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잔디고개를 넘어 시원한 나무그늘속을 내려오니 머지않은 곳에서 목탁소리와 불경외우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신흥암에 도착 후미를 기다린다.

신흥암의 유래 아도화상이 동쪽에 우뚝 치솟은 계룡산 연봉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계룡산이 보기드문 영산이므로 그 수려한 모습에 감탄을 하고 있을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계룡산 안품에서 햇빛보다 더 밝은 찬란한 빛줄기가 뿜어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도화상은 빛이 뿜어 나오는 곳으로 달려갔는데 그 빛은 탑처럼 우뚝 솟은 바위위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가까히 다가가니 심안(心眼)이 열리면서 바위속이 훤하게 보이는데 뜻밖에도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안에 있는 것이었다. 아도화상은 그 바위 아래에 암자를 지었는데 갑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 이곳은 신흥암이고 바위는 천진보탑이라 불리운다.

천진보탑은 1966년에도 찬란한 빛을 뿜었다. 당시 신흥암에서 종담스님이 백일기도를 드리며 용맹정진하고 있을 때 였는데 밖이 소란스러워 나가보니 한밤중인데도 밖이 대낯처럼 환했고 천진보탑이 휘황한 광휘에 싸여  마치 빛을 뿜는 보석으로 만든 탑과 같았다고 한다. 갑사에서도 불이 난 줄 알고 스님들이 불을 끄러 왔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천진보탑은 반 시간이 넘게 빛을 뿜다가 한순간에 放光을 멈추었다고 한다. 아도화상은 신흥암을 세운뒤 갑사도 세웠다. 


갑사구곡은 수정봉(水晶峰)이다. 수정봉은 신흥암 대웅전 뒤로 우뚝 솟은 흰색의 바위봉으로 신흥암 천진보탑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신각 뒤로 돌아 올라가면...


九曲 수정봉(水晶峰)이다.


천진보탑 옆에 있는 600년 묵은 소나무가 삼년전 폭설로 가지가 부러저 나갔다.


천지보탑의 모습 이 탑의 꼭대기에서 빛을 밝힌다고 한다.


8곡 용문폭(龍門瀑)은 찾기가 쉽다. 갑사에서 진달래고개를 올라와 본 사람은 올라오는 길옆에 폭포와 함께 커다랗게 암각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이  폭포는 동학사 뒤의 은선폭포와 함께 계룡산의 이대 폭포다. 그러나 수량이 적어 우기에나 폭포구실을 한다. 오늘은 제법 물이 많아 폭포만 보고 있어도 시원하다. 모두들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워 한다. 폭포 때문이겠지...


七曲 계명암(鷄鳴巖) 갑사구곡에서도 용산구곡과 같이 느낌표님의 노고를 치하해 드려야 한다. 바로 자기 암자 뒷산에 직선거리 100m내에 있는 칠곡을 모르고 "마음의 칠곡"이란 괴변으로 얼버 무렸던 **님들을 생각하면...만일 삼년전 느낌표님의 탐구정신이 없었더라면 상당히 오랜기간 갑사칠곡은 묻힐번 했다. 그 위치는 나물꾼도 갈일이 없을테니 말이다.


갑사가 영규대사의 출가한 곳이란 것을 아는이 얼마나 될까? 영규대사는 금산의 인물로 알고 있었는데...


 



칠곡 계명암(鷄鳴巖)  중략: 20m쯤거리에서 왼편으로 용트림해서 서 있는 적송과 바위가 있어 올라가본다. 조망이 매우 좋다. 갑사입구가 이곳에서 전부 보이다니, 나무에 가리기는 했어도 좋은 조망바위다. 지치기도 하고 잠시다리쉼을 한다. 혹시나 싶어 바위에서 내려와 절벽밑으로 내려가니 아니 이곳이 갑사7곡 계명암이 아닌가. 순간 아~~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지막 행보에서 노력하는 느낌표님에게 부처님께서 은혜를 내리신다.


六曲  명월담(明月潭)   명월담은 관찰력이 예민한 사람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연천봉과 금잔디고개 갈림길 옆의 약사여래불상이 있는 계곡 좌측 끝에 있으나 글씨가 커서 멀리서도 잘 보이고, 평상시 용문폭보다 수량이 많아 다리쉼을 많이 하는 곳이다.


모처럼 발을 담근 두분, 시원하시겠습니다.


약사여래불상



 



 



 


 

간성장(艮成莊) 갑사구곡은 벽수 윤덕영<(純貞孝皇后 尹妃)의 큰아버지라 함>이 갑사계곡의 절경을 이룬곳에 간성장을 짓고 수정봉에서 내려오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절승을 이룬곳마다 큰 바위돌에 글을 새겨 명명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지금도 그 刻字는 너무도 선명할정도로 깊게 파여있고 자획도 명필이다.

 

계곡 바위에 정밀하게 원을 암각하고 원주위에 안으로 잔 글씨들로 표시하고 머리에 챙까지 설치한 것으로 봐서는 예사로운 것이 아닌거 같은데...

 

 



 功牛塔



 


 



 五曲 군자대(君子臺) 공우탑을 보고 다리 아래로 내려서 몇 걸음 옮기면 오곡 군자대에 닿는다. 갑사구곡 중최고의 절승지로 꼽힌다. 군자대라는 각자가 다른곳의 글씨체와는 다른데, 효종 때의 학자 송시열이 어렸을 적에 이곳에 들어와 공부하다가 계곡이 너무 좋아 임금이 머물만하다 하여 군자대로 이름하고 손수 바위에 새겼다는 설이 있다. 오곡과 군자대는 다른 바위에 새겨져 있다. 


 

 



 四曲 달문택(達門澤) 은 연못이며 뒤쪽으로 갑사가 있다. 갑사는 옛 문헌에 "갑사(甲寺) 혹은 계룡갑사로 표기되는데. 갑사라는 말뜻 자체가 "첫째가는 절"이고 보면 역시 계룡산에서는 가장 크게 지속적으로 번창하였던 절이 갑사였다고 새각된다.

백제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무령왕 3년(503년) 천불전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의 철당간과 고려시대의 부도, 조선시대의 동종 등으로 봐서, 오랜 역사와 번창한 사세를 자랑하던 갑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 영규대사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전부 소실되었다. 이후 1604년 대웅전과 진해당을 중건하고 1654년과 1899년 크게 중수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의 절 집들은 조선시대 중, 후반기에 세워진 것들이다. 


 



 三曲 백룡강(白龍岡)대나무 숲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철탑상회에 물어보면 자세히 알려줍니다. 이 나무에서 언덕쪽의 대나무 숲속에 있습니다.



 대나무 숲속 바위에서 글 청소를 하고 있는 느낌표님...



 삼곡 백룡강(白龍岡)



 二曲 이일천(二一川) 두 개울물이 합쳐지는 곳에 있습니다. 마지막 일곡으로 내려갑니다.


 



 一曲 용유소(龍遊沼) 는 용추교 밑에 있습니다. 과연 용들이 여유롭게 노닐 수 있는 커다란 둠벙도 있고 주변  경관이 빼어난 경치입니다.



 삼각동문



 一曲 용유소(龍遊沼)


 

 

 

오늘의 용산구곡, 갑사구곡의 답사를 끝까지 이끌어 주신 느낌표님께 감사드리고 동참 하신 회원님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 까지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