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정확히 '05.11.12(토)에 홀로 올랐답니다

** 1년만인 다음 달에 다시 오를 예정이라 작년에

** 끄적여 놨던 걸 읽어보다 이렇게 올려봅니다..

** 많이 부족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계룡산(鷄龍山)’..
닭(鷄)과 용(龍)이라는 두 마리의 동물만으로 이름 지어진 특이한 산..
하늘을 열고(黎明), 솟아오르는(昇天) 의미를 갖는 동물이름으로 지어진 산..
 
주봉인 ‘천황봉’에서 ‘자연성릉’까지의 산세가 마치 닭의 벼슬을 쓴 모양이며,
‘삼불봉’에서 ‘장군봉’에 이르는 능선이 마치 꿈틀거리는 용의 몸통과 같다는 산..
 
전국의 16개 산악형 국립공원 가운데 그 면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맨 꼴찌는
‘월출산국립공원’)로 작지만 풍수지리설에서 산과 물이 태극을 이루는 중심에
있다는 산태극, 수태극의 대길지라는 산..
 
또한 ‘백두산,지리산,묘향산,금강산’의 중앙에 위치한 길지이며 풍수지리상으로도
대단한 명산으로 알려져 왔기에 ‘설악산’이나 ‘한라산’보다도 먼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않았나 싶은 산..
 
산의 높이가 845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명산(名山) 또는 영산(靈山)으로 일찌
감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높이에 비해 엄청나게 너른 자락을 거느리고
있으며 맑은 날 주봉인 ‘천황봉’ 정상에 서면 사방 수백 리가 조망된다는 산..
 
지금은 통칭 ‘계룡산’이라 불리고 있지만 계곡을 흘러가는 물이 쪽빛과도 같아서
‘계람산(溪藍山)’이라고도 했으며 산세가 불붙는 것 같아서 ‘화채산(火彩山)’이라
불리기도 했다는 산..
 
백두대간(백두산~금강산~설악산~태백산~소백산~속리산~덕유산~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맥이 거꾸로 3백리를 거슬러 올라 ‘계룡산’이 되어 산줄기의 할아버지
가 되는 ‘지리산’을 되돌아 우러러본다는 회룡고조(回龍顧祖) 형국의 산이며,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알을 품은 금 닭의 형국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 용이 하늘로 오르는 형국
비룡봉상형(飛龍鳳翔形).. 용이 날고 봉이 나는 형국
유룡농주형(遊龍弄珠形).. 용이 구슬을 희롱하는 형국이라고도 불리는 산..
 
게다가 그도 모자라,
제1경 : ‘천황봉 일출(日出)’
제2경 : ‘삼불봉 설화(雪花)’
제3경 : ‘연천봉 낙조(落照)’
제4경 : ‘관음봉 한운(閒雲)’
제5경 : ‘동학계곡 신록(新綠)’
제6경 : ‘갑사계곡 단풍(丹楓)’
제7경 : ‘은선폭포 운무(雲霧)’
제8경 : ‘남매(오뉘)탑 명월(明月)’이란 계룡팔경(鷄龍八景)을 자랑하는 산..
..
 
07:16..
‘무궁화 #1431 열차’의 영등포역 발차시간이건만 이제는 운임이 가장 싼 열차로
전락(?)한지라 3분 정도 연착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어쨌건 등산복차림으로 ‘KTX’나 ‘새마을호’에 오른다는 게 뭔가 좀 어색하다는
생각에 이제는 사라진 ‘통일호’나 ‘비둘기호’를 회상하며 ‘무궁화호’에 탑승하건만
예전의 운치는 전혀 느낄 수 없음에 격세지감은 물론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74년 3월..
충청도의 한 촌구석에서만 눌러 지내다 대전이란 낯선 곳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해 처음으로 객지생활을 시작한 때이다
 
벌써 30년이 넘었구나하는 생각을 해보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란 게 뭔가라는 걸
이제야 어렴풋 알 수 있을 것 같다
 
헌데 어쩌면 그리도 팔팔하던 때 지척에 있던 계룡산 꼭대기에 한번도 올라보질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막급하기만 하다
 
지리산 다음으로 경주, 한려해상과 같은 날(‘68.12.31)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
이니 그 풍광이야 오죽할까 싶은 그런 훌륭한 곳을 바로 지척에 두고도 그저 먼
산 바라보듯 했으니 말이다
 
만약에 그때 산이란 걸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내 인생이 많이도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더구나 그 30여년 중 25년 가까이 등산이라는 말만 나오면 볼 것도 없이 손사래
를 쳐대며 살아왔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말이다
 
