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승지를 가다 - 계룡산 유구, 마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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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 2일


혼자서

  

  

 

 

 산행지도

  

  

정감록의 십승지에  일곱 번째  공주 계룡산 기슭 유구(維鳩)와 마곡(麻谷)사이 둘레 2백리
나 되므로 난을 피할 수  있으며 머지 않아 무능하고 부패한 이씨왕조는 멸망하고 계룡산에
정씨의 새 왕조가 탄생한다,   그 때의 개국공신과 새 시대 역군들은 모두 태백과 소백(즉
십승지)출신이다,   이 사실을 알고서 자손을 양백(십승지)에 살게 해야 한다라고 십승지의
목적을 정감록은 기록하고 있다,

  

  

속리산의 증항이 비록 길하긴 하지만 먼저 망하고 나중에 사는 만큼 나중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   어찌 꼭 증항뿐일 것인가?   가까이에 있는 땅 역시 좋다,  산(山)과 선(仙)사
이에는 기근이 들어갈 수 없다,  

  

  

작은 시내에 모습을 숨기는 것이 어떨까?   만약 그 땅에 들어가거든 협자촌을 찾을 일이
다.   여덟 가지 물걸이 장생하여 사람을 안고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살아나거든 돌아와서
다음으로는 유구, 마곡을 물을 일이다,   황간. 영동 사이에는 가히 만가호가 살아나고  청
주 남쪽과 북쪽 역시  가히 모습을 숨길 수 있다,  옥천과 진삼은 간혹 별이 비친다라고 서
계이선생가장결은 기록하고 있었다,

  

  


유구 소나무 하늘

  

   

"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산을 오르는 산꾼이라면 몰라도 난 전날 동대교에 오는 교
통편을 알아보던 중 "고마운 분"을 만났다.  우성면 농협앞에서,  우성면에 대한 방대한
자료을 가지고,  마중을 나와 동대교를 지나 묵방산 입구까지 배웅해 주시고 가셨으니,

세상엔 고마운 분들도 많다.    지난 지리산 운봉구간에서도, 늘빈자리님의 배려로

쉽게 덕두봉을 오를 수 있었다.

  

  

  넓은 길위에서 낙엽밟는 소리가 사각거린다.   앞으로 우린 어떤 에너지를 쓸까?   인류의

삶은 에너지가 만들어 낸 크고 작은 발명들로 숨 쉬고 있다.   전 세계가 이용하는 석탄과

석유 양은 십만 년 동안 태양에너지를 받아 지구에 축적한 양과 맞먹는다고, 하니 머지않

아 화석연료도 고갈될 것이 분명하다.   길옆에 널려져 있는 나무들이 내 어릴적만 해도 가

장 소중한 땔감이었는데 말이다.
,  

  
 천연가스, 태양에너지, 풍력, 2차전지, 지열, 조력 등 미래의 대체 에너지를  개발 해야

할 것이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공주 산골에 굴뚝연기 피어나는 집이 몇 집이나 될까?  
 집집마다 기름값이 아까워, 냉냉한 바닥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시골어른들이 온돌방을

나보다 더 그리워 할 것이다.

  

  

묵방산

  
 

방흥리 먹방이란 마을이, 묵방이라고도 부르며 우성면사람들은 이 마을을  선인독서형의 명
당이 있다 해서, 먹방산에서 따온 마을 이름이라고도 부른다.   폭신폭신한 나무계단을 오르니

묵방산이다. 

  

 


묵방산 정상

  

  

정자에 앉아 오늘 시작하는 이 산에서  파란 하늘아래 펼쳐진  산릉에 불어오는 소슬한 바
람결따라 내마음을 문질러 본다.    움츠렸던 마음을 열고 점점 식어가고 있는 산에 대한
열정이 자꾸만 앙앙불락되어 가는건 아닌지 말이다.

  


묵방산 산불감시초소옆 삼각점370.2에서 진행할 방향으로 길이 없어 한참을 왔다갔다 하다
가 하는 수 없이 앉아서 이럴 땐 어떡해야 하나,  "산박사한테 전화해볼까,  아니면 하늘님
한테 안테나를 돌려볼까?" 하면서 돌아서 임도로 내려와 다시 산릉으로 붙는다.  밤나무숲
이 있는 삼각점273.4봉에서도 길은 없었다.

