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계명지맥종주제2-1구간


 

종주에 필요한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충주


 

언제 : 2008. 10. 19(해의날) 맑음


 

누가 : 신경수 


 

어디를 : 충주시 직동 발티마을에서 충주시 살미면 재오개리 도선동을 넘는 발치로 올라 남산을 지나 마즈막재까지 백두계명지맥 약4.8km와 접근거리 약1.5km


 

南山(610) : 충주시


 

구간거리 : 6.3km  접근거리 : 1.5km  지맥거리 : 4.8km


 

구간시간 6:50  접근시간 0:20  지맥시간 4:30  휴식시간 2:00

(한발로 걸은 시간이므로 걸린 시간은 무의미함)


 

어제부터 아침까지 뜬눈으로 산행을 마치느라 잠 한숨 자지 않고 긴밤을 지새우고 문경 음식점에서 아침 일찍 마눌과 헤어져 7시5분 첫차로 충주에 도착하니 7시50분을 가르키고 있다


 

그나저나 밤새도록 오느라 비상식량이 다 떨어지고 장비처럼 아끼는 자두도 다 떨어져 터미널 주변을 다 뒤져도 24시마트만 2군데 있을 뿐 과일 파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꽤나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아파트단지 안으로 들어가니 조그만 슈퍼앞에 과일이 보여 반가운 마음으로 아무 과일이나 금액과는 상관없이 사야 되는데


 

이게 웬일 8개자리 포장 자두 1봉지가 1500원이라 눈을 의심하고 또 다시 보고 그렇게 3000원에 2봉지 있던 자두를 떠리해 택시를 타고 발티마을에 내리니(6000원) 시계는 8시40분을 가르키고 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오늘 계명지맥완주는 무난하리라 내심 쾌재를 부리며 콘크리트 포장농로를 따라 오른다     


 

발티마을 : 8:40


 

샛빨간 탐스러운 사과밭 사잇길로 가다보면 비포장농로는 끝이나고 신발끈을 다시 묶고 비포장농로를 따라 오른다


 

포장농로 끝 지점 : 8:50 8:55 출발(5분 휴식)


 

비포장농로도 끝이나고 풀 무성한 길을 오르다 Y자 갈림길서 좌측으로 전봇대와 같이 오른다


 

Y자길 : 9:00


 

오르면서 느끼는 길 형태는 풀이 무성하지만 예전에는 경운기 정도가 지나다닌 흔적이 역역하다


 

고갯마루로 가니 전번에 붙여논 내 표시기가 아직 바래지 않은 모습으로 붙어있고 조그만 나무밑에 조그만 돌무더기가 흩어져 있고 나뭇가지에 퇴색하고 바랜 오색헝겁이 쓰레기모양 걸레가 되어 몇조각 붙어있는 점으로 보아 아마도 예전에는 이곳을 넘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가는 성황당이 있었던 것 같다


 

발치 : 9:10 9:15 출발(5분 휴식)


 

길은 그런대로 나있어 별 어려움 없이 오르다보면 납작한 돌을 무슨 연유로 그렇게 쌓아 놓았는지는 몰라도 인위적으로 계단식으로 쌓아놓은 그런 곳을 지나고


 

9:35


 

급경사를 올라 완만해지는 곳에서부터 시나브로 오르면 장솔 숲속인 펑퍼짐한 등고선상 470봉 정상이다


 

등고선상 470봉 : 9:50


 

펑퍼짐한 묘지능선을 내려가 살그머니 오르면 억새 가시 잡목이 삼엄한 도면상 삼각점이 있는 462봉인데 그 속을 뚫고 들어갈 수없어 삼각점은 확인하지 못했다


 

도면상 462m 지점 : 10:00 10:05 출발(5분 휴식)


 

올라올 때도 다리를 구부리기가 좀 힘이 들고 왼쪽 무릎 오른쪽 옆 부분이 누르면 아프기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좌측 북서방향으로 팍 꺾어서 내려가면서 그 통증이 점점 심해지더니 급기야는 뻣정다리가 되면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다리 하나가 없는 모양으로 헐렝이처럼 거의 기다시피 시간만 흘려보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고생하며 내려서니 이게 웬일이냐

석회석광산 절개지 절벽에 서게되며 전면으로 지나가야할 산줄기는 모조리 파헤쳐져 허연 뼈를 그대로 내놓고 능선이 싹둑 사라지고 없다

  

석회공장 절개지 : 10:20


 

대충 가늠해보니 왼쪽으로는 석회석광산이 계속되고 오른쪽으로는 고갯마루까지만 광산이라 그 다음으로는 임도가 연결되어 오른쪽으로 내려가기로 하고 잠깐 가니 왼쪽 바로 아래로 임도가 내려다보이나 절개지 잡목 가시가 빼곡해 도저히 내려갈 수은 없는 상태라 가시 무성한 묵은길을 따라 내려가다 임도와 만나게 된다


 

임도 : 10:30


 

좌측 고갯마루에 있는 석회공장으로 오른다

중장비들이 올라와 있고 레미콘 같은 공장건물도 있으며 그 앞으로 어마어마한 구덩이가 파여 있으며 구덩이 오른쪽 능선이 지맥인 것 같지만 그 깎인 상태가 위태로워 보여 좌측 능선으로 오르기로 한다


 

10:40


 

길은 없고 구덩이가로 나무들을 걸쳐 묵어놓은 “위험 안전” 비닐 하얀띠를 따라 오르다가 좌측 사면으로 가는 길이 보이면 그리로 진행해 능선으로 올라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등고선상 430봉이다


 