학창시절이나 직장생활에서 동호회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색안경을
끼고 보려했던 그 어리석음을 어떻게 탓해야 좋을는지 그저 갑갑할 뿐이다
 
하기야 서울사람들이 남산에 오르는 거 봤느냐는 말로 자위를 해보지만 그래도
이건 해도 너무했다싶은 생각에 얼토당토않게 뭔가를 잃어버린 기분이다
 
어쨌건 많이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서울서부터 열차를 타고 내려와
‘계룡산’을 찾게 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나마 이것도 다행이
라면 다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74년 당시 하숙비 12,000원..
어쩐 일인지 그거부터 생각난다
하긴 먹는 거와 자는 거에 관한 문제니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닌가싶다
 
그리고 순전히 친구들과 어울리려 부모님께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거짓말
을 해가며 하숙집을 옮기던 게 생각나기도 하고..
(하숙집을 옮기면 옮길수록 성적은 자꾸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아내에게 만약에 애들이 나중에 타지에서 하숙을 하게된
다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하숙집 옮기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과 용돈은
아주 박하게 줄 거라는 말을 했던 생각도 난다
 
그리고 통기타 배운다고 껄렁껄렁거렸던 거..
여학생들과 어울려보려는 속셈에 교회에도 기웃거렸던 거..
의리니 뭐니 해가며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싸가지 없이 어른 흉내 내던 거..
 
너나없이 ‘당산대형’, ‘맹룡과강’, ‘용쟁호투’로 이어지는 ‘이소룡’ 출연영화에 완전
히 맛이 가서 ‘이소룡’ 흉내낸답시고 쌍절곤 사다놓고 괴성까지 질러대며 달밤에
체조(?)하던 거..
 
참으로 여러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고 옮겨 쓰기가 쑥스러울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같이 어울렸던 친구들 중에 연락이 되지 않는 녀석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많이도 궁금하기만 하다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상상도 해보며 말도 되지 않는
엉뚱한 잡념에 빠져든다
..
 
09:10, ‘서대전역’..
예정시간보다 7분 지연됐지만 그것보다는 어쩌면 조금은 우중충했다는 예전의
이미지와는 달리 너무도 깨끗하게 확 달라진 ‘서대전驛舍’가 나를 놀라게 한다
 
09:30..
볼일도 보고 ‘삼성아파트’를 가로질러 ‘미성스포츠’ 맞은편 버스정거장에 당도해
버스를 기다리노라니 자꾸만 그 옛날 생각에 웃음이 묻어나온다
 
09:35..
102번 ‘동학사’행 버스가 멈춰섬에 올라타 버스요금 1,300원을 내고는 비어있는
자릴 찾아가려니 토요일이라 그런지 버스 안에는 온통 등산객들뿐이다
 
어느새 버스가 ‘유성’을 지나 ‘공주(동학사)’방면으로 접어든다
‘74년 당시만 해도 ‘유성’은 ‘대전’에 속하지도 않았고 한참이나 먼 곳이었는데
이제 강산이 3번이나 변해서인지 너무도 많이 달라져있음을 새삼 실감해본다
..
 
‘장군봉~신선봉~남매탑~삼불봉~자연성릉~관음봉~문필봉~연천봉’..
‘계룡산국립공원’을 완전히 가로지르는 종주코스다
 
남동쪽 ‘장군봉’에서 시작하여 중앙의 ‘삼불봉’과 ‘관음봉’을 거쳐 북서쪽에 위치
한 ‘연천봉’까지 장쾌하게 이어진 능선을 타는 거다
 
물론 ‘계룡산’의 주봉은 ‘천황봉’이지만 ‘쌀개봉’에서부터 통제되는 군사구역이라
니 일찌감치 마음을 접는 게 편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오늘은 일행도 하나 없는 나 홀로 산행이니 풍광감상은 물론 옛 추억도
되새겨보면서 고즈넉한 기분으로 다녀오리라 마음먹는다
 
산행시간 6시간30분..
지난 2005.04.24(일)에 우리 ‘**산악회’에서 잡았던 소요시간이다
 
그때 계룡산행을 많이도 고대하고 고대했건만 그 바로 이틀 전에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네다섯 달 동안 산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이제 겨우 다시 시작하고 있으
니 아직도 초보나 다름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오늘은 홀로 산행이니 아무리 느긋하게 가더라도 상관없음에 7~8시간
으로 넉넉하게 잡고는 편한 마음으로 서서히 채비를 해본다
 
점심 역시 혼자서 철퍼덕 하염없이 주저앉아 먹을 수 없는 노릇이니 그저 중간
중간 허기를 때울 정도의 간식으로 대신하려 쵸코바와 떡 그리고 물이 전부다
 
