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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지 유래 

 

가야산 높이:1,430m

위치 : 경남 합천군과 경북 성주군 경계
주봉우리 : 우두봉(상왕봉)
문화재 : 해인사, 청량사, 삼원사지 삼층석탑

 

높이 1,430m이다. 소의 머리와 모습이 비슷하다고 하여 우두산(牛頭山)이라고 불렀으며, 상왕산(象王山)·중향산(衆香山)·지달산·설산이라고도 한다. 가야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이 옛날 가야국이 있던 이 지역에서 가장 높고 훌륭한 산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야의 산'이라는 뜻으로 부른 것이라고 전해진다.

한국 12대 명산의 하나로서 예로부터 조선 8경에 속하였다. 주봉(主峰)인 우두봉(상왕봉)을 중심으로 암봉인 두리봉과 남산·비계산·북두산 등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높은 산들이 이어져 있으며, 합천군 쪽으로는 산세가 부드러운 편이지만 성주군 쪽은 가파르고 험하다.수려한 경치로 소백산맥 중의 명산으로 꼽히고, 산중에 해인사를 비롯한 사찰·고적들이 많아, 가야산을 중심으로 가야산 국립공원이 지정되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가을 단풍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고, 눈 덮인 가야산 설경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가야산은 오묘하고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매표소에서 해인사까지 이어지는 홍류동계곡 주변에는 소나무뿐만 아니라 활엽수가 우거져 있어 그 아름다움이 해인사와 함께 가야산의 백미로 손꼽힌다. 

 

해인사 초입의 갱맥원에서부터 정상의 우비정까지 19개의 명소가 있다. 가야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홍류동계곡은 계절마다 경관을 달리하여 주위의 천년 노송과 함께 제3경 무릉교로 부터 제17경 학사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절경이 10리 길에 널려있다.가을의 단풍이 너무 붉어서 계곡의 물이 붉게 보인다 하여 홍류동이라 불리어 웠고 여름에는 금강산의 옥류천을 닮았다 해서 옥류동으로도 불리운다.

 

이 계곡의 아름다움은 봄이나 가을에 으뜸을 이룬다. 그밖에도 가야산에는 무릉교, 홍필암,음풍뢰, 공재암, 광풍뢰, 제월담, 낙화담, 첩석대 등의 명소가 있다.가야산 남쪽자락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14개의 암자와 75개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특히 해인사는 국내 3보사찰중 법보사찰로 유명하다.

 

또한 우리나라 3보 사찰중 하나인 가야산 해인사는 불교의 성지이다. 조선시대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을 옮겨온 후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법보종찰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가야산 능선은 곰취, 더덕, 잔대, 두릅, 미나리 등 많은 종류의 산나물 산지로 봄철의 산나물산행으로도 인기 있다. 해인사 입구에서 주민들이 직접 채취한 산나물을 판다.

 

현대에 들어와서 가야산은 백련암에서 수도했던 성철스님으로 말미암아 더욱 유명하게 됐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는 홍류동계곡의 맑은 물과 더불어 가야산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항상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가야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해인사의 입구까지 이르는 4km의 홍류동(紅流洞) 계곡은 가을단풍이 붉어서 물이 붉게 보인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남산 제일봉(1,010m) 아래에 있는 청량사는 신라의 최치원이 지었거나 즐겨찾았다고 추정되는 신라시대의 사찰이다.

 

남산 제일봉은 1,000개의 불상이 능선을 뒤덮고 있는 듯하다고 하여 불가에서는 천불산이라 부르고 있다. 그밖에 산중에 삼원사지 삼층석탑(경북문화재자료 116)이 있고, 성주읍 방면으로 법수사지 삼층석탑(경북유형문화재 86)이 있다.

 

 

 산행일시 : 2010년  월  일 ( 요일) 날씨 :              

 산  행 지 : 가야산 1,433m 경북 성주군,경남 합천군

 산행코스 : 백운동주차장 = 백운암지 = 서성재 = 칠불봉 = 우두봉 = 토신골 = 용탑선원

                      = 해인사 = 성천스님사리탑 = 해인사성보박물관 = 주차장

 교통수단 : 대절관광버스

 산행인원 : 32명(수도, 가야산 종주 3명)

 산행시간 : 6시간

 

