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 먼 심우정사... 계룡산

 

- 산행일 : 2006. 4. 23(일) 

- 산행자 : 산행대장 김현호님, san001 등 

- 산행요약

■ 코스 : 신원사~고왕암~연천봉~문필봉~관음봉~자연성릉~삼불봉~남매탑~심우정사~동학사~동학사주차장

■ 거리 및 시간 : 산행거리 약11km, 산행시간 4시간48분, 총시간 6시간34분

■ 구간별

신원사매표소~(3분)~신원사~(11분)~보광원~(12분)~고왕암~(20분)~도치샘~(24분)~연천봉고개~(8분)~연천봉~(5분)~연천봉고개~(7분)~문필봉~(21분)~관음봉~(39분)~봉우리(금잔디고개갈림길)~(10분)~삼불봉~(5분)~삼불봉고개~(10분)~남매탑~(11분)~고개~(46분)~심우정사~(16분)~사거리안부~(13분)~기존등산로~(7분)~동학사~(15분)~동학사매표소~(5분)~동학사주차장(천장골갈림길)


(월간 산)

 

 

- 산행기

 

머나 먼 심우정사(尋牛精寺)

 

심우정사. 계룡산 깊숙이 자리 잡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암자. 지도상으로는 귀명암으로 표시된 암자.

심우정사를 처음 접한 건 몇 년 전 월간 산을 통해서다. 대전 산꾼들만이 찾는다는 길과 그 길의 쉼터처럼 벼랑 끝에 앉아있는 심우정사는 무한한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많지 않은 등산객들을 위해 두충차를 끊여 내어놓는다는 스님과 행간에 감쳐진 스님의 기행을 문득 떠올리며 언젠가 반드시 가보고자 하는 마음을 간직한다. 사진 속에서 묻어나오는 심우정사의 情. 그 정을 찾아 나서는 기회를 엿보길 몇 년. 단체 산행 기회가 있어 산행도중 홀로 빠져나와 무작정 그 길로 향한다.     

(심우정사)

 


계룡산의 추억과 기대

 

지금으로부터 삼십년 전 계룡산 동학사에서 갑사로 가는 호젓한 길을 넘는다. 「갑사로 가는 길」이라는 수필의 길을 따라... 수필의 제목과 달리 산에 대한 구체적 표현은 없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그냥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자연을 벗한 인간의 편안한 마음이 느껴지던 수필.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을 때의 애뜻함과 그리움이 묘하게 오버랩 되던 수필. 

그 후 계룡산은 내 여정의 정거장이 된다. 오다가며 들리는 산. 언제라도 편하게 배낭을 내려놓는 어머니 품 같은 산이다. 은선대피소 산장기기와 호롱불을 밝히며 바둑을 두고, 휘영청 달 밝은 밤에 금잔디고개에서 야영을 하고, 갑사계곡의 우렁찬 계곡물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잠을 청하던 계룡산.   

계룡산에 대한 내재된 기억은 항상 포근하고 편하다는 생각뿐이다. 

 

이런 나의 감정과 달리 계룡산은 상당히 남성적인 산이다. 그럼 왜 이런 인식의 차이가 온 것일까.

계룡산이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등산로가 개방되고 개발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시간이 아니다. 오늘날 계룡산 산행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자연성릉조차 80년에 들어서야 개방이 된 정도이다. 예전 고전적인 계룡산 등산코스라 하면 동학사에서 남매탑을 지나 갑사로 넘는 길, 동학사에서 은선폭포 방향으로 올라 관음봉, 연천봉을 지나 갑사로 내려가는 길, 신원사길 등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런 길들의 공통점은 남성적인 계룡산은 눈으로만 감상하고, 실제 몸으로 체감하는 산행은 육산 산행에 가까워 지극히 여성적일 수밖에 없다.

 

계룡산을 십여차례 갔으면서도 막상 가본 길은 상당히 제한적이고 단순하다. 구석구석을 제대로 알 수가 없는 서울사람들에게는 지도에 뚜렷이 표시된 정형화된 길을 따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고자 하는 길을 미리 생각해 두고 기회가 될 때마다 실행에 옮긴다.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가슴 설레이는가.    

