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객의 나이  불혹을 지나 가을걷이 끝난 밭두렁의 허수아비처럼 볼품없는 중늙은이로 전락한지가 어제 오늘이 아니건만 요즘같이 살아가기가 팍팍하고 힘들어 진적은  없었겄다.

10년전의 대환란 때도 이정도는 아니였는데 요즈음은 보면 볼수록 가관이다.    객의 성품이 원청강 민활하지 못하고 이재와 식산에는 손방인지라 물텅벙 술텅벙으로 자발없이 살다보니 수입이라고 믿는겄은 쥐꼬리만한 월급이 전부인지라 목구멍 포청의 거미줄을 걷어낼려면 객의 잔망한 체수로 죽기를 한하고 버둥거려야 겨우 밑구멍에 측목을 배알할 정도이니 이래서야 어디 남에게 담두르고 울치고 산다 이를수 있으랴,,

사정이 이러하매 작금의 내자를 꾀어낼 때  평생 산해진미로 호의호식을 약속하고 오토바이 바퀴만한 금반지에 주먹만한 다이아로 목걸이를 매달아 주겠다던 창창했던 결기는 서리맞은 구렁이 신세로 진작이나 장달음 놓은지가 오래고 되려 조강지처에게 삼팔주 무명수건 들려 거리로 내어놓을 형편이니 무신놈의 팔자가 땜장이 발등같이 이리도 숭숭할까?


 


 

나랏님이 바뀌면 혹 상전벽해가 이루어지려나 셈평을 내어 소싯적 어마한 상단을 이끌었다는 멩박씨를 팔열지옥에서 만난 부처마냥 쌍수를 들어 환영했건만 그를 따르는 가신들 주제꼴들이 평생 손끝에 물묻혀 본적없고 기름값 걱정 해본적 없는 고소영 강부자들인지라 배부른 상전이 하인놈 배고픈줄 모르디끼 전혀 객같은 서민들과는 천양지차의 시각을 가지고 있으니 항차 이일을 어찌하랴,,

엉덩짝 큰 내자와 먹성좋은 두뻘대추니를 먹이고 입히고 건사 하기가 갈수로 힘들고 두려워져 없는놈의 세상은 포청 문고리같이 어렵고 호랑이 아가리처럼 가공하더라,,


 


 

선생님(이원호님)이 두어달 전부터 청상 탐하는 홀애비(죄송합니다)마냥 영알 고헌산 환주를 잔뜩 벼르고 계셨는데  두어주일 전에 객에게 잠깐 언급이 있었고 객 또한 여윈 강아지 똥 탐하듯 얼씨구나 싶어 선생님과 짐을 꾸려 벼슬이 푸짐한 장닭이 첫홰를 치기도 전에 발빠르게 나서 고헌산 자락 우만 마을로 들어선다.

서두른다고 하였건만 부지런한 동네 어르신들은 벌써 논밭으로 훌훌 나가시고  고헌산 자락을 타고 내려온 운무는 아련한 천상의 전설을 가만가만 속삭인다.

안면이 없는 객 일행을 허리가 부러져라 짖으며 환대하는 견공들의 인사 수작을 뒤로하고 마을 고샅길을 감돌아 산허리로 올라선다.

입구에 백오동님의 정겨운 표지기가 꽃등인양 환하게 매달려 있어 더욱 정겹다.

비에 젖은 수풀의 산뜻한 차가움이 기분좋게 찌르르 퍼지는 편안한 길은 이후 가을 중놈의 새북 좆같이 하늘로 뻣뻣이 솟아올라 땀을 철대방죽으로 짜낸다.


 


 

한바탕 된비알과 도깨비 씨름을 하고나니 소나무가 제법 운치있는 고헌산의 어깨 춤치에 이르는데 누군가 동식봉이라는 팻말을 걸어 놓았다.

산하에 이름을 남기는 겄이 그리 장한 일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지만 기왕 벌려놓은 춤이니 이산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는데 물력을 들인다면 그 또한 갸륵한 일이라 하겠다.

이 소나무봉에서 왼편으로 이어지는 방화선을 따라 죽 내려가면 언양 지내리가 되는데 바로 그 자락에 객의 장인 어른이 잠들어 계신다.

생전에 한번도 목청을 높이시는걸 뵌적이 없을 만큼  외유내강한 분이셨는데 오늘  따라 더욱 그리워진다. 

