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사랑 그리고...【광덕산 - 충남 천안】


 
 

 

일주문 - 김부용묘 - 광덕사 - 쉼터 - 장군바위 - 광덕산 정상 - 산내골 - (P)


 

2011. 6. 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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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날의 소박한 빛을 받으며..


 

     여름빛에 가려있는 소소한 흰 구름이 시간을 잊은 채 천공을 맴돌고 있다. 연두빛의

    색감이 조용히 떠다니는 빛 속과 극명하게 대비되니 자연의 일색에 마음을 놓는다.

유려함이랄까, 오전 창에 비치는 그 풍경은 사색이 만연되도록 그림이 되어주는

것이다.

 

 


 

 

 

 

 

 


 

 화사하게 깃드는 일주문을 지나 심층수처럼 파고드는 청아한 물소리가 머리를 맑게

한다. 초여름의 고운향기가 산정 속으로 흐르며 능선을 거쳐 든든한 가슴과 어깨로

선 상봉의 산줄기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지고지순한 여름날의 일기이다.

 

 


 

 

 

 

 

 

 

 

 

 

 

 

 

 

 

 

 

 

 

 

 

 

 

 

 

 


 

  조선조 3대 여류시인중의 하나였던 부용님의 묘를 가는 길은 이랬다. 붉은 빛으로

    치장한 소박한 산길은 걷기에는 너무나 편안하고 안온한 사색이 들기에는 안성맞춤

           이었다. 키다리 삼림과 소소한 활엽수의 그늘에 가려 아늑한 느낌을 주면서 숲의 향기를

  전해주는 그러한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때론, 굽이돌고 돌아, 쭉 터진 길을 거쳐,

 언덕을 넘어 이어오며 그 시대, 그녀의 삶은「어떠했나?」라는 궁금증을 가진 채

그님에 대한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우선 지아비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엿볼 수가 있다. 그리고 소실로서 절개와 의뢰를

지키며 안주인의 소신을 피력하여 누구나 다 평등하게 사람을 폄하하지 않았던 그

 시대로서는 보기 드문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 뜻이 같고 마음이 통한다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세상에는 삼십객 노인이

     있는 반면 팔십객 청춘이 있는 법입니다.」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그녀의 애절한

마음을 가슴깊이 느껴본다.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 초연히 묻혀있는 운초의 묘를 보면서 그녀의 삶이 진중했음을

짐작해본다. 소묘로서 소박하며 단출한 모습이 그동안 찾는 이 하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잠시 그 품안에서 맴돌다 좌편으로 다가가 비문을 자세히 엿보면서 세월에 비감을

  느껴보며 돌아섰다. 돌아보자, 댕그런히 남은 작은 비석만이 영롱한 빛을 받아 쓸쓸히

숲속을 비추고 있다. 

 

 

 

 

 

 

 

 

 

 

 

 

 

 


 

        # 여름날의 초상


 

   적적한 마음을 가다듬고 계류를 건너니 우측의 양지바른 곳에 홀로 빛을 받아 다소곳이

  피어있는 찔레꽃이 화사하게 눈을 열게 한다. 아낌없이 주는 그 농향에 심신을 맡긴다.

넉넉한 일기에 새롭게 피어나는 산정의 후덕함을 마음에 담으면서 바람을 타고 산중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광덕사의 품안에 내가 들었다. 조용히 여름을 맡고 있다. 경내를 한바퀴 돌아보며

            사찰의 정갈함에 신신함을 느낀다. 비록 새로 지은 요사체로 옛 맛이 풍기지 않지만은

                   속속 흐르는 가람의 고요함이 대신한다. 의연하게 솟은 산중 속 노송을 스치는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유장한 빛을 타고 대웅전을 감싸버린다. 한 여름날의 고즈넉함이다. 

 

 


 

 

 

 

 

 

 

 

 

 

 

 

 

 

 

 

 

 

 

 

 


 

    온후한 여름날이 열리고 있다. 고요히 흐르는 산정의 깊은 품이 새록새록 달궈진다.

청명하게 비치는 산봉의 그림자가 산 아래와 산 능선을 고고히 감싸고 있다. 높고

낮음이 미려한 곡선으로 이어지는 각 연봉들마다 6월의 빛을 받아 한층 수려하게

창연히 떠올라있다.


 

「 잔잔히 흐르는 6월의 아침이 싱그럽네요.」

                           「 저 미려한 연봉들의 풋풋함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려놓네요.」

                              「 아주 싱그러운 여름날의 연둣빛 색감 속 별천지입니다. 우리들이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산중 속에 흐르는 여름의 물결이 지나간 상념을 일으킨다. 조용히 앉아 보내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자연의 흐름을 생각한다. 물론 자연의 급변화의 결말은 세월 속에 묻히지만

말이다. 


 

  『 4, 5월의 기후는 매서웠다. 자연의 일기가 매순간마다 다르게 변해 같기 때문이다.

