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덤에서 모산재까지...(감암산-황매산)

언   제 : 2006.04.22(토)

어디로 : 경남 합천군 가회면

누구랑 : 산사모 32명

♣산행 시간♣ (5시간 50분)

10:40 대기초교 → 10:53 묵방사 갈림길 → 11:00 첫 번째 슬랩 → 11:13 매바위 → 11:27 두 번째 슬랩 → 11:31 누룩덤(위험 길 폐세) → 11:54 누룩덤 → 12:14 칠성바위 → 12:54 천황재→ 13:15 비단덤 → 13:30 파평윤씨 묘 → 13:51 산불감시초소(황매평전) → 14:19 장승 → 14:42 옛 성터 →14:44 모산재 → 15:38 순결바위 → 15:55 국사당 → 16:12 영암사지 → 16:30 주차장 → 17:10 평택으로

♣들어 가면서♣

2005년도 마지막 북바위 산행을 마치고 하산주를 나누면서 성룡대장이 말을 건넨 것이다...

성룡대장 : 헹님?...내년에 가고 싶은 산 있으면 말씀하슈?...

빵과버터 : 그~랴?....그럼 황매산이나 한 번 넣어보지 그랴?....

성룡대장 : 아!..좋지요...하봉, 중봉으로 해서 철쭉을 볼 수 있을테니...

빵과버터 : 아녀!....이 나이에 농익은 여자의 요염한 입술같은 철쭉꽃을 보면 모하냐?... 누룩덤으로 올라가서 오랜만에 바위맛을 봐야지...안그려?...

성룡대장 : 깨~갱!!...

그렇다!...지들 잘났다고 무리지어 뽐내는 철쭉보다 다소곳이 얌전한 참꽃이 좋았고 참꽃보다 미련한 듯 묵직한 바위가 나의 정서에 맞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황매산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은 걸출한 문장력으로 산하 식구들을 잡도리하는 "진아무개" 란 이름을 쓰는 나만의 교주님이 황매산 언저리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그의 발자취를 보게 된 것은 2003년 7월 14일 "선생 김봉두와 히말리야 시다 - 그리고 모산재 "라는 산행기를 읽고 그를 너무 흠모한 나머지 그냥 나혼자 마음속의 교주님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그러니 다정(多情)도 병(病)은 병(病)인갑다....

작년 11월 봉화 청량산 산행시 그눔의 다람쥐 새끼 때문에 불의의 사고를 당한 아내에게 같이 갈거냐고 물어보니 미안한 마음에 선뜻 대답이 없다. 재작년 지리종주를 같이 한 김광석씨 까지 초빙해서 5개월 만에 아내와 같이 한 산행이 되었다.

산행기를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쓰기로 정평이 난 이수영님, 히어리님, San001님의 산행기를 섭렵하여 어느정도 무장을 갖췄다고는 하지만 막상 산에 오르면 헥헥대기 바빠서 당최 기억의 실타래는 풀리지 않았다.

다녀온 길 

 

요리조리 뱅글뱅글 돌다보니 어지러웠던지 성룡대장이 폐교된 대기 초등학교 못미쳐 버스를 세운다. 우장을 챙긴다고 부산한 회원들 보다 한 발 앞서 걷는데 눈에 설지 않은 대기 보건진료소 입간판이 반갑다. 저쪽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아스팔트 도로를 바쁘게 내려오는 듬직한 시골 아가씨에게 말을 건넨다

빵과버터 : 아가씨?...묵방사로 갈려면 이 길 맞아요?

아 가 씨 : 하모요!!...쭉 올라가이소...

물실호기라?....오랫만에 바위맛을 본 권회장님은 물 만난 고기처럼 호기롭게 비에 젖은 첫 번째 슬랩을 성큼성큼 오른다

서운한 연무속의 매바위...그러나 후반전을 위한 워밍업에 불과했다.

몽환의 상상력이 나래를 펴고 날라 다닌다.

두 번째 슬랩이다. 장갑에 물 묻히고 싶지도 않고 2년전 북한산 수리봉을 올랐던 짬빱이면 로프없이 오름직도 하지만 순간의 호기로 대사를 망칠까 싶어 나도 로프를 잡고 오른다.

슬랩을 다 오른 SM과 YK

확실한 표지판이다. 그러나 순박한 시골 아저씨의 고마우신 배려에 관계당국은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여기서 SM과 YK에게 나는 아내와 같이 이쪽으로 올라갔다가 길이 없으면 도로 내려 오겠다고 말하고 올라간다. 그러나 여기가 지도상에 나오는 횡단시 추락위험이라고 표기된 누룩덤인줄 나와 아내는 알고 있었다 

누룩덤에서 본 기암(거대한 도마뱀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 같다)

누룩덤에서(위에서 보면 별로 넓지 않은 공간인 것 같았는데 우회로를 내려와 보니 벌어진 틈새가 장난 아니다)

누룩덤에서(여길 빠져 나가면 길이 없다.... 다시 우회)

누룩덤의 정상부(도대체 덤이 무슨 뜻일까? 궁금해서 웹사전을 뒤져보니 [덤ː] 제 값어치의 물건 외에 조금 더 얹어 주거나 받는 물건 이란 뜻이니 누룩덤이나 비단덤의 이름과는 전혀 연결이 안된다

까딱했으면 조카사위가 될뻔했던 돌쇠yh에게 한마디 물어본다

빵과버터 : yh야?...우리 말중에 무덤이니 누룩덤이니 하는 말이 있는데 그 덤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

돌쇠yh : ???....

