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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5일


 


- 십년동안 백산찾기 마흔아롭번째 - 


 


  어제인가 푸른꿈 산악회 홈피에 오늘 금병산 산행에 가겠다고 카폐에 신청하고 보니 날씨가 영하 11도라는 등 기상캐스터들의 호들갑에 망설였었다.


특히 날씨에 관한 호들갑은 훈장감이었다. 나는 전부터 이들의 분위기 조성에 섣불리 주저앉았다가는 설중매를 보는 기쁨이나 우후죽순을 보는 즐거움을 영원히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겨울 추위는 집을 나서서 백 미터를 나가면 기가 죽어 물러간다.


문자를 보냈더니 예정대로 간다고 하여 여덟시 사십 분경 장위동 동방고개를 넘어


하계역에 가서 7호선으로 갈아탄 후 상봉역 집결장소에 갔을 때 아홉시 이십 칠팔 분이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춘천행 전철 쪽에 갔더니 쇠철문이 출발할까 말까 문을 닫았다 열었다하는 것이다. 티브이를 켜도 화면 조정이 있지만 오늘 산행에는 출발조정이 없어 보여 핸드폰을 들자마자 열렸던 철문이 닫히면서 눈앞에서 다시는 안 열리더니 아예 멀리 사라졌다. 내가 관계하는 다른 모임은 차량 출발 시간 십여 분전에 모이도록 하면서 출발 조정이 있었다. 집에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훗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 오십분을 기다려 열시 이십분에 다시 전철을 타고 지겹고 지겨운 전철역 열다섯 개를 달려 김유정 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열다섯 개는 30분 거리인데 이곳은 110분 거리였다. 역당 2분이 아니라 4분도 더 걸렸다.


먼저 온 일행들이 주막에 들어가 막걸리를 한 병씩 걸쳤는지 취한다 취한다 산에 가기 전에 취해버렸다면서 배낭을 메고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면서 하나 둘 나왔다.


팅거벨과 내가 지각했는데 막걸리를 마셨던 아니면 술찌꺼기를 먹었던 여태 기다리고 있었다니 미안한 중에 고마웠다.


B 코스가 4킬로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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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에 나오는 산 이름 같은 금병산은 많이 알려진 산이 아니다. 나이 들어 무너지는 체력에 힘겨워 하면서 오늘 백산 찾기 마흔아홉 번째산행을 치르고 임진년 용띠 해에는 쉰 번째를 시작으로 새 출발하자는 생각이 꿈틀 댔다. 임진년에는 어려서 가고 안 가 본 산과 아직 안 간 산 중에서 각 도별 한군데를 가 볼 생각이다. 치악산, 속리산, 무등산, 한라산, 그리고 충남, 경기, 전북, 경북, 경남 중에 한 군데 고를 생각이다.


금병산 중턱에서 먹자판을 벌였다. 춥지 않을 때는 순식간에 준비하는 아스팔트 위 삼겹살 하산 파티가 놀라웠는데 추운 겨울에는 순식간에 준비하는 설중 라면 파티가 놀라웠다. 라면의 원조 삼양 라면에 큰 만두 한판 삶아 서너 개씩 담아 배불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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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병산 표석 부근에서 춘천을 내려다보며 사진 찍다보니 겨우 652미터라는 거다. 손이 곱아 사진기에 손이 안가다가 햇볕이 따뜻해 몇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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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은 음지라 미끄러운 눈이 많았다. 작년 추운 겨울 오천 원짜리 노루차구같이 생긴 아이젠을 신고 태백산 갔다가 혼 줄이 난 후 동대문 문구센터에 가서 고가의 신식 아이젠을 사서 방구석에 모셨다가 오늘 가지고 왔는데 제법 할 일을 다하는 아이젠을 보니 마음이 든든했다.


그렇게 걷다보니 다시 출발지로 왔고 김유정 문학관을 둘러보았다. 비로소 미아리고개에 개운산이 없었다면 안고 없는 찐빵이듯 금병산에 김유정 문학관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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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티브이에서 김유정 일생을 보면서 착잡해 했었다. 얼마나 여복이 없었으면 기생에게 퇴짜 맞고 들병이(그때는 접대부가 술병을 들고 다니며 주막에서 술을 팔았는데 그 접대부를 들병이라고 한다) 에게 정 주고 서울에 와서는 공장 다니는 여동생의 모진 소리를 들어가며 얹혀살다가 막판에는 이상과 친구가 되었지만 폐병으로 스물아홉나이에 정릉에서 죽었다는 정도를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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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진 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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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점순네 집이라는 닭갈비집에 몰려가서 옥수수 막걸리에 실컷 먹었다. 그 집 여주인이 환생한 점순이 같았다. 닭에게 고추장 먹여 쌈시키는 점순이처럼 적당히 심술맞아 보이고 어딘가 똘똘해 보이는 면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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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 반 경에 일어나 전철로 가평으로 이동하여 일행 한 분이 운영하는 레스트랑에 가서 호프 한잔씩 마시고 쉬엄쉬엄 올라왔다.


 


오늘의 압권은 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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