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산 산행기


 

           *산행일자:2006. 12. 16일

           *소재지  :강원홍천

           *산높이  :887미터

           *산행코스:공작교-공작골삼거리-공작산-공작폭포-군업초교

           *산행시간:10시15분-15시27분(5시간12분)


 

  구름이 잔뜩 끼어 큰 눈이 내릴 듯한 하늘이 맑게 갠 것은 하산 길에 접어들고서도 한참이 지난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그사이 태양을 가려준 희뿌연 안개가 요 며칠 새 내린 눈이 녹아 스러지는 것을 막아주어 해발 887미터의 공작산 정상에서 능선 길을 하얗게 덮은 눈다운 눈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싸라기눈이 땅바닥을 살짝 덮은 공작골 삼거리의 들머리에서 꽤 오래 올라 주능선에 다다랐어도 눈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수타계곡으로 갈리는 정상 120미터 전방 삼거리에 오르자 능선에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아이젠을 꺼내 찼습니다.


 

  어제는 안내산악회를 따라 고교동기 함기영 군 및 다섯 해 후배 정병기군과 함께 셋이서 강원도 홍천의 공작산을 다녀왔습니다.

나뭇가지에 붙어 있던  파란 잎들을 모두 떨어낸 나목들로 산색이 온통 칙칙한 회색으로 바뀌었어도 땀 흘리며 겨울 산을 찾아 나선 것은 고스락에 올라서서 하얀 눈이 소북이 쌓인 산자락을 바라보노라면 시내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순백의 평화로움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정월 초이튿날 한 분과 함께 홍천의 북까페 “Peace of Mind"를 들러 먼발치의 공작산을 바라다보며 과연 이름 그대로 저 산의 아름다움이 공작새와 견줄 만할까 궁금해 했었는데 어제도 힘들여 정상을 올랐어도 안개가 자욱해 산세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인가 확인할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정상과 하산 길의 북사면을 덮은 하얀 눈이 빚어낸 설경이 눈길을 걷는 제게 마음의 평화를 주어 고마웠습니다.


 

  아침10시15분 444번 도로에서 조금 벗어나 노천리의 공작교에서 하차했습니다.

다리건너 오른쪽으로 공작골을 따라 낸 넓은 비포장도로로 들어서 싸라기눈이 살짝 덮인 눈길을 걸었습니다. 20분 후 공작골합수점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물이 마른 계곡을 건너고 된비알의 산등성을 올라서 지능선에 다다르기까지 반 시간여 다리 밸이 당겨 산 오름이 힘들었습니다. 내린 눈이 쌓이지 않아 산등성을 오르기가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중력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산을 오르기에는 체중이 너무 나가 애꿎게 다리 밸이 고생을 했습니다.

 

  11시38분 공작고개-공작산 정상의 주능선에 올라섰습니다.

공작골합수점에서 2.5키로를 걸어 다다른 735봉 삼거리에 이정표가 서있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잡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왼쪽으로 꺾어 정상으로 오르는 중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눈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카메라에 옮겨 실으면서 두 친구들의 땀 흘리는 모습들도 함께 담았습니다. 길 양옆에 자리한 푸르른 노송들이 산길을 덮은 하얀 눈과 대비되어  볼만했습니다. 735봉 출발 15분 후 835봉을 지나 정상 120미터 전방의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문화재 월인석보를 보관하고 있는 신라시대의 고찰 수타사와 공작고개 그리고 정상너머 군업리로 내려가는 세 갈래 길에서 아이젠을 꺼내 차 정상에 이르기까지 눈길이 위협적인 암릉길을 무난히 지났습니다.


 

  12시05분 해발887미터의 공작산 정상을 올랐습니다.

먼저 온 여러분들이 한 편에서 점심을 들고 있어 정상이 붐볐습니다. 삼각점이 세워져 있지 않았다면 정상봉이 방금 지나온 산불감시탑이 설치된 뒷봉과 높이차가 나지 않아 어느 봉이 정상봉인지 가름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깎아지른 절벽위의 정상에 올라서면 홍천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동남쪽으로 응복산, 수리산, 봉복산등이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다는데 어제는 짙은 안개가 산자락을 가득 메워 아무 것도 볼 수 없었기에 지근거리의 하얀 눈이 더욱 황홀하게 보였습니다. 몇 분 후 골바람이 몰고 온 냉기에 밀려 835봉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거의 수직에 가까운 낭떠러지 길로 내려서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은 길로 하산했습니다. 835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지능선을 따라 내려가 공작골합수점으로 회귀하는 코스가 산악회에서 예정했던 길이었는데 정상에서 하산을 서두르다 길을 잘 못 들어 훨씬 긴 코스를 걸어 군업초교로 내려갔습니다.


