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산행기 (051125)

                  

   어제는 결혼 15주년 기념일이었는데 남편이 느닷없이 전화를 하여 오늘 하루 휴가를 내라고 하였다. 밀린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한 번도 결혼기념일을 근사하게 지낸 적이 없어서 오후 5시가 넘어 부랴부랴 휴가원을 냈다. 남편은 아마 어디 먼 곳으로 산행계획을 잡았던 모양이지만, 오늘 오전에 급히 처리해야 할 집안 일이 있어서 겨우 12시가 되어 가까운 계룡산으로 출발한다.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20년 가까이 되는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대전에서 보내고 있는 내게 계룡산은 거리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너무나 가까운 산이다. 뚜렷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고등학교 때 한 번 쯤은 동학사로 소풍을 가기도 하였을 것이고, 처음 입사하였을 때는 동료와 함께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관음봉으로, 남매탑으로, 동학사로, 갑사로, 정말 나름대로 열심히 다니던 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남편과 등산을 하기 시작한 후로는 이산, 저산 누비고 다니면서도 계룡산에는 자주 가지 못하였다. 겨우 이렇게 산행 시간이 애매한 경우에나 한 번 가보는 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남편은 평소에 이상하게도 계룡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튼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계룡산을 찾게 되어 반갑기 그지없다.


   거리는 정말 가까워서 집에서 출발한지 불과 30여분 만에 벌써 계룡산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곳에 도착한다. 계룡산은 대전에서 공주로 넘어가는 국도 중간에 박정자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들어간다. 이곳에서 동학사 주차장까지의 길은 양쪽에 아름드리 벚나무가 줄지어 있어 봄이면 그야말로 벚꽃의 찬란함으로 뒤덮이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찬바람 부는 늦가을, 벚꽃은 고사하고 잎들마저 다 떨어져 쓸쓸함마저 감돈다. 그러나 그 쓸쓸함 마저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동학사 주차장에 접어든다.


   계룡산은 1968. 12. 31.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공주시와 논산시, 대전광역시에 걸쳐 있는 충남 제일의 명산이다. 예로부터 오악(五嶽) 중의 하나인 서악(西嶽)으로 꼽혀 왔으며 주봉인 천황봉(天皇峰, 739m)에서 연천봉(連天峰, 739m), 삼불봉(三佛峰, 775m) 등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의 볏을 머리에 쓴 용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계룡(鷄龍)'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한다.

  

   풍수지리학 상으로도 명산 중의 명산으로 꼽혀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는 한 때 이 일대에 신도(新都)를 구상하기도 했다고 하며, 무속신앙과 관계 깊은 신비스러운 산으로 무속인들에게는 요람과 같은 곳이라 한다. 즉, 계룡산의 주봉 이름이 천황(天皇)인 것은 천상의 최고신인 천황대제(天皇大帝)가 강림하는 곳이라 해서 얻은 명칭일 만큼 무속인들에게는 계룡산이 중요한 산이란다.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삼불봉, 연천봉, 관음봉 등 열댓 개의 봉우리, 기암괴석과 서쪽에 용문폭포, 동쪽에 은선폭포, 남쪽에 암용추, 숫용추 폭포를 어우르고 있고, 주변에 백제 유적과 고찰,명승이 많다. 


   봄에는 동학사 진입로 변의 벚꽃터널, 여름에는 동학사 계곡의 신록, 가을에는 갑사와 용문폭포 주위의 단풍, 겨울에는 삼불봉과 자연성능의 설경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예로부터 한국 4대 명산 중 하나로 일컬어져 왔다.


   매표소 입구에 늘어앉은 할머니들 중 제일 예쁜 할머니한테 군밤을 한 봉지 사들고, 매표소를 지나 동학사로 향한다. 오늘의 코스는 주차장→(1.8km)→동학사→(1.6km)→은선폭포→(1.0km)→관음봉→(1.6km)→삼불봉→(0.5km)→남매탑→(1.7km)→동학사→(1.8km)→주차장에 이르는 이른바 자연성릉을 지나는 코스로 지금은 주봉인 천황봉에 입산금지가 되어 있어 계룡산의 대표적인 코스로 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따라 평일인데도 동학사 쪽에서 많은 어르신들이 검은 망건을 쓰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내려오고 계신다. 처음에는 ‘야, 국립공원이라 역시 평일에도 사람이 많구나’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였는데 그 차림과 숫자와 연세가 심상치가 않아 다소 당황하고 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 한분이 젊은 사람도 알아야 한다면서 읽어보라며 팸플릿을 한 장 건네준다. 무엇일까 펼쳐보니 숙모회(肅慕會) 제향(祭享) 행사에 관한 내용이다.


