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 장님 산행 귀신에 홀린 강천산(583.7m) 무이지맥 길

산행일자;2013년5월19일(일).(5/18.24;00.토요무박) 날씨;비.도상거리 : 16.0km 산행시간;7시간00분

<호남정맥 제16구간> 덕진봉.산성산486m 광덕산583.7m 강천산연대봉605m

 

산행코스;

24번 국도 방축마을(125) - 1.1km[1.1km] - 덕진봉(380) - 3.0km[4.1km] - 평창마을 지릉 - 0.7km[4.8km] - 560봉 - 2.2km[7.0km] - 산성산(486) - 5.0km[12.0km] - 광덕산(583.7) - 2.2km[14.2km] -510봉-1.8km[16.0km] -- 오정자재 792번 지방도(245)

 

 

 

■강천산(583.7m)은 순창읍에서 10km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산으로 호남의 소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도처에 기봉이 솟아 있고, 크고 작은 수많은 바위 사이로 폭포를 이루고 있다. 또한 깊은 계곡과 계곡을 뒤덮은 울창한 숲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유서깊은 강천사와 삼인대,강천산 5층석탑, 금성산성 등 유서깊은 문화유적이 산재하고 도처에 비경이 숨겨져 있다.

 

강천사는 신라 51대 진성여왕 원년(887년) 풍수지리설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한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이 사찰은 고려 충숙왕 3년(1316년) 덕현대사가 오층석탑을 세우고 중창한 이후 번창했으나 임진란 때(1596년) 사찰 당우와 연대암을 비롯한 12개 암자가 소실되었다 한다. 페허가 된 지 8년이 지난 선조 37년(1604년) 소요대사가 다시 사찰을 재건하였으나, 이번에는 6,25동란 때인 1950년 12월 전소되어 현재 건물들은 1959년 이후 복원 또는 새로 지은 것들이라 한다.

 

강천사는 원래 복천사 혹은 주변의 산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할 형상이라 하여 용천사라고 불렀으나, 선조 때 성리학자인 구봉 송익필(1534-1599) 선생이 이곳에 머물면서 강천사 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은 것이 연유돼 강천사로 이름이 바꿨다고 전한다.

 

순창군이 1981년도 군계를 형성하는 능선 안쪽을 국내 첫 군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면서 산 이름도 강천사에 이름을 따라 강천산이 되었다.

 

■전북 순창군 팔덕면과 전남 담양군 용면 경계 상에 솟아있는 산성산은 능선과 암봉 등을 이용하여 축조한 높이 2-5m, 폭 2m에 산성으로 이어져 있으며 이성을 금성산성 또는 연대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왕조의 말기까지 중요한 진영으로 경영되었으나 이후 폐허화되다시피 방치되었다고 하는데 금성산성의 축조시기는 삼한시대 또는 삼국시대에 건립되었다고 전하나 희박하고 문헌상 최초의 기록은 고려 우왕 6년(1380) 왜구에 대비해 개축하면서 금성이라고 했으며 고종 43년(1256) 몽고의 차라대군이 담양에 주둔하였다는 기록도 있어 이미 13세기 중엽 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옛 문헌의 기록으로 보아 외성, 내성, 성문, 옹성, 망대 등 갖추고 성내에는 사찰, 민가, 우물등과 그 위용은 대단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산성의 전체길이는 7,345m 이며, 외성이 6,486m, 내성이 859m이다. 연면적은 1,197,478㎡(362,237평), 내성의 면적은 54,474㎡(16,478평)이라고 한다.

 

■땅에 관한 이야기에 있어 전북을 대변하는 속언이 있다. 살아서 부안, 죽어서 순창, 이 말은 곧 죽음과 삶을 가르면서 땅 이 갖는 생명력을 암시해 주는 것 같다. 영원히 살 수 있는 땅인 순창의 정기에 대해 그 깊이와 가치는 풍수 학자들이 교과서로 여기는 각종 비결서 중 도선국사가 남긴 유산록(遊山錄)에 무려 100여 개나 되는 순창의 명당을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호남의 8대 명당을 옮겨 쓰자면 순창 인계면의 마명당, 순창 복흥면의 김병로 조상묘, 순창 복흥면의 노사 기정진 조부묘, 고흥에 있는 인촌 조모묘, 전주 이씨 조경단, 순천의 옥천조씨 시조산, 영암읍에 있는 신모씨 조부묘, 군산의 술산인데 순창이 세 군데나 차지하고 있다.