 

  12시55분 뜨메기골을 만났습니다.

정상에서 로프를 붙잡고 까까 지른 비탈길을 내려와 안부에 다다르자 오른 쪽 길로 먼저 간 두 친구들이 길을 잘 못 든 것 같다며 되돌아와 왔습니다. 지도를 꺼내 들고 방향을 확인했더니 남동쪽으로 방향이 일치했고 표지리봉도 걸려있어 당연히 맞으려니 생각하고 한 참을 내려서다 능선 길이 아닌 계곡을 만나 길을 잘 못 들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미 내려선 길을 되올라  간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다 산악회대장이 이 길로 먼저 내려갔기에 출발지인 공작교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이 길 끝머리인 군업초교로 옮겨놓으리라 생각되어 계곡을 따라 그대로 내려가다 5분 후에 이정표를 만났습니다.  이 길도 정식 산행코스가 분명한 듯해 비로소 안심됐습니다.


 

  14시5분 계곡의 바위에 걸터앉아 점심을 들면서 20분여 쉬었습니다. 

뜨메기골 계곡 길은 한갓지고 고즈넉해 모처럼 두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한 조직을 꾸려나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리더쉽과 멤버쉽은 무엇이며 이러한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는 지혜가 무엇일까를 주제로 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계곡은 하얀 눈이 흐르는 물에 녹아 흑과 백의 색깔 대비가 선명했습니다. 오리걸음 자세로 길을 막은 다래넝쿨 속 길을 지나서 한 참후 공작폭포를 비껴가고자 왼쪽으로 에돌아가는 길에서 연초록 이끼 밭을 만났습니다. 거대한 나무들도 혹독한 한 겨울을 이겨내고자 여름 내내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해온 나뭇잎들을 단풍이 든 후부터는 양분만 소비한다고 떨어내는데 나무들에 비할 바가 전혀 못 되는 작디작은 이끼들이 겨울에 굴하지 않고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제 색을 내는 것이 신비롭게 느껴졌습니다. 붕어빵에서 붕어를 찾지 못했듯이 공작폭포에서 공작새가 내려앉은 흔적을 찾지는 못했지만 공작새가 이 폭포에서 날개를 내리고 쉬어가더라도 편안한 쉼터가 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폭포 위의 바위가 널찍했습니다.


 

  14시42분 계곡 길을 완전히 벗어나 안말계곡의 하천이 시작되는 합수점에 다다랐습니다.

합수점 삼거리에 세워진 등산로안내판에서 내려온 길을 확인했습니다. 점심을 들고 얼마 후 경주 포석정을 빼어 닮은 소를 만나 굽이진 물길과 그 물길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를 모두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넓은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세워진 등산로 안내판 옆에 입산금지 안내판이 서 있어 제가 하산한 골짜기가 한산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개천을 가로 지르는 돌다리는 아직은 세월의 때가 끼어 있지는 않았어도 한 걸음 한걸음 발을 옮기며 아스라한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기에는 딱 좋았습니다.  도로공사가 다 끝나면 여기 저기 팬션이 들어서 수려한 이 계곡을 더럽힐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자 그전에 이 계곡 길로 내려선 것이 잘됐다 싶었습니다.


 

  15시27분 군업초교 길 건너편의 나분들 정류장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따끈한 찌게로 속을 데우고 나자 길 섶의 집주인이 세운 시비에 새겨진 애절한 시의 전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를 저 사람에게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시는 남편이 이미 세상을 떠난 듯한 아내에게 바치는 시로 “언제나 깃 가지런히 한 몸이 돼야 나는 새”인 전설의 새 비익조로 다시 태어나 "나뭇가지에 서로 엉켜 한 나무가 된 연리지 사랑”을 나누다가 이 세상을 날아 가버린 아내를 애도하는 시인 듯 했습니다.  혹시 제가 시를 엉뚱하게 해석하는 것이 아닌 가 걱정되어 망설이다가 이 시를 쓴 신용식님의 아내 채옥화님에 대한 애틋한 사랑만은 전하고 싶어 이렇게 산행기에 올립니다.


 

  실존하는 화려한 공작새보다 실재하지 않는 전설의 비익조가 제 가슴에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집사람에 아직까지도 이렇다할 시를 지어 주지 못해서인 것 같아 미안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