       그 불순한 기후로 인해 봄꽃들의 치장은 더욱 끝이 난 것이다. 어느 새순에서 꽃망울

         까지 어디하나 온전 한데가 없었다. 환경의 변화가 생각 그 이상이었다. 너무나 빠르고

다르게 변해가는 시간으로 인해 마음까지 황량함이 들었던 것이다. 』


 

 『 그러나 세월 속에 비친 그러했던 자연의 흐름은 곧 잊히고 마는 치유력이 그 어느

     누구에게나 생성되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서서히 잊혀져가며, 자연스레

또 다른 절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자연이기 때문이다. 』

 

 

 

 

  

 

 

 

 

 

 

 

 

 

       

 

 

 

 

 

 

 

        # 그늘진 진초록 숲속엔 바람만이 나부낀다.


 

햇볕이 풍부하게 드는 그늘진 숲길에 청정한 6월의 기운이 수북하게 싹트고 있다.

 길게 드리워지며 간간히 잘록한 산로에 마음을 기대며 한동안 걷고 나니 그 충만한

     정취가 선연하게 드러난다. 소슬히 불어오는 산바람의 향취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가슴을 쫙 펴고 코를 들이댄다.

 

 


 


 

          휘돌아 능선 앞에 와있다. 능선사이를 넘어오는 훈풍은 유장하게 흐르는 산중의 깊은

      곳까지 스며들며 넘실대는 모습이 한줄기 신선한 풍경이다. 또 그윽하게 비쳐대는

금빛과 어우러져 이 산정에는 6월의 향기가 가득 차 태양의 광채를 안고 있다.

그 속에서 이는 수림의 물결이 유정한 마음을 휘감도록 만들게 한다. 

 

 


 


 

굴절되었던 숲의 흐름이 찬연하게 뒤바뀌어 쓸쓸한 정취는 간데없고 정채 된 마음의

 물결이 이는 푸른 호수로 대조된다. 호수의 물길이 따라오는 것처럼 심신에 안온함이

     깃든다. 초록빛 바다에서 잔잔한 6월의 물결을 일렁이게 하는, 그 무한한 힘을 발산하는

대자연의 힘이 순간적으로 발휘하는 것이다.

 

 


 

 

 

 솨~ 솨~ 후드득 후드득, 꽃눈 되어 날렸다. 낙화로다. 강건히 불어주는 봄바람에

        생을 다했다. 그 흩날렸던 풍경에 마음이 애잔하다. 흥건히 뿌려놓은 꽃잎의 속사정이

  있었나보다. 생과 사. 두 갈림길에서 무수히 갈등을 했으리라. 한순간의 영욕이냐,

     잔잔한 기다림이냐. 그렇다. 여기의 꽃잎은 전자를 택했다. 어차피 한순간 피고 지는

   것인데. 차라리 그럴 바에는 바람 속에 구르는 꽃눈 되어 화사하게 피어나는 것 뿐.

불순한 기후가 필요 없었다.

 

 


 

 

 

 

 

 


 

      초록빛 나무와 연두빛 잎새가 구름을 가린다. 하늘과 산정의 경계를 지우며 임평선 위에

 내려앉아 있다. 걸어온 산길과 걸어갈 산길에도 소슬하게 비쳐대는 구름빛의 얼굴이

   잎새 사이로 빠르게 스며든다. 그리고 시선을 붙잡도록 몸을 놓아주지 않는다. 한동안

서서 빛과 잎새와 바람과의 이야기를 나눈다. 산정에 펼쳐진 6월의 사연을 얘기하는

중이었다.

 

 


 

 

 

 

 

 


 

  한 폭의 유화처럼 드리워진 풍경이 초원같이 펼쳐진다. 그 유화는 내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다들 금방 사로잡힌다. 초연한 바람이 산봉을 휘감으며 그 안으로 흡입시킨다.

    어서 불어라, 바람아. 세차게, 더 세차게. 그러나 온후한 바람만이 칙칙해진 몸둥아리를

휘갈길 뿐이다. 일렬로 서 그림같이 펼쳐지는 중후한 산맥들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감지하니 주름만 늘어간다.

 

 


 


 

    빛에 감지되어 선연하게 비치는 수림의 의연함에 눈동자를 모은다. 외형보다는 깊숙이

드리워지지 않은 내형의 멋이 훨씬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바람결에 쓸리며 은은하게

그려내는 잎새들의 멋들어진 모습에 감탄만 쏟아진다.

 

 


 

 

 

 

 

 

 

 

 

 

 

 

 

 

 

 

 

 

 

 

 

 

 

 

 

 


 

                우윳빛 속살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안개 속에 퍼져있는 풍경의 뒷모습이 무척            

     아련하기만 하다. 간혹 골짜기와 호수가 내비치기는 하나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상봉에서는 무채색깔의 묵상화가 될 뿐이다. 첩첩이 둘러싸인 아산 쪽 풍광은

         발아래 펼쳐지는 경관이라기보다는 이 시간 속을 흐르는 경미한 산경의 일부분인

         것이다. 점점 멀어지는 아쉬움이지만은 하늘아래 큰 산맥을 이룬 채 6월의 햇살을

        등지며 점점 더 하야지는 풍광들의 모습에 가슴을 웅크리며 떠다니는 바람소리에

손을 내민다.      

 

    


 

 

 

 

 

 

 

 

 

 

 


 

   오는 이, 가는 이 하나 없는 숲길을 걸어가는 동안 귓전을 울리는 건 바람소리와 맑은

     새소리뿐이다. 햇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적 드문 숲속엔 내가 주인이 된 느낌이다.

아니다. 이곳은 고요의 땅이고, 그 속에 주재한 시간의 땅이 주인인 것이다. 그리고

세상과 단절된 무욕의 땅이 주인인 것이다.              


 


 

                           2011.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