이번 산행 역시 세 가지 새로운 길을 목표로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시간에 쫓겨 심우정사길 하나 밖에 확인을 하지 못하였다. 작은 발견이지만 그래도 색다른 경험. 이번 산행의 숨겨진 보람이다. 

① 보광원(신원사 위의 암자)에서 연천봉으로 가는 능선길

② 심우정사길

③ 큰배재에서 천장골매표소로 하산하는 학바위능선길 


 

호젓한 신원사 길

 

신원사 입구는 시골 분위기 그대로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다. 관광지화 된 동학사지구와는 달리 개발상태가 극과 극을 이룬다. 도덕봉 일대를 제외한 계룡산만을 놓고 본다면 공주의 계룡산이지만 요즈음의 계룡산은 공주는 사라지고 대전만 남은 듯하다. 덕분에 호젓한 자연미가 그나마 많이 남아있는 길. 이것이 신원사길의 매력이다.

(신원사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계룡산)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신원사. 국보 1점, 보물 1점이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부자절인 동학사의 급격한 발전과 대비되는 전통사찰 특유의 기품이 남아있다. 신원사의 핵심은 계룡산 중악단(中嶽壇). 현존하는 유일한 산신제단이다. 단청빛도 바랜 목조건물이 상당히 고색창연하다. 문화재에 대한 안목은 없지만 가슴 뭉클한 감동이 스민다. 중악단은 태조 4년(1394년)에 창건된 것으로 현재 건물은 고종16년(1879년)에 건립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산악신앙의 본산. 계룡산이 무속신앙의 뿌리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신원사)

(계룡산 중악단)

(중악단 전경)

 

잠시 이것저것 살피는 사이 일행들은 휑하니 앞으로 치고 나간다. 어차피 오늘 산행은 살짝살짝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하여 급할 것은 없다. 길을 따라 소림원, 금룡암, 보광원 등 암자가 연이어져 구경하기에 눈이 몹시 바빠진다. 

(등산로 옆의 돌탑)

 

연천봉 능선길을 가기 위해 보광원으로 오른다. 그런데 쉽게 찾을 줄 알았던 길이 보이질 않는다. 하다못해 등산로임을 분명히 표시해 주는 「등산로 아님」이라는 표시만 있으면 좋으련만.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다시 돌아선다. 혼자가도 일행들과 적당한 간격은 유지하고 싶어서이다. 

(보광원 뒤로 보이는 계룡산)

 

등산로 옆으로 이어지는 신원사계곡의 물소리가 우렁차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물의 수량도 풍부하다. 외면은 화려해도 국립공원이 되지 못하는 산의 공통점을 보면 내면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국립공원. 역시 그 이름에 부합하는 계룡산이다.  

(신원사계곡)

 

고왕암. 참으로 이름이 특이하다. 고왕암은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의 아들인 「융」이 나당연합군을 피해 몸을 피신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이 일대만이 대나무숲의 군락지. 마치 고왕의 넋을 달래 듯 울창한 대나무숲이 병풍을 두르고 있다. 

(고왕암입구의 대나무숲)

(고왕암)

 

이제 슬슬 숨이 가빠진다. 연천봉고개까지는 돌이 많은 오르막길. 마지막 나무계단을 오르면 시원한 골바람이 이마의 땀을 훔친다.  

(등산로에서 보이는 연천봉 고개)

(계곡 합수점의 나무다리)

(돌길)


 

연천봉

 

연천봉은 고개에서 좌측길. 헬기장을 지나 진달래꽃길을 잠시 따르면 연천봉. 정상 일대가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서쪽 끝에는 분재 같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연천봉은 전망이 좋다. 천황봉과 쌀개봉 능선 그리고 정면으로는 문필봉,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좌측의 자연성릉이 파도를 치는 듯 출렁거린다. 계룡산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여 낙조가 아름다운 봉우리. 연천봉 낙조는 계룡8경중 3경이다.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연천봉)

(연천봉의 소나무군락)

(연천봉에서 바라보는 정상)

(연천봉에서 바라보는 우측 문필봉과 좌중앙의 삼불봉)


 

뜻밖의 아름다운 능선길

 

연천봉고개에서 관음봉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이다. 능선을 타고 문필봉을 거쳐 관음봉으로 직접 가는 방법(등산로 아님이라는 표시 있음)과 문필봉의 우측 산허리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우회길을 따르면 짧은 시간에 아주 편하게 관음봉 고개로 연결이 된다. 능선길은 오르내림이 심해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계룡산을 제대로 보려면 반드시 들려가야 될 능선길. 

