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암산


 

              *산행일자:2009. 4. 26일(일)

              *소재지  :경남합천/산청

              *산높이  :감암산834m, 모산재767m

              *산행코스:대기정류장-누룩덤-828고지-초소전망대-모산재

                              -순결바위-영암사-모산재주차장

              *산행시간:10시12분-16시15분(6시간3분)

              *동행    :대구 참사랑산악회원등 20명

 

 


 

  기다림의 미학은 만남에 있습니다.

만남이 전제되지 않는 기다림이 미학으로 승화될 수 없는 것은 돌아오지 않는 낭군을 한없이 기다리다 망부석으로 굳어버린 여인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와서 어느 누구도 그 여인의 정절이 가상하다고 칭찬할지는 몰라도 참으로 아름답다고들 말하지 않는 것은 여인네의 끝없는 기다림이 만남으로 결실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사 모두 그럴듯한 스토리는 오랜 기다림 끝의 만남에서 비롯됩니다. 트로이전쟁의 영웅인 오딧세이가 20년간의 긴 방황 끝에 귀향해 뭇사나이들의 청혼에 시달리는 부인 페놀레퍼를 구하지 못했다면 호메로스는 ”오딧세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심청전에서 심 봉사가 그의 딸 심청을 만나 눈을 뜨는 극적인 장면을 빼버린다면 이 소설은 “전설 따라 삼천리”의 드라마감도 못됩니다. 이 나라 최고의 러브스토리인 춘향전이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주리엣”에 견줄 만 하다면 이는 춘향의 미색이나 잡기 덕분이 아닙니다.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고 옥살이를 마다 않은 춘향이가 그토록 기다린 이 도령을 극적으로 해후하지 못했다면 춘향전의 소설적 가치는 죽음으로 사랑을 지킨 “로미오와 주리엣”에 한참 못 미쳤을 것입니다.


 

  이래서 만남은 기다려지고 가슴 설레는 것입니다.

새벽부터 서둘러 대구로 달려 간 것은 감암산이 미치도록 오르고 싶거나 황매평전의 철쭉꽃을 보지 못하면 눈이 짓무를 까 겁이 나서가 아니었습니다. 감암산은 이미 6년 전에 오른 산이고 황매평전은 작년에 두 번이나 걸어보았기에 설사 이번에 거른다고 해서 비통해 할 일도 아닙니다. 아침 일찍 서울역으로 나가 고속전철에 몸을 실은 것은 동대구역에서 저희들을 기다릴 참사랑산악회 산우님들을 빨리 만나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대구 산우님들과의 만남은 한북정맥이 맺어준 인연이기에 모두들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작년 5월 서울의 성봉현님과 대구의 권재형님의 주도적 노력으로 팔공산에서 첫 만남을 가진 후 봄가을로 대구와 서울을 번갈아 오르내리며 합동산행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저는 대구산행을 빠지지 않았으면서 정작 관악산과 숨은벽의 서울산행을 부득이한 일로 한 번도 함께하지 못해, 이번 저희 서울팀을 초대한 대구분들에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주저하지 않고 이번 합동산행에 참여한 것은 기다림의 미학이 만남에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10월 추락사고로 숨은벽 산행을 함께 하지 못한 제게는 이 번 산행이 꼭 1년을 기다려온 만남입니다. 반년 가까이 차고 있던 허리보호대를 풀고 나서 처음 해보는 암릉산행을 대구 산우님들과 함께하는 기쁨도 오랜 병상생활 속의 기다림 끝에 얻어진 것입니다.

  


 

 오전10시12분 대기마을을 출발했습니다.

범솥말님, 조부근님과 성봉현님을 서울역에서 만나 아침 6시25분발 KTX에 올랐습니다. 8시16분 동대구역에서 하차해 마중 나온 대구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승합차로 2시간 가까이 달려 대기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기경환님이 회장으로, 임상택님이 산행대장으로 그리고 권재형님이 총무로 일하는 참사랑산악회 회원 분들에 저희 넷을 더해 모두 스무 분이 감암산 산행에 나섰습니다. 작은 수로를 옆에 끼고 10분 여 시멘트 길을 걸어올라 왼쪽으로 묵방사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산행시작 15분 만에 이름 그대로 나무다리인 아취형의 목교를 건너 왼쪽의 산길로 들어서자 나무그늘 길이 시원하다 했는데 이내 슬라브 바위길이 나타나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지난 가을 추락사고로 바위만 보면 겁부터 덜컥 나는 바위공포증 때문에 슬라브 길을 바로 오르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돌아서 올라갔습니다. 큰 돌로 봉분의 기단을 쌓은 밀양박씨 묘지를 지나 다시 암릉 길로 들어섰습니다.