어쨌건 오늘 산행에 대한 기대가 크기만 함에 차창을 두리번거리다보니 어느새
하차지점인 ‘박정자삼거리’에 버스가 멈추며 문이 열린다
 
 
10:20, ‘박정자(朴亭子)삼거리’..
옛날에 공주에서 대전을 넘어갈 때 도적들 때문에 혼자는 못 가고 밀양 박씨가
심은 정자노릇을 하는 나무 밑에서 여럿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는 곳이란다
 
이곳에서 ‘동학사’ 방향의 ‘학봉1,2교’를 지나 우측으로 ‘용수천’이라 불리는 냇가
를 따르다보니 금새 오늘의 들머리 ‘병사골매표소’가 나를 반김에 사진기를 꺼내
드니 국립공원공단직원이 먼저 반가운 목소리로 어서 오시라며 인사를 한다
 
응당 국립공원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를 합해 3,200원이려니 생각하고 10,000원을
내미는데 요금표에 문화재관람료는 적혀있질 않다
 
사뭇 이상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공단직원(이*묵)에게 물어보니 이곳을 포함한
‘지적골,상신매표소’는 문화재관람통로가 아닌지라 공원입장료 1,600원만을 징수
한단다
 
그러면서 문화재관람통로는 가장 가까운 문화재로부터 2Km이내를 말하는 거라
면서 생김새만큼이나 참으로 친절하게 답해주며 등산지도 하나를 꺼내 설명까지
자세히 곁들여주더니 조금 오래된 거지만 가져가라며 건네준다
 
아마도 사진도 찍어가며 메모지에 도착시간 등등을 꼼꼼히 적고 있는 나를 보고
그래도 완전 놀자판(?)은 아니라고 판단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에 진정 감사함을
표한다
 
그런걸 보면 ‘관심’이란 게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
이곳 계룡산을 찾기 전에 인터넷도 들여다보고 여러 사람들에게 얘기도 듣기도
해가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해온 것이 은연중에 나타나 보인 게 아닌가싶다
 
헌데 전에 ‘계룡산국립공원 홈페이지’를 열어봤어도 ‘병사골’이란 매표소는 없고
‘동학사,천정,수통골,지석골,갑사,신원사,상신리,동월’, 이렇게 8군데만 나와있었는
지라 그 연유를 물어본다는 걸 깜빡해버린다
 
‘박정자삼거리’ 쪽을 휘이 한번 둘러보며 본격적인 채비를 한다
등산화 끈 조여 매고, 혁대도 바짝 당기고, 목에 수건 두르고, 마지막으로 장갑
을 끼우곤 배낭을 들쳐 멘다
 
10:35..
이제 배낭 끈을 바짝 조이며 커다란 쉼 호흡과 함께 발끝에 힘을 모으며 무슨
결사항전을 향해 나아가는 전사 마냥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십여 기가 넘는 묘가 한데 모여 자릴 잡고 있다
어느 문중의 묘가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들여다보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음에 아
마도 이곳의 터가 그만큼 좋음에 자연적으로 그리되지 않았는가 싶다
 
보고 들은 바대로 ‘병사골매표소’를 출발하자마자 곧바로 오르막이 시작되는 게
마치 어설프게 이곳을 찾을 요량이면 일찌감치 돌아가란 경고를 하는 듯하다
 
대부분의 암릉구간, 특히 경사가 급해 힘들면 힘들수록 시야를 가리는 나무들이
없으니 툭툭 떨어지는 땀방울의 댓가로 주어지는 탁 트인 조망과 시원한 바람이
헉헉거리는 내 가슴을 달래준다
 
10:54, '장군봉 0.5Km, 병사골 0.5Km'
이정표 하나가 나를 반기건만 ‘여태껏 올라온 게 겨우 500m밖에..’라는 생각에
사뭇 실망스럽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암릉이 아닌 그저 그런 오르막임에 위안을 삼으며 다시 한번
배낭 끈을 바짝 잡아당기곤 발길을 재촉한다
 
11:20, '장군봉(將軍峰)'..
‘박정자삼거리’를 출발한지 1시간..
 
