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백운산-바라산-청계산 종주기


 

                      *산행일자:2005. 11. 10일

                      *소재지  :경기 수원,성남,과천,의왕/서울 서초

                      *산높이  :청계산630미터/광교산581미터/백운산567미터/바라산428미터

                      *산행코스:경기대-형제봉-광교산-백운산-바라산-하오고개-청계산석기봉

                                      -옥녀봉-양재화물터미널

                      *산행시간:8시10분-19시15분(11시간5분)


 

  수원의 경기대에서 시작하여 광교산-백운산-바라산-청계산을 연이어 오른 다음 서울 양재의 화물터미널로 하산하는 길고 긴 산줄기를 종주하고자, 올 들어 백두대간을 혼자 뛰며 보강한 체력도 테스트할 겸해서 어제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금년 1월1일 모락산-백운산-광교산을 종주하고 경기대로 하산했고, 1월30일에는 백운산-바라산-청계산을 밟은 다음 양재 화물터미널에서 산행을 마쳤기에 이번 산행에는 길을 잃고 알바할 염려가 전혀 없고 제 주력으로도 10시간 정도이면  넉넉할 것 같다는 계산에서 아침을 서둘렀습니다.


 

  어제의 종주산행은 뜻하지 않은 알바로 능선 길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고 제 시간에 끝내지 못해 매끄러운 산행은 못되었지만 실패한 산행으로 생각지 않는 것은 난생 처음으로 차들이 질주하는 터널 안을 10여분 간 걸어 산줄기를 땅 속으로 횡단했고 1시간 넘게 저 혼자 밤을 뚫으며 힘들게 산행을 해 어찌했던 경기대 출발 11시간 만에 목적지인 양재에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아침 8시10분 경기대 정문에서 솔밭으로 들어서 종주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휴일인 정월 초하루에는 형제봉에서 경기대로 하산하는 길이 수많은 등산객으로 붐볐고 먼지가 펄펄 날렸었는데 평일인 어제는 더러 더러 낙엽이 길을 덮어 먼지도 일지 않았으며 아침 산책길에 나선 몇 분들만 산을 올라 비교적 한산했습니다.


 

  9시23분 해발448미터의 형제봉에 다다랐습니다.

대부분이 산보객들이 형제봉을 목적지로 하기에 이곳까지 산을 오르며 여러 분들을 만났지만 도시의 산에서는 서로 인사를 나누지 않아 고개를 들고 걷기가 민망했습니다. 경기대 출발 반시간 만에 이번 산행 중 첫 번째 고개인 문암재를 지났는데, 지지대고개에서 백운산을 거쳐 문암재를 지나는 한남정맥은 이 고개 직전의 322봉에서 오른쪽으로 난 산줄기를 따라 안성의 칠장산까지 이어집니다. 어느 분이든 형제봉을 오르내리며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평생”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표지판에 새겨진 박 재삼님의 시 “산에서”를 수 없이 읽어 우리네 인생을 관조할 만한 분이겠다 싶었습니다.


 

   형제봉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경사진 길을 내려서 만난 두 번째 고개 양지재에서 왼쪽 양지농원으로 하산하는 길이 폐쇄된 것은 백만 수원시민의 안식처인 광교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로 여겨졌습니다. 양지재에서 가파르게 오른 비로봉의 정자가 이 봉우리를 전망대로 자리매김하게 했고, 비로봉에서 내려다 본 산 밑의 하광교소류지와 고속도로를 경계로 마주보는 광교저수지가 오누이처럼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비로봉에서 6-7분 내려서 세 번째 고개인 토끼재를 지났습니다.


 

   10시32분 광교산 정상인 해발 581미터의 시루봉에 올라섰습니다.