 

  11시34분 누룩덤 바위 길을 성공적으로 통과했습니다.

릿지 산행에 묘미를 느끼는 분들에는 더 할 수 없이 좋았을 아슬아슬하고 짜릿한 누룩덤 바위가 바위공포증을 갖고 있는 제게도 길을 연 것은 전적으로 작년 10월 숨은벽 등반 시 탑을 서 후미의 저를 이끌었던 성봉현님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든든한 암벽전문가가 제 뒤에 바로 붙어 자세도 교정해주고  받쳐주어 산행 중 두려움이 많이 가셨습니다. 박씨 묘를 지나 암릉 길을 오르다 만난 기묘한 바위들은 다른 분의 산행기에 매바위와 세손가락바위로 적혀있는데 오로지 오르는 데만 신경을 써 어느 바위가 그 바위인지 가름 하지 못했습니다. 늘여진 로프를 잡고 암봉을 오르는 등 힘들게 누룩덤바위 바로 밑까지 진출했습니다. 직등 길이 나 있지 않아 이 바위를 왼쪽으로 우회한 다음 로프를 잡고 “누룩덤”이정표가 세워진 편안한 곳으로 내려서고 나자 비로소 안심됐습니다.


 

  누룩덤은 몇 개의 바위들이 모여 있는 바위 군으로 감암산 등로 중 가장 아슬아슬한 길입니다.

제가 우회한 반대방향으로 보다 안전한 길이 나 있지만 대다수의 산객들이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코스를 택해 병목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길이 인기를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오름 길에 내려다 본 전망이 참으로 빼어나다는 점입니다. 유난히도 파랗게 보이는 대기저수지가 저 아래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면 바위산이 물을 품고 있지 못해 그냥 흘려 보내는 빗물을 담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위틈에서 피어난 철쭉꽃이 황매평전의 소담스런 꽃들처럼 화사하지는 않았어도 끈질긴 생명력만은 더 돋보였습니다.  


 

  12시23분 천황재의 억새밭에서 다 함께 빙 둘러 앉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누룩덤을 통과하면서 바위공포증이 많이 사라져 828고지에 이르기까지 반시간 넘게 오른 바위 길이 그다지 무섭지 않았습니다. 이번 산행을 두고 고심한 것은 바로 바위공포증이었고 한편 이 기회에 바위공포증을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으리라 기대도 했는데 이번 산행이 공포증 치유에 크게 도움이 되어 이제는 저 혼자서도 관악산의 팔봉코스를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12시11분에 올라선 828고지에서 오른 쪽 아래 천황재로 내려갔습니다. 해발834m의 감암산 정상은 이 고지에서 왼쪽으로 0.7Km 가량 떨어져 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대구분들이 정성들여 준비해온 성찬이 인절미 한 팩만 달랑 갖고 온 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이보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나이가 주책의 면허증이라도 되는 양 야생화님의 청을 덥석 받아들여 "로미오와 주리엣“을 목청 돋우어 노래 불렀다는 것입니다.


 

  12시58분 천황재를 출발했습니다.

발 빠른 회원들은 황매산으로 내달렸고 후미를 맡은 임상택님과 여성 회원 두 분과 한조가 되어 천천히 초소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천황재에서 전망대로 이어지는 오름 길의 왼쪽 사면은 깎아지른 암벽이어서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지리산 전망대에 다다라 고기를 빼어 닮은 고기바위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서쪽으로 눈을 돌리자 고스락이 구름에 가린 지리산의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베틀봉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자리한 초소전망대가 가까워지자 그 아래 넓은 평원에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은 철쭉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다음 주면 절정에 달할 산상의 화원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13시47분 작년에 지은 초소전망대에 이르렀습니다.

자동차 길이 끝나는 저 아래에 몽고텐트가 여러 채 쳐있어 축제분위기가 무르익어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불탄 흔적이 역력한 새까매진 땅을 보고도 T. 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가 연상되지 않는 것은 보다 실한 억새를 얻고자 일부러 태운 것이 틀림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보아도 황매평원은 역시 넓고 시원스러웠습니다. 이 넓은 평원에 가득 들어선 철쭉나무가 아직은 손님을 불러들일 만큼 꽃 치장을 하지 않아 작년5월 엄청난 인파로 먼지를 풀풀 냈던 능선 길이 이번에는 하나도 붐비지 않았습니다. 모산재가는 길에 자리했던 천제단은 베틀봉-황매봉 능선으로 옮겨졌지만 기단은 그대로 남아 있어 흉물스러웠습니다. 천제단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 만난 안부에서 똑바로 올라 모산재로 오르는 길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14시37분 해발767m의 모산재에 올랐습니다.