오늘의 첫 번째 봉우리 정상에 오르니 ‘남매탑 4.2Km, 병사골매표소 1.0Km’라는
이정표와 함께 사방팔방 탁 트인 풍광이 나를 반김에 길고 커다란 쉼 호흡으로
화답해본다
 
언뜻 이곳 장군봉 정상 바로 아래에 위치한 묘 1기가 눈에 들어온다
산에 다니다보면 가끔은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묘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정상
바로 아래에 위치한 건 처음인 것 같다
 
아마도 후손 중에서 훌륭한 장군이 나오라는 염원에서 그리했는가 모르겠지만
그 후손들, 특히나 산행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많이도 버거울 거라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이제 쉴 때도 됐는지라 풍광이 제일 나을 듯한 바로 아래의 커다란 바위에 자릴
잡고는 간식도 꺼내서 우물거리며 한 바퀴 둘러보니 어디가 어딘지 제대로 감은
잡히지 않지만 그래도 기분하나는 끝내준다
 
11:30..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발길을 옮기며 저쪽 아래에 큼지막한 ‘자연사박물관’을 물끄
러미 내려다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다음에 시간이 되면 꼭 들러봐야겠다는 생각
이 든다
 
11:35..
‘장군봉’에서 내려오는 듯하더니 어느새 또 다른 봉우리에 올라와 있음에 그제야
오늘 이런 걸 여러 개 넘어야 된다는 말이 기억난다
 
11.39..
엄청나게 큰 바위를 우회하니 ‘남매탑 3.9Km, 병사골 1.3Km'라 표시된 이정표
가 안부에 자릴 잡고 있다
 
눈앞에 밧줄 하나가 늘어져 있는데 그 밧줄 매듭 한마디에 철제 스프링이 끼워
져 있음에 왜 끼워 놨는지 그 용도가 사뭇 궁금하기만 한데 대체 알 길이 없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내려가다 보니 거기에도 또 그렇게 그 철제 스프링이
끼워져 있음에 뒤따라오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바위에 맞닿은 밧줄부분이 닳지
않도록 일부러 끼운 거란다
 
계속되는 오르락내리락이 자꾸만 감질나게 한다
힘들게 하려면 아예 경사가 급하고 길던지 아니면 그냥 평평하던지 해야될 텐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속된 말로 개갈 나질 않음에 조급은 답답하다
 
난간 쇠줄을 잡고 내려오기도 하고, 다리 내지는 육교형태의 목재데크도 건너고
하다 보니 10명 정도까지는 식사하기 좋은 평평하고 널찍한 바위가 눈에 띠지만
길 한 가운데에 위치한지라 그게 흠이다 (12:00)
 
12:15, ‘갓바위삼거리’..
‘지석골 1.5Km, 장군봉 1.6Km, 남매탑 2.6Km'라는 이정표가 있는 안부에 도착
하니 이제 ‘신선봉’까지의 중간쯤에 왔다는 생각에 많이도 반갑다
 
12:18, ‘갓바위’..
들어갈 수 없다는 통제표지판을 지나며 아무리 둘러봐도 어째서 ‘갓바위’라 이름
붙여졌는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음에 미적 감각이 없는 나를 탓해본다
 
12:25, ‘전망대(?)’..
왼편으로 통행을 금하는 밧줄이 하나 쳐있는 그 바깥쪽으로 등산객 서너 명이
쉬고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려는데 “전망은 여기가 최고지..”라는 누군가
의 말에 발걸음이 더 이상 나아가질 못한다
 
흘려들은 대로 참으로 대단한 전망대다
저 앞쪽으론 거짓말 조금 보태서 어쩌면 ‘설악산 유선대’의 축소판이랄 수 있을
것 같고, 옆사람에게 물어봐도 모르는 위쪽으로 쭉 뻗은 계곡 또한 일품이다
 
근데 이상한 건 봉우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계곡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게
일상적이고 또 그 멋이 훨씬 더한데 이곳은 어찌 아래에서 위로 뻗어 올라 치는
모습이 이리도 멋들어지는지 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12:44..
'장군봉'을 지나면서부터 비슷비슷한 코스를 지나다보니 어느새 '남매탑 1.6Km,
장군봉 2.6Km'라는 이정표를 지나게 되니 이제 ‘신선봉’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추측을 해본다
 
12:51..
어쩌면 ‘신선봉’이라고도 착각할 수 있는 커다란 바위를 암벽봉우리를 우회하니
좀 전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던 그 멋진 계곡으로부터 맞닿은 안부에 이른다
 
나와 교행하는 사람으로부터 앞으로 10여분만 가면 맨 마지막 봉우리인 ‘신선봉’
이 나오는데 우회하지 말고 그냥 오르는 게 외려 더 편하다는 말을 들으며 발끝
에 힘을 준다
 
어느덧 ‘신선봉’ 앞에 당도했건만 아까 ‘갓바위’와 같이 통행금지를 알리는 표지
판이 눈에 들어옴에 좀 전에 내게 길을 알려주던 사람이 하던 말을 이제야 이해
할 만하다
 