등고선상 430봉 : 11:25 

 

 

어제 오늘 쉬지 않고 산행한 덕분으로 졸리운 눈꺼풀을 내려앉지 못하도록 힘을 주며 둔덕을 넘고


 

둔덕 : 11:40


 

내려서 푹꺼진 안부에 이르면 아름드리 거목이 1000년 세월을 이고 둘레를 작은 돌무더기로 담장 형태를 만들고 한가운데 판자로 지은 작은 치성소 안에는 조그만 불상이 정좌해 있으며 양초함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성황님께 무언가를 빌며 지나다니는 것 같다


 

살짝 몇m 오르면 잘 관리된 콘크리트 포장 임도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상재오개마을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넘어가면 충주시 직동 탑대마을 내려가는 길이다


 

임도 : 11:50


 

왼쪽으로 오르면서 보니 이곳 임도에는 가로수가 심어져 있는데 잘 보니 전부 빨간 열매를 소담스럽게 달고 있는 산수유나무 아닌가 정이 뭉청뭉청 묻어나는 산수유가로수라^^


 

다른 지방에도 이런 아이템을 한번 도입하여 천편일률적인 가로수의 수종을 조금 변경해보면 보다 색다른 정취를 국민들에게 선사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잠시 오르면 비포장임도 삼거리에 이르고 빨간 열매가 덕지덕지 붙은 산수유나무 아래 퍼지르고앉아 마트에서 사간 김밥을 먹으며 많은 고민을 한다


 

이 다리를 가지고 과연 더 가느냐마느냐 하는 것인데 답은 명백하다

이후 남산 오르는 능선은 등고선으로 보아 급경사를 핵핵거리며 기어서 올라가는 형국이라 더 이상 이 다리를 가지고는 무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으니 더 이상 혹사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팔뚝보다 더 굵고 큰 칡을 캐가지고 의기양양해서 삼거리에 세워둔 차로 내려오는 사람들과 간단한 눈인사하고 물어보니 나와는 반대로 상재오개마을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포기하고 좌측 직동 탑대마을로 내려가기로 결심을 했으나 산으로 오르는 임도가 궁금해 그리로 한번 가보기로 한다


 

임도 삼거리 : 11:55 12:15 출발(20분 휴식)


 

남산 우측 사면으로 난 임도를 따라 오르면서 좌측 산으로 붙을만한 곳을 살피고 그냥 하산하려 했는데 가도가도 붙을만한 곳은 없고 어느 정도 가다 좌측으로 확 휘어 다시 능선을 가로 질러 이번에는 능선 좌측 사면으로 길이 나 있고


 

다시 확꺾어 다시 능선을 가로질러 다시 오른쪽 사면으로 길이 이어지며 가는내내 임도변으로는 키를 넘는 산수유나무가 빨간 럭비공의 축소판같은 열매를 달고 가을을 자랑하고 있다


 

관리된 상태가 좋아 자가용도 무난하게 오르내리고 몇몇 사람들이 임도따라 내려오길레 이 임도가 어디까지 이어지느냐고 물었더니 의아한 듯 빠끔히 쳐다보며 되묻는다 정말 모르고 올라왔느냐는 것이다


 

설명인 즉슨 이 임도는 남산 거의 정상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 남산 정상은 조심해서 올라가도 될 것 같아 걷고 또 걷고 왼쪽으로 팍 꺽이는 지점에서 쏟아지는 잠을 주체 못하고 길바닥에 누워 잠을 자는데 꿈결에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들 있다


 

12:50  13:10 출발(20분 잠잠)


 

산등성이를 완전히 180도 잡아돌면 산자락이 전부 철옹성 같은 성벽으로 둘러쳐져 있으며 그 상태로 보아 최근에 중창보수를 한 것 같다


 

성벽 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이 임도는 마즈막재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산 정상으로 올라갔으면 다시 이길로 내려오지 않더라도 다른 길로 내려가도 이 임도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성벽 밑에 있는 돌계단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13:30


 

돌계단이 끝나고 거대한 석성 밑에서 몇 번씩 꺾이는 침목계단으로 오르면 좌측 지척으로 돌로 만든 연못이 있고 오른쪽으로 성벽길로 오르면 장의자들이 나오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많고 충주시내와 그 일원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그야말로 산책로가 성벽위로 펼쳐지는데


 

단지 난간이 없으니 뛴다던지 그런 위험한 행동만 안한다면 그 성곽길이라는 것이 6차선 도로길은 될 것 같으니 정말로 유순한 길이다


 

남산(금봉산) 정상 조금 지나면 웅덩이 지나 돌탑 1기 지나 너른터에 포장을 친 간이매점이 나오고 구리빛으로 건강미를 발산하는 예쁘고 젊은 아낙네가 차와 맥주 막걸리를 팔고 있다 그냥 갈순 없잖아 ^^


 

캔맥주 하나 먹고 잠깐 빽해 다시 정상으로 가면 “1982재설” 대대삼각점이 있고 그 앞으로 예의 그 “남산 해발636m, 직진하면 마즈막재3km, 매점쪽으로 내려가면 직동3.8km, 좌측으로 내려가면 남산아파트3.0km, 충북 충주시” 오석 장방형 정상석과


 

“남산 해발636m 1997. 3. 15충주시청산악회” 사각기둥 정상석이 나란히 서있으며 읽어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정상석을 쓰다듬으며 지나간다

 

명실공히 뾰족구두를 신고도 오를 수 있는 덕유산 향적봉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충주 시민들의 휴식처인 남산 정상이다 


 