  

  


구절산 정상

  

  

구절산까지 가 보았다,   잡풀이 우거진 빈 공간이다,   되 돌아 나와 한참 공사중인 구룡사
에 닿았다,    고즈넉한 품속에 자리잡은 구룡사에서 바라보는 앵자봉과 칠갑산이 하늘 끝
에 지평선을 만들고 있었다,    정겨운 돌탑, 빈가지에 대롱달려 있는 홍시, 돼지바위위의
삼층돌탑,  아늑한 구절산 아래 앉아있는 마애불상은 다소곳 내마음에 스며드는 소리를 냈
다,

  

  



구룡사에서 본 칠갑산(뾰족한 중앙에삼각산)

  

  


마애불상

  

  


돼지바위와 삼층석탑

  

  

어스럼한 저녁 해가 칠갑산 너머로 사라진다.   찬 날씨가 나그네 가는 길 애달파라,, 
 목을 축이고 잠시 쉬어가려 했는데 반갑게 맞아주신 스님과 증축하고 계신 분들의 푸근함
에 밤늦도록 그곳에 머물러 구룡사에 또 다른 애틋함을 묻고 입동리 할매보살님 집에서 이
른 아침을 열었다.

  

  

군불 땐 온돌방과 살언 동치미가 아침밥에 입맛을 부추겼다.    할머니의 정성스런 보살핌
이었다.   달 지고 해 떠오르는 시간 굴티고개부터 산길을 이었다.    스스로 마음이 평화
로워진다.  아늑한 산길, 가도가도 끝이 없는 낙엽길, 한발짝 내딛는 푹신한 발자국 너무 깊
어서 있는 힘을 더해 깊이 걸어야 했다. 

  

  


멍덕봉(지도상 명덕봉표기) 정상


 

  

공터에 낙엽이  쌓였다.  산봉우리 모양이 마치 벌멍덕과 비슷하다 하여 붙혀진 멍덕봉이었

다.    정상 한가운데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봉분위에 빈가지들로 그리 크지 않은 나무가

 망자의 애달픈 사연에 내 마음 더 쓸쓸해진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아지리라,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나그네 왔다 간다고 내 표지기 하나를 옆 나뭇가지에 걸었더니

 나풀나풀 춤을 춘다,   

  

  
올해는 유난히 혹독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미국발 모기지론에서 비롯하여 주택가격과 글
로벌증시는 폭락하고 유가와 금, 환율은 폭등하는 등 미국 거대 은행이 파산하였으며, 지금
세계경제는 한없이 추락하여 우리는 심한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는 짐대울고개 는 내
가 걸어온 고개이고, 산골짝 쌍대리 한석골 저 아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스산
한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안흥진으로 이어가는 금북정맥

  

  

  

안성 칠장산에서 내려온, 저 산줄기가 태안반도 안흥진까지 뻗어가는 금북정맥이라 했다.   
밤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걸어온 길들을 지나면 저 416봉까지만 가면, 길은 훤히 나 있을꺼
고, 나풀거리는 표시기를 보면서 걷는다면, 수월할 터인즉 빨리 달려가고 싶은 맘 자꾸 재촉
한다.

  

  

그랬다.   헬기장위에 잡풀이 무성히 난 한 가운데서 안흥진으로 내려가는 산줄기를 버리고,
내가 살던 곳 "이빨빠진 산 추암산", 성거산을 넘어 칠장산으로 올라가다 가다 보면 속리산
천왕봉이겠다.   어릴적 소풍갔던 그 산도, 무던히도 달달거렸던 멀고 긴 산줄기 백두대간을

걸어온 길들도  굽이굽이 고동색으로 물들어 떨어진다.    "정감록에 예언된 십승지"는 모두

백두대간이 낳은 명당들이다.

  

  

  



국사봉

  

  

십자가가 저 멀리서 가늘게 보인다.   국사봉이다.    몇미터 더 걷다보면 이름표를 달고있
는 산 그리고 삼각점이 낙엽에 예쁘게 내밀고 있으니 448.7봉이랬다.   떨어진 낙엽을 베게
삼아 하늘이불 덮고 누웠더니 소나무비단 이불이 또 있었다.    예전에는 이처럼 물씬 풍겨
오는 산내음을 몰랐을까,   귀를 기울이니 해 떨어지는 어두움에 걸망끈을 조였다.