   즉, 계룡산에는 세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긴 단종과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참형을 당한 사육신, 그리고 생육신 등의 충혼을 모신 숙모전(肅慕殿)이 있는데 오늘이 바로 단종이 승하한 날로 숙모전에서 이들의 혼을 불러 제사를 지내는 날이라는 것이었다.


   뜬금없이 계룡산에 단종, 그리고 성삼문, 박팽년 등의 사육신과 김시습 등의 생육신이라니. 나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이제껏 그처럼 계룡산을 다녔으면서도 계룡산이 이러한 충신들의 영혼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니.

  

   게다가 팸플릿에는 숙모전 외에 동계사(東雞祠)와 삼은각(三隱閣)도 있는데 동계사에는 신라 19대 눌지왕 때 일본에 인질로 잡혀간 왕의 아우 미사흔을 구출하고 그곳에서 순절한 박제상의 충혼을 모시고 있고, 삼은각에는 조려말 충신인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 세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는 내용도 나와 있었다.


   그렇다면 신라부터 고려를 지나 조선까지 충절과 의리를 지킨 조상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곳이 여기 계룡산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기가 충만한 이곳 계룡산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이들의 영혼을 부르기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상념에 젖어 가다 보니 동학사 바로 아래쪽에 정말 숙모전과 삼은각, 동계사가 있다. 그 동안 수없이 지나다녔지만 이곳에 이런 곳이 숨어 있었다니, 그저 동학사에 포함된 절 건물 중 하나라고 무심히 지나쳐 다녔던 것이다. 이런 경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난다. 잠시 들어가 눈을 감고 추모의 시간을 가진다. 마음이 숙연해지면서 어쩌면 우리가 오늘 계룡산을 찾은 것이 이들의 의로운 마음을 배우라고 단종이 불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삼은각과 동계사)

  

   숙모전을 뒤로하고 계룡사를 지나 은선폭포 쪽으로 길을 재촉한다. 은선폭포까지는 마지막 일부를 제외하고는 완만한 돌길이다. 한참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하모니카 소리가 다정하게 들려온다. 앞을 보니 하산을 하는 어떤 아가씨가 하모니카를 곱게 불고 있다. 산에서 듣는 하모니카 선율은 은은하고 정겨워서 산에 사는 동물들도 좋아할 것 같다.


   너무나 아름다워 신선들이 노닌다는 은선폭포는 물이 말라 앙상하다. 은선폭포는 내가 올 때 마다 항상 오늘처럼 물이 없거나 있더라도 너무 적어 폭포라는 말을 실감하기도 어렵고 그 이름이 무색하다. 다만 그 길이를 볼 때 물이 많아지면 장관이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런데 은선폭포를 조망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은선폭포 앞쪽으로 멀리 보이는 쌀개봉이 너무나 환상적이다. 방아를 거는 나무를 쌀개라고 한다는데 그 모습이 정말 쌀개를 닮았을 뿐만 아니라 약간 흐릿하면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한 모습이 오늘 불러들인 단종 때의 충신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느껴진다.

  

 (은선폭포에서 바라본 쌀개봉의 환상적인 모습)

 

   은선폭포에서 관음봉으로 오르는 길은 아주 가파른 자갈길이다. 이곳이 오늘 산행의 최고 어려운 부분이다. 옛날에는 너덜길이라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자갈들이 주르르 흘러내리곤 했는데 오늘 보니 제법 정비를 잘 해 돌로 계단을 쌓아 두어 자갈이 흘러 내리지는 않는다. 너무 힘들어 중간에 이제 그만두고 하산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처럼 피어오를 정도로 힘들긴 하지만 가끔씩 뒤를 돌아보면서 내가 올라 온 길을 확인하면 뿌듯한 마음이 들어 힘든 생각이 조금은 가신다.


