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 鷄龍山의 龍山九曲과 甲寺九曲

언   제 : 07년 7월 8일(일)

누   가 : 대충산사 탐사팀과 17명.

            이번 태마산행은 대충산사 시계종주팀의 하계방학동안 느낌표님을 강사로 모실 수 있어서 행운이였다.

결과부터 말하면 느낌표님께서 불참하셨으면 반타작도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느낌표님을 따라 탐사가 아니라 답사를 했을 뿐이다. 느낌표님 감사합니다.

   

   9시경 상신리 용산9곡 시작지점에 도착 기념촬영부터...

 

 

"오늘의 강사 느낌표"님은 04년 3월 17일부터 계룡산 용(龍)의 흔적을 찾아 골골샅샅을 십수번씩 빠짐없이 찾아 헤매다가 드디어 같은 해 10월 31일 "용산9곡"을 밝은 태양 아래 펼처 보임으로 자칫 영원히 무처버릴지도 몰랐을 우리의 귀중한 야사(野史)를 발굴하신 훌륭한 산악인입니다.

   지금부터 쓰는 이 답사기의 모든 자료는 느낌표님과 황태자님의 산행기를 참고로 하였습니다. 

용산구곡의 이야기는 취음 권중면 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분은 한일합방의 비보를 듣고 상신리로 낙향하여 제자들을 키우며 83세까지 장수하셨다.  그가 생전에 상신리계곡에 9곡을 선정하여 곡 하나하나마다 바위에 글을 새겨 용의 일생을 피력하였으니 바로 용산구곡이다.

(이는 제자들에게 용이 되어 잃어버린 나라를 찾으라는 애국심을 가르친것이 아닌가 하고 나름대로 상상도 해 본다)

선생이 이곳에 살면서 명명한 용산9곡은 상신리계곡이 <용과 함께 신이 숨쉬는 곳>이란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취음 권중면 선생은 단<丹>의 저자이자 우리나라 단학의 대가인 봉우 권태훈씨의 부친이기도 하다. 

 

버스종점을 다 못가서 좌측의 논바닥에 둥구스럼한 바위하나가 머리에 측백나무 한구루를 이고 서있다.

이 바위가 바로 용산9곡중 제1곡인 심용문(尋龍門)이다.



 안쪽의 잡풀과 이끼를 걷어내고 보니 틀림없는 "龍山九曲" 곡자 밑에는 "一曲" 그 왼쪽으로 "尋龍門"이 뚜렸하다.

바위 앞쪽에는 취음 권중면의 시구가 음각되어 있으며,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보잘것 없는 하나의 바위가 이렇게 귀중한 야사의 시발점이라니... 

그동안 전국의 수 많은 산들을 누비며 속도와 자신의 체력과의 전쟁에만 급급했지, 지척에 즐비한 문화재와 역사의 흔적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용이 알에서 깨어나 성장하여 승천할 때 까지 거처해야할 보금자리를 찾아 들어오는 문이랄까?



 

심용문(尋龍門)이 한세기가 지나도록 마모되지 않고 뚜렸하다.


 



 단학의 대가 봉우 권태훈선생의 소덕비



 목장승 "지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맞은 편에는 "천하대장군, 천하여장군"의 장승이 마주 보고 있다.



 구곡정가든 맞은편 축대밑에는 이곳 주민들이 때마다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지역으로 줄을 매어놓아 출입을 제한하는 소도가 보인다.



 구곡정가든 옆의 선돌



 가든 앞의 근래에 세워진 상신리(上莘里)의 유래비(由來碑)

유래비 전문 :  상신리란 지명은 신소(莘沼)위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소라 함은 길고 굽은 큰 못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속칭 "용둠벙" 또는 "가마소"라고도 불렀다.

이 신소를 중앙에 두고 위쪽은 "상신리" 아래쪽은 "하신리"라 이름 하였다.

옛날 이 마을에는 큰 사찰이 있었는데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다. 이것이 바로 구룡사지이다.

이 절터에는 현재 당간지주와 주초 그리고 부도대석과 탑재등이 있으며,

지명으로는 "법당골" "부도골" " 바랑골"등이 있다.

출토 유물의 내용으로 보아 백제 말기나 통일신라 초기의 창건된 사찰로 추정한다.

특히 이 마을에는 계룡산 동쪽에서 발원한 계곡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계곡의 바닥에는 온통 바위로 이어저 구비구비 비경을 이루는 곳마다 용산구곡이 새겨저 있다.