  

  
눈썹달이 유구 하늘에 노랗게 떴다.   달님옆에 별 두 개 유난히 반짝거린다   초저녁에는 눈
에 익은 별자리가 안 보이다가 한밤중에 조금씩 보인다 했는데 북극성, 북두칠성, 카시오페
리아 자리가 모두 어데 있는 걸까,   밤이 점점 깊어지면 남쪽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어두
운 산속이 고요할 대로 적막강산인데 오늘따라 별들에 진리가 궁금해진다.

  

  

  


장학산 정상

  

  

장학산쪽에서 맷돼지 울음소리인지 산릉을 "으르렁 으르렁"울린다.   숨을 쉬는 소리인지
우는소리인지 내 귀론 구분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무서움과 두려움이 이렇게 홀로 걷는 공포
가로 엄습한다.    하필이면 내가 가려는 장학산쪽에서 들리는 걸까.   마음을 가다듬고 살
살걸어 가보자.  맷돼지가 파 놓은 곳을 보니 소름이 끼친다.   홀로인 내가 왜 그리 산
넘어 산인지 몰랐다.    "무서운 장학산"으로 기억되리다.

  

  

  

  

2008년 12월 29-31일

  

가진, 칼용담과 함께

  

  

  

  

십승지 산행에 기껏이 동참하겠노라 응하면서 영화의 콘티처럼 짜여진 대로,  감독 주연배우 요물, 

조연배우  칼용담 가진  아,, 시나리오도 요물이다.  눈싸인 차동고개를 배경으로  출발하는 씬, 앞서

가는 칼용담, 요물의 뒷모습은 마사이의후예처럼 용맹스럽게 간다.
.

 

  

  


 

  

공주유구의 산하는  작은 구릉들을 이어 붙여서 만들어 내는 밋밋한 산들이다. 빼어난 경치

도 힘찬 폭포도 골 깊은 계곡도 없다.  우리가 늘 마주하는 풍경들이다.  산 위에서 보는 저
멀리 명곡 저수지가 배경이 되어 시야를 즐겁게 해준다.
 



 밤에 휘뿌렸나 보다,   산이 온통 겨울 풍경으로 바뀌어 나무들은 알몸의 가지만으로 겨울
앞에 섰다,   언제인가 이렇게 삭막한 모습으로 겨울을 나야 하는지 벌목을 해 놓아 가지런
히 놓인 나무무덤도 제법 눈과 함께 어우러진 환상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산꼴짜기의 깊
숙한 곳 명곡저수지를 바라 보면서 예전부터 쌓아 온 오늘의 우정이 메아리쳐서 산으로 묻

게 한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으리라!   가진이와 칼용담 우리 셋이는 같은 고향 같은 학교를 9년
이나 다녔으면서도 같이 산행해 본게 난생처음이다.   같은 곳에 어린 시절 뛰놀던 학교와
 즐겁고 아름다웠던  추억이 있었다.  

  

  

 그 땐 철부지 소녀로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카락을 돌돌 감아서 뽀글뽀글 파마머리 만들어

얼른 되고 싶었었는데 벌써 삼십년을 훌쩍 넘어서 이렇게 산정에 같이 섰다.    보라빛나는

복분자 막걸리로 오늘의 달콤한 향기를 고이고이 간직하게 되리라.   

  

  



  

 고개도 많고 산언덕도 많다.   구비구비 호흡 내쉬며 오르막을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다 보
면 아늑한 곳을 찾아 쉬어가야 하는 그런 산릉이 그리울 때가 있다.   바람불고 흰눈 내리
는 오늘 같은 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쉬엄쉬엄 산그리메 그려야 하는데 갈 길이 너무
멀어 발 길 재촉하는 내 마음까지 깨어지는 기분으로 미안스럽다.

  

  


 

 신갈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굴피나무중 나는 확실한 구
분이 되지 않는데 같이 걸으면서 가진이가 떡갈나무 이파리와 굴피나무의 모양새를 설명
해 준다.   난 떡갈나무가 높게 자라는줄 몰랐었는데  굴피나무인 줄도 몰랐는데 아아 !!
그렇구나,   극정봉을 알리는 나무에 더 많이 묻어두고 싶어서인지 가진이는 한참을 거기에 그
렇게 서 있었다,,

  

  

  



  

 눈이 있고 친구가 있어 금상첨화다.    억새위에 피어난 눈꽃도 솔잎에 앉은 눈꽃도 모양과
크기가 다르지만 저 친구들만큼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어 자꾸만 산의 부름에 먼
길 마다않고 오지 않던가.    우린 지금 눈내린 십승지 열차를 타고 봉수산, 각흘고개, 무성
산을 향해 자꾸만 달음질 쳐댄다.

