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바람 속으로 - 천주·공덕산 & 대승사 윤필암

청산은 날더러 말없이 살라 하고 靑山兮要 我以無語

창공은 날더러 티 없이 살라 하네 空兮要 我以無垢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聊無愛而 無憎兮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라 하네   如水如風 而終我                          - 나옹(懶翁)선사 -

“살면서 일상을 글로 남길 수 있음 얼마나 좋겠어요? 난 강샘 같은 분이 부러워요.”

나비아타가 결코 내 듣기 좋으라고 한말은 아니었다.

다람쥐 채바퀴 돌 듯 한 일상에서 이따금 갓길로 빠져든 삶이 있음 낙서를 하는 게 나의 버릇이다.

낙서를 하는 순간은 아까의 시간을 반추 되새김질하며 그 순간들로 다시 빠져들어 좋고,

나중에 그걸 읽으며 또 한 번 그 때에 머물며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도 있어 좋다.

하물며 누군가를 감화시키며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에서 살아가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정녕 타고난 천사들일 테다.

나도 오늘 우리들의 정신을 맑게 하는 천사 같은 윤필(潤筆)쟁이들의 천개의 숨결을 느껴 보고파 산행에 나섰다.

푸른 무한대의 하늘을 떠받들어 기둥이 된 산-천주산(天柱山;823.5m.경북 문경)은 멀리서 관망하면 삼각원통뿔꼴인데 얼마나 가파른지 녹음 속을 기웃대는 햇살도 녹초가 돼 미동도 않는다.

천길 바윌 깎아 세운 산을 땀 다 짜내며 오르는데 그 정도로나마 간신히 탈수증을 피한 건 순전히 나비아타 짝 땜 이였다.

그는 천주사에 대형주차장이 있다고 2km남짓을 버스에 탄 채 오르게 하여 반시간은 땀을 덜 뺄 수가 있어서였다.

한 시간여의 죽기 살기 등정이 천주정상에 닿자 하산길은 급살 맞은 벼랑길이 돼 정신 바짝 들게 하는 긴장의 오랏줄에 나를 옭아맸다.

그 오랏줄이 느슨했던지 난 옆길로 샜고 나를 따른 어느 점잖은 산꾼은 반 시간여를 순전히 나 땜에 헛발질로 녹초가 돼야 했다.

그 헛발질엔 오미자밭의 장관이 펼쳐지고 야생딸기로 입을 즐겁게 하여 멍청한 나의 실수를 좀은 면피하게 해줬다.

옛서낭당재에서 점심자릴 펴고 갈뫼일행을 만났을 땐 오후 1시 반.

그분은 점심생각도 없다며 곧장 공덕산을 오른다.

두꺼운 녹색차양 막을 친 숲의 훈습한 공기를 마시며 땀 법벅이 돼 힘겹게 공덕산(일명四佛山;912.9m)을 오르면 보상이라도 하듯 완만한 산등걸은 산행이 주는 최상의 요람을 펼치며 천국에 들게 한다.

푸른하늘도 잘게 부서진 녹색의 장원엔 햇살도 난도질당한 채 실비가 되어 흩날리고,

첩첩한 녹음을 뚫은 낙낙장송은 하늘을 향해 수백 년을 기도하는 자세다.

옛고개에서 난 대승사쪽을 택했다.

오후 2시 반이라 일행들을 따르면 대승사와 사불암을 찾기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였다.

대승사까지의1.2km 남짓의 짙은 숲길은 아무데서나 녹색이파리 한 줌 뜯어 쥐어짜면 초록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짙은 녹음 속을 푹푹찌는 유월이 겉도는 골짝 산길,

잘린 햇살이 그림자로 남아 있어 그나마 낮인가 싶고,

어디선가 간헐적으로 울어대는 새소리에 탱탱한 고요가 와장창 깨질 것 같은데,

그 소리 한 절이 그늘사초에 앉자 부르르 떠는 전율에 미세한 바람 하나가 인다.

그 바람은 천 개의 바람이 되어 흡사 죽어있는 것들까지도 깨워 향기를 뿜게 한다.

그 천 개의 바람 속에 두어 시간동안 쫄딱 빠져들어 대승사와 사불암과 윤필암에 들어서서 얼쩡대보았다.

유월의 한 낮, 쨍한 햇볕에 개미의 발자국소리도 들릴 것 같은 대승사경내를 도둑고양이처럼 기웃댄다.

꿈에도 뵌 적 없는 나옹선사가 기침할 것만 같고,

지금도 경허와 청담과 성철스님이 가부좌한 채 지켜볼 것 같기도 했다.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과 종정을 지낸 청담스님은 누군가가

 “팔만대장경과 성철스님 둘 중에 어느쪽을 택하겠느냐?” 는 질문에 “성철스님”이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문득 생각났다.