13:10, ‘신선봉’..
‘신선봉’이라 명명될 정도라면 참으로 근사하리란 기대가 커서 그런지 조금 실망
스럽지만 그래도 요란하지 않고 차분함이 안겨주는 포근함도 남다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론 전혀 위험하지도 않은 이 ‘신선봉’에 오르는 길을 어째서 통제
구역으로 정했는지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가래떡에 삶은계란, 그리고 소주도 한잔해가며 느긋하게 쉬어본다
옆에 있던 일행들과 잠시 얘기도 하다 보니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는다
아마도 이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는 터라 ‘신선봉’이라 이름 붙여지지 않았나싶다
 
어쩐 일인지 ‘이제 힘든 건 끝났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10여분이 넘게 한참이나
쉬었다가 ‘신선봉’에서 내려가 우회하여 별다른 특이함이 없는 등산로를 따른다
 
13:29, ‘큰배재’..
널다란 공터에 세워진 '동학사 2.3Km, 남매탑 0.6Km, 장군봉 3.6Km'라 표기된
이정표를 바라보다 발길을 옮기자마자 우측이 바로 ‘상신리’ 갈림길이다
 
이제 ‘남매탑’이라 불리는 ‘청량사지 쌍층(7층,5층) 석탑’을 향한다
하지만 ‘남매탑’의 애절한 사랑얘기를 익히 알고 있는 탓인지 발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애잔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 같다 
 
13:40, ‘남매탑(男妹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부부의 연’을 맺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오누이가
되어야만 했던 슬픈 얘기를 담고 있다는 ‘남매탑’이다
 
그 슬픈 사연 때문인지 몰라도 한 여름밤의 ‘남매탑’과 보름달이 어우러진 모습
이 그토록 처연하도록 아름다워 계룡팔경의 마지막 제8경이란다
 
‘남매탑’을 둘러보며 남녀간의 상열지사에 대해 생각해본다
대체 남녀간의 연분이란 게 무엇이기에 이토록 절절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 운명
이 되어야만 했는가 하는 생각을 말이다
 
문득 누군가와 통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기를 꺼내보건만 통화권 이탈을
알리는 그림문자가 생생함에 폴더를 열어보지도 못하고 도로 집어넣는다
 
‘남매탑’을 떠나면서 ‘상원암’ 약수를 한 모금 떠 마셔보고도 싶건만 내려가기가
귀찮아 위에서 그냥 휘 둘러보니 생각보다 그리 유명세를 치르지 않는 듯 북적
대지는 않는 것 같다
 
13:58..
‘삼불봉 0.2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있는 ‘삼불봉 고개’에 올라서니 나도
모르게 커다란 쉼 호흡이 나오는 게 어쩌면 이곳에서부터 ‘관음봉’까지도 그리
녹녹하지 않은 코스이기 때문인 것 같다
 
14:06, ‘삼불봉(三佛峰)’..
넓지 않은 정상이 많은 사람들로 붐빔에 주변 풍광 감상을 제대로 할 만한 자리
를 잡을 수 없음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기에 바쁘기만 하다
 
겨우 한자릴 차지하고 나니 지금이 한겨울이 아닌 게 많이도 아쉽다
아니, 한겨울은 아니더라도 그저 잔설이라도 남아있다면 하는 바램이다
 
물론 삼불봉 설화(雪花)를 어디에서 바라봐야 가장 멋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잔설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계룡팔경 중 제2경이란 멋들어진 장관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건 지금 바랄 수 없는, 바라서도 안 되는 허황한 내 욕심일 뿐이다
아마도 들어갈 때 마음하고 나올 때 마음이 틀리다는 게 바로 이래서 나온 말이
아니겠는가 싶다
 
한편으론 세분의 스님이 나란히 있는 것 같다는 그토록 유명한 ‘삼불봉’ 봉우리
에 올라와 있으나 감상할 수 없음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하기사 유독 동학사 쪽에서 바라보아야만 마치 세분의 스님이 나란히 앉아있는
것 같이 보인다하니 그저 자연의 조화에 감탄할 수밖에..
 