  

  

  



  

   우리의 산행이 위대한 전사자도 되고, 유명한 명배우의 명연기도, 인간과 자연의 있는 그

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바람이 우스스 거리고, 눈발이 볼을 스치고, 구름이 온

산을 뒤덮고, 햇빛이 쨍하고, 다시 눈꽃이 날리는 숨바꼭질하는 모습에 심심치 않다.

 

 

 

산행 중반을 넘어서, 천성산을 기점으로 내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내려오는 길이 어
찌나 미끄러운지, 쌓여 있는 눈이 야속하다. 발끝에서 팅겨나가면서, 오금이 저려온다. 비탈길
의 저나무들은 누워 있지 않고, 꼿꼿하게 한 서 있는 것은 바람의 방향에서 따라서, 각도가 이
루어 진다고 한다. 저 절벽에 서 있는 나무의 방향을  보면서 너무나 똑같아서 각도기 가지
고 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자연의 숙연함에 덤비는 꼴이라니.

 

 

 

  


  

  

  

간간히 설치돼 있는 봉우리의 의자엔 하얀 눈이 쌓였다.    유난히 이 길에 더 많이 묻어두고 싶은 곳

정감록의 십승지를 보면서 지도위에 산길을 그리고 공부하며 산행하여 가고 있는 - 십승지를 가다 - 가

오늘따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쌓인 눈에 내 바람만큼이나,  많은 열정을 이곳에 적어

 보련다.

성급히 몽오리진 진달래가 한겨울 나게될 추위를 어떻게 견뎌낼지 궁금하다.

  

  



  

 

겹겹이 둘러싼 산릉 하늘아래도  산기슭 비탈에도 벌거벗은 가지의 나무들도  하얀 바탕의 경
사면 천지에도 순백의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먹구름낀 온통 회색빛 공간에 간밤에 내린 눈

을 담뿍 안고 있는,  빈 하늘금이 맞닿아 있는 산릉이, 그림처럼 펼쳐 봉수산가는 길, 더 눈부시게

해준다.

  

  

  

  다시 봉수산을 보면서 떨어지는 고도를 다시 올라가야 하는, 저 봉우리가 한 숨이 앞서지

만 가야 할 콘티가 아닌가,  조금씩 경사면을 오르는 난, 산꾼들을 존경하고 싶어진다. 어쩜 산

길을 이리 잘 만들었을까? 산의 가장  부드러운, 가장  좋은 길을 만들어, 나의 힘듬을

 나의 앞선 공포로 부터 해방시켜준다.


 

  



 봉수산 정상

 


 

  간간이 보이는  벤치는, 맘으로 쉬면서 봉수산의 부드러운 봉우리는 자꾸 멀어지고, 내려오

는 경사면은 날 붙잡는다. 낙엽이 쌓인 겨울산이 외롭지 않게 친구하면서, 각흘고개를 향해

서 전진,,,    해가 떨어지면서, 푸른 빛의 눈이 고요하다 못해 을씨년스럽지만, 그 고요함이

여짓느껴보지 못한 새로움이다. 그 새로움이 산행의 묘미를, 요물은 날 행복의 바이러스로

 전염시킨다.


 


   하늘엔 별들이  해드랜턴과 마주하고 내려 내 발에 써치라이트로 밀려든다. 지나 온  많

구릉과 이름모를 나무에 무대포로 들이 밀어 놓고, 혼자 나가 떨어진 꼴이 발 밑의 돌맹
이 만도 못하다. 

 

앞서 가는 칼용담은 전사의 후예처럼 용맹스럽다. 난 조심스럽게 내려 온 나의 발, 고드름이
달린 신발끈이 너무 처연하다. 다하지 못한 산행을 뒤로 하고 오렌지빛 가로등 뒤로 오버랩
된다.