대승사! 이 고즈넉하고 아늑한 가람이 일군 고승들의 바람은 천개 만개가 되어 우리들 맘을 감화시킨다.

가람 우측, 오백 미터 가파른 바위산을 오르면 소나무 두 그루가 고사목이 돼서도 사불암 시중을 들고 서있다.

바위 사면에 음각한 불상은 세월에 바스라지고 느끼는 건 바람소리, 

드리운 그늘에 앉아 저 아래 조망되는 윤필암을 마주하며 육백년도 훨씬 지난 바람 한 가닥을 생각해봤다.

사불산에서 탁발했던 국사(國師)나옹선사가 입적하자 공민왕은 목은(牧隱;이색)선생께 부도명(附圖銘)을 쓰도록 친히 명하였다.

왕명 받기도 황송하온데 나옹선사의 부도문이니 그 기쁨 언어도단 이었을 테다.

지필묵을 챙겨 부도문를 쓰고 물에 붓을 씻는 윤필의 감회는 또 어떠했을꼬?

윤필(潤筆)은 요샛말로 탈고(脫稿)다.

글 쓰고 받는 돈이 고료(稿料)인데 목은선생이 부도문을 탈고하자 전국에서 수많은 신도들이 고료를 시주했다.

생각지도 않은 윤필물에 선생은 나옹선사와 인연이 있는 묘향산(妙香山)ㆍ금강산(金剛山)ㆍ소백산(小白山)ㆍ사불산(四佛山)ㆍ치악산(雉岳山)ㆍ용문산(龍門山)ㆍ구룡산(九龍山) 등 일곱 곳에 진당(眞堂)을 세우고 사리를 나누어 모셨는데,

이 일곱 곳에 모두 목은이 기문을 쓰고 윤필했다 하여 윤필암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단다.

[李穡以王旨撰懶翁浮屠銘 其徒致潤筆物 穡不受使修廢寺 因名之]

윤필암 사불전에서 사불암을 처다본다.

사불전엔 부처가 없고 아까 산능의 암각불상이 면전한다.

하긴 불상이란 게 본시 허깨비라던가.

적막이 요요한데 바람 한 개가 풍경에 앉느라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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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천 개의 바람이 되어>란 시가 생각났다.

 

“내 무덤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고, 잠들지도 않았어요.

나는 천의 바람, 천의 숨결로 흩날립니다.

나는 눈위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이며

익어가는 곡식 비추는 햇빛이요

촉촉히 내리는 가을비 입니다.

당신이 숨 죽인 듯한 아침에 깨면

나는 당신을 살포시 맴돌며

 밤하늘 비추는 부드러운 별입니다.

내 무덤 앞에 서 울지마세요. / 나는 그곳에 없고, 죽지도 않았습니다." 

     

사불전에서 한참을 쉬다가 경내를 빠져나왔다.

다시 짙은 녹음 속으로 들어섰다.

죽음은 삶의 형태가 소멸하는 게 아니라 육체가 없어지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누군가의 삶의 형태는 천개 만개의 바람이 되어 천년 만년을 살아 이어진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두려운 것일 게다.

오늘, 내가 죽는다고 태양이 우울해하지도 않고,

산도 슬퍼해주지 않으며 강도 울지 않는다.

하여 욕심내어 뭔가를 해내고 말겠다고 발버둥치지 말라.

생전(재임 때)에 해치운다는 과욕 땜에 산야가 망가지고,

강이 망가지며 바다까지도 망가져 아파하며 우릴 슬프게 한다.

기필코 해낼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향기로운 마음의 바람으로 일게 해야 할 것이란 걸 산행 속에서 생각해 봤다.

근데 오늘 이 산행엔 왜 그리도 산님들이 없을까?

죽여주는, 환상의 산길코스인데 말이다.

 백두대간을 달리는 유명산들이 주위에 넘 많아 이 낮고 앙팡진 산길에 주목하지 않음이라고 누군가가 해명해 준다.

설마 트레킹하기 그만이란 풍설이 바람이 돼 뭍 산꾼들에게 닿을까봐 대승사 스님들이 발심한 탓은 아니려니-.

왠지는 모르지만 사불산가람 일대의 숲엔 그물망을 넉넉히 휘들러 놨다.

하여 인적 없는 경내길숲에 떨어진 오둘개를 잔뜩 줘 먹느라 입술이 보랏빛밤탱이가 될 수도 있었잖은가! 

날 데려다 준 갈뫼가 고맙다.                                                             2013. 0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