 

■ •검은등뻐꾸끼 •두견이 (쪽박새. 소쩍새)

<"홀딱벗고", "쪽박바꿔". 산에서 이 말이랑 딱 맞는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홀딱새라고도 하는 검은등뻐꾸기. 한동안은 이 새가 쪽박새인줄 알았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새를 쪽박새로 알고 있다. 맘잡고 새 찾으러 다니지 않는 이상 다른 새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이 새를 보기는 정말 힘들다. 하지만 그냥 저 멀리 계곡 쯤에서 들려오는 홀딱새의 새소리, 오히려 이 소리가 더 좋다. 이 새에는 무슨 전설이 있을 것 같지만 없다. 그냥 새 소리가 "홀딱벗고"로 들린다.

 

이 새와 같은 두견이과에 두견이(두견새)가 있다. 이 새가 사람들이 말하는 쪽박새이다.

가만히 들어보면 "쪽박바꾸어줘" 처럼 들린다. 이 새의 전설은 이렇다.

 

옛날 옛날 딸 하나 있는집에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계모(새엄마)가 들어왔는데 전실딸은 아주작은 바가지에다 밥을 채워주지도 않고 조금씩 주고 자기가 데리고 들어온 딸에겐 큰 바가지에다 밥을 꾹꾹눌러 주어.늘 배가고프게 생활을 하던 전실딸이 죽어서 "쪽박새"가 되어 평생에 계모 자신이 낳은 딸에게만 큰 바가지에 많은 밥을 주어 배불리 먹게 한것이 한이되어 그 딸이 죽어 새가되어서 자기가 살던집 근처에 나타나 매일같이 "쪽박 바꾸어줘" "쪽박 바꾸어줘"하며 배고픔을 노래했다는 쪽박새 전설을 들려준다 >

 

<옛날 며느리에게 쌀을 퍼 줄 때마다 작은 바가지로 조금 주고는 지은 밥을 다 어떻게 했느냐고 윽박지르는 못된 시어머니가 있었다. 끼니를 굶어 쇠약해진 며느리는 결국 죽고 말앗는데 그 넋이 새가 되었다. 죽어서도 큰 바가지로 쌀을 퍼주지 않은 시어머니의 야박스러움에 한이 맺힌 새는 "쪽박 바꿔줘, 쪽박 바꿔줘" 하며 피를 토하며 울어 댔다.

고부간에 얽힌 기막힌 사연을 아는 동내 사람들은 그 새를 "쪽박새"라고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쪽박새는 울창한 숲속에 숨어 행동하므로 여간해서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그러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 대는 습성이 있고, 한창 그악스럽게 울어댈 때는 경게심이 다소 흐트려져 끈질긴 관찰자의 눈앞에 정체를 드러내곤 한다. 쪽박새가 피를 토하며 운다느니, 그 토한 핏자국에서 진달래 꽃이 피어났다느니 하는 전설이 공연한게 아니었구나 하는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 빛깔이 선명하고, 울음소리는 격렬하다.

쪽박새는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철새로 중국, 히말라야, 일본, 한국 등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대만, 인도 등지로 날아가 월동한다. 사는 곳은 동부 아시아의 우수리 지방 만주, 일본, 동남아시아 등으로 우리 나라 전역에서 볼수 잇으며 봄, 가을의 이동시기에는 도시 부근에서도"쪽박 바꿔줘" 또는 "홀딱 자빠졌다" 하는 독특한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

 

<촉(蜀:지금의 四川省) 나라에 이름이 두우(杜宇)요, 제호(帝號)를 망제(望帝)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어느날 문산(汶山)아래의 강에 떠내려오는 별령(鱉靈)이라는 사람을 구해 하늘이주신 사람으로 여기고 벼슬을주어 나라일을 맡기었다.