여하튼 이곳 ‘삼불봉’에 올라서니 너무도 멋들어진 풍광에 입이 다 벌어진다
한마디로 파노라마가 따로 없다싶음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모른다
 
바로 앞에 용의 몸통이라 일컬어지는 ‘자연성릉’은 아직 보이질 않으나 그 끝인
관음봉을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쌀개릉, 쌀개봉, 천황봉’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문필봉, 연천봉’이 자릴 하고 있음에 감히 뭐라 형언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관음봉’에서의 조망이 계룡산 최고의 풍광을 자랑한다지만 그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이토록 장쾌하게 펼쳐지는 바로 이곳 ‘삼불봉’에서의 풍광을 어찌 능가할
수 있을까싶을 따름에 멍하니 정신을 놓쳐버린다
 
발걸음을 옮겨야하는 아쉬움을 접으며 철계단을 타고 내려와 ‘관음봉 1.5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진 안부를 지나 다시 나무계단을 오르니 바로 ‘금잔디고개’
갈림길이다 (14:16)
 
나와는 반대로 ‘삼불봉’을 향하는 사람들과의 교행으로 지체되는 조급한 마음에
허둥대다시피 재촉하다보니 계단 중간쯤에 위치한 ‘자연성릉’을 알리는 이정표
(관음봉 1,0Km, 삼불봉 0.6Km)를 지나,
 
어느새 너무도 장쾌하고 웅장함에 ‘계룡산 천혜의 요새’라고 일컬어진다는 바로
그 ‘자연성릉’의 동편 시작점에 올라서있는 나를 발견한다
 
14:39..
드디어 계룡산 명물중의 명물이라는 ‘자연성릉’으로 발길을 옮긴다
 
비록 계룡팔경에 속하지는 않으나 깎아지른 듯 그 아찔한 절벽의 위용에 간담이
서늘해져 계룡산의 백미라 꼽는다는 그 유명한 ‘자연성릉’으로 말이다
 
한마디로 너무도 엄청남에 감히 뭐라 표현할 재간이 없다
어쩜 저렇게 어마어마한 성릉이 이렇게 자릴 하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믿어지질
않는다
 
너무도 어마어마함에 한참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불현듯 전에 ‘백두대간
희양산 구간’ 때 이름도 생소한 ‘은티마을’에서 올랐던 ‘마법의 성’이 떠오른다
 
짧은 바위능선이 마치 유럽풍의 성곽과 같고 그 아래로 넓고 깊은 스산함마저
깃들어 범접할 수 없는 마법의 계곡으로 느껴지던 바로 그 ‘마법의 성’ 말이다
 
하지만 이곳 ‘자연성릉’은 그 궤를 달리한다
길다랗게 이어지고 깎아지른 깊은 절벽에 그 누구도 감히 오를 생각조차 갖지
못할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는 한마디로 ‘천혜의 요새’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마법의 성’이 잔잔함과 스산함으로 알 듯 모를 듯한 현혹을 일으켜 자멸케 하는
느낌이라면 이곳 ‘자연성릉’은 그 엄청남 하나만으로 감히 어설픈 엄두조차도 낼
수 없도록 확실하게 못을 박은 그런 기분이다
 
‘관음봉’을 향한 가파른 암벽 오름짓에 등산객을 위한 철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음
이 외려 그 풍미가 덜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이렇게 우리네 산성성곽을 대표한다
싶은 건 나만의 생각인지 모를 일이다
 
15:00, ‘관음봉(觀音峰)’..
‘삼불봉’에서와 같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림에 조금은 실망스럽다
특히나 정상석이 마치 자기네 전유물인양 남들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독차지
하며 떠들어대는 젊은 녀석들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지붕이라든가 기둥 등등 모든 게 시멘트지만 그래도 의자와 바닥 한 겹은 나무
로 만들어져있는지라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정자에 자릴 잡고 휴식
을 취하며 가만히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천황봉, 쌀개봉’ 다음으로 높기도 하지만 정자에 앉아 파란하늘에 둥실 두리둥
실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을 바라보노라면 세상천지 부러울 게 없다는 계룡팔경
중 제4경이란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이토록 높은 곳의 전망대가 주는 편안함에 간식도 먹어가며 이리저리 둘러보니
‘계룡산’ 최고의 조망대라는 말에 걸맞게 ‘역시..’하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온다
 
정말 세상천지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
그저 파란하늘 쳐다보고 있노라니 근심걱정 어디로 사라졌는지 정갈하고 아늑한
그리고 따스한 사랑방에 누워있는 양 포근함이 가득할 뿐이다
 
관음(觀: 볼 관, 音: 소리 음)이라는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귀에 들리
는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을 살포시 가라앉혀 주니 어쩐 일인지 이제는 눈에 보이
던 그 어떤 거 하나 보이는 게 없고, 귀에 들리던 그 어떤 거 하나도 들리는 게
없음에 그저 구름 위에 둥둥 떠있듯 평안할 따름이다
 
‘관음봉 한운(閒雲)’..
계룡팔경 중 제4경이란 말이 왜 나왔는지 이제야 알 듯하다
 
그저 이렇게 높은 곳의 정자에서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을 바라보며 즐기는 게
아니라 마치 내가 그 구름을 타고 노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그만큼
여유로움이 느껴지니 말이다
 
