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전의 기역을 더듬으며 다시 찾아 안겨본 계룡산

2005. 08.13(토, 구름많음)

야영장(07:30)→바가지바위(08:30)→황적봉(09:00)→벼랑바위(10:00)→ 쌀개봉(11:30)→관음봉(12:20~00)→자연성능→삼불봉(14:30~40)→남매탑(14:50~00)→큰배제(15:20)→신선봉(16:00)→갓바위(17:00)→장군봉(17:50)→병사골매표소(18:20)



1년간의 유랑생활에서 다시 목줄에 매어 대전 포도청에 내려온지도 어느덧 6개월이 지나고 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일은 곧바로 익숙해 졌지만 이런 저런 가사일로 쉬는 날마다 보금자리 찾아가느라 바쁘다.

대전 주변의 산신령님 뵈올 수 있겠다며 좋아했던 때가 이른 봄이었는데....
봄은 언제 지나가버렸는지 모르겠고 더운 여름은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어 어느덧 입추도 지나갔다.
그동안 나를 억매었던 일도 어느정도 정리되었고 이곳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찾아 다녀야 겠다.

가까이 계신 국립공원 신령님부터 인사드릴 생각으로 전부터 풍악님과 여러 산님들이 전해주시는 계룡산 이야기에 귀기울여 왔던지라 다시 열어보며 가슴벅찬 산행계획을 세워보니 벌써부터 마음은 그곳에 가있다.

사과 복숭아 김밥을 챙겨넣고 첫차를 타기위해 집을 나서니 부족함속에서도 기분만은 한없이 좋다.(신탄진역앞에서 수통골행 133번 05:50) 유성(장대파출소)에서 갈아타고 국립현충원을 지나 동학사 학봉교 삼거리에서 내려 황적봉 들머리를 찾아 간다.

계곡에서 패트병 2개에 물을 체우고 그런대로 확실해 보이는 길을 찾아 오르는데 급경사 너덜지대부턴 더 이상 흔적을 찾기 힘들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지만 위로 가면 능선과 만나리라는 생각으로 땀 흘리다보니 밀목재에서 황적봉 가는 좁은 능선길과 만난다.

이제부턴 풍악님 뒤만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부드러운 능선길 따라 오르며 건너편으로 보이는 하산지점인 장군봉과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눈인사를 건넨다.


이쯤이 황적봉 정상같은데 비석 없는 묘 1기가 있다.
이내 내리막길로 내려가다 다시 올라보니 또 묘인데 정삼품 벼슬하신 지씨묘라는 비석이 서있다.
대단한 열정이다 이렇게 높은 곳에 게다가 대부분이 돌과 바위지대인데....

돌아가신 조상을 명당에 잘 모시면 후손이 복을 받는다 물론 어르신을 잘 모셔야 함은 당연한데 어떤이는 살아계실때는 무관심하다가 돌아가신 후에는 꽤나 챙긴다. 명당에 모셔야 되고 제사를 잘 지내야 한다며...
살아 생전에 마음 편히 해드리지 않은 자가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게다가 돌아가신 분에게 복을 달라며, 후손들의 질병을 대신 지고 가달라며 어쩌구니없는 부탁까지도 하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우리네 모습이다.

내리막이 하산길처럼 한없이 이어지는데 동학사가 저 아래 선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넓따란 바위에 앉아 남쪽(논산)을 바라보니 산자락끝에 저수지와 짓푸른 농촌 들녁이 보이는데 이쪽과의 고도차가 크지 않은 것 같다.



넓은 바위지대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데 전면이 온통 절벽지대로 바뀐다. 이곳이 벼랑바위인가 보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내려갈 방안을 찾아보는데 다행이도 반가운 로프가 보인다. 2단의 로프를 타고 내려와 보니 동학사가 계곡 건너편으로 더욱 가깝다.








계룡산을 다시 오르는 기분이다. 이제부턴 쌀개봉까지 급경사 암릉길이다.
봉우리마다 올라보는데 흰 물줄기를 힘차게 뻗어 내리는 은선폭포도 저만치 모습을 들어낸다.



바로 건너편으론 수직 암벽지대인 자연성릉과 동학사의 정기가 솟구쳐 있는 삼불봉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지나온 황적봉은 저아래로 벌써 희미한 모습이다.





아침부터 짙은 안개로 둘러쌓인 천왕봉은 살짝 어렴풋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이내 수줍은듯이 다시 안개속으로....
쌀개봉의 우람한 바위봉이 가까워지는데 처음 만나는 짓푸른 산죽이 어서 오라며 반갑게 맞아 준다. 그러고 보니 계룡산 산행길 내내 산죽은 이곳에서만 본 것 같다.

저아래 논산들녁의 젓줄기같은 양화저수지가 먹장구름 아래로 햇쌀을 반사하며 살짝 보였다가 다시 가리운다.



