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산행기

 

일시 : 2012. 2. 11

코스 : 사당역-ㅘㄴ음사갈림길-국기봉-마당바위 원점회귀 약 6km

시간 :  10시 30분~14시

동행 : 서울건축사등산동호회

 

오늘은 관악산에서 서울건축사 등산동호회 정기 산행겸 시산제를 갖기로 한 날이다. 며칠 전 입춘을 지난후로도 지난 며칠 새 매서운 한파가 몰아쳐 봄에 대한 마음속에서 봄의 기대의 싹도 솟아나지 않게 되었는데 오늘은 날씨도 청명하고 기온도 올라서 차가운 공기에 실린 햇살의 기운을 느끼며 산의 기운을 쏘이기 안성맞춤인 상황이 되었다. 요새 하고 있는 작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마음이 갑갑한 상태라 산행의 기대가 더 크게 되었다.

 

해가 바뀐후 처음 관악산을 찾게 되었다. 작년 이맘때 찾았을 때는 감기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콧물이 나는 상태였는데 산기운을 쏘이며 몸을 추스르러 간다는 것이 더 상태가 악화되었었다. 몸이 아플 때는 대게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이다.

 

세상살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떤 관계에서 비롯되는데 불가에서는 그것을 연기라 한다. 이치로 보면 관계는 자신의 의지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현명하게 판단하여 좋지 않은 인연을 피하면 고통도 생기지 않게 될 것이지만, 그런데 세상살이가 그처럼 단순하게 되지 않아서 자의건 타의건 내키지 않은 인연도 많이 생기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10시 10분 사당역에 도착해 5번 출구로 나가 두리번거리며 서울대 방향으로 갔다가 찾지 못하고 다시 5번 출구를 향해 오다 보니 출구 저쪽에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다가가 인사를 나누니 사무총장이 먼저 출발한 분들이 있다고 해서 나도 먼저 산행에 나섰다.

 

사당동 먹자골목을 지나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접어드는 동안 다른 등산객들이 마치 마라톤 코스를 지나는 사람들처럼 띄엄띄엄 지나가고 있어서 저절로 길 안내가 되었다. 떡집 앞을 지나다 점심으로 한 팩을 사고 조금 지나다 편의점에서 물을 ks통 사서 배낭에 넣으니 준비가 완료된 느낌이 들었다.

 

조금 가다 보니 산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나타났다. 그 입구에 서니 아파트가 벼랑처럼 서 있었다. 그것이 마치 자연과 도시의 경계를 확실히 해 두려는 표식처럼 보였다. 아니면 산 쪽에서 도시가 더 이상 침범하지 말라는 선을 그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입구를 들어서니 뒷동산을 오르는 길처럼 완만한 길이 되었다. 그 길을 걷다보니 마치 고향에서 뒷동산을 오를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내를 조금 벗어난 것뿐인데도 앞쪽으로 보이는 것은 산뿐이어서 금세 맑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날씨도 시리도록 맑게 느껴졌다.

 

관음사 이정표를 보며 잠시 방향을 가늠하고 있는데 박경배 건축사가 배낭을 매만지면서 그쪽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그 쪽으로 앞서 갔다. 지나는 사람들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날씨가 좋아 더 마음이 밝은 듯 했다.

 

이맘때면 일조시간이 점차 늘어짐에 따라 햇살도 더 따스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부나방처럼 그에 이끌리듯이 많은 사람들이 봄기운에 귀기울이듯한 표정으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봄소식을 기다리다 조급증에 직접 찾아 나선 사람들처럼 얼굴에 그 바람과 설렘이 일고 있는 듯 했다. 사람들은 늘 날씨에 대해 이심전심 공감하게 된다.

 

한참동안 이리저리 에둘러진 오르막길을 올랐다. 간간히 앞쪽 봉우리 끝 너머로 트인 파란 하늘이 보였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주변에 보이는 나무들은 그루터기에 얼어붙은 잔설처럼 앙상하게 얼어붙은 듯 일체 생동할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맘때 그런 나무들을 대하다보면 마치 생명마저 잠시 꺼져 있는 듯하다. 그래서 정말 저대로 지난 한 해를 끝으로 생명이 끝나버리는 게 아닐까 조바심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해나 환희롭게 깨어나 우주가 처음 빚어질 때 같은 신비로운 현상들을 느끼게 하곤 했기 때문에 올해도 틀림없이 저 삭막한 몸체에서 마음이 들뜨고 산만할 만큼 환희로운 생명의 축제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되었다.

 

자갈돌들을 보폭에 맞춰 계단을 만들어 놓은 곳을 지나다 보니 바로 위쪽에 사람들이 쉬고 있는 쉼터가 보였다. 걷다보니 체온이 올라 옷을 한 겹 벗어 배낭에 넣기 위해 벤치로 갔다.

 

여기저기서 각자 함께 올라온 일행들이 물을 마시거나 간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긴박감이 느껴질 때가 많은 일상의 언어들과 달리 여유와 인간적인 진솔함이 베어 있었다. 옆에 선 중년의 남자 분이 옆에 앉은 일행에게 “한 주 안 올라왔다고 이리 힘드나?” 하고 연거푸 말했다. 마치 더 오래 산행을 하지 않으면 금세 건강에 탈이라도 생길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말투였다.

 

거기서 북한산 쪽을 바라보니 앞쪽의 서울 강남 지역과 한강 그리고 북한산이 한눈에 펼쳐 보였다. 그 모습에 마음이 동해 스케치북을 꺼내 들고 스케치를 했다. 겨울철에는 필기구 사용에 지장이 생긴다. 만년필 등으로 그리다 보면 얼어서 종이에 그려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기온이 올라서인지 다행히 얼지는 않았다.

