있으며 등로도 단순한 편이어서 가벼운 실버 산행지로 알맞은 곳이었다.

   이 지역 주민들의 김유정에 대한 끈끈한 애정이 느껴지는 김유정문학촌은 짧은 산행에 겸해서 꼭 들러봐야 할 명소였고 한 문인에 대한 기념사업은 타지방의 귀감이 될 만한 것이었다.

   이제 봄이 거의 다 가고 여름이 오고 있지만 늦봄의 정취 속에 오른 금병산의 수수하고 소박한 운치는 잔잔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수탈 속의 시대의 뼈저린 아픔을 서정적인 문학예술로 승화시킨,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다가 요절한 김유정의 짧은 삶과 문학은 금병산과 실레마을 속에 길이 남아 있으리라.

 

  

   만무방길과 만나는 삼거리.

 

  

   삼거리의 방향표지판.

 

  

   내려와서 돌아본 삼거리.

 

  

   아스콘 포장 임도와 만나는 지점의 등산로 안내판.

 

  

   전원 풍경.

  

  

   삼악산.

 

  

   B코스의 나들목.

 

  

   김유정 기적비(紀績碑).

 

  

   도토리전과 춘천생막걸리.

 

  

   오늘의 산행로 - 약 7.8킬로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