비온뒤라 암릉면이 미끄럽고 위험하지만 미로를 찾아 정상마다 올라가 보는데 좌측으로 연천봉과 문필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관음봉은 몇 개의 암봉만 넘어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숲길이 끝나면서 문필봉과 관음봉 은선폭포 갈림길 안부가 나온다.
정오가 지난지라 관음봉 정자 주변은 많은 분들이 모여 식사도 하며 즐거워한다.
그 예전 직장 산악회따라 갑사에서 동학사로 넘어갈 때 기념사진 촬영한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때의 그 친구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모두가 잠시잠간씩 인연을 맺고 살다가 세월따라 저마다의 길로 흩어질 뿐이지.. 그땐 나도 40대 초반이었지 헌데 내가 반백이 넘어섰다고?

예전의 그 자리에 좀더 머물고 싶지만 역시 오늘도 기념사진 찍느라 한가할 틈이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자연성릉 내리막길 철계단을 내려 가는데 왼쪽편 그늘이 식사하기에 적당하다. 이쯤에서 나도 발벗고 주저앉아 편한 자세로....

철계단을 완전히 내려서니 완만한 암릉 구간이 시작되는데 은선폭포 방향은 수직 절벽이 마치 성벽처럼 계속된다.




절벽 언저리에서 온갖 풍상에 적응하며 오늘날까지도 짙푸른 모습으로 이곳을 지켜온 소나무가 매우 인상적이다.

삼불봉 가는 길 중간지점에 무명봉에 올라 보니 계룡산 정상의 쌀개봉과 문필봉 연천봉도 한눈에 들어오고 그 아래로 매우 넓은 양화저수지도 보인다.






삼불봉까지 급경사길이 계속되는데 등산화에 같혀 수고한 발이 소나무 그늘 아래 평평한 바위를 보더니만 시간도 적당하니 잠시 쉬었다 가잔다. 그래 이제까지 예정대로 오느라고 수고 많았겠지.. 곧바로 발벗고 한평 남짓한 바위에 누워 오이도 먹으며 10분간 휴식한다.

갑사쪽으로 뻗어내린 암릉과 금잔디 고개가 있을 법한 또 다른 능선이 상신리쪽으로 부드럽게 뻗어 내린다.


몇 개의 철계단을 이어가며 올라 보니 드디어 그 유명한 삼불봉이다. 사방으로 정말 조망이 우수하다. 오늘의 종착지인 장군봉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암릉 저멀리 끝자락에 우뚝 솟아 있다. 여러 방향으로 기념사진 남기고 곧바로 철계단을 내려 금잔디 갈림길 지나 남매탑을 찾아간다.






우측으로 10여분 내려가니 큰 바위밑에 반가운 샘터가 보인다. 한바가지 마셔보니 역시 시원하다.
아침에 떠온 한병의 물로 땀을 씻고 새로 한병 채우는데 신기할 정도로 물이 줄어들지 않는다. 윗부분이 온통 바위덩어리 인데 어디로부터 이런 시원한 물이 계속 나오는지...

곧바로 두개의 돌탑이 반겨주는데 전설처럼 신랑 신부같이 서로가 비슷한 모양인데 높이가 큰 쪽이 신랑인 것 같다. 우측 아래엔 암자도 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 좋겠는데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 같다. 기념사진만 찍고 서둘러 장군봉 능선의 제1봉인 신선봉을 찾아 간다.



상신리와 동학사 방향의 천정계곡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나 다시 오름길로 이리저리 돌아가니 신선봉이다. 금잔디 능선에 둘러쌓인 상신리 마을과 한가로운 농촌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학사 방향으로 또 다른 짓푸른 계곡이 뻗어 내린다.







능선상의 여러개의 암봉을 로프와 철난간에 의지하며 한참동안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드디어 장군봉이다. 헌데 이곳에도 여지없이 묘 1기가 있다.


유성에서 공주로 가는 국도 건너편엔 국립현충원을 품고 있는 갑하산이, 유성방향으론 관암산의 도덕봉과 함께 계룡산을 호위하듯 웅장한 모습이다.



병사골 매표소가 가까워지면서 시원한 계곡물소리가 반갑다.
이제까지 나홀로 왔으니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이 발벗고 들어가 세수하며 땀으로 찌든 셔츠도 빨고 하는데 나도 몰래 깊은 물속으로 빠져 든다. 주변이 온통 침묵만이 가득한데 어쩌랴 시원한 물속에 온몸을 담구어 본다.주변에 나의 정황을 알리려는 듯이 시원하다며 정적을 깨보기도 한다.

오늘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고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기분이 새롭다.



13년전의 계룡산 모습은 오늘도 갑사와 동학사를 품고 변함없이 그대로다.
하지만 나에겐 이별의 슬픔도 있었고 억울함에 밤잠 설치는 때도 있었고 정처없는 마음 고생중에 거리를 헤메이다 보니 어느덧 5학년 3반 학생이 되어 버렸다. 내가 벌써 그렇다니 절대 믿을 수 없다. 나의 마음은 아직도 여전하다며 소리높여 외쳐보지만....

언제 이 길을 다시 걷게 될 날이 또 올지 모르지만 그땐 또 어떤 모습으로 이 길을 걸을 수 있을런지....

저의 조그만 초막집( http://cafe.daum.net/sorozon )에 오셔서 우리님의 산행추억도 함께 들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