 

항강 우회길만 가다가 오늘은 마음잡고 능선으로 향한다. 정면의 가파른 길을 따라 8분만에 돌탑 1기가 있는 문필봉에 오른다. 연천봉에 못지않은 최고의 전망대.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생각 못한 험준한 바위능선길이다. 바로 앞에는 문필봉보다 더욱 가파른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는다. 보기보다는 크게 위험만 구간이 없어 바위에 드리워진 긴 밧줄을 잡고 오른다.

(문필봉의 돌탑)

(문필봉에서 바라보는 연천봉)

(문필봉에서 바라보는 우측 관음봉과 가야할 능선길)

(갑사 방향 계곡)

(관음봉과 문필봉 사이의 봉우리로 오르는 바윗길)

(되돌아본 좌측 문필봉과 우측 연천봉)

 

연천봉고개에서 관음봉까지 볼 것 다보고 28분 걸렸으니, 우회길보다는 약2배 시간이 걸렸다.

 

 

산행지로서의 상봉, 관음봉

 

관음봉은 출입이 통제되는 천황봉 대신 상봉 역할을 하는 곳. 좁은 정상에서 여유를 부릴 장소가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여전히 일행들은 보이질 않아 막바로 자연성릉에 접어든다.

(관음봉에서 바라보는 정상)

(관음봉 정상의 정자)

 

자연성릉은 관음봉에서 삼불봉까지의 능선을 말한다. 동학사방면은 거의 수직 절벽을 이룬 반면 갑사 방면은 상대적으로 완만하지만 역시 가파르다. 옆에서 보면 자연적으로 성벽을 쌓은 듯한 거대한 장벽이다. 특히 관음봉을 내려오는 철계단길에서 바라보는 자연성릉은 대자연의 경이를 느낀다. 칼날같이 좁은 능선은 용트림 하듯 휘몰아치고 좌우로 뻗어 내린 바위능선은 용의 날개를 연상케 한다. 또한 황적봉능선과 장군봉능선 사이에 깊숙이 파묻힌 동학사계곡은 상당한 깊이가 있다.

(관음봉에서 바라보는 자연성릉)

(관음봉을 내려오며 바라본 동학사계곡과 우측의 향적봉능선)

(칼날같은 자연성릉)

(내려와 되돌아본 관음봉)

(자연성릉에서 바라보는 정상)

 

자연성릉에는 봉우리들이 물결처럼 연이어지지만 몇 개의 봉우리들은 비껴 지나간다. 너무나 철저하게 가야 될 길과 가지 말아야 될 길(출입통제)을 구분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자연성릉의 경관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사진을 촬영하는 전망대 또한 그냥 스쳐 지나간다.

아찔한 절벽위에 난간이 설치된 지점을 지나면 한동안 좌측 사면을 통해 이어진다. 철교와 철사다리가 연속되어 걷기는 부담 없지만 경관은 없다. 

 

우회길 마지막에 나타나는 가파른 철사다리를 힘겹게 오르면 멋진 전망봉우리에 오른다. 이 봉우리가 삼불봉가는 능선과 수정봉 능선길의 분기점. 하늘로 치솟은 삼불봉의 위용이 대단하다.