 

별령은 권력이 커지자 불측한 마음을 먹고 주변의 대신들을 포섭해 망제를 쫓아내고 자기가 왕이 되었다. 쫓겨난 망제는 서산에 은거하며 밤마다 나라를 빼앗긴 통한의 울음을 울다가 죽었는데 때마침 2월이라 밤마다 자견(子鵑)이 울고 그 자리에는 핏빛이 흩뿌려진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그 새를 두우의 혼백이 다시 태어난 새라 하여 두견(杜鵑)이라 하고 그꽃을 두견화(杜鵑花)라 불렀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쪽박바꿔 쪽박바꿔"의 주인공은 쪽박새 아닌 검은등뻐꾸기다.

"쪽박 바꾸어줘" "쪽박 바꾸어줘"의 주인공이 슬픈 전설의 새가 쪽박새(두견새)다.

 

2013.5.18(토) 24;00 사당역 10번 출구에서 ‘좋은사람들 호남정맥3기팀“을 태운 28인승 리무진 버스는 밤을 달려 호남정맥제 16구간 들머리 봄비 부슬 부슬 내리는 방축재에 2013.5.19(일)05;00 도착 어둠을 가르면서 방축마을 마을길을 들어서면서 산행 시작 합니다.

 

오늘 구간은 날씨만 좋으면 담양호의 아름다움과 강천산의 비경들을 마음것 즐길수있는 곳인데 비가오니 아무 것도 볼수없는 그리고 길 찾기에 고생하는 힘든 산길이 됩니다.

 

산행중 갑자기 맞는 비는 어쩔수 없지만 일기 예보가 많은 비를 예상하는 날 배낭메고 우산 받치고 아파트를 나서는 모습은 정상은 아닐듯 싶습니다. 심한 비는 아니지만 세우비가 추적 추적 내립니다. 방축 마을 마을 길을 통과 1차때 진행한 좌측 정맥능선 쪽은 밭으로 변해 통과할 진입로를 찾질 못하고 마을 콘크리트 포장 뒷길 가운데 쯤에서 임도 수준 비포장길을 따라 오릅니다.

 

 

0km 0분[24번 국도] (방축재)

금과동산 입간판이 서있는 24번 국도다. 방축마을 민가를 통과한다.정맥능선은 논으로 변해 끊겨있고, 밋밋한 야릉은 밭으로 변해 있다.마을 콘크리트 포장 뒷길 좌측으로 진행후 우측으로 임도 따라 오르면 산길이 열린다. 지루한 오름길이다.어둠은 가셨지만 내리는 비 때문에 아무것도 조망할수없다. [1.1km][45분]

 

 

1.1km 45분[덕진봉]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숲으로 가려진 덕진봉을 뒤로 <오른쪽>(북동)향 내려선다. 뚝 떨어지는 경사길이 완만해지면서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내려서는 능선은 장비가 지나간 흔적이 다. 안부를 지나 능선분기점인 329봉 이어 올라선 곳이 350봉이다. 십자로 안부에서 1분 정도 올라선 곳이 평창마을로 내려설 수 있는 지릉길이다.

평창마을은 1차 호남때 구간종료 지점이다.15분 가량 가파른 오름길은 바위지대를 만나고 잠시 경사가 누그러지는 듯하더니 다시 힘겨운 오르막길이 이어지며 층층나무 군락지다. 3번의 임도를 만나면서 임도를 건너 급경사 힘겨운 오름길을 오른다.583.7m봉이다. [3.7km][95분]

 

4.8km 140분[광덕산](583.7m)

강천산군립공원에서 광덕산이란 금속표지판과 안내판을 세워놓은 583.7봉에 오른다. 시야에 펼쳐지는 산성산을 돌아 강천산 군립공원에서 강천산 왕자봉으로 이어지는 정맥의 능선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질텐데 아무것도 조망 할 수 없으니 아쉽다.

