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1만2천 봉우리의 하나인 향로봉, 내 생애 단 한 번만이라도...

 

Mt. 0717  香爐峰(1296.3m) - 강원도 고성군

 

산행일자 : 2007년 6월 9일 토요일
산의날씨 : 흐림. 정상 짙은 안개
동 행 인 : 지리산악회 동참 산우 님들

 

산행거리 : 마루금 도상거리 ⇒ 왕복 24.8km
                  진부령 <3.8> 칠절봉 <5.1> 둥글봉 <2.9> 대간 갈림 <0.6> 향로봉
               작전도로 ⇒ 왕복 34km

 

산행시간 : 등산 ⇒ 4시간 02분 (휴식 15분포함)
                  진부령 <0:44> 식수 <0:35> 칠절봉 갈림길 <0:27> 향로봉 대피소 <0:27> 향로봉 
                  쉼터 <0:28> 철책. 초소 <0:29> 1,305고지 갈림길 <0:37> 향로봉
               하산 ⇒ 차량 이용 1시간 10분

 

 

                                                           향로봉 정상

 

                

 

                      오늘 산행구간도 - 조선일보사 '백두대간 종주산행' (1997년 10월 발행)

 

6월 8일 금요일 밤 9시 여수를 출발한 버스가 순천, 광양 경유 남해고속국도로 들어서 분계선을
향해 밤길을 부지런히 달린다.
순천 출발 직전 오늘 낮에 처방 받은 진통제를 먹고 눈을 감아보지만 향로봉 방문 신청 후 거의
1년을 기다려 온 인내와 설렘, 불현듯 또 시작된 다리 통증에 관한 두려움과 근심 등이 함께 어
우러져 머릿속이 산만해진다.

 

더욱이 사천휴게소에 이르자 빗방울이 들리기 시작했고 남강휴게소 전방 6km 지점부터는 빗줄기
가 제법 굵어져 놀이패가 야단법석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날이 바뀌어 단양휴게소에 닿자 비가 그치면서 한 시름 없어지고 통증도 발생하지 안해서
맘이 놓이며 홍천IC로 빠져 나와 소양강을 끼고 달리는 차창 밖으로 여명이 찾아 든다.

 

 

                                              미시령 입구 - 우측 암벽이 매바위

 

6월 9일 토요일 04 : 35
7시간 반을 달려온 버스가 미시령입구(용대삼거리) 매바위 밑에 도착한다.
아직 어슴푸레한 가운데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미리 예약해두었다는 바람도리 식당 황태해장국으
로 한 끼 떼우긴 했으나 꼭두새벽인데다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으니 입맛이나 있겠는가?
반도 체 못 먹고 개울로 내려가 낯을 씻는다.

 

 

                                                 바람도리 식당과 북천 상류

 

진부령 북쪽 물은 북천이라는 이름으로 간성읍을 통과하여 지척인 동해에 합류하지만 지금 내가
손을 담그고 있는 남쪽 물은 또 다른 북천으로 소양강을 이루고 한강에 몸을 섞어 서해로 빠지는
머나먼 여정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진부령

 

06 : 00∼48 진부령
신산경표에 의하면 백두산∼지리산 천왕봉까지의 1658.6km중 975.2km에 위치한 지점으로 백두대
간을 종주하는 모든 분들이 기약 없는 훗날을 생각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하는 곳이다.
백두대간 종주산행을 했었던 분들은 그들대로, 최북단 향로봉만이라도 찾고 싶어 온 분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제각각 생각하는 바 다르겠고 물론 내 사정도 다르다.

 

               

 

                                                진부령 표지석의 측면과 후면

 

진통제를 삼키고 나서 30km가 넘는다는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인가 은근히 걱정이 돼
사전 걷기 연습이라도 하듯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오솔길을 이 곳 현감으로 부임해온 이식 선생이
1631년 우마차가 다니게 개설했다는 설명문이 적힌 기념비, 이식 선생의 진부령유별시비, '맹호
수도사단 용사들이 단기 4284년 5월 7일부터 동년 6월 9일까지에 걸쳐 양양과 간성을 탈환하고
설악산으로 진격하였으나 패주하던 인민군은 중동부 요충지인 인제를 방비하기 위하여 설악산과
향로봉 일대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제5군단 예하 제11, 12, 13사단을 증원하여 수도사단 및
제11사단에 89회라는 회유의 반격을 가하여 왔었으나 도처에서 연전연승을 하는 용사들은 그 반
격을 격퇴분쇄하고 설악산 및 향로봉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라고 적은 향로봉지구 전투전적
비 등을 두루 살펴본다.

