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시리즈1) 마음속의 미인들과 함께 걸은 유봉산~초록산(http://blog.daum.net/yooyh54/291)

(미인시리즈2) 아늑한 조강지처 광교산의 품에서 중국역사 속 미인을 생각하다 ( http://blog.daum.net/yooyh54/295)

(미인시리즈3)역사속의 미인들과 함께한 광교산과의 데이트 (http://blog.daum.net/yooyh54/301 )

(미인시리즈4) 조강지처 광교산의 품에서 팜므파탈을 꿈꾸다 ( http://blog.daum.net/yooyh54/309)

(미인시리즈5) 조강지처 광교산과 나눈 운우지정 (http://blog.daum.net/yooyh54/243)

(미인시리즈6) 현처 광교산의 품에서 악처를 생각해보다 ( http://blog.daum.net/yooyh54/314)

(미인시리즈7) 그녀 광교산이 페미니스트였다면... (http://blog.daum.net/yooyh54/314)

(미인시리즈8) 광교산 가는길 훔쳐 본 꾳들의 사랑 (http://blog.daum.net/yooyh54/262)

 

(미인시리즈9)

새디즘의 사랑이 넘실대는 광교산

 

산 행 지 : 광교산 시루봉

산행일시 : 201314()

누 구 랑 : 나홀로

산행코스 : 상광교버스터미널-노루목-시루봉-토끼재-상광교버스터미널

 

 

(시루봉에서의 맨발나그네)

 

 

춥다.

정말 춥다.

계사년의 시작이 예사롭지 않다.

연일 수은주가 영하10도 이상을 가르키는 매서운 추위다.

이런 추운날 조강지처 광교산은 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어 길을 나선다.

조강지처 광교산과 계사년 새해들어 처음 운우지정을 나누는 날인데 새디즘의 사랑이 넘실거린다.

사방천지는 꽝꽝 얼어 붙어 있고, 산길에는 눈이 쌓여 걷고 있는 맨발나그네에게 육체적 고통을 가해 온다.

이런 고통 속에서 이상한 매력을 느끼며 즐겨본다.

 

 

 

아마도 내게 마조히즘적인 경향이 있는게 분명하다.

뭐 조강지처 광교산과 즐겁게 하루를 보내는 일이라면 마조히스트면 어떻고 새디스트면 어떤가?

오늘은 즐거운 사라가 아닌 즐거운 맨발나그네가 되어 보련다.

조강지처 광교산과 그 주변상황은 학대를 가하고 이런 상황속에서 내가 성적욕망을 얻는 것을 새도마조히즘(sadomasochism:가학피학변태성욕)이라 한다지.

심리학에서 정상적인 성행위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 상대에게 폭력을 써서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성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게 새디즘(sadism)이라 한다.

그 반대의 경우로 고통을 당하며 쾌감을 느끼고 즐거워 하는 것을 마조히즘(masochism)이라 한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누구나 사디즘과 마조히즘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2012년 12월 22일의 광교산)

 

새디즘은 가학의 쾌락을 즐기다가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소설가 마르키 드 사드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독일의 정신병학자 리하르트폰 크라프트 에밍이 그의 저서 <성의 정신 병리학>에서 정의한 성심리학 용어이다.

새디즘이란 용어를 탄생시킨 200년전 사드가 쓴 소설 <소돔의 120>은 인간의 광기를 다룬 작품으로 프랑스 루이 14세 치하에서 권력자들이 젊은 남녀 노예를 이끌고 120일간 벌인 향락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첫 출간되었으나 수거.폐기처분이 내려졌었고, 작년에 다시 출간되었을 때는 수거.폐기 결정이후 재심에서 최종적으로 19금판매 결정되어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마조히즘이란 용어를 탄생시킨 소설로는 독일 작가 자허마조흐의 장편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있다.

실제 생활에서 쫓겨다니다가 사지가 묶이고 굴욕스러운 처벌을 받거나 모피를 입은 당당한 여자에게 채찍질과 같은 육체적 고통을 당하기를 즐겼다는 작가 자허마조흐의 경험과 취향이 소설에 들어있다고 한다.

그는 소설 속에서 사랑에는 평등 관계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내가 지배하느냐 지배당하느냐를 선택한다면, 아름다운 여자의 노예가 되는 편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군요라고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새도마조히즘이 사랑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물론 그 정도가 어느 정도냐 하는 문제는 남겠지만....

 

 

( 2010년 2월 13일 광교적설과의 만남)

 

 

우리 사회에 성담론의 선구자이자 개척자인 마광수 교수는 1991<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을 발표한다.

<즐거운 사라>는 주인공인 미대 여학생 사라가 생면부지의 남자와 갖는 즉흥적인 동침, 여자친구와 벌이는 동성연애, 적나라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자위행위, 스승과 벌이는 성행위등을 묘사하는 새디즘과 마조히즘 위주의 성애소설이었다.