빵과버터 : 내가 어저께 황매산 누룩덤 이라는 데를 다녀왔는데 거기 있는 바위가 누룩을 많이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누룩덤이라고 한다드라?....

돌쇠yh : 누룩을 많이 쌓아 놓은 것 같았다고라요?...혹시 더미가 변해서 덤으로 되지 않았을까요???....

빵과버터 : 머시라?...더미라꼬?... 아뿔싸!!....흐~미!!... KBS "우리말 겨루기"를 즐겨 보면서 다져진 실력(?)은 거품에 불과 했었다. 역시 젊은 친구의 순발력은 예리하고 빨랐다. (더미라면 당연히 멍청하다는 뜻의 써버의 Dummy Hub만 생각하고 있던 나는 그만 뒷통수를 맞고 말았다. 장작더미, 거름더미, 산더미, 조개더미, 돈더미, 똥더미......ㅋㅋㅋ)

묘한 느낌을 주는 바위다. 꼭 암놈 코끼리의 똥꼬를 보는 것 같다. ㅋㅋㅋ

그래 인자 되았따!!..고진감래라드니... 드디어 칠성바위를 지날쯤 연무속에서 산 하나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황매산과 삼형제봉, 중봉, 하봉능선도 떠오른다.

비 온 후가 아니면 이런 그림을 어떻게 보랴? 

며칠전 강풍 폭우에 잔솔가지는 맥없이 부러지고....(천황재에서)

허벅지 만한 소나무의 중동도... 

비단덤을 향하여 

비단덤을 향하여 

비단덤을 향하여

비단덤에서 (저 연무 뒤에는 지리산도 보인다는데?....) 

비단덤에서

황매평전 초입의 파평윤씨 고묘 

황매평전에서

황매평전에서 

황매평전에서 

무상하지 않은 것은 오직 산과 물인 것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모산재에서 애국가를 듣다...그것도 4절까지...(D!@#조선소 젊은 직원들의 나라사랑 이려니..)

 

 모산재에서

모산재에서(돋대 바위와 그의 능선)

순결바위를 향하여 

순결바위를 향하여 

순결바위를 향하여  

순결바위를 향하여  

순결바위를 향하여  

순결바위를 향하여  

순결바위를 향하여  

처음에는 여기가 순결바위인줄 알았다. 아내는 겁없이 걸망을 벋어 버리고 자신을 시험해본다. 바위 틈새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였는데?...(늙은 서방의 X알 밑이 시큼 거리는줄도 모르고.... ㅋㅋㅋ)  

 순결바위를 향하여 

순결바위를 향하여  

순결 바위다. 이 바위는 남녀의 순결을 시험할 수 있다는 곳으로, 순결하지 못한 사람이 이 바위 틈에 들어가면 바위틈이 오므라들어 나올 수가 없다는 전설이 있다.

국사당은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위하여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올렸다는 곳으로 지방관찰사로 하여금 매년 제사토록 하였으나, 그후 음력 3월3일에는 감암동민이 제사를 올려 나라와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고 있다고 한다

영암사지 극락보전

지금은 흔적뿐이지만 옛 영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폐사지 영암사지....

살이 포동포동 오른 아기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위를 쳐다보며 석등을 받치고 있다. 목덜미에 난 갈기와 꼬리, 힘줄이 바짝 선 탱탱한 다리 근육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이 상처투성이이다.

60여년전 일제가 몰래 반출해 가려던 과정에서 생긴 상처다. 고난 속에서도 천진함을 잃지 않으려는 아기사자의 안간힘에 대견한 마음이 든다. 특히 통돌을 깎아 만든 작은 계단을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간다.

마치 주물통에 쇳물을 부어 만든 것처럼 정교한 쌍사자 석등과 계단의 소맷돌이 눈에 들어온다. 비바람에 씻겨 닳을 대로 닳았지만 천년이 넘는 세월이 주는 위엄이 서려있다.

 석축 옆으로 돌아 올라가면 삼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특이하게도 그 시대 유행했던 화려한 장식이 없다. 영암사지 곳곳에 자리잡은 화려한 조각들에 비해 이 탑은 다소 민숭민숭할 정도다. 한편으로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는 절제미를 고려했다면 영암사를 조성한 이의 공간적 미학을 짐작할 수 있다.

떡 주무르듯 돌을 주무른다는 표현이 있던가. 이 조각물들을 보면 그 표현들이 생각난다. 이곳에서 좌측 언덕으로 올라가면 귀부가 있다. 머리는 용의 형상이고 몸통은 거북형상인 귀부는 화려한 등무늬가 천년의 풍상을 겪은 세월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쇠뜨기풀 꽃이다. 흔해빠진 쇠뜨기풀 꽃에서 어린시절 고향의 정서를 본다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돋대바위 능선 

♣나가면서♣

맘만 먹으면 휭하고 다녀올 황매산을 3년을 별러서 다녀왔으나 찾아가는 길은 그닥 녹록치 안했다. 산청 IC를 나오자 마자 우리의 호프 봉훈마저 길을 잃고 헤맨 것이다. 허기사 난다 긴다 하는 관광버스 운전기사도, 길눈이 시원하며 떠르르 이름난 베테랑 산꾼들도 들머리를 못찾아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대기초등학교(페교) 입구 삼거리에서 대형 리무진 버스를 써커스 하듯 빠져나간 "칼봉훈"의 심정이 얼마나 조마조마 했을지는 가히 짐작이 간다. 우리의 "칼봉훈"을 "뱅글뱅글 봉훈"으로 전락시킨 합천군의 관심이 많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나저나 우중에 암릉 산행을 무사히 마친 산사모 회원들의 건강과 행운을 한없이 소원해 본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