 

오늘 향로봉 방문은 우리들 뿐으로 46명의 객들이 인솔 차 나온 사람 좋아 보이는 하사관의 주의
사항을 말 잘 듣는 학동들 마냥 잠시 경청하고 인원점검을 마친다.
그리고 향로봉 산행을 허락해준 부대장이하 장병들께 감사의 뜻으로 정성스레 마련해 온 위문품
을 전달한다.
아울러 산행이 성사되도록 노심초사 애를 쓴 산행대장 허남금 님께도 감사드린다.

 

조금도 까다롭지 않다.
"도로를 벗어나지 말고 사진도 군 시설물을 제외하고는 마음대로 촬영해도 좋다"고 한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우측으로 두고 작전도로를 따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르는 일행들 얼굴이 가
벼운 흥분으로 인하여 상기된 것처럼 보인다.

 

 

                                    도로 따라 오르다 뒤돌아본 마산과 알프스리조트

 

산마루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더라도 고도차 750여m의 장거리를 걸어야하니 부담스러운데
다행히 아직은 발걸음이 가볍다.   
골짜기가 있는 사면은 물길에 의하여 골이 제법 깊게 파여 질펀거리고 경사가 급한 곳은 콘크리
트로 포장을 해놓았으며 '강릉국도'라 쓴 팻말이 궁금증을 유발한다.
또한 가끔 군용트럭이 스쳐가므로 여느 산길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온전한 마루금을 잠시 따른다.

 

07 : 20 고도 약 745m지점의 100여m 거리는 온전한 마루금이다.
이후 마루금 우측을 따르게 되는데 향로봉 정상 직전까지 줄곧 그리했으며 좌측의 높고 낮은 산
줄기가 갑갑하지만 우측 동해와 후방의 마산, 설악산 국립공원의 일부 산봉들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더러 나온다.

 

 

                                                       바위 밑의 식수


 

                                                   멀리 향로봉이 보인다.

 

07 : 32∼40 바위 밑의 깨끗하고 시원한 식수 터를 조금 지난 지능선이 휘어 도는 곳에 벤치가
있고 조망도 기가 막혀 눈이 즐겁다.
어디 그뿐이랴.
산경표(정학진) 님이 가져온 귀한 겨우살이 술에 입이 즐겁고 이정구 님의 쉴새 없는 입담에 귀
도 즐거우니 맨 꼴찌로 걷고 있어도 마냥 행복하다.

 

 

                             칠절봉 갈림(?). '여기서부터 11.2km...'라는 팻말이 있다.


 

                                         신선봉 등의 설악산 봉우리들이 보인다.

 

08 : 15 칠절봉으로 여겨지는 봉우리로 오르는 길인지 삼거리가 나오지만 우리는 눈으로만 오르
고 우측 작전도로를 계속 따른다.
지능선을 자주 돌아간다.

 

 

                                      좌측 길이 동개동으로 이어지는지 모르겠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설악산 봉우리들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또 한 능선을 좌로 빙 돌면 '향로봉 대피소'가 있고 "잠이 쏟아진다"며 눈을 깜박거리는 신재균
님의 얼굴에도 땀이 흐른다.
운동장처럼 널찍한 공터 좌측을 스쳐 한동안 가자 쉬고 있는 일행들이 보인다.

 

 

                                                         향로봉 쉼터

 

09 : 09∼16 '향로봉 쉼터'
맞은 편에는 고 김칠섭 중령 추모비가 세워졌으며 쉼터 입구 나무가지에는 향로봉을 다녀간 분들
의 표지기 수 십개가 걸렸다.
배낭 속에 한남금북정맥 종주산행차 넣어둔 표지기가 있다.
잠시 망설이다 한 개 걸어 놓고 앞선 일행을 부지런히 쫓아간다.
부대가 가까워지는지 전주마다 간단한 구호를 적은 팻말이 붙었다.

 

 

                                                       지나온 산줄기


 

                                                 향로봉은 한층 가깝게 다가선다.

 

09 : 44 철책문 초소에 복초가 서 있다.
4열종대가 아닌 산발적으로 오르는 일행들을 그때그때 점검하여 상황실에 보고하는 모양이고 후
미 네 사람 중 내가 맨 끝으로 46명 전원 통과 이상 무!
이제 정상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가 아닌가싶었지만 "한 시간쯤 더 가야한다"라고 하자 지금껏
괜찮던 다리가 아파 온다.