형제봉에서 시루봉까지 등산로는 한적했습니다. 시루봉에서 오른쪽으로 손골성지길이 나있고 북서쪽에 자리 잡은 백운산 통신대가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노루목대피소를 지나 갈대밭에 이르자 벤취에 앉아 쉬고 있는 아주머니 몇 분 들이 제게 따끈한 차와 방울토마토를 권해와 고맙게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할아버지”하며 저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집에 돌아가면 머리부터 물들여 제 나이를 되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11시20분 해발 567미터의 백운산에 올랐습니다.

다음 주면 지나게 될 지지대고개에서 이곳 백운산까지의 한남정맥 길을 휘둘러보았으나 희뿌연 매연으로 잘 보이지 않았으며, 지난번에 올랐을 때 제대로 조망됐던 청계산, 수리산과 관악산도 그 윤곽만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백운동에서 불어올라 오는 골바람을 가슴에 안고 빨간 열매가 탐스럽게 열린 산수유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8분간의 휴식을 끝내고 바라산으로 향했습니다. 네 번째 고개인 고분재로 내려서는 길은 30분을 걷는 동안 200미터 이상 고도가 낮아지는 내리받이 길이었습니다.


 

  12시21분 해발 428미터의 바라산에 다다랐습니다.

십수그루의 소나무가 지키고 있는 정상에 올라서자 비로소 청계산의 산줄기가 눈에 들어왔고 왼쪽 산 밑의 백운저수지도 한 폭의 그림처럼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바라산재로 내려서는 길이 백운산에서 고분재로 하산 하는 길보다 거리는 짧았으나 경사가 더욱 심한 비탈길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고개인 바라산재로 내려서자 오른 쪽 가까이에 들어선 민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3시11분 425봉에서 짐을 풀고 목을 축였습니다.

바라산재에서 400봉에 이르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고즈넉해 “나홀로 산행”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는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마침 옛골에서 출발했다는 40대 후반의 남자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425봉에서 잠시 쉬면서 방금 만나 인사를 나눈 남자 분을 떠올리며 공연히 걱정을 한 것은,  등산객에 젊은 남자가 다가와 어디를 가느냐고 물은 다음 휴대폰으로 공범들에 알려 산객들의 소지품을 갈취하는 강도일당들이 바라산에 출몰하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어느 분의 산행기를 얼마 전 “한국의 산하”사이트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게 행선지를 물어온 앞서 지난 젊은 분이 절대로 그런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면서도 일단은 빨리 여기를 빠져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서둘러 하오고개로 내달렸습니다.


 

  이 서두름이 알바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이 쉼터에서 왼쪽으로 꺾어 KBS송신탑으로 향했어야 했는데 한참을 직진한 후 왼쪽으로 꺾어 진행했기에 40여분을 걸어 엉뚱하게 성남시 석운동으로 내려섰습니다. 앞서 다닌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한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한적한 길을 걸으면서 중간 중간 혹시나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하면서도 성남시 환경녹지과에서 매달아 놓은 성남시계등산로 표지기가 길을 따라 연이어 나타났고 강도를 만나지 않으려면 빨리 이산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린 것이 알바의 주원인이었습니다. 조림한지 얼마 안 된 듯한 잣나무 단지를 지나며 잣나무보다 키가 훨씬 큰 활엽수가 떨쳐 낸 낙엽들이 잣나무사이로 난 길을 수북하게 덮고 있었습니다. 푸르른 생명을 겨울 내내 이어가는 잣나무의 잎들과 이 가을에 온몸을 불살라 장엄미를 보여줬던 낙엽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평화로운 이 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카메라에 옮겨 담아 왔습니다.


 

  14시2분 휴업중인 레스토랑 들꽃토방으로 내려섰습니다.

