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절경 금강산!!! 촌사람도 다녀왔습네다...

천하절경의 금강산!!!!!
강원도 고성군과 금강군 그리고 통천군일부에 걸쳐 있으며
남북의 길이가 60km 동서의 너비가 약 40km로 총면적이 530㎢에
달하며 잘 알다시피 12천을 헤아리는 수많은 봉우리들이 천태만상의
괴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명산 중에 으뜸이라 한다.

일직이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는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 라고
하였다 하며.

일본인들은 "금강산을 보기 전에는 천하의 산수를 논하지 말라."
하였다한다.

특히 조선조초 천하의 천재 시인 매월당 김시습도
금강산을 두루 구경하고 나서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시는 한수도 짓지 못하고 다만,

요산요수(樂山樂水)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이아즉(而我卽) 등산이소(登山而笑)하고 임수이곡(臨水而哭)하였다.

"산을 즐기고 물을 좋아 하는 것은 사람의 상정이다.
그러나 나는 금강산을 구경하며 산에 올라서는 웃기만 했고
물에 임해서는 울기만 했노라"는 일설이 있듯이

금강산의 아름다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겠다.
  
이에 반한 나 또한 금강산 속에 푹 빠져 보기로 하고
2007. 6. 8. 밤 10시 천하절경의 금강산을 맞으러 부랴부랴 배낭을
꾸려 사랑하는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섰다.
초등친구의 차에 올라 청주체육관에 도착하니 30여분이 조금 지났다.

지인들과 인사를 나눈 후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을 즘 신분증을 챙겨
왔는지 운영진에서 확인 작업에 들어간다.

나야 원래 신분증이야 기본이고 필기도구까지 항상 챙기어 산행하는
버릇이 있기에 별 탈이 없었지만
함께한 초등친구부부께서는 가지고 오지 말라는 물품이 하도 많아
지갑까지 빼놓고 오는 바람에 신분증을 집에다 모셔놓고 오셨단다.

부랴부랴 난 함께 친구댁으로 다시 뒤돌아가 신분증을 챙기어
서청주 I.C로 달려가 밤11시 10분경 버스에 가까스로 올라 금강산
산행에 합류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잠이 잘 들지 못하는 난 금강산을 향하여 밤새 달리는
차 속에서 눈을 붙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연이틀을 거의 뜬눈으로 지 샌 난 피곤한 몸으로 새벽 4시가
거의 다되어 고성군 현대 아산 금강산휴게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휴게소에 도착한 일행과 난 차 밖으로 나와 잠시 휴게소 안 장의자에
몸을 누워도 보지만 도무지 몸은 편치가 못하다.

꼭두새벽 4시30경 이른 아침식사를 마친 후 6시가 조금 지나
이런저런 수속을 마친 후
관광증을 받아 차에 다시 올라 1시간여를 달렸을까.

남측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하여 다시 한 번 출국소속을 마친 후
사무소를 빠져나와
북측 출입국사무소에 입성하여 재차확인을 받은 후 북측 사무소를
통과하여 1박2일 동안 우리와 함께할 금강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불과 10여분을 달렸을까
삼팔선을 지나 북한 땅에 입성할 수가 있었다.
북한 땅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분위기부터 다른 북한 인민군들의
삼엄한 경계에 주눅이 든 채로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관광증(신분증포함)을 목에 걸고 배낭과 사진기 등을 꺼내 검색대에
올려놓고 마지막으로 금강산 여행에 적합한지를 판정 받은 후
겨우 금강산 산행을 위하여 안도 숨을 고르며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금강산이 아름다운 만큼 금강산에 입산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출발한 지 11시간 만인 9시가 다되어 금강산 세존봉코스 초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존봉 코스 등산을 위해 하차한 산행 동지는 200여명이
조금 넘는 듯하다.
산행시작에 앞서 안내원들의 인원 점검이 시작된다.
계곡을 통하여 세존봉을 향하는 다리를 중심으로 주~욱 늘어선
등산객은 군 입대 시 취했던 5열종대로 줄을 주~욱 서서 번호에
맞추어 앉아 일어서를 여러 번에 걸쳐 인원 점검이 끝난 후
산행이 시작되었다.  

