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록>

강촌교앞 육교 - 등선봉(632m) - 삼악산갈림길 - 석파령 - 계관산 - 단군성전 - 성황당(버스정류장)

   8:15                 9:40                     10:30           11:00      13:40       14:40          3:15 


 

봄향기 어우러진 종주길


 

  꽤 오랜 시간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삼악산에서 계관산 능선길을 실행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던 중 등선봉 코스를 찾아냈다. 삼악산은 조망의 명품코스라 벌써 몇 번이나 방문했던 산이었는데 등선봉에서 삼악산으로 능선이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산행의 시작을 강촌으로 정한 것이다.

  강촌으로 가던 4월 22일 일요일 아침은 화창했다. 도상거리가 만만치 않아서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포천에서 현리를 지나고 춘천방향의 46번 도로를 만나는 검문소 삼거리, 아침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섰다. 곰탕집이다. 아침 7시쯤인 이른 시간인데도 식당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지나가는 길에 아침을 해결하려고 몇 번 들렀는데 매번 상황은 비슷하다. 한참을 기다려야 주문을 할 수 있고 간신히 곰탕 한 그릇 청해서 들고 나면 계산하려고 또 기다려야 한다. 그럼에도 다음에는 또 이 집을 찾는다. 국물맛이 괜찮기 때문이다.

   가평역 앞에 차를 세웠다. 산행이 끝나는 가평군 목동리에서 가평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인데 원래는 기차를 타고 강촌역까지 갈려고 했는데 춘천 가는 버스가 강촌에서 정차한다고 해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춘천가는 버스는 수시로 있었기에 버스터미널에서 강촌까지는 금방이다.

  8:15

  강촌교앞 육교를 건넌다. 육교를 건너면 등선봉 오르는 길이 보인다. 처음부터 급경사다. 앞서서 아줌마 부대 한 팀이 헉헉대며 경사를 오르고 있다. 북한강과 건너편 강촌역이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 후 여러 기의 돌탑을 지나고 나면 능선에 올라선

<북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능선길의 진달래>

 본격적인 암릉이 기다리고 있다. 바위길 사이로 피어있는 진달래가 예쁘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던 그 진달래꽃을 두견이의 전설로 인해 두견화라고도 하는데, 두견이는 목구멍에서 피가 날 때 까지 밤낮으로 운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가 아침에 그 새의 첫 울음 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은 곧 그의 연인과 헤어지게 됨을 의미한다는데...

  신라 성덕왕 때 미인 수로 부인은 강릉 태수로 부임해가는 남편 순정공을 따라 강원도로 가고 있었다. 따뜻한 봄날에 일행은 가다가는 쉬고 쉬다가는 가는 것이 어느덧 한낮이 되자 냇가에서 점심을 먹게 됐다. 그때 절벽에 현란하게 핀 진달래를 보고, 수로 부인은 따라온 하인에게 그 꽃 한 송이를 따오라고 명했으나 발을 디딜 곳이 없는 절벽이라서 누구도 엄두를 못냈다. 마침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한 노인이 부인의 말을 듣고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을 기어 올라가 진달래를 꺾어다 주고 다음과 같은 헌화가를 지어 바쳤다고 한다.

  "자줏빛 바위 끝에 잡아온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등선봉 직전의 암릉길>

  9:40

  등선봉 정상(632m)에 섰다. 강촌육교에서 암릉을 통과하여 정상에 오르기까지 1시간 25분이 소요되었다. 진달래에 취하고 바위틈위로 우뚝 선 소나무의 장관을 감상하느라 여유를 부리기는 하였지만 위험한 구간도 존재한다. 외줄을 타고 바위를 오르기보다 우회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특히 겨울산행 때는 조심할 일이다.