온길로 잠깐 내려가면 충주산성안내판에 예전에는 이산을 금봉산이라고도 불렀으며 구구절절이고 이정목에 “직진하면 마즈막재2.2km,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두군데 있는데 앞에 있는 길로 내려가면 깔딱고개1.28km 샘골약수0.83km, 가까운 곳으로 내려가면 재오개0.8kmn"


 

남산 : 13:50  14:10 출발(20분 휴식)


 

다시 성곽길로 한 오분 정도 내려가다 좌측으로 철재 아시바 계단이 나오면 그리로 콘크리트 공사하다 만 철판 계단을 몇 개 내려가면 쌓다만 돌탑 1기가 나오고 그 앞으로 산길로 잠시 내려가다 스텐난간이 설치된 목조타이어 계단으로 내려가면 좌우로 넘는 임도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가면 오늘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고 왼쪽으로 가면 마즈막재 가는 임도길이다


 

임도 : 14:25      


 

임도길은 한없이 돌고도는 길이라 직진해서 산길로 내려가면 다시 그 임도와 만나게 된다


 

임도 : 14:35


 

이제부터 산길과 임도길이 계속되는데 전반적으로 임도길과 나란히 능선이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임도를 따라 내려가도 되고 산길과 임도길을 번갈아가며 내려가도 된다


 

오른쪽으로 충주호를 둘러보며 임도따라 내려가다 좌측 산길로 내려오는 지점에 119구조 팻말이 서있고 그 앞으로 대전교통방송 커다란 송신탑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송신탑 : 14:40


 

수많은 산책길들.......

어린 아들 딸 손에 손잡고 오르는 부담없는 길

팔순 노인을 모시고 오르는 그런 효도의 길

장단지가 터져라 하며 오르는 수많은 사이클족들

그리고 어깨를 마주 감싸고 오르는 아베크족들의 행복한 길


 

내 비록 뻣정다리로 걷지만  지금까지 오는 동안 임도 양쪽으로는 그 아름다운 산수유가 주저리주저리 달린 산수유길이라 한두알 따 먹으며 그 산뜻하고 새콤한 향을 음미하며 삶의 행복함을 만끽해본다 산다는 것이 고통스러우면서도 이리 행복하다는 것을................ 


 

그리고 문경에서 생이별을 하고 온 마눌 집에 다 갔는지 궁금한데 전화가 온다 도착했노라고.......


 

그래서 마눌과 아들딸 생각이 나 시간 개념을 잃고 좋은 산수유 열매를 한두알 주머니로 장소 이동을 시키며 그렇게 내려간다


 

철탑이 있는 곳에 “충주산성1.71km, 등산로입구 0.49km"라는 이정목이 있고 이제 마즈막재도 다 온 것 같다


 

이후로는 급경사 내리막길이라 좌우로 크게 임도가 돌고 돌아가기 때문에 짧은 산길을 내려가 임도를 만나고 또 짧은 산길을 내려가 임도를 만나고 그렇게 내려가면 등산로 입구에 “남산등산로 대형안내판”이 있는 2차선도로로 나가게 된다


 

이후 도로따라 잠깐만 내려가면 서울의 북한산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충주시민들의 허파구실을 하고 있는 충주의 진산이며 이산줄기 이름이 있게한  계명산 오르는 등산로 입구가 있는 마즈막재에 이르게 된다


 

마즈막재 : 15:30 (30분간 산수유 채취)


 

그후 


 

잠시 망서린다

시간상으로는 오늘 계명지맥 완주할 수 있을 것이나 더 이상 무리를 했다가는 무슨 사단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 그래서 걸린 시간이 무의미한 그런 산행을 그렇지만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한 산행을 여기서 접기로 하고 충주 택시를 부르고 있다보니 시내버스가 미끄러져와 무조건 손을 들고 충주버스터미널로 간다


 

백두계명지맥종주제2-2구


 

종주에 필요한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충주


 

언제 : 2008. 11. 9(해의날) 흐림 비 약간


 

누가 : 신경수


 

어디를 : 충주 시내 남산과 계명산을 잇는 마즈막재에서 계명산 지나 탄금대공원까지 백두계명지맥 약11km


 

계명산(△775) : 충주

대문산(130)   : 충주(탄금대)


 

구간거리 : 11km   지맥거리 : 11km


 

구간시간 6:40  지맥시간 4:20  휴식시간 1:20  탄금대관광 1:00


 

지난번에 다리 때문에 산하나 넘어서 어쩔 수 없이 중도에서 포기하고 남은 산줄기가 눈에 아삼삼 그려지고 어제는 직원MT 때문에 망가진 몸도 조금 추스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산하나 넘어가면 끝이나는 반토막 자투리 남은 구간을 하기 위해 느긋하게 고속버스를 타고 충주에 내리니 다른 곳과는 달리 비가 왔었나 보다 마치 인위적으로 물을 뿌려놓은 듯 거리는 청초하기 그지없고 바람은 차다


 

택시로 마즈막재로 가는데 기사아저씨 왈 “비가와서 상당히 미끄러울텐데 산엘 가세요”하며 걱정을 하고 나선다 “아 그래도 가야지요 조심하면 괜찮을거에요” 꼭 가야만 한다는 가야할 수밖에 없다는 표현을 이리 한 것이다


 

조그만 주차장엔 관광버스 한대가 서있고 어디서 오셨는지는 몰라도 아마도 단체산행을 온 모양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으며 아마도 총무쯤 되는지 한사람이 설치는데 퍽이나 인상적이다


 