세존봉코스 산행은 아마도 동석동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솔밭오솔길-
동석대-합수목-집선봉-세존봉오르는 철계단(354계단)-세존봉
전망대에 올라 역순으로 내려온 듯하다.

아무튼 산행들머리에 들어서자 아직 때 묻지 않은 육산 오솔길로
수령 200여년 이상 된 금강송(일명 미인송, 황장목, 춘양목, 적송등
여러 이름가지고 있음)이 등산로 양옆을 중심으로 2~3km정도 거리에
빼곡히 들어서 있어 걷는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함은 물론
금강산의 우아함을 돋보이게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금강산!!!
말로만 듯 던 금강산을 그것도 200년 이상 된
금강송의 환영을 받으며 좋아하는 이(50년지기)와 함께 한다는
것이 가슴 벅차오르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출발한지 20~30여분이 지나자 이틀 밤을 지 샌 몸은
어느새 땀으로 범벅이 되어 쉬어 갈 것을 은연중에 암시라도
하듯 한다.
다행히 조금을 더 걸어을까, 앞선 간 일행들이 뒤쳐진 일행과
동행할 수 있도록 한자리에 쉬어 가도록 안내원의 지시가
있었던 듯하다.
초등친구부부를 비롯한 몇몇 일행과 함께 너럭바위에 올라 쉬면서
피로를 잊고자 가시오가피주를 한잔씩 나눈다.

안내원지시에 따라 바위에서 내려와 산행을 하려고 하니 안내원께서
이자(술)를 드셨습니까, 산행은 영 글렀씁네다.
난 겁먹은 얼굴로 아닙니다 물을 좀 먹었습니다. 산행은 끄떡없습니다.
하고 줄행랑을 놓았다. 술을 한 잔 걸친 후라 그런지 발걸음 한 결
부드럽고 사푼사푼하다.

오솔길이 끝나고 경사도가 서서히 높아지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괴괴형상의 모양으로 뽀족뽀족하게 하늘로 치솓아
마치 온산에 병풍을 쳐 놓은 듯 함께하는 모든 이의 입을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도록 만들고 만다.

산행을 시작하던 처음보다는 많이 마음에 여유가 생겨
용기를 내어 북측 안내원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슬적슬적 물어도
보고 음식도 나눌 수가 있었다.

북측 안내원의 구수한 사투리의 설명을 들으며
가뭄 탓인지 물인 많이는 흐르지 않지만 폭포인 듯하고 마당바위가
형성된 전망 좋은 곳에서 쉬어기기로 하며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군단이 궁금하여 물어보니 뽀족뽀족하게 일직선으로 펼쳐진
봉우리들이 집선봉이라 한단다.

다음날 정확하게 알게 되었지만 제일 첫째 봉우리부터 시작하여
집선봉, 화채봉, 일출봉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건너편에 마주보고
서있는 드넓은 바위군단이 오늘 오르고자 하는 세존봉이였던 것이다.

세존봉을 향하여 섰다 가다를 반복하며 세존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철계단 아래까지 당도하게 되었다.

세존봉으로 오르는 철계단은 일직선에 가까운 경사도에 무려 높이가
120m로 계단수가 354개(오르며 세어 보았다는 산객께선 352개라고
함)로 간이 약한 여인네들은 오르기를 마다하고 계단아래에서
쉬고 계신단다.

하는 수없이 친구부인 두 분을 계단아래에 쉬시도록 하고 철계단을
향하여 발을 한발 두발 뛰어 놓는다.

나야 철계단을 오르는 것 쯤은 별문제가 되지 않아 성큼성큼 앞사람을
금방 따라 잡았다.
그러나 경사가 심하고 출렁거리는 관계로 정체에 정체 진도가 도무질 나아가지 않고
앞에선 남측 안내원(상당히 키가 크고 이쁨)도 알고 보니 오늘 처음
올라오는 코스라서 그런지 엉엉 신음소리를 내며 도저히 올라가지를
못하겠단다.