   오르다 보니 정말 끝이다. 해발 816m 관음봉에 섰다. 바람이 몹시 불어 내 몸이 날아갈 것만 같다. 불어오는 바람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몸을 맡기고 사방을 굽어 내려다보니 세상을 얻은 기분이다. 그리고 온 몸이 적당히 이완되면서 뭐랄까, 내 자신이 대단히 관대해지는 느낌이 든다. 산중에서도 인체에 가장 좋은 산은 높이가 800m~850m 정도의 산이라는 것이 실험에 의하여 밝혀졌다고 한다. 그 정도 높이에서 인체는 적당하게 이완되어 관대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협상이나 논쟁을 할 경우 그 정도 높이에서 만나서 하면 서로 상대방에 대해 관대한 마음을 갖게 되어 협상도 잘 이루어지고 논쟁에서도 쉽게 합의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속을 태우는 연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정도 높이를 가진 계룡산에 올라가 구애를 하면 성공하지 않을까?


   바람이 차게 느껴져 서둘러 자연성릉을 따라 삼불봉으로 향한다. 자연성릉은 그 모습이 마치 자연적으로 조성된 성곽처럼 보인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다. 가다가 돌아보면 이름 그대로 자연성릉이다. 약간의 계단과 암릉, 그리고 평탄한 능선. 이 길이 계룡산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계룡산에는 천황봉에서 관음봉, 삼불봉을 경계로 공주 쪽으로는 양기가, 대전 쪽으로는 음기가 흐른다고 한다. 그래서 음기가 흐르는 쪽에 세워진 절에는 비구니들만, 양기가 흐르는 쪽에 세워진 절에는 비구들만 기거할 수 있단다. 그래서 실제로 갑사에는 비구들만, 동학사에는 비구니들만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왼편으로 양기를, 오른편으로는 음기를 끼고 걷고 있는 셈이다.


   삼불봉에 올라 해가 떨어지는 천황봉, 쌀개봉,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을 나란히 바라보니 마음이 더욱 너그러워지는 느낌이다. 새삼 계룡산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황봉, 쌀개봉,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의 장관)

 

   삼불봉에서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드디어 남매탑이다. 남매탑은 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자주 오는 곳이다. 탑 두개가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정말 다정한 오누이 같다. 게다가 옆에 있는 상원사에 약수가 있어 산행에 지친 목마른 등산객들이 목을 축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매탑에는 아련한 전설이 있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패망하자 왕족 한 사람이 계룡산으로 들어와 현재 남매탑이 있는 터에서 스님이 되어 수도생활을 하였는데 어느 날 호랑이에게 물려온 아리따운 여인으로부터 청혼을 받았으나 불제자로서 결혼을 하지 못하고 오누이의 인연을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 지내다 함께 열반에 들었고, 후세 사람들이 이를 기려서 남매탑을 쌓았다는 것이다.


   나는 남매탑 앞에 서서 그런 전설을 생각할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자기가 무슨 큰 도를 얻을 것도 아니면서 그깟 여자의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하다니. 속세의 때가 잔뜩 묻었기 때문일까? 나는 어쩐지 부처님도 그 스님이 옆에 있는 여자를 여자로 아기자기하게 아끼며 사는 것을 더 좋아하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아련한 전설을 간직한 남매탑)

 

   남매탑에서 동학사까지 내려오는 길은 한동안은 가파르고, 한동안은 완만한 돌길이다. 오늘 산에서 만난 누군가가 “이 산은 돌로 시작해서 돌로 끝나는구만” 하였지만, 진짜 계룡산은 그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돌이 많다. 그 돌길을 지나 동학사 갈림길을 거쳐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오늘의 산행을 끝났다. 올라가면서 만난 충신들의 넋으로 인해 잠시 잊었지만 주차장에서 동학사까지 가는 이 길은 한 쪽 옆으로 계곡이 흐르고 좌우로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있어 산책코스로는 최고의 길이다. 특히 여름철, 날씨에, 세상에 지쳤을 때 이 곳을 찾으면 그 물소리와 나무그늘에 묻혀 이것저것 골치 아픈 일을 잠시는 잊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주 우연히 계룡산에서 찾은 옛 충신들의 영혼, 이들과 함께 한 계룡산 관음봉, 자연성릉, 삼불봉. 오늘은 여러모로 많은 감회에 젖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