“자자 담배 가지고 올라가면 안되니까 담배를 맡기세요 그리고 불도 가지고 들어가면 안되니 내 놓으십시오 산에 가서 담배를 피우면 안되지요” 이러면서 각 회원들에게 돌아다니며 반강제로 담배와 불을 거두어가려 하는데 좀처럼 내놓는 사람들이 없다


 

구호는 그저 헛구호로 끝이나고 산행이 시작되는데 그들을 지나쳐 오르고 있는 내가 맨 선두에서 회원들을 인솔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마즈막재 조그만 주차장 : 10:00


 

통나무 계단을 오르면 너른 공터에 “대몽항쟁전승기념탑 1253”이라 쓰인 커다란 석탑을 뒤로 하며 급경사를 오르며 끝없는 통나무 계단도 드디어 끝나고 수많은 작은 케른들이 있는 있는 곳에 이른다


 

케른 : 10:15


 

그 주위에 작은 돌들이 많아 그돌을 가지고 만든 케른으로 한동안 그런 작은돌너덜을 지나 묘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다


 

 : 10:20


 

급경사는 여전하고 오르다가 엄청난 급경사로 변하며 긴 난간줄을 잡고 오르면 편편해지는 곳에 “119 계명산1지점” 구조팻말과 “119구급함”에는 랜턴 등 여러 가지 구급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119 구조팻말 : 10:25 


 

잠시 완만한 능선을 가면서 어느 정도 고도가 높아지더니 바람에 흩날리던 안개는 비구름이 되어 빗방울을 흩뿌려대니 배낭커버 씌우고 쟈켓을 꺼내입고 시종일관 급경사를 오르면서 돌무더기가 있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안내판에 “이곳은 전망대 직진하면 정상0.9km,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계명산휴양림, 온곳 마즈막재1.5km" 말 그대로 전망대이니 충주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와야 하는데 비구름을 사이로 일부만 아른거린다


 

전망대 휴양림 갈림길 : 10:40  10:45 출발(5분 휴식)


 

뒤따르던 한팀의 선두그룹이 도착하고 대장인듯한 사람이 5분간 휴식을 명한다 참으로 재미난 산악회인 것 같다 쉬는 시간은 자기의 체력과 습관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인데 일일이 지시를 하고 있으니 그 산악회 운영진들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을 뒤로 하고 뿌연 비구름속을 몽롱한 상태로 오르면 약간의 공터에 “119 제2지점” 구조팻말을 지나 잠시 오르면 묘터인 듯한 약간의 공터 등고선상 710봉 정상으로 추정이 되는 지점에 이른다


 

등고선상 710봉 : 11:00


 

이후 잔파도를 타며 바위들이 섞인 길을 조금은 조심하며 전체적으로 조금씩 고도를 높여간다


 

없어도 좋을 난간줄이 가끔 나오는데 잡고 오르니 편하긴 편하다

헬기장이 나오고 작은 바위 한개를 오르면 삼거리 이정목이 반기고 “좌측으로 내려가면 두진아파트3.2km, 오른쪽으로 가는 방향은 지워져 모르겠고 온 곳도 지워져 모르겠다"


 

오른쪽으로 잠깐 가면 작은 바위들이 있는 곳에 예의 그 충청북도 각 지자체들이 같은 규격 같은 모양으로 만든 충주시에서 세운 오석 장방형 장상석에 “계명산 775m 좌측으로 가면 하종마을, 온곳 마즈막재2.6km 우측으로 가면 두진아파트4.5km” 그런데 좀 전에 나온 이정목과 너무 차이가 나 믿을 것은 못되더라^^


 

그 옆으로 남산에서 본 것과 똑같은 충주시청산악회에서 세운 직사각형 기둥인 화강석 정상석에 “계명산775m”

그 옆으로 “306복구” 깨진 기판에 박혀있는 삼각점이 있다


 

거의 같이 출발했던 모산악회원들 선두그룹이 속속 도착하고 무엇인가 메모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뭘 그렇게 적느냐 물으며 이상하다는 표정이 역역하다 “무엇이든지 참고할 만한 것이나 느낌을 그때 그때 적어야지요 잊어버리잖아요” 그러며 바닥에 놓은 스틱을 집어드는데 후미에게 무전을 때린다 여기는 선두 정상에 도착했다 이곳에 자리를 피겠다 뭐 그런 내용인데 그소리를 뒤로 하고 두진아파트 쪽으로 방향잡고 내려간다


 

길은 탄탄대로 산림욕장 같은 길이 앞으로 첫 번째 도로가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계명산 : 11:35 11:45 출발(10분 휴식)


 

바위 섞인 길을 내려가면 “119 4지점” 구조팻말이 나오고 : 11:55


 

둔덕으로 오르니 그제서야 비는 그치고 반가운 햇살이 나뭇가지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따듯한 기운을 전해준다 그리고 앞으로 산행 끝날때까지 개었다 흐렸다를 반복한다


 

쉬기좋은 약간의 공터에 작은 케른이 있는 안부에 이른다


 

안부 : 12:00


 

바위전망대에 이르러 충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아직은 활짝 갠 날씨가 아니라서 뿌연 실루엣으로 어른거리며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는 너른 분지안에 들어선 조용한 도시로


 

저멀리 좌에서 우로 흐르는 달천의 유장한 흐름과 남한강이 오른쪽 한구석으로 흘러 대문산 탄금대공원에서 달천과 만나는 곳까지 가늠을 해본다


 

바위 전망대: 12:05


 

쉬어가기 좋은 권영필묘 지나 잠깐 가면 ╣자길 안부에 이른다

앞으로 왼쪽으로 내려가면 무조건 충주시내로 가게 되므로 아차하면 탈출할 길은 사방에 널려있는 셈이다

l

╣자길 안부 : 12:20


 