막내딸 울음소리는 지하에서도 들린다는데 혹 이글을 보시는거나 아니실까,,

방화선을 따라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은 한여름이면 그늘이 없어 제법 고생깨나 할 구간으로 대신 맑은 날이면 주변의 조망이 탁 터여 염병 난 동네 도깨비 팔자로 유유자적 할수 있는 구간이겠다.


 


 

작년 지룡-문복-고헌산을 종주한뒤에 거의 일년만에 다시 찾은 고헌산은 그제나 지금이나 거칠겄 없는 긴파람으로 객을 맞아준다.

가슴이 쩍하고 갈라지도록 시원한 조망은 단연 영알 전체를 통틀어 이만한 압권을 견줄데가 또 있으랴.

배내봉과 능동산을 가르는 배내고개는 청개구리 밑에 따르는 실뱀처럼 아득히 하늘을 넘어 서는데 머언 먼 어느 고향의 향수가 반추될듯 그립고 가슴 짠한 풍경이 아닐수 없다.

약소한 주전부리로 얼요기를 한후 거대한 귀신고래의 등짝 같이 우람한 능선을 걸어 외항재로 나려선다.

작년 3개봉 종주때는 그리도 힘들고 어려운 된비알이 오늘은 역으로 산행의 묘미가 절로 우러나는 널널길이니 잃어버린 말을 탓하지 않은 어느 변방 노인의 철학 세옹지마를 다시 되새기게 한다.

외항재에서 운문령까지는 경사도 덜하고 문복 삼거리에서 부터는 줄창 내리막길인지라 올챙이골의 메기대감처럼 자연 배가 앞으로 나오고 걸음에 신이난다.

운문령 매점에서 국수로 아침을 들고는 임도를 피해 숲이 우거진 능선 등날을 따라 길을 재촉한다.

따가운 태양에 수풀은 제삿날로는 견디기가 힘든듯 바람을 타고 우쭐우쭐 햇빛을 털어내고 녹음 짙은 이끼 바위엔 돌지빈내 한 마리 손을 비비고 섰다.

쌀바위를 지나고 아직은 만들지 얼마 되뵈지 않은 나무계단을 밟아 정상에 서니 수많은 사람들이 영남 알프스의 비조 가지산을 보듬고 탐하느라 정신이 없다.

여간해선 그림을 남기지 않는 선생님조차 객과 정상석을 붓안고 흔적을 남겼다.

사통팔달의 가지산은 수많은 산줄기가 제상의 문어발같이 산지사방으로 퍼져 있어 어디를 가든 천헤의 절승으로 연결된다.


 


 

먼저 가장 큰 줄기인  가지~능동~배내~심불~영취~염수~금오~만어산 능선과 마주보며 가는 가지~운문~억산~구만~보두산을 영알 환주라 일컫으며 사랑하고 있고  가지~상운~고헌산을 달리는 길과  문복~옹강산을 묶고 다시 상운 지룡산을 추가하는겄은 작은 예라 하겠다.

능동산에서 사자~재약을 거쳐 향로봉으로 흐르는 중치도 둔중하거니와 사자산에서 정승봉을 치고 오르는 고집도 참으로 대단하다.

한참이나 영알의 갈비를 헤아리다 그림같은 분재송이 있는 능선으로 나서니 을사년 주린 까마귀 까깍 거리며 면분이 있노라 문안을 개어 올리니 긔 더욱 반갑고야..

배내고개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들고는 긴 나뭇계단을 거쳐 배내봉에 오른다.

간월봉이 뒤꼭지가 메슥 거리도록 쳐다보고 오도산으로 길을 놓는데 동안 외항재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했던 울산의 산사랑산악 회원들이 음식과  기념 촬영까지 도우미 해준다.  자리를 빌어 감사 드린다.


 


 

배내봉을 내려서 오두봉 가는길은 연인들의 떼이트 코스로 추천 하고플 만큼  아기자기한 매력을 자랑한다.

완만한 능선과 쉼터 뽀뽀하기 좋은 무성한 숲,,,험험,,

오도산 정상 못미쳐 좋은 전망대가 있으니 놓치지 말일이다.

정상은 잡목에 가려있어 이곳을 놓치면 오도산을 놓치는겄과 진배없으리라.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잦아들자 산자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산바람이 후줄근히 젖은 몸을 어루만지고, 노을이 담뿍 풀린 강물은 그림같이 고우며

초가집 굴뚝의 저녁 연기는 서걱거리는 뒷산 참나무 숲을 지나 하늘로 희부였게 몰려가는 저녁 참이였다.

그때 석양에  긴 그림자를 끌며 동구밖을 들어서는 수상한 위인이 있었다.