이 용산구곡은 구한말 취음 권중면씨가 명명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이 마을 입구에는 장승과 솟대가 세워저 있는데 이로 미루어

아직도 이 마을에는 "마을신앙"이 면면히 지켜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西記一九九二年十一月

公州大學校 敎授  韓相珏 엮음. 



 세속의 변화로 옛 영화는 자취도 없이 사라젔는데 당간지주만이 쓸쓸하다.

당간이란 절 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쫏는다는 뜻을 가진 당이라는 깃발을 달기 위한 깃대를 말한다. 현재 당간은 없고 지주만 외롭게 남아 당시의 영광과 번성함을 흔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있지만.

구룡사(九龍寺)는 신라와 고려시대에 걸처 번성하였으며, 사역(寺域)의 규모에 있어서 계룡산 최대의 사원으로 꼽힌다.

구룡사는 그  광대한 규모에 비하면 사찰에 관련된 기록이 전혀 없고, 폐사된 지도 오래됐기 때문에 번성의 배경이나 폐사의 이유 등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1980년대 말 공주대 박물관의 발굴잘업에 의하여 폐사 시기는 고려말 조선초로 추정되고 있다. 구룡사가 있는 계룡산의 골짜기는 "용산구곡"으로 불리며 이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금잔디고개와 맞닿는다. 



 이곡 음용담을 찾아 계곡을 따라 오르는데 용이 모습을 숨기고 있었을 법한 계곡이 보인다.



 바로 50m 계곡위에 二曲 음용담(陰龍潭) 하천 제방위 도로에서 잘 보일 위치에 놓여있다.

꿈틀 꿈틀 용이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이 그려진다.



 탐방안내소를 지나면서 잠간 생각을 해 본다.

계룡산을 탐방하는 등산객들이 상신리쪽을 기피하는 이유를 가만히 나름대로 판단해보니 첫째가 교통불편이다. 둘째는 주차시설 미비. 이 두가지만 해결되면 상신리도 꽤 좋은 등산코스가 될 것같으다. 우선 문화재 관람료 시비가 없다.



 매표소로부터 계곡을 오른쪽으로 하고 올라가다가 계곡을 건너, 계곡을 좌측으로 끼고 오르다가 등로 오른쪽의 건물(잠사)이 보이기 전 쯤 계곡으로 파고 들어야 한다. 7월의 계곡은 숲이 우거져서 음침하고 컴컴하다. 정말 당장이라도 새끼용들이 찾아 온 손님들이 반갑다고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 나올것 같다. 

 

 

계곡을 한참 파고드니 넓은 암반에 계류가 넘실대는 모습이 절경이다. 이곳이 三曲 와룡강(臥龍岡)이다.

용이 서서히 움직일 채비를 하는 곳으로, 용이 알에서 깨어나 백일 동안을 물속에 잠겨 있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곳입니다.

 


 너무도 선명한 와룡강



 자양산월동원만천(紫陽山月同圓萬川) 자양산 높이 뜬 달은 만천을 비추고, 백록담파방사류(白鹿潭波防四流) 백록담의 물은 넘쳐 사방으로 흐르네.



 



 용산구곡을 답사 할 때에는 가급적 6, 7, 8월은 피하고 비오는 날이나 그 다음날도 피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하절기는 우거진 숲 때문에 계곡안이 어두워서 세월에 마모된 글씨를 제대로 판독하기가 쉽지 않고, 우기에는 물을 머금은 바위위의 글씨를 어둠과 같이 판독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모처럼 답사길에 올랐다가 살아있는 글 자체도 제대로 판독을 못하고 돌아 가서야 되겠는가? 따라서 문외한이 미비한 자료로 혼자 와서는 고생만 할것이다.

 

四曲 遊龍沼의 글이 거의 완벽하다.

용들이 여유를 갖고 편하게 쉬고 있는것 같은 분위기...둠벙 저 끝에서 살짝 눈만 내 놓고 왜 인간들은 이렇게 시끄러워 하면서 호통칠것만 같아 재빨리 5곡을 찾아 간다.

 

황태자님이 가을철 답사 때 촬영한 사진...이렇게 판독에 차이가 납니다.

 

 


 

오곡 황용담(黃龍潭)입니다. 용산구곡중 제일 아름다운 곳으로 알고 있는데 07년 7월 8일 현 시점에서는 그저 그렇군요. 날씨의 영향이 대단합니다. "弓山을水湖西第一  山水太極岩"이란 글이 있으면 오곡입니다.