둔덕넘어 쭉 내려가 살그머니 오르면 조망좋은 둔덕으로 케른 옆에서 따뜻한 햇빛을 즐기며 충주시내 전체를 바라보며 조용한 시간을 갖는다 


 

조망둔덕 : 12:30 12:50 출발(20분 휴식)


 

내려가면서 지금까지 서북쪽으로 흐르던 산줄기가 좌측 서쪽으로 팍 꺾어서 내려가다 길은 좋은 길은 오른쪽으로 내려가고 좌측으로 성긴길을 따라 잠깐 가면 안부에 오른다


 

안부 : 13:00


 

살그머니 오른 둔덕에서 길은 없어지고 내려가면서 오른쪽에서 오는 산책로 같은 좋은 길과 만나는 확실한 십자안부로 내려선다


 

여기서 오른쪽에서 내려오는 좋은 길은 아마도 13시에 도착한 안부로 오기전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좋은 길이 이렇게 연결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성긴길을 따라 좌측으로 가지말고 무조건 좋은 길을 따라 우측으로 내려가면 산사면을 트레버스해서 지금 내려선 십자안부에 이르는 것 같다


 

십자안부 작은민재 : 13:10


 

산책로 같은 좋은 길을  따라 오르면 참나무 숲속인 등고선상 290봉 정상이다


 

등고선상290봉 : 13:20


 

내려가면 “15, 105”번 철탑이 있는 ╠자안부에 이르고 : 13:25


 

무슨 용도인지는 몰라도 세맨전봇대 있는 등고선상 또 나오는 290봉에 오르면 장의자 앞에 “충주421 1999이설” 삼각점이 있으며 충주시보건소에서 세운 누운팻말에 “정상1148m 반환점”이란 뜻모를 안내판이 있어 조금더 성의를 표시해 도면으로 코스를 설명하고 그 취지를 알려주는 것이 더 이해하기 좋지 않나하는 생각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된다


 

내 생각으로는 아마도 충주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운동 및 산책코스를 설명한 것 같은데 시작점과 각 지점마다 안내판이 있어야 될 것 같다 


 

등고선상290봉 : 13:30 13:40 출발(10분 휴식)


 

좋은 길따라 잠깐 내려가다 ╠자길을 지나 난간줄을 잡고 한없이 내려간다

좌측 아래서 음악소리 마이크소리 등등 시끄럽게 들리고 통나무 계단을 내려가면 오른쪽 사면으로 내려온 좋은 길을 만나 성긴 십자안부에 이른다


 

아마도 도면상 막은대미재라고 표기된 안부가 이곳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이 다음에 나오는 확실한 십자안부가 막은대미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막은대미재 : 13:45


 

참나무 숲속인 등고선상 230봉에 이르고 : 13:50


 

확실한 십자안부로 내려선다 혹시나 이곳이 막은대미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지나간 십자안부나 이번에 나오는 십자안부나 지도에는 그 표기가 어정쩡해 뭐라고 확신을 하기에는 이르다


 

십자안부 : 13:55


 

장의자가 나오고 등고선상 또 나오는 230봉 정상에 이르면 지도에는 없는 판독불능 표면으로 튀어나온 삼각점이 있다


 

등고선상230봉 삼각점 : 14:05


 

지금까지 산책로 같은 좋은 길은 좌측 남쪽으로 내려가고 지맥은 우측 성긴길로 서쪽으로 간다


 

길 상태는 상대적을 성기다는 말이고 그런대로 괜찮은 길을 따라 묘에서 우측 약간 북쪽으로 잠깐 내려가다 능선은 자연스럽게 서쪽으로 꺾어서 간다


 

둔덕에 이르니 또 무슨 삼각점이냐 또 지도에는 없는 판독불능 삼각점이 나온다


 

삼각점 둔덕 : 14:15 14:20 출발(5분 휴식)


 

좌우로 내려가는 흔적 정도만 있는 십자안부 지나 살그머니 오른 둔덕에서 참호길을 따라 가다 전면으로 “위험추락주의” 팻말이 보이는 곳에서 좌측으로 길따라 잠깐 내려가면 “충주금릉배수지” 앞 너른 주차장에 이르고 포장도로따라 잠시 내려가면 6차선도로가 나타나고 왼쪽으로 “청주보쌈 손칼국수” “금능가든횟집”이 목하 영업중에 있다


 

시간도 잘잘하게 남아 칼국수 한그릇 하고픈 생각이 있어 기웃거리다 다음에 또 도로가 나오고 또 도로가 나오고 탄금대에 가면 여러 가지 먹거리가 지천으로 있을 것 같아 참기로 한다 


 

사실 시간이 없으면 여기서 산줄기다운 산줄기는 끝이나므로 생략하고 종주산행을 접을 수도 있지만 남는게 시간밖에 없음으로 꾸역꾸역 탄금대까지 가보기로 한다


 

금릉배수지 고갯마루 도로 : 14:25  14:30 출발(5분 휴식)


 

고가고 건널목이고 없으니 건널목을 찾아 좌측으로 도로따라 내려가다 보니 저멀리 횡단보도 비슷한게 보이는데 막 말로 거기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올라올 일을 생각하니 너무 한심한 것 같아 길건너 교통전광판있는 곳으로 눈치보며 건너 절개지 끝에서 오른쪽 묵밭으로 오른다


 

길건너 절개지 끝 : 14:35


 

막판에 길 없어지고 산불이 났었는지 작은 가시 잡목지대를 지나 능선에 이르면 역시나 길은 없다


 