 

  

 하루가 가고 있었다.   구름속으로 하얀 눈이 휘날리기도 하고 햇살이 들어오는 햇 따사함
안고 올랐던 하루의 산릉에 어두움이 오고 있었다,    봉수산에 올랐을 때 소나무에 가득이
고서 있는 푸르른 하얀 눈이 산골 마을 높은 산 풍경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담아 내려서
는 비탈길에 낙엽위에 깔린 눈이 얼어 붙어  고이 정성을 들여야 내려올 수 있었다,


 

  

미끄럽고 더듬적거리며 올랐던 산행에  유난히 힘들어했던 친구가  각흘고개에 내려왔을 땐
"내 발좀 찍어주라"하는 모습이 더 단단해 보였다.    어두움속에 한 밤중 싱싱 달리는 차량
아무거라도 태워주면 좋으련만,    그랬다.   기나긴 기다림에 우린 악성종양으로  3일밖에
못산다고 시한부 진단을 받고 유구에 내려와 살고 있다는 아줌마의 배려로 쉽게 유구로 올
수 있었다.

  

  

  

어느 식당에서 먹은 순두부와 청국장은 직접 주인이 만들어 장을 지졌다니 이보다 더 고소한

맛이 오늘 나눈 산행보다 더 진하게 입가에 번졌다.     우린 영롱한 보석 하나씩 달고  내

려선 것처럼 산릉에서 누볐던 이유를 더 많이 묻고 싶었는데, 한 친구가 아쉬운 마음을 머금고

천안으로 가야하는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따뜻한 온돌방에서  차갑고 시린 눈을 녹아내리는 듯 함께 밤을 보내고 싶었는데,,, 

  

  

  


광덕산 가는 길

  

  


금북삼거리


 

갈재고개지나 한참 고도를 높여 코가 땅에 닿기를 번복하여 오르니 고만고만한 산이 들어
온다,   왼쪽으로 칠장산으로 가는 금북정맥을 보내고 우린 오른쪽으로 십승지를 따라 태화
산으로 오른다,   600고지 산릉에 어렵게 오른만큼  둥굴둥굴 솜털처럼 피어난 낙엽진 산릉
지평선 너머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워준다,

  

  

  


태화산 정상

  

  

유구.마곡 십승지중 가장 높은 태화산(도면상 646.2M)의 마곡사는 널리 알려진 대로, 백범
김구는 1898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마곡사를 찾아 들어가 머리를 깎고, 약 반년간 머물렀단
다.   즉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군 장교를 죽인 다음, 이름을 바꾸고 승려 노릇을 하며,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천수심경들을 외우며 지내다 백미 열 말을 받아 떠났다는, 백련암이 유명
하다고 한다.

  

  

  

도선국사가 절을 중수하면서 "유구와 마곡을 흐르는 두 물 흐름 사이의 지역은 천명을 살

릴 수 있는 곳으로, 가장 무서운 세가지 재앙이 들지 않는 곳"이라 지목했다는 전설이나,

정감록, 택리지 등, 지리적 특성을 주목한, 나라의 전란과 같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일대의 많은 사람들이 피난처로 삼았고, 백범 김구도 마곡사를 피신처삼았는지

 모른다고 사곡면사람들은 말하고 있었다.


 


 



  

  

 

  유구는 나의 할아버지께서  낙향하신 곳으로 마곡사에서 말년을 보내신 곳이다. 아직도
 정안면 사곡리 선산에 계신다.  언젠가 할아버지 유품속에 기행기를  보여 주신 울 아버지
 대단하다고 할아버지를 추켜 세우셨다.
 

 

 

 

 

 

 가진 할아버님의 유품중에서

 

  

  

  

울 할아버지는 쉰 두살에 떠난 여행기의 제목 " 遠遊" 한 쪽을 넘기면 "路程記" 라고 쓰여
져 있다. 소 제목으로 "北行"  정축년 사월 십오일 조치원에서 친구와 동행하고 영등포에서
방적공장을 구경하고 나오셔 식당에셔 요리 하고 인천행 열차에 올라 오류동 신설공원에서
유희장이며 주안역전에서  상인천역에 도착하야 두로 구경하고 여관에 들어 융숭하는 대접
을 (정축년은 1936년),,,,,,,,,,, 그 다음은  한자를 몰라서 더는 못쓰겠다.  울 아버지의 말로
친구와 함께 인천 경성을 구경하고 오신 거라고 하는데, 당체 읽을 수가 없다 정자도 아니고
흘림체로 쓰여져 있다.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훌륭한 유산임을  새삼 느낀다.

 십승지에 걸 맞는 금강과 넓은 들, 마음을 정화하는 마곡사가 떡 버티고 있는 유구이다.

