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일요일), 6시 50분에 집을 나서서 전철을 타고 사당역에서 내려 10번 출구로 나오니 버스출발시각인 8시가 다 됐다. 오늘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에 속한 산아름산악회에서 주관하는 강원도 평창의 능경봉, 고루포기산 종주를 하는 날이다. 가입은 오래 전에 했지만 첫 만남이라서 어색한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4주 만의 산행이라 마음은 들떠 있다. 8시 7분쯤 출발한 버스는 9시 45분부터 10시까지 횡성(소사)휴게소에서 15분간 정차한 후에 다시 출발하여 11시 5분전에 구대관령휴게소에 도착한다. 오늘의 산행회비는 17000원으로 안내산악회에 비해 꽤 싼 편이다.

여러 대의 큰 풍력발전기가 설치돼 있는 휴게소에서 잠시 쉬다가 선자령으로 가는 길의 반대쪽인, 고속도로 준공기념비가 있는 쪽으로 돌계단을 오르니 기념비의 오른쪽에 능경봉 등산안내도와 함께 능경봉 들머리가 나 있다. 여기서부터 고루포기산 정상까지는 능선 중에서도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을 밟게 되는 것이다.

들머리를 지나서 야트막하고 완만한 봉우리 하나를 넘으니 저 밑에 초소가 설치된 제왕산, 능경봉 갈림길이 보이고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능경봉의 산마루가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삼거리에 이르니 제왕산 등산안내도가 설치돼 있고 그 옆에 단망비라는 뜻 모를 조그만 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 밑으로는 물맛이 꽤 괜찮은 샘터가 있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제왕산으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능경봉으로 오르게 된다. 호스를 들어서 시원하고 단 맛이 나는 샘물을 맛있게 마시고 직진하여 능경봉을 향해 걷는다.
     


구대관령휴게소 - 해발 832 미터. 
 


설해(눈사태) 방지용 목책인 듯? 
 


동해, 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 - 해발 865 미터. 
 


고속도로 준공기념비 옆의 능경봉 들머리. 
 


야트막한 봉우리 한 개를 넘으면 드러나는 제왕산, 능경봉 갈림길과 능경봉. 
 


단망비. 
 


단망비 밑의 샘터. 
 


샘터 옆의 제왕산 등산로안내도. 
 


왼쪽으로 꺾어지면 제왕산으로 가게 되고 직진하면 능경봉으로 가는 삼거리의 방향표지판. 
 

들머리에서부터 능선길, 그 것도 백두대간길을 걷게 됐지만 오늘은 그다지 춥지 않고 매서운 바람도 불지 않아서 쾌적한 산행이 될 듯하다. 수많은 산행객들의 러셀 자국을 따라가며 걷는,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능선길은 일시적으로나마 속세에 찌든 마음을 정화시켜주고 평온하게 해 준다.

삼거리에서 45분 만에 쉽사리 해발 1123.2 미터의 능경봉 정상에 닿는다. 화강암으로 만든 작은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능경봉 정상의 삼각점은 두텁게 쌓인 눈 속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는다.

능경봉 정상에서 고루포기산 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다시 평지로 내려서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긴 내리막길이다. 행운의 돌탑을 지나서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오르내리다보니 나뭇가지에 가려서 어렴풋이 보이던 고루포기산과 대관령전망대가 시원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줄줄이 가는 행렬에서 살짝 비켜서서 그 두 봉우리를 카메라에 담고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봉우리 한 개를 더 넘으니 안부 삼거리인 왕산골 갈림길에 이른다. 일찍 도착한 일행은 이미 자리를 펴고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가지고 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40분 남짓 쉬다가 다시 일어서서 고루포기산을 향해 나아간다. 
 


순백의 눈밭길. 
 


러셀 자국을 따라가는 길. 
 


설화(雪花)로 뒤덮인 능경봉. 
 


능경봉 정상의 전경. 
 


능경봉의 정상표지석 - 해발 1123.2 미터. 
 


행운의 돌탑. 
 


순백의 백두대간길. 
 


고루포기산과 대관령전망대. 
 


안부 삼거리인 왕산골 갈림길. 
 

식사를 한 직후라서 산행을 하기에 거북하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며 20분 남짓 걸려서 두 번째 왕산골 갈림길에 닿고 다시 거기에서 35분 만에 대관령전망대에 닿는다. 대관령전망대에서 5분쯤 조망을 하다가 다시 능선길을 오르내린 끝에 17분 만에 오목골 갈림길에 이른다. 작은 돌탑이 있고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오목골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고루포기산을 향해 오른다. 
 


순백의 능선길 1. 
 


두 번째 왕산골 갈림길. 
 