보아하니 키꼴이 봉산 수숫대같이 껑충하고 깍짓동같은 몸매, 한일자로 꽉 다문 입술이 절색의 헌헌장부였다.

노송등걸처럼 우람한 어깨엔 엔간한 사람은 당겨볼 염도 못낼 엄청난 활까지 메고 있어 예사로운 인물이 아님은 분명 하였다.

그러나 훤칠한 풍모와는 달리 웬지 총각의 표정엔 깊은 슬픔이 서린듯 처연해 보였다.

총각이 마을 정자나무 아래에 무거운 엉덩이를 내려놓고 다리쉼을 하면서 손부채로 땀을 들이는데 마침 마을 동소임 영감이 총각을 보고는,

“어디서 두루 노시다가 이런 협소한 동리까지 왔을꼬?”

하고 선손을 걸어 말문을 여니

“녜, 저는 단천의 화장골에서 온 상길이라 합니다.”

언뜻봐도 선풍도골에 말씨 또한 막되 먹지 않은지라 동소임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간다.


 


 

“어허 단천이라면 여기서 예사 초간한 길이 아닐진대 무슨 긴한 일있어 걸음을 모질게 했을꼬?”

두사람의 수작이 제법 어우러지자 동소임은 총각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아주 사랑채에 안동을 시키고는  동자치를 꾸짖어 푸짐한 저녁상을 내오게 하였다.

석식후에 동소임은 장죽 길게 물고 자리를 잡았고 동소임 연배의 영감 서넛이 서퇴를 핑계로 사랑에 좌정하고는 상길의 기이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원래 상길의 조부는 변방에서 방어사를 지낸 인물로 상길의 가문은 무인 가문이였다.

그래서 상길 또한 가동주절 시절부터 부지깽이칼과 싸리나무 활로 주변한 탓에 자연 청년으로 성장하매 출중한 무예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하루는 심산유곡으로 사냥을 나섰다가 숲속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시위를 놓게 되었는데 명궁의 재주가 이리도 기박할까 맞은겄은 멧톧이나 노루가 아니라 자신과 죽마를 다투던 바우였다.

가슴에 살을 맞은 바우는 상길의 품에 안겨 거친 숨을 몰아쉬다 끝내는 대세를 돌리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져라 울부짓는 상길의 울음 소리는 계곡을 뒤흔들었건만 한번 맥을 놓은 바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피눈물을 흘리며 바우를 업고 산을 내려온 상길은 바우의 부친에게 자초지종을 미주알고주알 품하고 죄를 청하며 하회를 기다리나 바우의 부친은,

“인명은 재천, 하늘이 하시는 일을 어찌 인력으로 말린다 말이냐,, 비록 네가 죽였다고는 하나 그건 바우의 운이 다했던걸 하늘이 친한 너에게 거두게 하였을 뿐이다.  바우 또한 저승에서 기뻐할 겄이니 너무 상심하는 겄은 장부의 처세가 아니다.”

그리곤 잠시 동안이 뜨다가,

“하늘이 너에게 이런일을 명하신걸 보면 필시 또다른 큰일을 맡기려 하심이니 몸을 보중하여 뜻을 잃지 않도록 하라.”

이에 길게 읍하고 물러난 상길은 그 길로 부모님게 하직 인사 올리고 떠돌이 장돌뱅이나 사당패처럼 부평초가 되어 심에 깊이 맺힌 한을 다스리느라 삼천리 강산을 메주 밟듯 헤메게 된겄이였다.


 


 

상길의 얘기가 끝난지 한참이 되도록 동소임과 영감들은 넋을 잃고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는데 갑자기 동소임의 친구 김영감이 무릎을 치면서,

“그러고 보니 방법이 있네. 이 젊은이의 용력이 과인하여 일당백을 대적 하고도 넉넉해 뵈니 병풍바위산에 보내보면 어떨꼬?”

동소임이 말을 받아,

“옳거니,, ”

“우리마을 뒷산에 가면 조그만 절이 하나 있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 절에 가기만 하면 늦가을 삼대 자빠지듯 목없는 귀신으로 돌아오니 이런 낭패가 어디 있겠나? 관아에서도 겨우 방책이라고 내놓은게 입산금지가 고작이니 형편을 알만하지 않겠나?  동안 칼질을 좀 한다는 왈짜며 무변 부스러기들이 팔을 뽐내며 달려 들었으나 여태 살아온 사람은 없네.”