 유구의 산들이 높지 않아도 여름이면 계곡의 물이 맑고 깨끗해서, 많은 사람들의 피서지가

 되곤 한다. 마곡사위에서 흘러 내리는 상원골계곡, 길 양옆에 늘어선 돌탑들이 셀 수

 없이 늘어서서 길손을 환영하고 있다. 누구의 손길인가? 

 

 

 

 

* ***빨간 글씨는 동행한 친구 가진이가 쓴 산행기**** 

  

  

  

  

 

  


해월리

  

  

  

난 직접 명당자리라고 하는, 이곳 사곡면을 가 보았다.    마곡천이 흘러  유구천과 합하여

 평지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사방 높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철승산을 주산으로

  동으로 뻗은 줄기가 호계초등학교 뒤까지 내려가고, 동남쪽으로 뻗은 다른 한 줄기는

 동네를 둘러 싸면서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다하여 해월리를 명당길지로 꼽은 이유라 했다.

  

  

그 사이를 흐르고 있는 유구천과 마곡천은 뱀이 지나가는 것처럼, 구불구불한  사행천을 이루고

 특히 유구천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면서 요대(腰帶)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다하여 명당이라고

사곡면지에 쓰여있었다.

  

  

발길을 호계리로 향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 깊숙히 소나무 우거진 산 언덕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 있는, 충효사를 찾아 보았다.  단종때 충신 정분의 손자며느리의 송씨 부인으로 인
하여 晋州 鄭씨의 뿌리를 내린 호계리와 활인봉아래 생골일대에, 한국전쟁때 많은 피난민들
이 몰려와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는, 운암리나 "금계포란"형의 월가리나 하월리라는 이름을

드러내놓고 풍수를 자랑하는 명당골이 다 사곡면의 명당이라 말하고 있었다

  

  

  


충효사

  

  

  

  사곡면에는 유숙할 여관,찜질방이 없는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마곡사에서 하루밤을 자고 남은
산행을 하려 했으나, 마곡사에서 재워주지 않는 다는 대답을 받고, 뒤돌아나와 하는 수 없이
사곡다방에서 주인의 배려로 따뜻한 마지막 날을 보낼 수 있었다.   허지만 남은 거리와 시
간을 생각해 택시를 타고, 마곡사에서 첫차로 기름재를 가려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아
결국 두 번의 택시를 타고, 이른 아침 길을 열었다.

기름재에 짖어대는 개는 얼마나 짖어대는 지 능선을 한참 올랐는데도, 온 산을 뒤흔들어 깨
우고 있었다.   

  

  

  


갈미봉

  


 

 억새가 내 키만큼 크게,  흔들어 깨우는 반가움에, 너른 헬기장에 서니, 어느 먼 곳의 그리

움이, 반가운 소식을, 흰 눈이 깔린 법화산, 극정봉 봉우리가 한밤 소리없이 흩날린 눈이

 절규처럼 불러 세운다.   옹기종기 재각각 모양을 이고 사는, 그들이 서로 다를지라도, 나에

게 보여주는 사뭇다른 생각이, 나를 압도한다.

  

  

  

  


봉화대


 

  

멀리 서대산이, 날 불러 한숨 쉬어가라, 큰 봉화대는 널른 바위를 달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뉴욕의 상징물이었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바라다 보는 높이는
아닐지라도 굽이굽이 헤아릴 수 없는 희미한 산릉을 한껏 뽐내고 있는, 가장 전망좋은 곳이
다.   안개가 자욱하면 어떠랴 또 다른 구름색을 마음속에 담으면 되지,,,

  

  

  



  

  


홍길동성

  

  

  



  

  


무성산 정상 과 홍길동성

  

  

홍길동이 왜 무성산에 와서 웅거했을까.  어느 곳에도 뚜렷한 해답을 얻어 낼 수가 없는, 내
의문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4m의 오래된 성에 쌓아 놓은 돌답이 헐벗은 나무그늘아래 햇
살을 드리운다.   613.5높이의 이 산에 안내도가 예쁜 그림첩처럼 이정목을 알려준다.   오
면서 무성산가는 방향을 갈켜주었던, 공주시의 이정목은 이름표만 달고 있을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바람따라 싱싱울려 대는 통신시설이 한적한 산릉에 흥을 돋운다.