 

광덕산 정상 593.7봉에서 인증사진 남기고 다시 되돌아 밧줄잡고 가파른 바윗길을 내려서서 구멍 뻥뻥 뚫린 긴 급경사 철계단 밟고 내려선다. 이정표(송낙바위3,240m/구장군폭포.강천사2.5km/광덕산450m)가 서있는 안부에는 헬기장이 자리잡고 있다. 이정표 무시하고 직진 밋밋한 봉을 넘는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보기 좋은 능선을 지나며 또 다른 모습의 고사목지대, 바윗길을 내려서며 밋밋한 능선길이 한차례 떨어지면서 시야에 다가서는 산성산의 시루봉이 비속에 어슴프레 공룡처럼 다가온다. [2.2km][65분]

 

7.0km 205분[산성산]

산성을 만나면서 진행 방향 반대편인 목책계단 오르고 빗길 미끄러운 바윗길을 올라 [산성산](강천산 군립공원에서는 시루봉으로 표기)에 오른다. 탁 트인 조망속에 추월산과 담양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인데 빗속에 아무것도 볼수없으니 아쉽다. 미끄러운 바위 [시루봉]을 내려설 때는 올라설 때보다 조금은 겁이 난다. 좁은 암릉의 비탈을 조심하며 내려서며 계단 밟고 내려서 이어지는 산성길, 이정표가 서있는 [동문]이다. 안내판과 잘 복원된 성곽의 문, 동문을 통과하면서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 사이로 저만치 올려다 보이는 북바위의 특이한 모습, 이정표를 통과하며 서서히 산성길은 오름길이다.

 

[북바위]에 오른다. 노송 한 그루가 길목을 지키고 있는 북바위다. 서쪽 산성리 쪽으로 넓은 초원을 이룬 평탄한 지역으로 산성마을 터가 보인다.

 

삼각점(순창 446/ 81년 재설)이 있는 [598봉]을 지난다. 발아래 경치가 절경을 이루는 골짜기 절벽 사이에 76m 길이의 현수교가 설치되어 있고, 산중 협곡을 막은 인공호수와 계곡 양쪽으로 산봉우리와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어우러진 너무나 아름다운 강천계곡을 마음속으로만 상상하면서 지난다.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면서 [연대봉](603m)에 오른다. 산성산의 최고봉인 듯하다.

 

 

안내판과 이정표(동문1.6km/보국사터1.0km/가마골4.5km)가 서있는 [북문]에 내려선다. [2.0km][55분]

 

9.0km 260분[북문]

이정표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헤매기 좋은 장소다.) 오른쪽(북서)으로 북문을 통과하여 산성 밑길을 Back 하는 기분으로 진행 한다.길은 자연스럽게 직진 (북서)로 진행되고 갈림길에서 우측 좋은 길(우회길)을 버리고 잡목숲을 헤치니 산죽길이다. 잡목을 헤치다가 [490봉]을 오른다. 바위지대 아름드리 소나무, 전망대바위에서 아무것도 볼수없다.

능선분기점인 490봉에서 <오른쪽>(북서)으로 내려선 안부에서 다시 [495봉]으로 오르는 산죽이 길을 막는다. 1차때와는 달리 산죽 편안히 갈 수 있는 우측 우회길을 따른다.

 

(이하 1차때 산행기록이다. 능선분기점인 495봉에 오르니 잡목으로 시야는 막혀있고, 그나마 희미하게 남아있던 산길이 끊긴다. 무작정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너덜길로 내려선다. 8분 정도 희미한 산길을 헤치다가 만나는 반가운 등산로 또 한차례 잡목들이 [489봉]으로 오르는 길을 방해한다. 489봉을 내려선다. 한차례 뚝 떨어진 안부에 내려서면서 만나는 산죽군락, 산죽터널을 빠져나오니 커다란 묘하나를 만날 수 있고 이어 산죽의 호의를 받으며 오르다 보니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505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강천산 군립공원에서 제2형제봉이라고 부르는 505봉에 올라서니 우측으로 강천계곡으로 내려설 수 있는 등산로가 열려있다. 다시 되돌아 내려서면서 올라서는 [제1형제봉]은 등산로가 폐쇄되어 있다. 제1형제봉을 통과하며 아름드리 참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여유로운 정맥길... 능선분기점이다.[5.0km][140분] )