  대체로 길은 잘 나 있다. 건너편에 바라보이는 삼악산을 향하는 길도 뚜렷하다. 능선을 따라가면 삼악산으로 이어진다. 삼악산과 계관산 갈림길이 있는 청운봉으로 가는 길에는 산성터가 나타난다. 이곳은 삼한시대 맥국의 성터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맥국이 적의 침공을 받게 되자 지금의 흥국사 자리로 대궐을 옮기고 성을 쌓은 후 적과 대치하게 됐다. 적군은 삼악산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맹렬히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워낙 험준한 산세 때문에 점령에 실패하고 만다. 이 때문에 적군들은 위장전술을 쓰게 된다. 적군들은 삼악산 남쪽 북한강변 건너에다 안장을 떼어낸 빈 말들을 풀어놓아 공격의사가 없는 듯 위장했고 지금의 강촌역 뒤편 산꼭대기에 맥군을 안심시키기 위해 늙고 쇄약한 군사들로만 칼싸움을 하게 했다. 그리고 밤을 틈타 정예병력으로 편성된 공격군을 대궐터 서문 밖 골짜기에 매복시키고 순식간에 서문 안으로 들어가 맥국을 전멸시켰다는 것이다.   

맥국 병사들을 칼로 베어버렸다는 베일골, 말안장을 푼 말들이 있었던 곳을 말골, 늙은 병사들이 칼싸움을 했던 봉우리를 검봉, 군사들이 옷을 널었던 옷바위라는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다.

 

<등선봉 정상석>

  10:30

  산성터를 지나고 616m 봉우리를 지나 내림길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흥국사가 내려다 보이고 계속 진행하면 청운봉(546m)에 오른다. 이곳에 도착하니 10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청운봉에서 오른쪽 길은 삼악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 길은 계관산 방향이다. 계관산까지는 도상거리 8km 정도이니 오늘의 주된 능선길이 된다.

  계관산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능선을 따라 활짝 피어 있는 진달래와 친구하면서 30분을 진행하면 석파령이다. 석파령은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와 당림리를 연결하는 고개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이 잘 닦여져 있는데 산악 자전거를 타는 한 사람의 매니아를 만났다. 이곳은 산악 자전거를 타기에는 좋은 코스라며 자주 석파령을 넘나든다고 한다. 그리고는 잠시 후 인사를 하고 먼저 떠났다.

<석파령>

  석파령을 지나면서 호젓한 산길이 이어진다. 길은 잘 나 있고 산악회의 리본도 곳곳에 매달려 있다. 능선을 따라 가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코스이다. 

  서울에는 불수사도북이 있다면 춘천에는 몽가북계삼이 있단다. 다시 말해서 서울에는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을 잇는 종주산행이 널리 행해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춘천사람들은 몽덕산-가덕산-북배산- 계관산-삼악산을 잇는 종주산행을 자랑한다는 말이다. 긴 코스이지만 그만큼 빼어난 능선으로 유명한 코스라 산악인이라면 도전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듯하다.

<능선길에 만난 할미꽃>

  12:10

  개발제한구역 표지석을 지난다. 이곳부터는 전나무 조림지가 곳곳에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능선상에 방화선도 잘 만들어져 있다. 애써 가꾸어 놓은 조림지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생각이 든다.

  능선을 지나면서 한 분의 산객을 만난다. 아무도 없는 산길에 사람을 만나는 것은 참 반갑다. 인사를 하고 간단히 지명을 확인하고 헤어진다. 그 분은 당림리에 차를 세워두고 이 능선코스를 통해 석파령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작은 촛대봉에서 본 삼악산방향의 능선>

  13:40

  계관산 정상(710m)에 오른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개곡리와 강원도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봄에는 주능선 방화선 초원을 수놓는 들꽃, 여름에는 사방으로 패어내린 시원한 계곡, 가을에는 방화선에 갈색띠를 펼쳐놓는 억새군락, 겨울에는 방화선에 흰 띠를 이루는 아름다운 설릉으로 사시사철 산행객이 끊이지 않는다는 계관산은 약 12km 길이의 협곡안에 숨은 듯 자리한 개곡리의 달개지 마을이라는 이름에서 산이름이 생겼다. 달개지는 이 지방에서 닭을 지칭하는 방언이고 이 마을은 예전에 계관촌이라고 불렸다.