상길이 묵묵히 듣고만 있자,

“이런일을 부탁하는 겄이 염치없는줄 모르는바 아니나 자네의 무예가 워낙 출중하여 해보는 소리일세.”

이에 상길이 고개를 번쩍 들고는,

“아마도 하늘이 맡기신 일이 이것인가 하옵니다.  내일까지 기다릴겄도 없이 지금 당장 가오리다.”

그리고는 누가 말릴새도 없이 모닥불에 콩튀듯 쏜살같이 산으로 사라진다.

이미 폐사가 된 절에 당도해보니 동소임의 말대로 뜰의 무성한 풀은 옥중 춘향의 쑥대머리와 호형호제하고 미닫이 문짝은 반너머 떨어져 덜렁거리는 겄이 여간 을씨년 스럽지 않더라.

상길은 그중 형체가 온전한 요사체의 벽장에 몸을 숨기고는 활을 끌어안고 구운 흙덩이처럼 감중련 하더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마루가 쿵쾅거리며 울리더니 방으로 들어오는 괴인의 소리가 들린다.

번쩍 눈을 뜬 장쇠는 시위에 살을 단단히 멕여 호흡을 고르며 기다리니 갑자기 벽장문이 벌컥 열렸다.

상길이 자세히 보니 화등잔 같은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피를 흘리는 붉은 입이 참으로 흉측하다.

순간, 상길의 화살이 붉은 빛 가운데로 섬전같이 쏘아져 간다.

‘꺼억 캑캑’ 하는 단말마의 비명이 들리는 듯 하더니 괴물체는 밖으로 허겁지겁 사라진다.

그제서야 상길은 밖으로 나와 칼을 끌어 안고는 조용히 날이 새기를 기다린다.

요사체의 찢어지 문풍지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자 상길은 천천히 일어나 괴인의 핏자국을 따라가니 마당을 가로질러 창고로 흔적은 이어진다.

창고문을 열자 피비린내가 확 끼치며 괴인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엔간한 상길도 움찔놀란다.


 


 

그건 바로 사람 만큼이나 큰 쥐였다.

‘허어,, 여우가 백년을 묵으면 사람으로 둔갑한다더니 쥐도 그런 모양 이구먼,,’

긴장이 풀린 상길은 대청에 널부러져 밤새 못잔 잠을 달게 자는데 걱정이 된 마을의 동소임은 마을 장정들을 조발하여 급히 절간으로 올라 오는데 필경은 화를 당했으려니 제혼자 가슴을 죄었다.

그러나 대청이 울리도록 코를 고는 상길을 보고는 한숨을 돌리고는 상길을 깨우니,

“괜한 수고를 끼쳤습니다. 곧 제가 내려가 자초지종을 얘기하려 했는데 ,,”

상길의 전후사에 마을 사람들은 찬탄을 금하지 못하는데 상길은 마을의 영웅으로 후히 대접하고 죽은 쥐는 껍질을 벗겨 병풍바위에 걸어 두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어떤 총각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장난으로 병풍바위에 걸어둔 쥐가죽을 작대기로 때리니 북소리가 둥둥 울리고 더 놀라운 겄은 그 북소리에 근동의 쥐들이 모조리 죽어 나자빠지는 겄이였다.

이후 병풍바위는 북바위로 불렸고 쥐떼들의 창궐을 막았다 한다.

가히 조선의 만파식적이라 하겠다.

상길은 큰뜻을 품고 중국으로 건너가 소식이 묘연해졌는데 일설엔 명을 건국한 강남의 탕아 주원장이 상길이라고 전설은 전한다.


 


 

오도산을 내려서는 길은 과부 각좆에 참기름 칠을 한듯 미끄럽기 그지없어 각다귀 등쌀에 휘돌리는 당나귀 마냥 도대체가 난당이다.

밧줄을 잡고 더듬 더듬 내려서는 길에 언청이 토란 비어지듯 그놈의 봇짐은 어찌나 겨드랑이를 쓸리게 하는지 이래저래 안팎 곱사등 신세로 피곤하다.

이후 편안한 길을 보첩여비로 달리며 송곳산을 찾았으나 종내는 찾지 못하고 추수 어름에 메뚜기같이 한다리에 두걸음을 놓아 바삐 걸음을 조이니 양등의 신령한 소나무가 산행의 끝을 알려준다.

추만님의 반가운 표지기를 마지막으로 어지간한 오뉴월의 햇발도 오도봉 산자락 갈피로 시나브로 저물어 가더라...


 

            2008년 5월25일  난테 진맹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