절개지 고갯마루 : 14:40


 

좌측 정상으로 추정이 되는 곳으로 능선 따라 가려니 베어서 쌓아놓은 나뭇가지들이 계속되어 통행불가라 능선 오른쪽 사면은 키큰나무들이 있어 그런대로 진행할만하니 그렇게 요령껏 오르면 잡목 덤불속에 아무것도 없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무명 둔덕 정상이다


 

무명 둔덕봉 : 14:45


 

서쪽으로 방향잡고 직진하다 적당한 지점에서 좌측으로 서남방향으로 꺾어서 내려가니 왼쪽이 진양자동차운전학원이 있는 충주성결교회앞 펑퍼짐해서 어디가 고갠지는 정확하게 구분이 안가지만 교회정문앞 2차선 도로가 고갯마루인 작살고개인 것 같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충주시청 가는 길이다


 

작살고개 : 14:50 15:00 출발(10분 휴식)


 

길건너 쇠저울3길로 들어가며 산으로 붙을 수가 없어 좌사면으로 난 1차선포장도로를 따라가면 호원농장지나 유럽풍으로 지어진 파라다이스웨딩홀앞 4차선도로변으로 나가면 그 앞으로 너른 평야가 펼쳐지며 추수를 끝낸 논들은 흩고간 지푸라기가 무더기무더기 널려있다


 

사실 여기서 산줄기는 사라지고 논들로 이루어진 드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지며 어디가 마루금인지 가늠하기가 쉽지않으며 산줄기 종주를 접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그 끝 대문산이란 낮은 구릉같은 산이 있으며 그 산이 끝나는 지점에서 달천과 남한강이 만나므로 아무리 논바닥이지만 산경표의원리에 따라 물기름을 하는 길은 반듯이 존재해야만 한다   


 

19번국도 : 15:10  15:20 출발(10분 휴식)


 

시간이 없다면 몰라도 남는 것이 시간뿐이니 그래서 꾸역꾸역 간다

좌측으로 조금 가다 건널목에서 신호받아 “S-Oil 주유소” 앞으로 건너고 우측으로 도로따라 잠시 가다 “한솔조경”에서 좌측으로 들어가 철로를 건너 우측 능암마을로 가는 수로가 마루금인 것 같고


 

15:25


 

수로옆 길을 따르다 마을 한가운데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나있는 1차선 포장도로가 지맥능선으로 추정되며 이후 도로따라가며 “태진상사” 창고 건물 돌아서 칠지마을에 이른다


 

칠지동 : 15:35


 

칠지7길 사거리에서 오른쪽 칠지7길로 들어가다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다 섬뜰1길 삼거리에서 오른쪽 섬뜰1길로 가는데 오른쪽으로 드넓은 평야를 가림막으로 막아놓고 “세계무술박물관 대신토건서 부지조성중에 있다”는 안내판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유엔평화공원“ 조감도가 붙어있는 부지를 지나 길건너 탄금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곳에서 오른쪽 단풍나무 가로수가 아름다운 길을 따라 간다


 

탄금대공원 후문주차장 : 15:50


 

너른 도로가 끝나는 한강변에 있는 자전거 대여점에서 좌측으로 남한강변으로 나있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 인조목계단으로 올라 너른터에 이르면 충혼탑 등 수많은 조형물들이 반기며 기다리고 있다


 

충혼탑 : 15:55


 

洞天권태응에 대한 스텐 안내문과 그 옆으로 감자꽃 노래비와 조각된 “감자꽃”이라는 싯구가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진리에 대한 강력한 이미지를 주고 있어 여기에 옮겨본다


 

내가 알기로는 권태응은 이곳 충주시 칠금동에서 태어나 일제에 항거하다 일찍이 31세의 나이로 1951년에 요절한 저항시인으로 “감자꽃”이란 시도 아마 너희들이 아무리 개명을 하고 일본인이 되라 하지만 자주꽃 피는 감자는 자주감자일 뿐이며 하얀꽃 피는 감자는 하얀감자일 뿐이라는 투철한 독립정신을 나타내는 아주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그런 시로 알고 있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각종 수도시설과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장의자들과 각종 조각품들이 있으며

 

“팔천고혼충혼탑”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고 그 옆 설명문에는 “1592년 4. 28 충장공 신립장군이 8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배수진을 치고 왜적들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충성스러운 혼령들을 위로하고 기리기 위해 이비를 세웠노라”


 

대충 이런 내용인데 내가 알고 있는 내용과는 좀 거리가 있어 몇마디 하고 지나가고자 한다


 

신립장군은 22세때 무과에 급제하여 두루 요직을 섭렵하며 여진족 정벌등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으로 요즘으로 말하자면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군사전략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장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군사전략의 전문가인 삼도도순변사가 왜 백두대간 험준한 조령에다가 군사를 배치하지 않고 도망갈 수 없는 허허벌판인 탄금대에다가 배수진을 쳤겠는가 추측건데 아무 준비도 없는 상황하에서 왜란은 일어났고


 

파죽지세로 밀고들어오는 적군을 막을 인재와 군사 그리고 변변한 무기 하나도 없는 그 당시 스스로 자원해서 죽을 각오로 군사를 모집하여 조령으로 진을 치기 위해 내려가면서


 

급조한 오합지졸에 불과한 군사들이 겁을 먹고 매일 같이 진을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예측한 결과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열악한 군사들을 독려하여 드디어 조령에다가 진을 치고 전쟁을 치루기도 전에 그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역시나 매일 같이 군사들이 도망을 가는지라 이러다간 종래는 자신과 몇몇 수장들만이 남아 전쟁을 치룰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지라


 

이왕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로 자원까지 한 상태에서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더더욱 없으니 남은 병력을 독려하여 도망갈 수 없는 개활지인 달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탄금대에 진을 치고 옥쇄를 결심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팔천병사와 함께 장렬히 이 탄금대에서 산화하신 것이다         


 

이러한 그를 작금에 도망갈 수 없는 탄금대 늪지대에 진을 쳤으니 패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하며 그의 전략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수가 있을 것이다  

만고충신 신립장군 그래서 시호도 “충장공”이질 아니한가?

