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곰 잠을 깨다.

 

몇 해 전 추운 겨울 소백산을 야간산행으로 다녀온 후

그곳에서 겪은 추위의 공포는 아직 뇌리에 각인되어

겨울산행을 꺼리는 겁쟁이로 남아 의례 겨울산행은 사양하는

곰이 되었다.

 

겨울잠속에서도 컴으로 가족들의 산행기를 훔치며,

모니터의 사진속에 나를  오버랩시키기도 하며, 도둑산행을

즐기곤했었는 데, 드뎌 영상으로 따뜻해진 날 기지개를 켰다.

 

----우이씨~  곰은 겨울잠동안 지방을 소모하는 데 난 지방이 켜켜히 쌓이기만했네....

 

 

2. 습  관

 

사당역에서 만나면 관악산가는 길에 꼭 막걸리를 마신다.

마치 의무처럼.....

오랜만의 산친구들 모임엔 사는 얘기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다들 수긍하느라 머리를 끄덕인다.

 

빨리 변하는 세상.

따라잡으려 안간힘 쓰는 우리.

 

유럽은 근대화를 이루는 데 200여년이 걸렸지만

동아시아 특히 우리나라는 40여년만에 근대화를 이루어

과거, 현재, 미래가 혼재되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현실....

 

게으른 곰탱이 행보는 여전히 느릿~느릿~

 

최신 스마트폰의 가공할만한 어플리케이션을 자랑하는

친구들의 위세에 기가질린다.

 

----- 참 빠르고 좋은 세상이군....

 

새롭게 철계단으로 단장한 암봉이 생뚱맞게 다가와

디카를 꺼낸다.

이 녀석도 겨울잠에서 아직 덜 깼는 지 오류표시를

연신 깜박이며 미동조차 하질 않는다.

 

---- 정들어 봐줬더니....  이 참에 확 바꿔버려?

 

바뀐 풍경을 보고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내는 나도 디카족?.....

 

 

 

3. 버~ 럭

 

멀쩡한 암봉,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은 구간에 철계단을 설치한 과잉친절....

최대하중은 고려해서 설계는 했는 지~ 벌써 용접은 떨어지고~

앙상한 메쉬발판은 얼마나 견디려는 지~ 또 재공사 하려는 지.... 버~럭!!

 

정상부근을 오르는 데 오랜만의 쾌청하고 포근한 날씨여서인지

그야말로 인산인해~

로프에 산꾼들이 산적처럼 꿰어있고, 내 앞의 아주머니 화를 내신다.

- 뒤에서 줄잡으면 안 돼요~

- 아주머니 그럼 난 떨어져 죽어도 돼요?  또 버~럭!!

 

마지막 중요한 버~럭!!!

내리막에서 앞선 사람이 스틱을 뒤로 쳐들고 걸었다.

- 죄송한 데 똑바로 들고 가시면 안 돼요?  뒷 사람 실명합니다.  버~럭!!!

 

----- 늙었나?   선잠을 깨서 잠투정인가?   버~럭 하기는...ㅋㅋㅋㅋ

 

 

 

4. 여 유

 

정상에서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의 여유(수정 여러 잔ㅋㅋㅋ)

점심상에서 세치혀를 통과하는 그 짧은 순간의 쾌락을 즐기고,

개성에서 노심초사하는 독수리형제에게 우리 모임을 알리려

휴대폰이 각자에게 릴레이를 거쳐 내게도 도착했다.

 

- 개성에도 좋은 산 있지?  송도3절로 유명한 박연폭포도 구경가고 그래...

  그리고 네 용모상 개성에 정착하는 게 더  잘 어울려...ㅋㅋㅋ

 

전화로 동참한 친구까지 여유로움은 길었다.

 

 

 

5. 실명제

 

한 동안 음주를 멀리했더니 원래부터 못마시는 술은 양이 확~줄었다.

- 나는 신경쓰지말고 마셔~

- 안 돼~ 같이 마셔야지~

각자 앞에 소주를 한 병씩 놓고 자기가 정량 마시기로 긴급협상 타결~

------ 나이를 먹어도 유치하기는....

성미 급한 나는 정량을 채우느라 제일 빨리 병을 비우고 빈병을 자랑했다.

통쾌했다.

내가 자랑스러웠다.

 

그때 찬물을 끼얹는 소리

- 사장님~  이친구 한 병 더  갖다 주세요~

ㅠㅠㅠㅠㅠㅠ

 

기어이 달뜨는 시간까지 실명제는 계속되었고, 관악산의 품 또한 넓고 깊었다..

 

* 19세이하 가족분들은 부모님 입회하에 읽기를 권장합니다.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