 

편안한 우회길이 한 없이 진행된다.1차때 처럼 어렵지만 495봉으로 진행하지 못한 비에졋은 산죽길 공포가 후회스럽다. 반가운 이정표를 만난다. [2.0km][30분]

 

11.0km 290분[형제봉 3거리]

형제봉3거리 이정표(왕자봉990m/구정폭포1,850m/송낙바위3.2km)를 만난다.

반값다. 좌향 고속도로 같은 능선길과 오름길 오른다. 이정표 만난다.[1.0km][20분]

 

12.0km 310분[광덕산] (왕자봉)

이정표(왕자봉=강천산200m/형제봉3거리710m/깃대봉3거리1390m) 서있다.이정표 방향따라 잠시 내려섰다 올라선 곳이 표지기와 대삼각점이 있는 정상(583.7m)이 왕자봉=강천산이다.

정맥 반대방향인 우측으로 깃대봉과 천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깃대봉에서 내려서다 만나는 안부에서 병풍바위로 내려설 수 있다.

 

(이하 1차때 산행기록이다.정맥은 왼쪽(북서)이다.북서 방향으로 8분 가량 평범하게 이어지던 정맥이 봉을 넘으면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며 참나무숲으로 완만하게 이어가다가 긴 내리막, 다시 잠시 올랐다가 내려서는 길은 마치 아리랑 고개를 돌아 내려서는 것 같다. 십자로 안부를 가로지른다. 다시 내려선 만큼 또 올라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며 오른다. 가파르게 올라서면서 만나는 묘지에는 얼마나 오랜 세월 버림을 받았는지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가 차지하고 있다.

조그만 공터의 봉우리에 오르고 5분 뒤 다시 바윗길로 올라선 바위봉인 수직의 전망대 다.

480봉에서 내려서는 길이 수직의 암릉이다. 발 디딜 틈은 있지만 계절에 따라 또는 비 오는 날이면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바위틈으로 바위손과 부처손이 정답게 살고있는 수직의 바위벽을 타고 한차례 내려선 안부에서 코가 닿을 듯한 오름길을 바윗길을 지나 묘지를 통과하며 올라선 곳이 522봉이다. [2.2km][60분]

 

14.2km 430분[ 522봉]

삼각점(순창 405, 91년 재설)이 있는 능선분기점인 522봉에서 정맥은 오른쪽(북동)이다. 추월산과 담양호는 여기서도 정맥꾼들을 품에 안고 반기고 있다.

 

참나무숲길은 수직에 가까운 사면길을 뚝 떨어지다가 방향을 오른쪽으로 약간 틀면서 선명한 마루금이 다시 형성된다. 이런 것이 정맥능선이 아닌가, 가끔은 이어가는 정맥능선이 너무나 오묘하고 신기할 때가 있다.

 

산죽길을 따라 너덜길을 지나며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 우측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송전탑>이 보인다. 오르는 길이 잡목으로 가려있어 정맥길은 왼쪽으로 우회길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잡목을 헤치며 올라섰다 되돌아 내려서며 밋밋한 능선을 돌아서니 시야에 송전탑이 다가선다. 철사줄의 울타리가 나타나고 송전탑 공사 시 생겨났을 산판도로가 이어진다. 발아래 오정자재로 오르는 도로가 내려다보인다.