 

다시 길을 나서 잠시 후 올려 보이던 능성 이에 당도했다. 연주대는 좌측으로 가게 되지만 우측에 있는 봉우리를 거쳐 가려고 그 곳으로 다가가니 태극기 깃발이 꽂혀 있었다. 그 곳이 전에 와 보았던 국기봉일 것 같았다. 거기로 가니 주변이 훤출하게 트여 보였다.

 

날씨가 맑아서인지 전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서울과 주변 산세가 또렷하게 조망되었다. 드넓게 펼쳐진 산세와 뚜렷하게 드러난 한강의 물길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그윽한 산수의 풍광이었다. 전에도 몇 차례 관악산을 찾았지만 이런 느낌이 든 것은 처음이었다. 같은 산을 오르면서 이토록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 설레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입지가 새삼 빼어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잠시 주변만 둘러보고 연주대로 향하려고 했는데 그런 풍광을 대하다 보니 다시 스케치의 마음이 동했다. 앞서 와 있던 몇 분의 일행들이 감상에 젖어 있던 나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해 찍어주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포착하려는 대상이 광활하여 조심스럽게 스케치북을 펼쳐들었다. 평소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만년필로 그리다 얼어붙어서 연필로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머물러 있다 보니 몸이 얼어붙는 듯 추위가 느껴져 스케치를 계속하기 곤란할 지경이었다. 손이 시려워 호주머니에 넣어 녹이기도 하고 그 자리에 뜀뛰기를 하기도 했다. 스케치를 하는 동안 가족, 친구, 연인들이 간간히 올라와서 조망을 만끽하며 도란도란 예기를 나누다 떠나곤 했다.

 

함께 오르려다 떨어진 친구에게 산 아래서 만날 약속을 하기도 했다. 다시 젊은 두 명의 여자가 올라와서 태극기 길발 아래서 개구리처럼 폴짝 뛰는 포즈를 취하며 번갈아 사진을 찍었다. 그러한 동작을 선명하게 포착하기 쉽지 않은 듯 영화 촬영할 때처럼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입김으로 손을 불면서 그리다보니 바라보이는 풍광의 윤곽이 겨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여자들이 시간을 확인하며 1시 반이라는 말을 듣고 문득 시간을 의식하며 마무리를 했다.

 

벌써 두 시간 가까이 지난 것 같았다. 내려가는 길에 오댕과 막걸리를 파는 사람에게 다가가 오댕을 하나 사 먹으며 오늘 함께 온 일행이 가기로 한 식당에 전화를 거니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당초 연주대를 들르려 했지만 무리일 것 같아 마당바위만 들러 가려고 걸음을 재촉했다.

 

마당바위까지는 완만한 능선 길로 이어졌다. 봉우리를 하나 지나다 보니 마당바위와 정상인 연주대 등이 보였다. 오늘 올라온 길이 사당역에서 관음사-국기봉-마당바위-연주대까지 이어지는 주 등산로이다. 잠시 후 마당 바위에 당도했다. 지명대로 널찍한 바위가 작은 마당처럼 놓인 가운데 오가던 등산객들이 쉼터로 이용하고 있었다. 거기서도 주위가 펼쳐보였지만 국기봉처럼 선명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서둘러 발걸음을 돌려 뒤풀이 장소를 찾아 내려갔다. 아까와 반대로 올라오는 사람은 드물고 거의 다 내려가는 사람들이었다. 올라갈 때와 달리 시내를 내려다보며 내려오게 되어 거리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아까 올라오면서 길을 확인했던 곳까지 내려오고 보니 아파트 등이 가까이 보였다. 그 곳에서 좌측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서 시산제를 한다고 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은 것이 다 마치고 내려간 것 같았다.

 

아까 지나온 먹자골목으로 접어들면서 뒤풀이 식당을 찾았다. ‘대가 볼테기’라는 식당 이름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가다 식당 사람에게 물으니 바로 앞집을 가리키며 저 집이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일행이 어서 올라오라고 했다. 아까 출발 때 보지 못했던 일행들도 많아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에 보는 분들도 있었다. 강준규 전 강남 건축사회 회장이 옆자리를 권해 자리를 잡았다. 재무가 오늘 기념품으로 준비한 선물을 건네주었다. 스텐으로 만든 이중컴인데 크기도 좋고 디자인도 심플해서 마음에 들었다.

 

이 식당은 대구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식당 이름도 이해가 되었다. 주문한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 경품 추첨을 했다. 나도 아까 시작할 때 받은 40번 표의 번호를 갖고 있었다. 커피믹스 통에서 꼽아 나오는 쪽지에 적힌 번호를 부를 때마다 환호성이 들렸다. 내 번호 앞뒤 39. 41번 등이 다 불려졌다. 그렇게 앞뒤 번호가 다 맞은 상황에서 내가 당첨될 확률은 더 희박해보였다. 꽤 많은 당첨자가 각기 다른 선물을 받고 즐거워했다. 옆에 앉은 강회장도 당첨이 되었다.

 

잠시 후 푸짐하고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대구찜이 나왔다. 모든 테이블에 다 갖다주는 것이 아니고 대구탕과 번갈아 올려놓았다. 대구탕은 아직 끓이지 않은 상태라 찜 요리를 받은 곳부터 식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일행에게 접시에 나눠 권하며 함께 건배를 했다. 백두대간을 할 때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다 뒤풀이 때마다 나눠 마신 소맥에 맛을 들여 이번에도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셨다.

 

감칠맛 나는 요리에 테이블마다 서로서로 술잔을 채워주며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오늘 산을 오가며 만나던 사람들 표정에서 느꼈던 것처럼 세상 시름을 잠시 잊고 뒤풀이를 즐기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흐르는 느낌이었다.

(20120211 김석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