 

그 옆 또 하나의 충혼탑엔 “1955.11 광복이후 전몰병사 2838분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으로 현존하는 국내의 충혼탑 중에서 가장 오래된 탑이며 국내 유일의 우남 이승만대통령의 친필로 쓴 충혼탑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탄금대를 찾아 정문쪽으로 가다 오른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대흥사라는 절이 있다는 이정팻말이 있는 곳에서 산길을 따라 잠시 내려가니 대흥사라는 절이 나오고 그 밑으로 음식점이 영업을 하고 있다


 

대흥사 : 16:15


 

그래서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 탄금대가 어디 있느냐 물으니 황당한 대답만 들어온다 이 일대가 전부 탄금대라며 귀찮은 표정을 짓는다

감히 더 물어볼 용기가 안나 그대로 나와 끝없는 세맨 계단을 오르니 세맨으로 지은 사각정자가 나오는데 당호는 걸리지 않았으나 열두대 아님 탄금대라고 보아야 할 것 같고 몇몇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오르면 주변상황을 보아 남한강변을 바라보는 조망이 좋을 것 같다


 

기왕 정자를 지으려면 목조건물로 지을 일이지 세맨 구조물에 단청을 한 모습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우륵선생탄금비”도보며 세맨계단을 내려가면 “申立將軍殉國之址”라는 비석이 있고 그 앞으로 쇠난간을 친 조그만 바위벼랑이 아마도 열두대 아님 탄금대인 것 같다

즉 이곳이 신립장군이 순국한 땅이라는 비석 내용으로 보아 그 조그만 바위벼랑이 탄금대인 것이 틀림없으나 어디 하나 그 바위가 탄금대라고 알려주는 안내문은 없다


 

열두대는 신립장군이 전쟁을 치룰때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활을 너무 많이 쏘아 열두번을 화살을 식히기 위해 오르내렸다고 하여 열두대라고 하며

대가야가 망하고 신라땅으로 망명온 악성 우륵이 남한강을 벗삼아 망국의 한을 되새기며 가야금을 탓다고 하여 탄금대라고 부르는 그 바위인 것 같다

즉 열두대와 탄금대는 서로 다른 장소가 아니고 같은 장소가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본다

 

육당 최남선이 글을 짓고 일중 김충현 선생이 글을 쓰고

그 당시 군수인 김용은이 완성한 “彈琴臺記” 오석 큰비를 지나

 

참고로 우리말로 토를 단 탄금대기가 인터넷에 있어 퍼왔습니다

물론 다 읽어보면 좋겠지만 내용은 이런 역사적인 사실들을 들어가며 앞으로 이 충주땅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해야할 교훈을 담은 내용으로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이 탄금대기는 충주의 역사 지리 인문 자연환경 등을 노래하고 땅이 비옥하고 교통이 편한 요충지로 삼국시대부터 중히 여겼으며 악성 우륵과 명필 김생 등과 같이 문화예술을 꽃 피웠으며 임진왜란의 신립장군 병자호란의 임경업장군 등의 얼이 서린 충절의 고장으로 이에 우리 충주사람들은 과거를 바탕으로 인재가 모이고 문화의 원천이 될 축복받은 고장이 되기 위하여 이지역 주민들의 부단한 노력과 정진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내용으로 한 1953년에 세운 비이다    


 


 

탄금대기


 

위치 :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


 

충의 주됨이 진역의 중에 당하여 교악이 남에 환옹하고 한수와 달천이 동과서로서 내회하여 산명야옥천미석수하며 수운이 일방으로 영을 간하여 낙에 연결하고 일방으로 경성을 거쳐 해에 달하니 진실로 남북의 인후요 교통의 요충으로서 고로부터 국원 또는 중원을 칭해옴이 도이함 아니라 바야흐로 고구려와 신라가 패를 쟁하매 마현죽령을 필선으로 하여 혈전을 중첩하고 및 신라 의를 득하매 차지로서 소경을 삼아 귀척자제와 육부몽민을 사하여 이를 실하니 이래일천년에 한결같이 경과 도와 목과 영으로서 국중에 중시되고 권석섭토가 사규중에 일물아닐이 없다.


 

 대문산일록이 양수의 교회점에서 벽개척절하여 천인앙고의 벽이 일도분유의 창강을 포하고 주조원근의 풍물을 관령하는 자를 탄금대라 이르니 일즉 악성우륵이 일대독득의 묘조와 천고불전의 비음을 청풍유수에 탄주하여 현중의 우와 지하의 파로써 천을 격하며 신을 동하던 지라


 

그러나 이조오곡은 전진이 사막허가니와 후의 기대임하는 인으로 하여금 유구유신의 감개를 금치 못하게 하는 자이 별로 존함이 있다.