(좌측 능선분기점 봉우리와 우측 삼불봉)

(능선분기점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계룡산)

(능선분기점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좌측 삼불봉)


 

풍수상의 상봉, 삼불봉

 

삼불봉은 한차례 가파른 길을 내려와 다시 가파른 철계단을 통해 오른다. 삼불봉은 계룡산의 모든 기와 혈이 모인다는 풍수상의 주봉이다. 三佛이라는 뜻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는 없으나 삼불봉을 중심으로 좌우에 능선분기점 봉우리와 심우정사능선상에 있는 봉우리가 마치 형제처럼 솟아있는 형상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멀리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물결친다. 이렇듯 어느 능선 하나도 평범하지 않은 계룡산. 비룡승천형의 명산이라는 계룡산의 명성에 걸맞다.  

여전히 인산인해. 일행들은 이미 남매탑에 도착했다고 한다. 

(삼불봉으로 오르는 철계단길)

(삼불봉에서 바라보는 계룡산, 뒤 능선의 가장 우측이 연천봉이다)

(삼불봉에서 바라보는 중앙의 장군봉능선과 앞의 학바위능선)


 

색욕을 이겨낸 도행의 기념탑, 남매탑

 

삼불봉고개를 지나 남매탑에 내려오면 환상적인 암릉산행은 끝이 난다. 편안한 마음으로 늦은 점심을 즐긴다.

남매탑은 「색욕을 이겨낸 도행의 기념탑」(월간 산 표현)으로 신앙과 색욕과의 갈등에서 색욕을 이겨낸 남녀의 애뜻한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7층탑은 오라비탑, 5층탑은 누이탑으로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다. 남매탑 앞에는 일부러 설치해 놓은 듯한 돌거북이 여러 개 흩어져있는데, 지금의 상원암이 세워지기 전인 50여년전 절의 복원을 위해 준비된 주춧돌이다.

지금은 등산객의 편안한 쉼터 역할을 하니 그 역시 보시의 일종이 아니겠는가.  

(삼불봉고개)

(남매탑)


 

악전고투, 심우정사를 찾아가는 고행의 길

 

남매탑에서 일행들은 대부분 장군봉능선으로 향한다. 중간 탈출하려는 분은 나 이외에 두명. 심우정사를 찾아 가려는 혼자만의 계획으로 동학사로 가는 두 분과 헤어진다. 같이 가면 좋겠지만 고생이 불을 보듯 훤하니 차마 같이 가자는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남매탑 근처에서 심우정사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남매탑에서 동학사 방향으로 100m 정도 내려온 지점에서 사면을 따라 가는 길과 삼불봉고개 근처에서 가는 길. 월간 산의 길 안내를 정독하였으나 그 길은 올라온 길을 설명한 것이고 내려가는 길은 역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설명을 거꾸로 뒤집어 내려가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먼저 아래로 내려가 조금만 길 흔적을 따라 갔지만 이내 길이 끊긴다. 할 수 없이 삼불봉고개로 오른다. 삼불봉고개 도착하기 전 좌측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길. 느낌상으로 삼불봉과 심우정사 능선길 상의 봉우리 사이 안부(고개)로 가는 길이다.

예상대로 고개에 오른다. 생각하는 길을 찾으니 별 문제가 없을 듯하다. 고개에서 좌측으로 가면 봉우리를 지나 심우정사로 향하는 능선길이 분명할 듯하다. 하지만 원하는 길은 오송대를 보고나서 심우정사로 가는 길이다.

 

고개를 넘어 가파른 길을 내려간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길 흔적은 분명히 나타난다. 낙엽이 두툼하게 쌓여 혹시라도 길을 잃을까 수시로 뒤를 돌아본다. 길이 없어졌다고 느끼는 순간 뒤를 돌아보면 길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점점 희미해지는 길은 어느 순간 완전히 사라진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하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생각하지만 내려온 길을 생각하면 다시 돌아가기는 무리. 그나마 사면의 상태도 상당히 좋지 않다. 돌부스러기에 수시로 낙석이 발생하고 비탈면을 밟을 때마다 발이 계속 밀려 내려간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붙잡는 나뭇가지는 힘없이 부러지기 일쑤.

 

사면의 경사가 의외로 급해 점점 고민이 엄습해 온다. 이제 심우정사에 대한 미련은 버린다. 오직 목표는 제대로 하산하는 것뿐이다. 믿는 건, 어떻게든 계곡으로만 내려가면 기존 동학사에서 관음봉으로 가는 등산로로 연결된다는 확신이다.