가야산은 개인적으로 이미 여러차례 다녀온 산이고 무엇 보다도 거리가 멀어 산행을 다녀온 후 다시 새벽 2시까지 근무를 해야 하는 관계로 선뜻 산행에 동참하기 쉽지않아 망서리고 있는데 우리산내음 회원님들중 마침 (연산님, 파랑새님, 뭐야님) 3분이 화요일밤 열차로 김천에 내려가 어디서 1박 하고 지난 2004년 10월 1일 내가 통영에 사는 이수영 아우님과 진맹익님등 12명이 "수도가야산 종주"를 하였던 코스를 종주를 하신다기에

 

세분들께 멀리서 격려 전화라도 하면서 가야산 정상인 우두봉에서 "수도가야산"종주를 하고 온 일행들과 반갑게 만날것을 생각하면서 흔쾌히 산행에 동참키로 하고 하루 전날에 겨우 산행에 참가한다는 댓글을 달아놓고 화요일밤 새벽 2시까지 근무 마치고 귀가하여 새벽 4시반에 자명종을 울리게 시간을 마춰놓고 잠이들어 얼떨결에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3시40분이되어 약 40분여 좀 더 자자고 맘먹고 잠이들었다. 꿈결에 산행 시간을 못마춰 산행을 못하게된 꿈을꿔 너무 분하고 약이올라 벌떡 일어나 보니

 

새벽 5시 10분이 지나고 있다. 4시 반 정도에 일어나야 서두르지 않고 준비하고 7시반까지 사당에 도착할 수 가 있는데 컬났다 생각하고 아내가 저녁 늦게 미리 쌓아놓은 도시락을 다시 한번 전자레인지만 돌려 챙겨 걸망을 짊어지고 사무실에 들려 나 없는 시간 아르바이트생이 문열고 내 대신 업무처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여놓고 서둘러 걸음아 날 살려라 자전차 페달을 밟아 새벽길을 가르며 부평역에 도착하여 서둘러 자전차 보관대에 자전거를 잠궈놓고

 

걸음아 날 살려라 부평역사로 뛰어 들어가 시간을 보니 어랍쇼 평소 느긋하게 준비하고 나온날 보다 약 10여분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마침 부평에서 6시 4분 출발하는 급행열차를 타고 신도림에서 2호선을 갈아타고 사당에 도착하니 세상에 부평에서 40분만에 사당에 도착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무려 일행들과 약속 시간보다도 50여분 정도나 이르게 도착하여 빌딩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다 하나 둘씩 모여드는 일행들을 만나 29명이 가야산을 향하여 출발을 한다.

 

 

서울 사당역에서 7시 40분 출발한 우리 일행을 싫은 차가 괴산 휴계소에서 15분여 휴식을 취한후 경북 성주군,경남 합천군 백운동 주차장에 도착하니 11시가 되었다 우리들은 암릉구간을 오르내리는 코스가 되어 정상에서 전원 만나기 쉽지 않을것을 예상하여 이날 산행에 참석한 전원이 단체 기념 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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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야생화 식물원

 

시간관계상 들어가 보지는 못하였지만 아마도 가야산에서

서식하는 야생화를 실험 재배 보존하는 시설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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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마을을 지나 백운동 야영장 방면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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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입구를 지나고 있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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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 1, 2, 3교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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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길은 등로 양편으로 싱그러운 산죽길길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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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왕봉 방향으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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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 일행들이 잠시 가던길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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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백운사지 방향으로 진행한다.

 

 

가야산 등산로 곳곳에 과일껍질 버리지 말라는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다.

 

 

거대 암벽지대도 지나고

 

 

 

 

데크목 계단길이 이어진다.

 

 

백운암사지를 지나 오름길은 데크목 계단길로 이어지고 있으며

양편으로 싱싱하게 푸르름을 자랑하는 산죽이우거져있다.

 

 

안부에 올라서니 산행시작 1시간 반이 걸렸다.

 

 

2004년 내가 수도가야산 종주할때 이곳 코스는 대부분 너덜겅같은 돌 무더길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몇 년전과 달리 칠불봉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온통 데크목 계단길과 돌 바닥으로 정비가 되어 산행하기 힘든줄 모르고 오를 수 있도록 잘 조성이 되어 있다.

 

 

 

 

멀리 건너다 보이는 남산제1봉 방면

 

 

외로히 홀로 우뚝서있는 바위를 만나자

 

 

사당동님

 

 

여울님 위험을 무릅쓰고 꼭 올라야 직성이 풀린단다.  

