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간 백 군데 산 찾아다니기 그 스물일곱 번째’


 


 

1. 단양

   

 단양은 내가 좋아하는 지명이다. 진주, 강릉, 알프스, 지구 밖으로 나가서는 금성……. 가보지는 안았어도 누구나 좋아하는 지명이 있다. 내 경우는 주로 시각적인 상상력에 서정적인 느낌이 더해져 그런 이미지를 형성했다. 감수성 예민하던 어린 시절, 교과서의 예쁜 그림이나 들은 이야기 또는 어릴 적 학습이 이런 이미지 형성의 단초가 됐다. 진주는 영롱한 보석이 떠오르고, 강릉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결의 푸름이 느껴진다, 단양은 노을을 닮은 단풍이 연상되고, 알프스는 흰 눈이 다가온다. 금성은 샛별 이미지 때문에 좋고 화성은 왠지 또 하나의 지구로 아늑한 마을이 그곳에 있을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그런 이유로 가깝게 느껴지는 지명 중 하나지만 단양도 내게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그러나 이름의 유래를 보면 내가 좋아한 단풍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연단은 환약을 말하고 조양은 골고루 빛이 비친다는 말로 연단조양에서 따왔다고 한다. 한자말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번 산행기는 처음부터 이름 짓기로 고민했다. 산행기 제목에 산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마땅한 이름이 없었다. 구담봉, 옥순봉은 봉우리 이름으로 딱 부러지게 정할 산이 없었다. 월악산, 소백산, 태화산을 억지로 끌어갖다가 붙이려고 해도 너무 알려지고 독립성이 강해 전혀 맞지 않았다. 환선굴에 갔을 때도 그런 고민을 했다. 덕항산에 있는 환선굴이지만 그 산 이름에는 환선굴 이미지가 전혀 없어 굴행기로 할까 하다가 혼자 웃었다. 이번에도 봉우리라는 뜻에 봉행기라 하자니 더 헷갈렸다.

 아침 일곱 시에 수유역 부근 궁전예식장 앞에서 기다리는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이 산악회에 나온 지 세 번째 나오게 되니 아는 얼굴도 차츰 늘었다. 반가운 표정이 얼굴마다 오갔다.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늘 볼펜과 필기구는 준비해 다니고 있었다. 최소한 도착 시간과 장소 정도는 적어 두었는데 세수마저 물에 헹구듯 적시느라 얼굴을 물속에 집어넣다 꺼내 바쁘게 쫓아 왔으니 챙겨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바로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 말하듯 틀니대신 금니가 생겼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중 메모장에 눈이 갔고 오히려 익숙해지면 손으로 쓰는 것 보다 낫겠다고 생각했다. 내 손에서 볼펜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2. 웰빙 산악회

 

  일곱 시에 출발한 버스는 한 시간 만인 여덟 시에 이천 휴게소에 도착했다. 버스 속에 있는 동안 소개하고 공지하고 아는 사람끼리 인사 나누고 농담하고 떠들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하루 산행 중 아침 버스 속 의 두 세 시간은 운동으로 비교해서 스트레칭 시간이다. 스트레칭은 그 자체로도 매우 중요하지만 몸을 잘 풀어야 하루가 잘 가듯 인생에도 스트레칭이 있다. 아침 국밥이 맛 있었다. 매번 토요일 하루 급식조의 수고 때문에 일요일 아침이 즐겁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산악회 마다 나름대로 개성 있게 움직였다. 예전의 평면적인 산행을 벗어나 기승전결의 골격까지는 아니라도 기획 산행으로 변한다고 생각했다. 외부인에 아주 폐쇄적인 단순한 등산모임도 있지만 동아리 색깔까지 섞인 인생의 이동휴식소로 바뀌는 것 같았다.

 이천 휴게소를 떠난 열 시 경 단양 계란재에 도착했다.