 이바위 오른쪽 나무가지를 치우면 약 2m~2.5m사이에 오곡이란 글이 보입니다.



 커다란 둠벙이 있어 가을이 되어 단풍이 지고 하면 역시 제일 아름다울것 같네요.

용이 구름위를 올려다 보며 하늘에 올라갈 계시를 은근히 기다리는 둠벙입니다. 용은 100년을 땅에서 살다가 하늘의 부름을 받고 승천한다고 한다. 구름위로 승천하는 다른곳의 용을 부럽게 바라보는 곳이 5곡입니다. 꿈틀대는 용들을 보면서 6곡으로 향합니다.



 저 바위위에서 웅성이는 것을 보니 6곡을 발견한 모양입니다. 작은 폭포가 장마철인 지금은 제법 많은 수량으로 폭포다운 흉내를 내지만 장마가 지나면 언제까지일지...

 



 육곡(六曲)



 견룡대(見龍臺) 

곳은 위치가 협곡으로 우천시 수량이 넘치고 폭우시에는 돌과 함께 바위에 음각된 글이 마모되기 쉬운 곳으로 견자만 겨우 보이고 대자는 거의 마모되어 찾을 길이 없다. 구곡으로 들어선 용이 차츰 영산의 정기에 적응하고 하늘로 오를 채비를 하면서 계곡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황룡의 거처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두어마리의 용이 준비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7곡으로 올라갑니다.



 칠곡은 지금까지 등산로를 우측으로 하고 올라왔는데 6곡을 벗어나서 바로 등산로를 가로질러 이제부터는 등산로을 왼쪽으로 끼고 진행합니다.

계곡을 따라 5~6분 진행하면 커다란 공을 반 잘라서 세워놓은 듯한 바위가 있는데 7곡이란 글은 이 바위에 있고, 운룡소란 글은 약 10여m 좌측위로 높이 1m정도 되는 바위에 암각되어 있어 자칫 지나치기 쉽다.

 



 七曲 운용소(雲龍沼)     운룡소 글이 새겨진 바위앞에는 좌대를 만들어 놓고 누군가 수련을 쌓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신비의 구름에 쌓여 서서히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八曲 비룡추(飛龍楸)   점점 상류로 올라가면서 계곡이 좁아지고 수량도 줄어든다. 약 5~6분을 가면 어두운 회색 바위가 있는데 암각된 글씨가 깊지를 않고 색도 어둔 회색계통이라 주의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놓지기 쉽상이다. 글씨의 높이는 성인 머리 높이에  글자의 크기는 손바닥을 펼친정도이다.

느낌표님이 이 팔곡 비룡추를 찾아 구곡과 칠곡사이를 몇번씩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발견한 그 기쁨은 가히 알만하다. 올라오면서 보면 확인하기가 매우 어려워 그냥 지나쳤었나 보다. 8곡은 내려가면서 확인하는 편이 쉽다고 하니 참작하시기 바란다. 계곡물만 확인하느라 그냥 지나쳤던 바위가 비룡추라는 사실을 모르다가 다시 내려가면서 보니 용자체가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을 꼭 닮은 모양이다. 백년수도 끝에 승천하는 용을 사람들이 보고<용이 하늘로 올라간다!!>소리치면 이내 땅에 떨어져 다시는 하늘로 못 오르는 이무기가 되어 평생 을 땅에서 살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九曲 신룡연(新龍淵) 용산구곡(상신구곡)의마지막인 신룡연에 도착한다. 절벽 바위밑으로 소가 있고 절벽바위 위로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용산구곡으로 들어온 용이 승천하고 남은 흔적의 모습니다. 신비롭고 때로는 거대한 몸부림으로 폭풍이 치고 비 구름 몰아치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고 먹그름 사이로 햇살이 내려 비치는 고요한 적막감이 이 신룡연의 조그마한소에 담겨진 모습이다.

아~~이렇게 용산구곡의 막은 내려진다.



 승천하는 용의 흔적을 찾아 헤매느라 지친 답사팀 여러분이 계곡에서 점심을 들며 각자 자기도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상상을 해 보았을까?

 

식사를 끝내고 오후답사를 위해 금잔디고개를 향하여...
전편 용산구곡은 여기서 마감하고 이부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