정상석을 사진 찍고 나서 며칠 전 텔레비전에 방영됐다는 순결바위 쪽으로 향했습니다. 무지개터를 지나 황포돗대바위에 거의 다 가서야 이 길이 남쪽의 철사다리 길임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다시 모산재로 돌아가 제 길로 들어서느라 20분가량 늦어졌지만 직벽의 암벽에 거의 수직으로 놓은 철계단 길이 아찔해 보여 경사도 무난하고 전망이 빼어난 순결바위 쪽으로 하산 길을 잡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싶었습니다. 모산재에서 순결바위로 반시간 가까이 이동하면서 절묘하게 자리한 바위들의 기묘한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손놀림이 바빴습니다. 순결치 못한 사람들이 틈새로 들어서면 바위가 오그라들어 나올 수가 없다는 순결바위에서 영암사로 내려가는 길이 꽤 가팔랐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위해 천지신명께 기도를 드렸다는 국사당을 지나 내려선 삼거리에서 시원한 식혜 한 잔을 사든 후 영암사지로 향했습니다.


 

  앞서 두 번이나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 영암사지를 이번에는 모처럼 시간 여유가 있어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넓은 절터가 없어진 영암사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데 막상 이 절이 언제 창건되었고 폐사됐는지를 알려주는 역사적 기록은 전혀 없다 합니다. 다만 절터에 남아 있는 보물480호인 삼층석탑과 보물353호인 쌍사자석등이 통일신라 말기의 작품들이어서 창건시기를 그 때쯤으로 추정하는 것이 정설인 듯합니다. 보물의 진가를 알아볼만한 감식안을 갖고 있지 못한 제게도 쌍사자석등은 뭔가 모르게 색다르게 보였습니다. 화강암의 통돌을 깎아 만든 두 마리의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은 것은 혹시나 저 두 마리의 사자가 부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곁에 있음이 행복일진데 비록 무거운 석등을 받치고 있다 하더라도 영원히 마주보며 같이 하는 두 사자가 마냥 부럽게 보였습니다. 혹시라도 세존께서 이들을 가상히 여겨 반야용선에 태우시고 극락정토로 데려 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그러했습니다. 무거운 석등을 업보처럼 지고 있는 사자 두 마리가 그동안 쌓아온 러브스토리는 과연 어떠한 것일 지 자못 궁금했습니다.


 

  16시15분 모산재주차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아직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것이 아니어서 맨 후미는 별 수 없이 제 몫이었지만 발걸음이 잰 분들은 황매산을 다녀오느라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자리를 옮겨 황태집에서 가진 뒤풀이는 대구분들이 마련한 것이어서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황태집에서 동대구역으로 이동하는 사이 하늘도 잠시 비를 뿌려 저희들의 헤어짐을 아쉬워했습니다. 


 

  누룩덤은 이번에 오른 암봉 이름입니다.

바위의 형상이 누룩을 포개놓은 것과 같다하여 이름 붙여진 누룩덤을 보고 누룩이  이 바위를 발효시켜 석간주(石間酒)를 만들 수는 없는 걸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발효란 어차피 세월을 농익히는 과정이기에 가능만 하다면 얼마고 기다려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기다림이 길면 길수록 만남은 더욱 간절한 것이어서 누룩으로 빚은 석간주 맛이 애간장을 태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청마 유치환님의 생각은 저와는 달랐습니다. 님이 노래한 바위는 누룩에 발효되는 부드러운 바위가 아니고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도 소리하지 않는 단단한 바위였습니다. 이런 바위라면 억겁의 세월도 끄떡없이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영암사지의 쌍사자도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기에 무거운 석등을 들면서 온 세상이 환해지기를 천년 넘게 기다린 것입니다. 바위에 억겁의 세월은 사람들의 몇 년에 해당될 지도 모릅니다. 기다림에 지치면 억겁의 세월이든 몇 년의 세월이든 모두가 힘들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억겁의 세월을 기다리는데 지친 바위가 한 해에 두 번 만나는 저희 모임을 무척 부러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뿌듯해졌습니다. 뿌듯해진  가슴을 안고 혼자 즐거워하는 사이 KTX 열차는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모두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이제 다시 반년을 기다려 서울에서의 만남을 준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