 

 계란재 - 구담봉 - 철모 바위 - 옥순봉

 

 정해진 산행 계획은 구담봉을 거쳐 옥순봉을 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행 때마다 느끼는 것은, 아는 것 같으면서 모르는 삶이 너무 많았고 다 가본 것 같은데 못가 본 데가 꽤 많았다. 상상속의 단양팔경을 여태껏 듣고 꿈꾸다가 이제야 보게 됐다. 게으른 탓이다. 그걸 보면 나로서는 백산을 찾아 나선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3. 구담봉

 

 열 시 넘어 산을 오르기 시작한지 한 시간 만인 열한 시 이십 분에 삼백 삼 미터의 구담봉에 올라섰다. 나처럼 처음 오는 사람들에겐 나름 역사적인 날이다. 오전 내내 흐린 날씨 속을 살피며 왔지만 꼭대기에 오르면서 천지가 밝아지는 느낌이다. 산행기를 쓸 때마다 쓰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같이 간 사람들과 함께 음미하고 공감하며 읽을 것을 생각하면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늘은 특히 더했다. 똥끝 타게 한 암벽이 있어서다. 마지막 밧줄을 잡고 오를 때는 만감이 교차했다. 수락산에 갔을 때 깔딱 고개를 오르고 나서 우측 능선을 바라본 순간 가파른 암벽을 보고 되돌아 온 적이 있다. 용문산 갔을 때도 능선 우측에 나타나는 가파른 바위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이번에도 그럴까 생각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앞만 보고 바들바들 떨면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산을 자주 다녔지만 앞길에 이런 암벽은 드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죽는 소리를 해가면서 모두 올라왔다. 여자들도 잘 올라왔다.

 발아래 멀리 바라보자 산뜻한 길이 산책로처럼 멀리까지 아기자기하게 이어졌다. 산 사이에는 담수물로 이어진 푸른 물결이 장관이다. 붉은 단풍, 짙은 소나무, 회색빛 날씨를 잘 받혀주어 더욱 산뜩했고 시원했다. 옥빛이니 비취빛이니 푸른 빛깔이 다 어울렸다. 댐이 생기기 전만해도 마을, 농로였던 주변이 푸른 물로 꽉 차 있다.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생각했다. 충북의 정원 나아가 한반도의 정원으로 왜 이곳 사진은 항상 밝고 산뜻한지 비로소 알 듯 했다. 유람선이 떠간다. 그 옆에는 달빛 따라 달리는 내 마음의 돛단배 수십 척도 따라갔다.

 

4. 옥순봉

 

 옥순봉을 향해 가는 길에 철모바위에서 점심을 먹었다. 찰밥, 김밥에 복분자 술 몇 잔 마시자 사람들 얼굴마다 단풍 들었다. 단풍든 얼굴로 단풍 속을 가는데 옥순봉 가는 길옆에 낚시하기 좋은 물가가 더러 보였다. 단속이 있는지 낚시꾼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한 시 삼십 분에 옥순봉 286미터에 올랐다. 구담봉보다 아찔한 맛은 없었다. 죽순이 어떻다며 퇴계 선생이 반했다는 옥순봉인데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잘 모르겠다.

 우리의 퇴계 선생은 일찍이 웬 복이 그렇게 많았을까. 학문이 깊으면 벼슬 복이 없던지 벼슬 복이 있으면 여자 복이 없던지. 나이 마흔 여덟에 열여덟 살 기생 두향이와 사랑에 빠졌다니. 지금으로 말하면 여고생 또래가 퇴계 선생에게 매화 한 송이를 선물로 주면서 프러포즈했고 이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요즘 같으면 난리 날 일이다. 이 별난 여자는 그로부터 이십 이년 정도를 더 살다가 퇴계 선생이 죽자 뛰어내려 자살했다.

 역시 공부를 많이 하면 학문이 깊어지고 학문이 깊어지면 벼슬이 생기고 벼슬이 생기면 따르는 재물과 여자가 생긴다.

 

5. 귀경

 

  핸드폰이 울려 전화를 받았다. 작은 놈이다. 며칠 전 내가 고장 난 카메라를 어떻게 해본다고 가지고 다니다가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지레 못쓸 거라 생각하고 구석에 두고 나왔는데 작은 놈 말로는 카메라가 저절로 고쳐졌다는 것이다. 맞아야 된다는 사람처럼 기계들도 떨어지든 맞아야 되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다음부터는 산행기에 한 컷 정도라도 사진을 올려야겠다.

  오후 세 시경 하산해서 막걸리와 음식을 많이 먹었다. 아쉬움이 남았다면 유람선을 타고 둘러볼 수 없었음이고 단구동문이라는 글자가 물속에 잠겨 볼 수 없었음이다. 훗날 기회가 되면 여러 날을 잡아 혼자라도 다시 찾아와 유람선도 타고 팔경을 두루두루 걸어 둘러보고 싶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그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담고 싶다.

 네 시 반경 출발해 이천에는 일곱 시 반에 도착했고 서울에 와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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