작가 마광수 교수는 <즐거운 사라>199210월 음란성 논란 끝에 구속되기에 이른다.

 

 

(2012년 7월 15일 광교산을 걷다 발에 걸린 풍경)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 지금까지는 고려가요 가시리의 전통을 잇는 대표적인 이별의 노래라거나 이별의 슬픔을 체념으로 승화시켜 극복하고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의 노래라는 해석이 주류였다.

그러나 마광수 교수는 <문학과 성>(철학과현실사)에서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도 마조히즘적 쾌락에의 동경이라 한다.

진달래꽃속에 매정하게 떠나는 님은 새디스트요, 버림받은 이 시의 화자는 마조히스트라는 것이다.

마조히스트인 이 시의 주인공은 버림받아도 좋으니 제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밟아 달라고 님에게 호소한다.

꽃으로 상징되는 자기 자신 또는 자신의 성기를 밟아 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성적 마조히즘이요, 님이 자기를 버리더라도 그것을 고맙게 감수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것은 님이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자기는 무조건 복종만 하겠고 그것이 오히려 즐겁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마조히즘이다라고 이 책에서 마광수 교수는 말한다.

얼마나 좋았으면 시속의 화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광교산 시루봉에서 바라 본 쳥계산)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사드와 마조흐는 인간 심층심리의 비밀을 파헤친 선구자들로 평가받고 있지만 자신들의 당대에는 미치광이와 범죄자로 취급당했을 뿐이다.

마광수 교수에 대해서도 현재에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흐른 후의 마교수에 대한 평가를 지켜보려 한다.

내가 산행기랍시고 졸필을 늘어 놓으면서 운우지정이 어떻고 조강지처가 어떻고, 전국의 산들이 애인들이라고 떠벌리니 사람들은 산행기를 빗대 3류 애로물을 늘어 놓는다고 핀잔을 주는 이도 있다.

오늘 광교산을 다녀온 후 모 산악회의 회장님과 저녁에 만나 반야탕을 나눈다.

반야탕의 힘을 빌려 감히 주장하건대 우리는 동양적인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성담론을 감추기에 급급하여 왔다.

성담론을 이야기하면 얼굴은 돌리고 귀는 쫑끗 세워왔던 것이다.

반야탕의 힘을 빌려 주장하건대 사랑은 항상 엄숙하고 근엄한 것만이 아니니 가끔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으로  돌아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니 도가 지나쳐서는 안되겠지만 서로 의논하고 합의된 상태에서 살짝 바꿔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좀 더 이야기를 진전시키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정말 삼류 애로 칼럼이스트가 될 것 같아 여기서 멈추려 한다.

 

(외로운 산길을 친구가 되어 걷고 있는 맨발나그네의 그림자)

 

조강지처 광교산의 품에 안겨 걷는다.

나홀로 외로이 걷는다.

다행히 내 그림자가 친구되어 주겠단다.

한 겨울 강취위 속 그녀 광교산에는 새디즘이 넘실댄다.

미끄러운 눈길이 그렇고 매서운 강추위가 그렇다.

그래도 그녀 광교산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40여년을 살아 온 맨발나그네이다.

그녀 광교산이 아무리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학대를 가해 만족을 얻는다 해도 난 당연히 마조히스트가 되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나의 피가학적(被加虐的) 심리를 즐길 것이다.

넓은 의미로는 마조히즘이란 직접적인 성적 쾌락의 탐닉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자신의 극기적 수련이나 금욕적 생활을 통하여 최고의 기쁨을 느끼는 종교적 고행까지를 포함한다고 하니 나의 종교 광교를 통해 더 넓은 의미의 마조히즘을 맘껏 누려 보련다.

뭐 종교적 고행이라고 까지 말할 수 없으나 종교이자 조강지처라고 우기고 있는 광교산을 비롯하여 애인들이라 우기고 있는 더 많은 산들과 데이트를 즐기며 고통을 가한다면 나의 뇌 속에서는 옥시토신도파민이 넘쳐 흐를 것이고 이는 곧 쾌락에 이를 것이다.

좀 더 적나라나하게 표현하고 싶지만 그야말로 미혼탕에 가버린 삼류 에로 칼럼이스트의 술주정이 되겠기에 여기서 멈추려 한다.

미혼탕(迷魂湯 : 사람의 지혜를 흐리게 하는 물, 즉 사람의 혼을 미혹하게 하는 음료)이 아닌 반야탕(般若湯: 범어에서 반야는 Prajna로 지혜라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반야탕, 즉 술은 '지혜의 물'인 셈이다)의 힘을 빌려 감히 주장한다.

가자 ! 산으로...

산을 사랑하는 좀 더 강한 마조히스트가 되기 위하여!

 

PS : 3류 애로 칼럼이스트가 되지 않기 위해 미혼탕에 혼미해진 상태에서도 수위 조절을 하고 또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