인근의 신축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에 물어 이곳은 성남시 석운동이고 계속해 내려가면 용인시로 들어섬을 알았습니다. 그 분들이 가르쳐준 대로 아스팔트길을 따라 북쪽으로 되올라갔더니 20분후 쯤 왕복2차선의 차도가 나타났습니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차도를 따라 500미터 가량 올라가 만난 운중터널을 걸어서 빠져나가기까지 10여분 동안은 질주하는 차들이 내는 소음으로 귀가 찢어 질 것 같았던 공포의 시간이었습니다. 터널에서 10여분을 내려가자 길 건너 정신문화원이 가깝게 보였고,  성남-안양 간 신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서 하오개 고개로 올라서기까지 잠시 딴 생각하다 길을 잃고 알바를 해 공연한 사람을 오해한 죄 값을 단단히 치렀습니다.


 

  15시22분 하오고개 차도를 건넜습니다.

지난 1월 425봉에서 하오고개까지 55분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2시간 11분이 걸렸으니 1시간 16분이 알바로 추가된 셈이기에 양재에 도착하는 시간도 그만큼 늦어지면 19시 넘어야 산행이 끝나게 되는데 이번에는  야간산행을 해서라도 목적지까지 가야겠다고 결심하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16시28분 해발 540미터의 국사봉에 올랐습니다.

하오고개 차도를 건너 지난번에 점심을 든 묘지로 올라섰습니다. 묘지에서 반시간 가까이 걸어 오른 393봉에서 늦은 점심을 들었는데 알바로 고생해 시장해서인지 밥맛이 꿀맛이었습니다. 393봉에서 멀리 보이는 백운저수지가 석양에 반사되어 붉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393봉 출발 22분만에 국사봉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른 후 석기봉으로 내달렸습니다.


 

  17시24분 해발 595미터의 석기봉에 다다르자 어둠이 감지되었습니다.

헤드랜턴을 머리에 꺼내 차고 오르내림이 험한 길을 무사히 통과하여 여섯 번째 고개인 혈읍재에 다다르자 사방이 캄캄해졌지만 그동안 워낙 청계산의 이길 저 길을 많이도 오르내렸기에 저 혼자 밤길을 걸어도 무섭거나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18시33분 해발 375미터의 옥녀봉에 다다라 벤취에서 잠시 쉬며 호흡을 조절했습니다. 40분전에 들른 매봉에서 내려다본 과천시의 야경은 아름다웠습니다. 몇 달 전 산본으로 이사하기까지 14년을 살면서 산위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과천시의 야경을  어제 뜻하지 않게 보고나자 아들 둘을 탈 없이 잘 키운 이 도시가 고향처럼 다정다감하게 느껴졌습니다. 매봉에서 일곱 번째 고개인 원터고개로 내려서기까지 원터마을로 하산하는 몇 분들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목소리가 들려와 반가웠습니다.


 

  서초구청에서 잘 다듬어 놓은 편안한 길을 걸어 화물터미널로 하산하는 동안 마지막 여덟 번째 고개인 죽바위고개를 지났습니다. 광교산의 문안재, 양지재, 토끼재, 백운산의 고분재, 바라산의 바라산재, 그리고 청계산의  혈읍재, 원터고개와 죽바위고개 모두가 차들이 지날 수 없는 작은 십자 안부의 고개들입니다. 옛날에는 이 고개들이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넘나드는 통로였다면 이제는 산줄기를 따라 종주하는 산 꾼들이 쉬어가는 안부로 그 역할이 달라졌습니다. 알바로 정신을 뺏겨 아름다운 이 고개들중 몇 고개를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아쉬웠습니다.

  

  19시15분 양재의 화물터미널로 하산, 밤길 산행을 마쳤습니다.


 

  알바만 아니었다면  10시간 정도면 끝났을 이번 산행을 11시간 5분 만에 끝내고 나니 힘은 들었어도 잘 해냈다고 제 스스로가 대견스러워보였습니다. 알바에 굴하지 않고 야간산행을 무릅쓰며 끝까지 해낸 것은 시인 박 재삼님이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대는 우리 인생을 보았듯이 저는 산에서 겪는 알바에서 인생의 여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도전하여 알바 없이 이 코스를 제대로 뛰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