 

 

산죽길을 버리고 오름길은 기암절경 사이사이에 데크목 고가사다리 계단길로 이어지고

있으며 서서히 뾰족뾰족한 암릉구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멀리 칠불봉도 희미하게 보인다.

 

 

 

 

암릉사이에 소나무분재 고사목이 죽어 있는 모습도 아름답다.

 

 

 

 

 

 

야생화 선생님 갑장산님께서 의산님에게 산에대한 설명도 하여주고

 

이날 가야산 산행길 산행대장을 맡은 산초스님  

 

 

암릉구간마다 설치된 철계단길

 

 

가야산 산행길에 유일하게 만난 부부산님 두분 모습

 

 

마치 분재를 방불케 하는 소나무

 

 

가야산 산행길에는 하도 많은 기암절경을 만나 웬만한 암릉은 눈에 차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들은 전방에 보이는 바위위에서 선두 일행들끼 점심 식사를 하게된다.

 

 

물안개님 생신축하 케익도 자르고

 

후미 그릅으로 오신 회원님들께선 우리들 보다 더 아늑하고 편안한 자리에서 점심 식사를 하시는데 이날 마침 생신을 맞이하신 물안개님을 위하여 은영님께서 가야산까지 케익을 배낭에 메고 오셔서 생신축하 케익도 자르고 축가도 불러드리고 선두와 간격 차이로 선두 일행은 무전기로 물안개님 생신축하 노래를 불러드리고 멧시지도 전해 드리며 축하를 드립니다. 

 

물안개님 생신축하 드립니다. 그런데 서방님이신 연산님께서는 그 시간 수도가야산 종주길에 계시어 자리에 함께 하실 수 없어 조금은 아쉽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고령의 연세들인데도 두분 모두 산이좋아 이렇게 당신 생신날도 산행길에 나서 산에서 맞이 하시는 생신이 더욱 특별하신것 같아 멋지고 아름다워 보인다. 연산성님 수도가야 종주 축하 드립니다.

 

 

 

 

지난해 부터 줄곧 이어오던 수요산행을 못하게 되면서 한동안은 어쩌다 산행에 동참하면 전과같지 않고 힘이 부쳐 늘 후미그릅에서 산행을 하였는데 금년초 부터 이래서는 안되겠다. 생각을 하며 우리집이 아파트 6층인데 이곳을 계단으로 오르면 80계단인데 사업장과 집이 약 150여미터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하루 집에 4번- 5번정도 오르내리다 보니 평균 320-400 계단을 매일같이 걸어서 오르내리다 보니

 

이젠 웬만한 산행길에 만나는 급경사 구간은 끄떡없이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러면서 항상 가파르게 오르는 코스에서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올라야 했는데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린 덕택인지 그런 증세도 없어지고 정말 나에겐 큰 좋은 경험을 얻게 되었다. 그러니 운동 선수들 한 시도 연습을 게을리 해선 정상을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되며 우리나라를 빛낸 운동 선수들의 그 보이지 않는 인고의 세월이 얼마나 오랫동안 갈고 닦은 결정체라는것을 이해하게 된다.

 

 

암벽에 걸린 소나무 분재

 

 

지나온 코스를 뒤돌아 보고

 

 

고가사다리 구간

 

 

칠불봉 백운동 주차장 갈림길 암봉

 

 

칠불봉에 오른 선두 일행들

 

 

칠불봉(1,433m) 정상

 

가야산 정상은 칠불봉이다. 성주군 주장이다. 그러나 국립지리원에서 측정한 고도는 칠불봉(1,432m)라

한다. 그러고 보면 성주군에선 칠불봉 정상석 높이까지 재서 1,433m라고 했단 말인가? 알쏭달쏭하다.

 

 

칠불봉정상에서 본 우두봉 방향에 상고대 눈꽃이 만발 하였어요

 

 

칠불봉 정상에선 도영이 할베 청파

 

 

올봄엔 유난히 날씨가 고르지 못하더니 최근엔 또 황사가 심하여 산행을 떠나며 하루종일 황사 세례나 받지 않고 산행을 할 수 있기를 기대 하였는데 다행히 황사는 주츰하고 날씨가 흐린날이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을 하였는데 정상이 가까워질 수 록 날씨가 세찬 바람이 불며 기온이 내려가더니 뜻밖에 우두본 방향에 하얗게 핀 상고대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행운이란 말인가?