‘어쩜 이럴 수가..’싶을 정도로 ‘삼불봉’에서의 풍광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아까 ‘삼불봉’에서는 그 장쾌함에 내가 정신을 놓쳐버렸건만 이곳 ‘관음봉’에서는
너무나도 평안함에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 나도 모르게 정신을 놓아버린다
 
‘삼불봉’에서 ‘정신을 놓쳐버리는 거’와 이곳 ‘관음봉’에서 ‘정신을 놓아버리는 거’
의 차이가 과연 어떤 건지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정리를 해보고 싶다
 
정신을 놓쳐버리는 것 (삼불봉) : 요란함과 현란함에 내가 빠져버리는 거..
정신을 놓아버리는 것 (관음봉) : 고요함과 평온함에 나를 맡겨버리는 거..
비록 말도 되지 않겠지만 지금 여기서만큼은 이렇게 구별해서 표현하고 싶다
 
한참이나 넋을 잃고 있다보니 대체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일어서기가 못내 아쉽지만 아직 갈 길이 머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인지라 배낭을
들러 메고 발길을 옮긴다
 
15:29..
'연천봉 0.9Km, 은선폭포 0.8Km, 관음봉 0.2Km'라 표시된 이정표가 세워져있는
‘관음봉’ 바로 아래 안부의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여진다
 
‘문필봉, 연천봉’을 거쳐 ‘갑사’ 방향도 좋지만 ‘은선폭포’ 쪽으로 해서 ‘동학사’로
내려가는 것도 괜찮으리란 생각에서 말이다
 
어쨌거나 주봉인 ‘천황봉’ 방향은 통제구역인 관계로 그저 바라보는 걸로 아쉬움
을 달래며 ‘문필봉’을 향하지만 고개는 여전히 ‘쌀개봉, 천황봉’에 박혀있다
 
15:40, ‘문필봉(文筆峰)’..
오죽하면 봉우리 이름을 ‘문필(文: 무늬 문, 筆: 붓 필)’인가?
 
아마도 봉우리가 붓끝을 연상시킬 정도로 그만치 단아하고 고풍스러웁기에 그리
지어지지 않았나 싶건만 이곳 역시 통제구역인지라 정상에 오를 수 없음이 안타
까울 뿐이다
 
‘문필봉’에 오른다면 ‘천황봉~쌀개봉~관음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병풍처럼 일직
선상으로 뻗어있는 ‘계룡산’ 주능선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정면으로 감상할 수
있을 터인데 그리할 수 없음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오늘은 산행 내내 아쉬움 투성이다
어느 곳에서건 그렇게 멋들어진 풍광에 발길을 돌리기가 어려우니 말이다
 
그렇다고 갈 길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음에 또다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연천봉을 향한다
 
15:49, ‘연천봉(連天峰)’..
마지막 봉우리 ‘연천봉’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벌판 아닌 벌판을 바라보노라니
마치 무슨 밭고랑인 것인 양 아담하고 정겨운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곳에서 지는 해가 얼마나 멋들어지면 ‘계룡산’ 최고의 풍광을 자랑한다
는 계룡팔경 제4경인 ‘관음봉 한운’보다 앞서는 제3경으로 자리 매김했을까 하는
생각에 그 정겨운 느낌의 ‘연천봉 낙조’를 그려본다
 
뒤를 돌아 바라보니 마치 ‘문필봉’에 올라선 것 마냥 ‘천황봉~쌀개봉~관음봉’으로
병풍처럼 이어지는 능선이 참으로 볼만함에 ‘문필봉’에 오르지 못한 아쉬운 마음
을 달래본다
 
어쩌면 ‘문필봉’에서보다 조금 더 뒷켠에서 조금 더 넓고 크게 조망할 수 있음에
또 다른 ‘계룡산’의 매력을 뽐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야 ‘계룡산’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찌하여 ‘지리산’ 다음인 두 번째로 ‘경주, 한려해상’과 같은 날(‘68.12.31)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나 하는 걸 말이다
 
오늘 돌아본 모든 곳곳이 제 나름대로의 멋들어짐을 뽐내고 있음에 딱히 명소가
어디라 칭할 수 없는 그러함으로 이곳 ‘계룡산’ 전체가 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15:56..
어느 쪽으로 내려갈 것인가?
 