 


 

선조용사의 왜란에 국에 비 없고 해에 환이 닥쳐 구망의 간에 영이남이다 적의 유린에 맡겨지고 조정이 창황하여 숙장신립을 기하여 순변사로 삼아 보장한위의 책을 위비하였으니 유세의 하에 천참이 또한 용되지 못하고 적의 대중이 분로해 영을 넘어 일시에 살도하니 거의 천이요 인력이 저주할 바가 아니었다.


 

입이 본대 역전상승의 명장이요. 막좌에 김여물같은 이가 있으되 사 차에 지하여는 計를 도검의 상투에 구할수 없음을 알고 결연히 퇴로를 단하고 주부를 심파하고 일전필사의 배수진을 금포탄두에 포하니 의 와와전에 없고 지 옥쇄에 전함이라 뇌격전격 끝에 악권투조한 일군장졸이 혼연 순국성인의 일단으로 화하고 입은 영웅미사의 심과 천지불마의 한을 장강백파에 투고하니 어찌그리 장쾌 여 늠열함 정대광명하기 적일랑월과 같으뇨 천은 비록 정경 기승을 간하였으나 인은 넉넉히 저양의 고촉 계승코 여 있어 활적의 심담을 한율케 하였음이 모론이며 또는 돌기예봉을 차주하여 한도의 급을 소완한 공도 가몰치 못할 것이다.


 

 대저 칠년풍마대소백전에 의기영웅으로 천고에 광요할 자는 특히 금산 진주아 함께 금포를 거할 거이요. 삼자의 중에서도 초두수범의 장거로서 금포 추하여 최를 삼지 아니치 못할 것이어늘 세에 혹 부의를 문함은 다만 영웅의 진면목을 성패이외에 구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대상으로 부모를 방하여 빙촉할진대 일구일학 다(?)영의 승지요 일외일오가 무비 회심의 명구라 화국의 문장은 강수가 탁이하고 입신의 필법은 김생이 난언하며 김윤후의 적개는 산성이 첩첩하고 최홍사의 행검은 도안이 냉냉하며 담연녹무에 예성의 古宅이 의포하고 두붕청화에 양촌의 유탑이 은약하며 우의는 포대선동에 표불하고 범번은 경비사탑하며 조운의 구참은 포곡에 역력하고 도이의 공로는 극진이 황예하니 지사흥감의 경과 소인 영탄의 정이 일대를 환하고 서로 영발하여 거의 응접에 가치 못할 것이 있다.


 

하물며 서풍낙일에 단월을 요지하면서 삼척용천만권서황천생아하여를 낭연일음할 때에 의기 남아의 장회가 울불하고 강혈이 비등하여 획연한 장소로 천지를 열파치 말지 아니케 하는 호흥은 진실로 부운원수롱 도휴와 조비어약춘화추월의 심상한 승개에 중의상상 발영케 하는 곳에 무궁한 광예가 忠의 내일에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충의 사능희 자구자려하여 지령을 발양하고서 사적을 증상하기에 퇴타함이 없을 진대 충의 과긍이 昔日의 국원소경에 있을 것 아니라 도리어 당래세계에 대한 인물의 연수와 문화의 원천됨에 있을 것이요. 그러할진대 이 대에 내유하는 인의 충에 향한 탄미흠송이 더욱 가리히 못할 것이다.


 

월악이 아아하며 한수가 양양하며 만고청풍이 장취코 단치 아니하리니 충의 지어찌 강좌의 일오구로 말며 탄금의 대 어찌 한인의 일공극지됨에 그치랴 일편정민이 이를 타일에 험힐 것이다.


 

단군기원사천이백팔십칠년사월일 충청북도


 

충혼탑을 다시 지나 정문으로 나가기 바로전 오른쪽으로 있는 “주현미 탄금대노래비”가 서있다


 

그 내용은


 

탄금정 굽이돌아 흘러가는 한강수야!

신립장군 배수진이 여기인가요.

열두대 굽이치는 강물도 목메는데

그 님은 어디가고 물세만이 슬피우나!


 

송림이 우거져서 산새도 우는가요

가야금이 울었다고 탄금인가요

우륵이 풍류읊던 대문산 가는 허리

노을진 남한강에 님 부르던 탄금아가씨...


 

대가야가 망하자 가야금 한개들고 신라로 망명한

우륵의 망국의 한이 서린 탄금대...

나라를 위해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옥쇄한 신립장군의 한이 어린 탄금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정처없이 길을 떠나는

우국지사들의 “나그네설움” 다같은 설움일게다


 

너른 주차장으로 나가면 우측 조금 높은 곳에 즉 대문산 정상으로 추정이 되는 지점에 충주문화원 건물 1층에 대형 매점이 있으며 많은 차들이 들고 나고 있어 가히 충주의 제1공원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길 옆에 초라한 간이매점이 있고 그 옆으로 악성우륵선생추모비, 임란충신백기장군조웅기념비가 길목을 지키고 있으며 그 옆으로 “조국순례자연보호 원통산노선102km” 대형안내판과 탄금대공원 대형 안내판이 탄금대 공원을 설명해 주고 있다 


 

대문산 탄금대공원입구 : 16:40


 

그후 


 

택시를 불러타니 2000원 나오는 거리를 콜비가 1000원이랜다

에이 기분 좋은데 기분좋게 지불하고 차표를 사러가니 매진이란다 그래서 한시간 뒤에나 있는 차를 예매하고 터미널안 아침에 우동을 먹었던 집에 들러 간단히 허기를 때우며 

 

천년의 벽을 뛰어넘어 사이좋게 탄금대입구를 지키고 계시는 우륵선생님과 조웅장군님 그리고 신립장군과 동천선생님 작금의 우리나라를 보고 지금 그 그분들은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것일까?

 

백두계명지맥종주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