대관령전망대로 오르는 길. 
 


대관령전망대의 방향표지판. 
 


대관령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조망. 
 


순백의 능선길 2. 
 


오목골 갈림길. 
 

구대관령휴게소에서 능경봉까지는 숱한 사람들의 발길로 등로의 눈이 다져져 있어서 쉽사리 오를 수 있었지만 능경봉 내리막길부터는 내린 눈이 녹지 않고 더 깊이 쌓여 있고 그 반면에 사람들의 발길은 비교적 적어서 눈이 덜 다져져 있고 군데군데 가파른 곳도 있어서 산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산행은 더 힘들어진다. 오목골 갈림길부터는 그냥 오목골로 하산하는 사람이 많은지 고루포기산 쪽으로는 눈길도 잘 다져져 있지 않고 러셀도 충분히 돼 있지 않아서 500 미터에 불과한 오르막길이 꽤 힘들다.

좁은 길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지나가도록 비켜주다가 오른쪽 다리가 허벅지까지 눈 속에 빠지는데 뒤따라오는 산행객이 손을 잡아줘서 간신히 눈구덩이에서 빠져 나와 고루포기산을 향해 오른다. 러셀이 된 등로를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면 눈 속에 파묻힐 듯한 기우심마저 든다.

큰 철탑을 지나서 좀 더 오르니 마침내 해발 1238.3 미터인 고루포기산 정상이다. 정상표지석도 없고 이정목에 설치된 초라한 고루포기산 정상표지목도 이정목의 기둥에서 떨어져서 산행객들이 어설프게 이정목의 기둥 위에 올려놓은 상태다.

고루포기산 정상에서 몇 분간 조망을 하다가 십 여분 만에 오목골 갈림길로 되내려와서 오목골을 향해 하산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유순하던 내리막길은 서서히 가파라지더니 로프지대가 시작되자 아이젠을 착용하고도 미끄러질 정도로 가파라지고 또한 눈 속에 빙판이 깔려 있어서 심하게 미끄럽다. 로프 옆의 등로는 산행객들의 등산화 바닥과 눈길의 심한 마찰로 등산화 바닥에서 떨어진 흙과 눈이 뒤섞여 불그스레한 톱밥처럼 보일 정도다. 로프도 얼어서 상당히 미끄러워 꽉 잡고 있어도 슬슬 미끄러진다. 급경사의 로프지대는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기진맥진하여 로프지대를 다 내려오니 길은 완만해진다.

오목골 갈림길에서 오목골까지 1.6 킬로미터의 구간 중 절반을 내려온, 로프지대를 내려온 직후인 800 미터 지점에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데 여기까지 무려 50분이 걸렸다. 그리고 여기서 계곡을 왼쪽에 낀 순탄한 비탈길을 따라서 등산안내도가 설치된 고루포기산 날머리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고루포기산으로 오르는 길. 
 


고루포기산 정상 - 해발 1238.3 미터. 
 


되돌아온, 돌탑이 있는 오목골 갈림길. 
 


오목골 하산길. 
 


험난한 로프지대를 다 내려온 후, 평지처럼 완만해진 등로. 
 


고루포기산 날머리. 
 

날머리를 지나니 임도가 시작된다. 임도를 지나고 황태 덕장을 지나 날머리에서 20분 남짓 걸려 천천히 오목교까지 내려와서 오목교를 건너니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정차해 있다. 주차장 근처의 식당에서 황태구이와 소주로 간단히 뒷풀이를 하고 회식비로 일만원을 추가로 내고 버스에 오른다. 고어텍스 소재가 아닌 경등산화의 앞코에는 오랜 시간 눈길을 헤치며 걷다가 달라붙은 눈이 언 얼음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가 녹아서 등산화를 적신다. 영하 10도 안팎의 혹한에서 이런 상태였었다면 동상에 걸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18시가 조금 넘어 출발한 버스는 21시경에 사당역 앞에 도착한다. 첫 만남의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서 근처의 중국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귀가한다.

오늘의 산행은 익숙하지 못한 눈길의 산행에 좀 더 친숙해지는 계기가 됐고 눈길 산행의 체력 소모와 위험 부담에 대한 좋은 경험이 돼 주었다. 겨울 산의 매력은 그 무엇보다도 눈부신 설경과 순백의 양탄자와 같은 눈길에 있지 않겠는가. 
 


눈길의 임도. 
 


쌓인 눈의 높이. 
 


눈밭. 
 


눈으로 뒤덮인 언덕. 
 


황태 덕장. 
 


오목교 옆의 주차장. 
 


오늘의 산행로 - 파란 선은 왕복한 구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