  

  

  


 홍길동굴

  

  

무성산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으로 이정표따라 내려서니 굴속은 확인이 되지 않을 만큼

무너져 내려 굴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홍길동이 이 산에서 은거하며 탐관오리와 토호들을 못살

게 하였다 전해지는 전설이, 신빙성이 있을지 몰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무계단을 처벅

처벅 약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갈미봉 못가 약산으로 가는 길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 하는 수 없이 성곡사로 내려와 임도를

따라 오른쪽 산릉으로 따라 붙어야 진행할 수 있었다.   성곡사의 유별히 많은 좌불과 와불을 모

신 절로  인상적이었다.  

  

  

  



  

  


성곡사

  

  

약산오르는 길은 고도도 많이 떨어져, 200고지 산릉주변에는 사람이 다닌 흔적이 언제 였는지,

길은 있으나, 잡목이 자라 가시에 걸리고, 바삐 걸어온 힘겨움인지, 무겁게 무뎌진다.    배가

고파 약산을 오를 수 없을 것 같아, 양지바른 곳에 지나온 성곡사위에 마루금을 쳐다 보면서 "저

어야 하는데~~"중얼거리면서 아뿔샤 그래도 잘 왔구나.

  

  

  

  

쵸코렛 하나를 입에 무는 순간 깜짝 놀랬다.    나도 모르게 불쑥 일어나 뒤를 돌아다 보니, 큰 고라니 두

마리가 뒷다리를 박차고 도망쳐 사라진다.    어쩜 이리 갑자기 나타나, 날 놀라게 하는 걸까,  이 얕은 산

에 도망가는 고라니가, 얼마나 살이 쪘는지 잽싸게 사라지는 고라니를 보니,  무얼먹고 살았길래

한겨울, 살이 둥실둥실한 몸를 치고 달아날까,,    

  

  

  

아마 초쿄렛 냄새를 맡고, 지들도 모르고 달려왔다가, 나를 보고 도망쳤겠지,,,, 어느곳에 갔다 왔는지 또 한

번 날 놀라게 하곤 사라져 버렸다

  

  


약산 정상

  

  

  약산에 자리잡고 있는 묘가 있었다.     양지바른 약산에 떨어지는 햇살이,  한겨울 따사롭게 들어온다.

더 나아갈 수 없는 봉우리의 끝자락에서, 서로 다른 색깔, 서로 다른 무늬를 달고 있는 산릉과 산정에

얼굴 한쪽에 발갛게 달아 오른다.    겨울을 이기며 살고 있는 산도 겨울의 긴 잠에서 깨어나면 잎을 피

우며 색깔을 내듯, 나도 내 마음따라 열정을 솟았던, 이 산을 내려가면 또 다른 색깔을 그리겠지.

  

  

공주시에서 경계선을 따라 내려 오면서 내가 걸었던 해월리와 호계리, 바로 산아래

둥지를 틀고 있는 화월리를 사진을 담으려 애를 썼으나, 또렷한 마을을 찍을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몸

소 느끼며 걸었던, 그 흔적만을 마음속에 담아 두기로 했다.   대전-당진간 고속도로가 거의 완성되어져

가는, 산언덕 넘어 떨어지는 해는, 유구천에 은빛화살로 내리쏘고 있었다.


 
 



  

  

유구천의 수구가 꽉 막혀 있어 풍수적으로도 길지에 해당된다는, 통천포로 휘돌아 나가는 방둑

위 묘도,  명당자리라 하여, 가끔씩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고, 통천포 휴게소의 아주머니는 말하고

 있었다.

  

  

정감록에 수록된 십승지중 열 곳중, 가장 긴 산줄기로 둘러 쌓여 있는 유구, 마곡 이백리길 고리(環)종주

를 걸어 내렸다.   넓은 평지와 유구천의  사이로 마을을 이루고 있는, 동네마다 명당길지로 분명한 이유

를 달고, 실제로 전란이 있을때 피난처로 삼아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이 곳,   60, 70년대엔 인조공

장이 유일한 제조업 공장으로 면소재였는데, 지금은 중국산으로 밀려, 많이 낙후된 모습이 쓸쓸

하게 느껴진다.

  

  


한 달 전, 동대교를 넘어 걸었던 묵방산이 그림자처럼 비쳐지는 그리움따라 유구천의 옥색 물결이

굽이굽이 흘러가겠지,,,, 금강을 따라 저 너머로,,

  

  

산행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