 

 

                                                 동해도 지척으로 보이고


 

                                        꽃으로도 위도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10 : 13 1305고지 갈림길을 지난다.
동해 쪽으로부터 해무(?)가 치솟아 오르면서 시계가 좁아지기 시작한다.
또한 습기를 머금은 해무로 인하여 땀이 식으면서 추워지고 부실하게 먹은 아침밥 때문에 허기가
지기 시작한다.

 

 

                                       능선 좌측을 대간 갈림으로 가늠할 뿐이다.

 

향로봉은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살짝 빗겨 나있다.
그 백두대간 갈림이 어디쯤인지 확인할 수도 없었으며 부대 건물 밑으로 돌아가면서 향로봉 관망
대가 머리위로 보이는데 마치 아득히 먼 거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10 : 50∼11 : 00 짙은 해무 혹은 안개가 사위를 막아버린 향로봉.
'금강산의 1만2천 봉우리중 하나이며... 높은 고지로써 구름이 덮인 날이면 향로에 향불을 피워 놓
은 형상으로 보인다하여 향로봉이라 불린다...'고 적은 '향로봉의 유래' 팻말을 대충 살펴보고 관망
대로 들어가 초병과 잠시 얘기를 나누면서 창밖을 내다보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향로봉의 빗돌들

 

북서 방향 심재령∼무산∼매자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내 생애 단 한 번만이라도
아무 산줄기나 살펴보길 소원하면서 북녘 땅을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려고 했건만 덕을 쌓지 못함
인지 그 뜻을 이루지 못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밖으로 나와 향로 앞에 고개 숙이고 전장에서 산화하신 영령들께 묵념을 올린 후 군대답게 일렬
횡대로 설치된 빗돌들을 살펴본다.

 

 

                                              나 또 다시 이곳에 설 수 있을까?

 

                                                      '아! 향로봉 남강은
                                                       옛산 옛물이로되
                                                       눈보라 내리치든
                                                       처참한 싸움터에
                                                       쓰러진 전우들의
                                                    모습은 간곳이 없도다'  

 

아무도 없다.
서둘러 내려서는데 건물 입구의 작업자재 등이 수북히 실린 작업 차 적재함으로 일행들이 오르더
니 이내 출발한다.
소리 질러 차를 세우고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가자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분이 문을 열어주며 "안
으로 타라"고 한다.

조금 내려간 곳에서 쉬고 있던 일행들 중 서너 분이 더 적재함으로 오르고 만원을 이룬 작업 차
는 조심스럽게 진부령을 향해 내려간다.

 

 

                                            작업 차를 얻어 타고 - 허남금 님 사진

 

어차피 지루하게 올랐던 도로를 차량을 이용하여 내려간다 해도 흠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나로써는 매우 의미있고 중요한 향적봉 삼각점을 확인하지 못한 실수를 하고 말았다.
안타까운 한숨을 토해내자 옆 사람이 나를 바라본다.

"..... 혹시 거리를 찍어본 적 있습니까?" 머쓱해서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예. 꼭 17km가 나오더군요. 전주는 332개구요. 오늘은 적재함에 사람이 타고 있어서 1시간쯤 걸
려야 정문에 도착할겁니다"
'아니 어떻게 전주까지 다 세어볼 생각을 했을까?'
알고 보니 진부령 부근에서 민박을 하고 있다는 이 분들은 "전기공사차 서울에서 왔다"라고 한다.

 

 

                                            부대 정문을 나서 다시 진부령으로

 

12 : 15 노면이 고르지 못하고 움푹 파인 곳과 질펀한 곳 때문에 한 시간이 더 걸려 정문에 도착
했으며 도보로 내려오는 일행들은 14시부터 15분 사이에 모두 진부령으로 되돌아 왔다.

거의 1년을 기대 속에 기다려온 향로봉 산행.
비록 작전도로를 따랐고 정상의 조망도 즐기지 못했으나 아직은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진부령 북
쪽 백두대간 길을 조금이나마 걸었다는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통일안보교육관에서 슬라이드를 관람하고 출입허가증을 받았다.


 

                                      다시 버스를 이용하여 도착한 통일전망대


 

                                   맞은편 한국군관측소와 멀리 외금강이 보인다.

 

하늘이 무심하지만은 안했다.
통일전망대에 이르러서는 날씨가 맑아져 해금강은 물론 멀리 외금강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남측 풍경


 

                             북측 풍경-금강산으로 가는 육로와 구선봉 그리고 해금강


 

                                         꿈에도 소원은 통일... 더불어 기원해 본다.

 

발 아래의 동해물은 남과 북이 서로 보듬고 있어 한 몸이듯 우리도 북한 산줄기를 마음대로 따르
고 살펴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부처님과 성모 마리아 님이 북쪽을 향해 기도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