딸 같기도 하고 첫 발 내딛는 안내원의 용기를 북돋아 주기위해
손을 잡아주고 마음을 안심시켜 가며 한발 한발 뛰어 정상어귀까지
같이 올라 설 수 있었다.

정상어귀에 올라 북측안내원 다섯 분에게 초코렛을 꺼내어 나누어
드리며 인사를 하니 반갑게 맞아 주신다.

세존봉 정상에 올라서자 오르면서 느끼지 못하였던 또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금강산의 최고봉 비로봉(해발1638m)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서있고 건너편 앞쪽엔 오르며 보았던 집선봉 줄기가 한 눈에 다가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저 멀리 동쪽에선 삼일포와 해금강까지 날 한번 만이라도
보고 가라며 눈앞에 아른 거린다.

또한 산 끝에 칼날처럼 우뚝선 뽀족한 바위는 구름에 보일 듯 말 듯
아른 거리며 우암 宋時烈(송시열)할아버님의
금강산이란 싯귀절을 떠올리게 한다.

山與雲俱白(산여운구백) 산과 구름은 모두하나
雲山不辨容(운산불변용) 구름과 산의 모습을 구별할 수가 없구나.
雲歸山獨立(운귀산독립) 구름이 걷히고 산만 홀로 솟아 있으니.
一萬二千峰(일만이천봉) 일만 이천봉우리라.

오늘같이 날씨가 맑은 날엔 비무장지대의 향로봉과 설악산까지
조망된다하나 아직까지 산을 조망하며 관찰할 수 없는
안내 표지판 하나 없는 것이 아쉽다면 아쉽다.

세존봉 전망대에서의 조망을 두루 관망하고 내려오며 세존봉 정상에
오르면 3번을 놀라게 된다는 북측안내원이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뒤 새기어 본다.

하산은 되도록 많은 것을 제대로 느끼고 싶어 천천히 할 것을
다짐하고 친구부부와 뒷부분에 서서 북측 안내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나누며 발길을 뛰어 놓는다.

내려오는 중에 궁금했던 봉우리와 계곡 등의 이름을 물어도 보고
금강산 경치에 취하여 슬쩍 김삿갓님의 산행시도 읊어본다.

일보이보삼보립(一步二步三步立), 산청석백간간화(山靑石白間間花)
약사화공모차경(若使畵工摸此景), 기어임하조성하(其於林下鳥聲何)

걸음마다 발 멈추며 눈을 돌려보니,  푸른 산 흰 돌 사이 간간이 꽃이로다.
그림쟁이 불러다가 이 경치를 그려 본들,  숲속의 새소리야 무슨 수로 그릴꼬. 하니.

금방 북측 여성안내원께서

矗矗尖尖怪怪奇(촉촉첨첨괴괴기), 人仙神佛共堪疑(인선신불공감의)
平生詩爲金剛惜(평생시위금강석), 及到金剛不敢詩(급도금강불감시)

우뚝우뚝 뽀족뽀족 괴상하고 기이하니. 사람인가 신선인가 귀신인가 부처인가.
내 평생 금강위해 시 짓기를 아꼈건만,  정작 금강을 보고 나니 감히 붓을 못 들겠소.
하고 스스럼없이 응수한다.

이에 상기된 난
조선조 명종 때의 시인 宋翌弼(송익필)님의 산행시를 다시 읊조려본다.

山行忘坐坐忘行(산행망좌좌망행), 歇馬松陰聽水聲(헐마송음청수성)
後我幾人先我去(후아기인선아거), 各歸其以叉何爭(각기기이차하쟁)

가다가 쉬게 되면 다시 가기 잊어버려,  그늘에 말 메 놓고 물소리만 듣노라.
이 좋은 경치를 구경한 이 몇 몇인고,  제각기 오가거니 싸우지 말지어다.

라는 시를 읊어 보며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함축하여 거침없이
표현한 시로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해 본다.

여성 안내원과 내려오면서 금강산을 노래한 한시와 간단한 맨트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힘도 안들이고 산행시작 7시간 만에
세존봉 산행을 마치고 금강산 온천에 남진콘서트까지 즐기며
기나긴 하루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2007. 6. 16.
                                                       청주에서 촌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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