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무게에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공작산 /강원 홍천]






노천 길가 -문바위골 -정상 -안공작재 -수리봉 -삼거리 -맛바위 -신봉리  [5시간]



2012. 8. 19 [일]

평택 FM  50명





                 [길 위의 풍경]


 북적이던 여름의 온기는 우중에게 넘겨주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여지없는 8월의

  중심이다. 한산한 도시의 거리는 우중의 거리로 변하여 적막만 감돌뿐이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의 그리움이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세차게 내리는 비만 거리를 단호히

활보할 뿐이다.


     

                 [공작산 가는 길]


     빗소리로 가득 찬 산정의 풍경이 유적하다.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운무가 산허리에 깊게

결려있다. 검은 떼장 같은 구름은 군더더기 없이 산정 위 하늘가에 맴돌며 세찬 비를

 맞고 있다. 처연한 생각이 든다. 그에 내재된 감성이 마음을 짓누른다. 조용히 산길을

밟고 그 속에 몸을 가눈다.




빗소리에 놀라 뒤척이는 잎새들의 가녀린 몸짓이 허공을 맴돌고 있다. 고개를 숙이며

    멀어지는 여름날을 생각하는 듯 한숨에 차있어 보인다. 영화스러웠던 지난 시간, 온기에

부합되어 빛의 양분을 듬뿍 받은 꽃다운 시간의 자욱이 소북이 인다. 빗줄기에 무뎌진

시간만 총총히 흐르고 있다. 

  



     쫘~악 쫘~악 하염없이 내리는 비의 무리가 넌지시 누운 산등성이를 할퀴고 지나가는듯

하다. 드높은 연봉들은 그 무리들을 의연히 받아들이면서 차곡차곡 뒤밟아 상봉으로

     밀려들게 한다. 거칠고 자유스러우며 짧은 외침이 일어나는 정겨운 풍경이다. 회원들의

몇 마디 외침이 허공을 가른다.



「 경외스러운 자연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요?」

「 제멋대로 스러지는 빗줄기의 묵직함이 산정을 울리네요.」

         「 한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자연의 테두리에서 형성된 자연의 매개체가

아닌가요. 온전한 개인이기에 그 매개체에 소속된 것입니다.」

「 정말 그런 것인가요. 외부와 단절된 시간의 틀 속에서 그토록 바라는 자연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석봉 위에서]


산정의 중심부에 섰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며 묵상으로 다져온 이 길속에는

     깊은 공감이 자리하고 있다. 깊은 세월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맞은 편 산정에서

      표출되고 있는 풍경의 시간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의 앞에서 스스로 그 무엇을

깨닫게 되는 이유는 ... 본연의 왜소함이랄까? 순수한 두려움이랄까?




 짙푸른 연기가 산정을 뒤덮는다. 오락가락하는 바람도 합세하여 산 능선을 넘나들며

상봉으로 반듯이 내달린다. 훠이 훠이 흘러가는 구름줄기의 모양처럼. 타다닥 ~ ~

콩 볶는 소리... 무심한 빗 자락은 몸둥이를 내던진 채 산정 위를 무작정 수놓는다.

자연의 곡길 과도 같다. 내리쏟는 빗줄기 앞에 산정은 얼굴을 묻고 있다. 자연의

이임새인 듯 하다. 

    



석봉은 적막하다. 빗소리에 놀라 온 수림은 어디로의 몸을 숨긴 중이서 무심한 듯

비쳐진다. 黙言 중? 산정을 뒤덮은 비, 운무, 바람, 공기등 자연요소의 힘찬 날개 짓이

    허공 속을 넘나들며 시간 속을 구르고 있다. 정숙한 산정 속 풍경과 어우러지는 고요함의

묵상이다. 또한 깊어만 가는 이 시간대에 신기루같이 펼쳐지는 그 풍경은 모든 상념을

접게 하는 것이다.



                 [안개가 거치면서]


 첩첩이 두른 산정의 미려함이 한없이 넘실댄다. 깊어지는 여름의 수림과 계곡에서

   변화하는 자연의 성향을 엿볼 수가 있다. 그 뒤로 물위에 떠있는 거대한 산들이 촘촘히

연이어진 섬처럼 잔잔하다. 또 그 파란 섬들이 여름의 온기에 평화롭게 잠을 자는 것

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침묵이 흐른다.