하지만 아직 고도가 높아 계곡까지 내려가려면 아찔한 기분이다. 바로 내려가기엔 경사가 급해 사면을 비스듬히 치고 내려간다. 가끔 나타나는 바위지대는 곤혹스럽다. 하늘은 어느새 잔뜩 찌푸리고 어둑어둑해지는 날씨는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하다. 처음엔 일행들과 약속한 시간이 남을까 걱정했지만 이제는 마음이 상당히 쫓긴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것 같은 날씨)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내려가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인공적인 흔적이 나타난다. 직벽의 바위병풍 아래 설치된 축대. 잘 정리된 상태는 아니지만 분명 사람의 흔적이다. 토사와 풀에 미끄러지며 힘겹게 다시 오른다. 혹시 그 터와 심우정사가 연결되는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아무 것도 없다. 축대 위는 다듬어지지 않아 비탈지고 주위에는 길 흔적이 전혀 없다. 아주 오래된 흔적이다. 오히려 뒤에 거대하게 늘어선 바위병풍에 위압감이 느껴진다. 3시도 되지 않은 시간임에도 해가 넘어가는 저녁과 같이 어둡다. 고립무원(孤立無援). 벼랑에 홀로 서있는 느낌을 받는다.

잠시 앉아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제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계곡으로 내려가야 한다.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급기야 제법 굵은 빗줄기가 솟아진다. 옷과 배낭이 젖어 들어가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물을 머금은 바위는 더욱 미끄러워 거의 두손 두발을 다 사용하며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축대 흔적)

(축대 위의 병풍바위)

 

10여분 내려오자 뭔가 하얀 띠가 보인다. 찾았다. 소리치지는 않았지만 심우정사가 머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예상대로 물을 운반하는 호스. 가파른 사면 옆으로 이어지는 호스를 따른다. 여전히 가파르기는 마찬가지. 무난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호스는 거대한 바위사면을 휘감아 돌아 지나간다. 도저히 갈 수 없는 길. 바위면을 내려와 우회를 한다.

(심우정사로 이어지는 호스)

 

저 위 능선에 무슨 비닐집이 보인다. 힘겹게 올라 능선을 넘자 나타나는 심우정사. 그렇게 가고자 했던 심우정사를 찾은 것이다.

심우정사는 40여전에 새워진 암자로 가파른 바위벼랑에 얹혀져 있는 형상이다. 제 길을 찾지 못해 힘겨운 사투를 벌였지만 심우정사의 처마 밑에 걸터앉으며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빗줄기는 때맞추어 더욱 거세게 솟아지고 처마 끝의 낙수물 소리가 맑은 음악같이 들린다.    

              

때 아닌 낯선 등산객의 방문에도 여스님이 따스하게 인사를 건넨다. 어떻게 오셨는지, 어디서 오셨는지, 왜 오셨는지. 알지 못하면 찾지 않는 길을 빗줄기 속에 찾아온 방문객이 신기한 모양이다. 마침 노등산객 한분이 또 찾아온다. 대전에 사는 분으로 심우정사를 자주 들린다고 한다. 건네주는 따뜻한 커피 한잔에 몸을 녹이며, 심우정사에 대한 스님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다. 폭음과 기행을 일삼었지만 정이 많았던 목초스님, 더 큰 인물로 나아가지 못해 안타깝다는 이야기, 그리고 계룡산 등산로에 관한 실적전인 이야기는 한마디 한마디가 새롭게 다가서는 귀한 말씀이다. 특히 관음봉을 지나 자연성릉의 동쪽 사면을 가로질러 심우정사로 오는 길을 소개할 때엔 또다시 마음이 급해진다. 이것도 병인가.

(심우정사)


 

다시 속세를 향하여

 

방에 들어와 쉬어가라는 스님의 권유를 사양하고 기다리는 일행을 위해 노등산객분과 서둘러 길을 나선다. 잘 정리된 능선길. 삼불봉에서 오송대계곡 옆으로 이어지는 짧은 지능선이다. 자연성릉과 황적봉능선의 높은 벽에 푹 파묻힌 듯한 깊이가 느껴진다.