정녕 지난 4월에 우리 ‘**산악회’에서 했던 것처럼 ‘갑사’로 내려가려 생각하고
왔는데 뭔가가 자꾸만 나를 주저케 하면서 아침에 내려올 때도 그랬으니 올라갈
때도 열차로 가는 게 어떻겠는가 싶다
 
되돌아가는 것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게 일상적이지만 오늘은 그리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쉬움에 ‘갑사’지역을 휘 한바퀴 둘러보고는 다시 ‘문필봉’을 향한다
이젠 아까와 반대로 전면에 보이는 ‘계룡산’ 주능선의 멋들어짐을 즐기면서 옮기
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볍기만 하다
 
지금 시간이 16:00가 넘어가니 산행시간이 벌써 5시간도 훨씬 지나 힘이 들기는
하지만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한결 편하기도 하다
 
똑같은 길이라도 한번이라도 가봤던 길과 생전 처음 가보는 길은 느끼는 거리감
이 틀리다는 말을 증명이나 해주듯 어느새 ‘문필봉’을 우회해 ‘관음봉’ 바로 아래
갈림길인 안부에 올라선다
 
16:15..
‘은선폭포’를 향하는 너덜지대로 하산을 시작한다
 
‘귀때기청봉’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길다랗게 연이은 너덜이 가파른 돌계단과
함께 나름대로 이곳 ‘계룡산’의 명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16:40, ‘은선폭포(隱仙瀑布)’..
생각보다 한참을 내려와 너덜이 거의 끝나가는 지점에 ‘은선폭포’ 전망대가 자릴
하고 있음에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보지만 기대와는 영 딴판이다
 
오죽이나 이곳의 풍광이 멋들어지면 신선이 숨어서 살았다는 뜻의 ‘은선(隱仙)’
이란 이름과 계룡팔경 중 제7경 ‘은선폭포 운무(雲霧)’라 일컬어진다는데 운무는
고사하고 깨진 바가지 물 새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음에 너무도 실망스럽다
 
아마도 기대가 너무나 컸나보다
‘연천봉’에서 ‘갑사’쪽을 포기하고 이리로 하산길을 잡았음에 그만치 기대가 클
수밖에 없음에 실망도 크지 않나 싶다
 
이제 가파름도 끝나고 계곡을 따라 걷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곳이 다름
아닌 계룡팔경 중 제5경 ‘동학계곡 신록’의 구간이라는 게 자연스레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은 늦었다고 생각되는 이 시간에 ‘은선폭포’를 향해
오르고 있는 연인들을 바라보며 봄날의 푸르른 신록을 떠올려본다
 
16:55, ‘동학사(東鶴寺)’..
‘동학사 쉼터’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빙 둘러 의자도 마련된 고목과 돌탑이 쌓인
너른 공터에 잠시 쉬면서 ‘박정자삼거리’부터 시작해 이곳 ‘동학사’ 계곡까지의
나 홀로 산행을 되새겨본다
 
‘장군봉, 신선봉, 삼불봉, 관음봉, 연천봉’으로 해서 다시 되돌아오면서 비록 시간
과 계절은 제대로 맞지 않았지만 계룡팔경 중에서 제1경과 제6경을 제외한 나머
지 6곳의 절경을 두루 섭렵해서 그런지 많이도 뿌듯하다
 
이곳 ‘동학사 쉼터’와 연결된 ‘향아교(香牙橋)’를 건너 대웅전을 지나다보니 오늘
산행이 무사히 끝났다는 걸 알려주기나 하는 것 같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옷깃
을 단정히 매만져본다
 
그렇게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언뜻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는 웅덩이에 유유히 노닐고 있는 물고기들이 말이다
 
‘중때기’..
그 옛날에 이곳으로 놀러왔을 때 계곡에서 노니는 커다란 송사리나 피리 크기의
언뜻 보기에 새카맣게 보이는 물고기를 가리키며 친구 녀석이 나를 놀리려 순간
적으로 지어낸 이름이다
 
정색을 해가며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의 때를 먹고살아서 ‘중때기’라 부른다는
말에 꼼짝없이 속아 고개를 끄덕였던 바로 그 물고기가 눈에 들어옴에 반갑기도
하고, 또 그 시절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난다 (실제는 ‘버들치’라는데..)
 
이런 걸 보면 흔히 ‘코멘트’라 불리는, 그 상황에 딱 들어맞는 순간적인 말 표현
능력이야말로 사람을 끄는 힘이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니 오죽하면 거짓말인줄 뻔히 알면서도 눈앞에
서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겠는
가 말이다
 
진정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 어디서건 한마디를 하더라도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그런 ‘코멘트’를 할 수
있는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아주 멋진 사람이 말이다
 
진정 천박하지 않은 품격 있는 유머와 위트로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든지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소위 말하는 ‘분위기 메이커’가 말이다
 
그리고..
진짜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이는 옛날 그 학창시절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