    「 조용히 빗소리만 들립니다. 산정의 촉촉함이 가슴 깊이 배어옵니다. 이 산정에서의

여름은 고운 추억을 가져다주는 정지된 시간입니다.」

「 저 파란 초원이 잠을 자고 있네요, 너무 고요합니다. 그 속으로 안개만 스멀스멀

유입되어 흐르니 아마, 깊은 잠이 들겠군요. 아련함이 드네요.」

「 하지만 비가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기루의 세상이 펼쳐질 테니 두고

보세요.」

 



순한 풍경이 이어진다. 이 산정의 축을 이루는 능선 결 마디마디에 곱게 드리워진

     연푸른 색감의 향기가 이온의 전해질처럼 스며든다. 그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바람에

스치는 산정의 숨결이 들리어오는 듯 하다. 그 어느 것 하나 놓칠 수가 없다. 보면

   볼수록 마음속 깊이 은은하게 쌓여드는 산경이 되어준다. 자연 속에 거니는 편안한

심정뿐이다. 그 품속에 몸을 맡긴다.



                 [수리봉 가는 길]


   촉촉한 안개가 산정을 에워싸며 한없이 밀려든다. 능선을 지나며 이 산정 속에 비친

여름을 생각한다. 쉼 없이 금세 떠나가는 안개를 보면서 시간의 소연함을 느낀다.

   어느덧 저 푸른 벽 사이로 사세고연한 절벽이 비춰지며, 그 주위로 노송과 활엽수의

    의연한 멋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부드럽게 꺾어짐과 균형 있는 휘어짐, 선의 간결함,

  생기 있게 푸르른 잎새의 상긋함이 세월의 끈을 넘어서는 듯 하다. 정 깊은 마음이

우러난다.




비... 굵어지는 빗줄기에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풍성한

          시간이다. 계곡속의 낭만이 깃들여진다. 전신을 세척해준 빗줄기에 기대어 흐름의 개념

 없이 계곡을 안고 있는 수림들의 모습이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총기 있게 머금은

     잎새의 발랄함이 눈길을 잡으며 미소를 지어지게 한다. 여름의 한가운데 있는 8월의

익숙해짐이다.          



                 [신봉리 하산 길에]


빗소리에 갇힌 계곡은 적요하기만 하다. 툭 ~ 투드득 ~ 툭 ~.. 빗방울의 정점이

 긴 시간을 몰고 오는 듯하다. 산목과 잎새에서 솟아나는 입김의 흔적이 선연하여

          그 속을 거니는 우리는 잠시 잠시 머무르며 그 숨결에 젖어있다. 한동안 運回에 잠긴다.

 그러다 시간을 부른다. 시간의 주름을 건너 깊은 산중의 이곳에서 캐 묵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과 지금 이 세계를 있게 한 그리운 것들을 아스라하게 불러낸다.




공작의 짙푸른 산맥이 하늘아래서 잠들고 있다.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바람을 타고

 밀려들기 시작한다. 바람이 잠들면 안개가 휘돌고, 안개가 거치면 바람은 이내 비로

       변하여 산정을 통째로 휘갈긴다. 검은빛이 난무하기 시작한다. 솨 ~아 솨 ~아 빗소리의

공허함 ... 그렇게 공작의 산정은 우리 앞에 머물면서 깊어진다. 그 모든 수려한

산등선과 연봉들은 8월의 비를 통째로 받으며 차분하게 세월을 이어가고 있다.



                              ◈◈◈


    청람빛 잎새의 매혹처럼 다지는 길의 순연함이 머릿속을 메운다. 명품이라 불러도 좋을

    우람한 공작의 연봉들이 운무 사이로 천천히 휘돌아 나간다. 마음이 풀어진다. 빗소리와

    혼재된 바람소리의 다정함이 이제야 꽃 맺듯 알알이 맺혀진다. 멀리 청람빛 산그늘 위로

 상봉의 귀공이 어렴풋하다.  혹시寢風樓가 아닌가. 또한 生屯이 아닌가.

 바람을 안고 눕는 살만한 곳. 명품산정의 공작,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2012.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