돌탑이 있는 사거리안부에서 좌측길은 동학사로 이어지지만 출입이 통제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공식적으로 개방하기 위해 길 정비까지 한 길이 동학사의 반대에 부딪혀 정식으로 개설 못한 길이다. 다른 차원에서 동학사의 세속적인 욕심을 이야기하던 노등산객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직진하는 길을 따라 가파른 길을 내려오면 동학사에서 은석폭포로 가는 등산로와 만난다. 한동안 신선의 세계를 떠돌다 속세로 돌아온 기분이다.

 

동학사를 지나 편안한 길을 따라 주차장에 도착하자 때맞추어 일행들이 천장골에서 내려온다. 갓바위에서 중간 탈출하여 작은배재로 내려왔다고 한다. 어느새 맑아 진 하늘. 환한 햇살이 무사 귀환을 축복하는 듯 눈이 부시다. 

(동학사)

(우측 천장골 입구)

(장군봉)


 

- 일정

07:25   교대역 8번 출구 출발

09:35   신원사 주차장

 

09:45   신원사 매표소

09:48   신원사 : 고왕암 900m, 보광원 600m, 금룡암500m, 소림원 200m

09:57   출발

10:00   소림원 앞, 돌탑

10:05   금룡암 입구 : →금룡암, ↑고왕암 400m, 보광원 200m

10:05   보광원 갈림길 : 보광원 0.2km, 신원사 0.6km, 연화봉고개 2.1km

10:13   보광원

10:17   출발

10:19   보광원 갈림길

10:25   극락교

10:29   고왕암 : 연천봉고개 1.6km, 신원사 1.1km

10:33   출발

10:40   계곡, 이동전화불능장소 : 연천봉고개 1.1km, 신원사 1.6km

10:53   도치샘 (해발 440m) : 연천봉고개 0.6km, 신원사 2.1km

11:17   연천봉고개 (해발 685m) : ↑갑사 2.4km, →관음봉 0.9km, ↓신원사 2.7km, ←연천봉 0.2km

11:21   헬기장

11:25   연천봉 (해발 738.7m) : 연천봉의 낙조(제3경)

11:32   출발

11:37   연천봉고개

11:44   문필봉, 돌탑 (해발 756m)

11:57   봉우리 : 직전 밧줄

12:05   관음봉 (해발 816m) : 삼불봉 1.6km, 은선폭포 1.0km ⇒ 관음봉의 한운(제4경)

12:18   이정표 : 삼불봉 1.2km, 관음봉 0.4km

12:27   출발

12:37   이정표. 119(07-03) : 삼불봉 0.8km, 관음봉 0.8km

12:41   이정표 : 삼불봉 0.6km, 관음봉 1.0km

12:53   봉우리, 119(07-05) : 금잔디고개 갈림길 봉우리

13:03   삼불봉 (해발775.1m) : 삼불봉 설화(제2경)

13:08   삼불봉고개 (해발 675m) : 관음봉 1.8km, 남매탐 0.3km, 갑사 2.7km, 금잔디고개 0.4km, 삼불봉 0.2km

13:18   남매탑 (해발 600m) : 삼불봉 0.5km, 동학사 1.7km, 갑사 3.0km, 금잔디고개 0.7km, 천장골 3.3km, 상신리 3.0km ⇒ 오뉘탑의 명월(제8경)

14:03   휴식후 출발

14:07   갈림길 : 천장골 3.3km, 동학사 1.7km

14:13   알바후 남매탑 다시 출발

14:24   고개

14:42   축대 터

15:10   심우정사

15:23   출발

15:39   사거리안부, 돌탑(이정표 없음) : ←동학사, →오송대계곡, ↑능선길

15:52   기존등산로

15:56   다리 : 관음봉 2.4km, 동학사 0.2km

15:59   동학사

16:12   일주문

16:14   동학사 매표소

16:19   천장골 갈림길,주차장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