 

송전탑을 통과한다. 이 송전탑에서 오정자재로 내려서는 정맥능선을 잘 찾아야 한다. 좌측에 있는 송전탑을 통과하여 뚜렷한 길로 조금 진행을 하다 둔덕을 오르면서 왼쪽으로 희미한 정맥길을 찾아 내려선다. 안부에 내려섰다가 작은 봉을 넘어 내려선 곳이 오정자재다. [1.8km][50분]

 

16.0km 480분[오정자재]

담양군과 순창군을 잇는 892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이 재는 담양 쪽에서 오르면 상당히 가파른 고개다. 정맥은 담양군과 순창군을 끼고 이어가면서 담양 쪽은 가파른 산악지대고 순창 쪽 사면은 완만한 경사를 갖고 있다. 순창군 구림면 월정리 오정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무궁화 동산 뒤로 숨어있는 오정자재 표지석을 확인한다.)

 

 

이정표(왕자봉=강천산200m/형제봉3거리710m/깃대봉3거리1390m) 서있습니다.이정표 방향따라 잠시 내려섰다 올라선 곳이 표지기와 대삼각점이 있는 정상(583.7m)이 왕자봉=강천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방향감각을 잃습니다.내려서는 길이 왔던 길을 Back한다는 반더룽현상에 빠집니다. 다시 되돌아 온 능선분기점 이정표(왕자봉=강천산200m/형제봉3거리710m/깃대봉3거리1390m)에서 이정표 방향다따라 “깃대봉 3거리”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묘 뒤쪽으로 나있는 정맥길을 따라 3-4분 거리에서 만나는 능선분기점(정맥지도상 깃대봉3거리)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지키고 있는 곳에서 등산객들 만나 깃대봉 3거리를 물으니 직진방향 진행입니다.정맥지도상 깃대봉 3거리와 일반등산로 이정표상 깃대봉 3거리가 다름을 그들도 모른 탓입니다.비에 젖고 추위 속에 컨디션 난조 방향 감각 잃고 아무 것도 안보인 이곳에서 정맥을 놓치고 소위 “무이지맥”길에 들고 있습니다.약 38분 진행하니 깃대봉이 나옵니다.깃대봉3거리가 나와야하는데 왜 깃대봉이지? 하면서도 기념사진 남기고 Back 할 생각은 안하고 이정표 ‘깃대봉3거리’방향따라 약18분을 더 진행 합니다.3~4분 이면 만날 깃대봉 3거리를 55분 진행하여 만납니다. 깃대봉3거리이정표(관리사무소1230m/천지봉×폐쇄) 깃대봉3거리를 만났으니 천지봉×폐쇄 능선길을 진행합니다. 봉에 오르고 우향 능선길을 따릅니다. 암릉도 지나고(천지봉) 반가운 소머즈부부님 표지기도 만납니다.맨발바닥님표지기도 길을 인도해 줍니다.무이지맥을 피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귀신에 홀린 것처럼 무이지맥길을 걸어 793번도로에 구림농산물공장 앞에 11;55 내려섭니다. 무이지맥과 이런 인연이 있었나 봅니다. 다음은 시간 되면 건너편 무이산을 올라 보아야 겠습니다.1차 진행한 호남정맥을 벗어나 귀신에 홀려 깃대봉 천지봉 무이지맥을 진행한 산행도 후회는 없습니다.마침 때 맞춰 지나가는 경찰관 순찰 백차 얻어타고 12;04 버스가 기다리는 오정자재에 도착합니다.경찰관님 고맙습니다.정선 문래산 자후산때도 공권력을 동원한 산행이었습니다.[4.0km][110분]

 

16.0km 420분[오정자재]

오정자재에 기다리는 버스에서 옷보다리 꺼내 양계장 수돗물로 대충 씻고 새옷 갈아 입으니 살것 같습니다.강천사 주차장 선비식당으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준비해온 시원한 캔맥주 건배 합니다.선비식당 더덕불고기 된장국 백반으로 허기 달래고 산나물 취와 고사리 구매하고 잊지못할 우중 장님 산행을 마감합니다. 서울 양재역 17;30 도착 뽕입사브사브집에서 우중 무사산행을 청하잔 부딪쳐 건배 뒷풀이하고 일찍 20;00 집 도착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