<계관산 정상>

  계관산에서 남북방향은 화악지맥 능선이다. 방화선을 따라 북쪽으로 뚜렷한 능선을 따라가면 북배산, 가덕산, 몽덕산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 가면 작은 촛대봉에서 가일고개를 지나 월두봉, 가평으로 이어진다.

  계관산 정상석 바로 옆에서 서쪽 방향으로 내려선다. 목동리로 향하는 길이다.  

<하산 능선길에 서 있는 소나무>

  14:40

  개울을 따라 10여분 내려가니 단군성전이 나오는데 단군을 모시는 곳이다. 성전앞에 안내문이 있는데 ‘단군 왕검의 약사’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성조 단군 한배검(단군왕검)께서 탄생하신지 125년 째인 무진년(단기 1년, 서기 2333년) 10월 3일에 한밝산(태백산, 백두산)에 나라를 세우시고 나라이름을 배달(닭발, 단)이라 하시니 이 해가 단기론 1년이요 서기론 2333년이라. 단기 23년 경인년에 서울을 만주 송화강 유역으로 옮기신 뒤 이곳을 평양이라 또 나라이름을 조선이라 하셨다. 93년동안 나라를 다스리시다가 맏아드님 부루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시니 이분이 곧 제2대 단군이시다. 단군 한배검을 제1대 단군으로 하고 제 47대 단군에 이르기까지 2096년 동안인데 이때를 단군조선 또는 옛 조선이라 한다. 서쪽에는 명지산과 서북쪽에는 화악산이 옹위하고 있으며 그 웅장한 줄기가 이어져 뻗은 계관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또한 이곳 사현부락에서는 기미년에 삼일독립 운동을 발발시켰던 자리이며 선조들의 애국충절의 요충지로서 뜻을 이루지도 못하고 많은 피를 흘렸던 사연이 많은 이 고장에 국조단군왕검의 석상을 모시게 되었다.(단군정신선양회)

 

<단군성전의 돌다리>

  단군성전을 둘러보고 길을 재촉한다. 길가에는 봄을 알리는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다. 꽃향기가 개울을 따라 계곡안에 충만하다. 따뜻한 봄볕은 꽃향기와 어우러져 산행객의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산행의 즐거움이라고 할까. 이 국토 구석구석을 찾는 즐거움을 누구와 더불어 누릴 수 있을까. 

<개울가에 핀 개나리>

  싸리재를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아저씨 한 분이 불렀다. 소주 한 잔 하고 가시라면서...

술을 못한다고 하자 기어이 권한다. 일행들과 약초를 캐러 왔는데 돌아가려고 승합차를 불렀으니 가평으로 가는 길이면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주 한 잔 얻어 마시고 먼저 가겠다고 헤어졌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한참을 걸었다. 목동 지방산업단지가 가까이 있는 성황당 정류장에 닿았다. 재수가 좋으면 화악리에서 나오는 시내버스라도 탈 수 있지 않을까했는데 버스시간을 알 수 없어서 택시를 불렀다.

  15:15

  성황당 버스 정류장에서 산행을 끝낸다. 꼭 7시간이 걸렸다. 작년에 화악지맥을 하면서 산행이탈이 있었던 그 코스, 계관산에서 가일고개로 가야 하는데 작은 촛대봉에서 방화선을 따라 내려 가다보니 덕두원리로 떨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2시간을 걸었더니 의암댐앞 삼악산 등산로 입구였다. 그 황망함의 수수께끼를 오늘 풀었다. 그 때 이후 나침반을 가지고 다니게 되었지만 오늘 산행은 기억에 남을 만하다.

   

참고문헌>

한국의 발견<경기도편>...뿌리깊은 나무(1983년)

월간 산 2003년 12월호...주말산행(삼악산)

월간 산 2005년 1월호...주말산행(계관산)

처음 만나는 나무이야기...이비락

영진 5만지도...영진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