 

 

 

 

 

 

선두 일행과 수도가야산 종주 산행을 하신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당겨보았다.

 

화요일 밤 새벽 2시 지나서부터 수도가야 종주를 위하여 야간 산행길에 들어선 (연산님, 파랑새님, 뭐야님) 세분이 벌써 우두봉 정상에 도착하여 우리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분들 이날 수도가야산 종주를 13시간 채 안걸려 종주를 모두 마치고 우리들과 하산하여 만나 뒷풀이를 하고 같은 버스를타고 귀경할 수 있었다.

 

 

후미 일행들과 적당한 간경을 띠고 진행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암봉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갑장산님 

 

 

 

 

가야산 우두봉 오름 철계단길

 

 

우두봉(상왕봉 1,430m)정상

 

그런데 우두봉(상왕봉 1,430m)이고 칠불봉은 1,433m인데 왜 가야산 정상을 우두봉(상왕봉 1,430m)이라 하는지 이해가 쉽지 않다. 가야산 정상이 우두봉(牛頭峰) 인지 아니면 칠불봉(七佛峰.1433m)인지 합천과 성주군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있는듯 한데 그 자세한 내용은 성주군에 위치한 칠불봉이 합천군에 위치한 우두봉(상왕봉)보다 3m높다 하여 가야산 정상이 칠불봉이라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논란이 있기전 과거에는 칠불봉은 사실상 없었는데 근래에 들어 성주군에서 칠불봉이 우두봉보다 3m  더 높다하여 가야산 정상이 칠불봉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미 가야산 정상은 우두봉(상왕봉)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으며 각종 자료나 문헌에도 가야산 정상은 우두봉으로 되어 있어 새삼스럽게 가야산 정상을 두고 칠불봉이라고 하는 성주군의 주장은 걸맞지 않은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우두봉(상왕봉1,430m)정상에서 도영할베

 

그런데 이상한것은 정상석에는 분명히 우두봉이라 적고 있는데 산행길 이정표에는 하나같이 상왕봉이라 기록하고 있으니 가야산을 몇번을 ?은 사람도 가야산 정상명을 이중으로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관계로 얼떨떨할 정도이다. 아니면 상왕봉 글자  옆에 우두봉이라 적던지 아니면 하나로 통일하여 우두봉이라 적던지 가야산 국립공원측은 이 이정목 표시의 봉우리 이름을 통일하여 표식을 하여야 할것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아름다운 상고대를 만나다. 

 

 

 

 

우두봉 정상에 이 우물은 가믐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가까이서 본 우두봉

 

 

우두봉에서 해인사 방면으로 하산길 암봉에 오른 회원님

 

 

 

 

 

 

 

 

하산구간은 그야말로 얼마나 편안하게 이어지고 있는지...

 

 

 

 

 

 

고용나무

 

 

이곳 탑 입구에는 "운문호병단 雲問胡餠團 진주라복장 鎭州蘿蔔長"라고

입석 기둥에 한문으로 글이 써있는데 무슨뜻인지 알 수 가 없다.

 

 

해인사 경내 모습

 

 

 

 

모처럼 온길이라 팔만대장경에 알현이라도 할량으로 계단을 오르니 문은 열어 개방하고 있는데 해인사 경내와는 달리 팔만대장경을 모신 건물 자체도 사진촬영 금지 구역이되어 사진을 찍지 못하고 팔만대장경은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알현은 커녕 그림자도 만나지 못하고 내려서야 했다. 그 옛날 산행을 다니기전 유산객으로 이곳 해인사에 왔을땐 "팔만대장경"을 개방하여 볼 수 있었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빠른 시간내에 팔만대장경이 동판으로 복원되어야 할것이란 생각을 하지만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사실은  이 팔만대장경 동판 복원 사업도 지지부지 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해인사 경내를 돌아보고 나오다 보면 유난히

고목이 여러곳에 고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나무는 애장왕(802년)에 순응, 이정두 스님이 해인사를 개사한 기념으로 심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1945년 고사하여 지금은 뼈대만 서 있어 해인사의 긴 역사를 말해준다. 내가 태어나고 그 다음해에 이 고목이 죽어 아직도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가야산 해인사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팔만대장경 판전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원각이 보조하니 적과 멸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아 시회대중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1980. 종정수락 법어

 

 

 

 

 

 

성철스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

 

성천스님 사리탑을 돌아 보면서 "살아생전 무소유의 삶"을 주장하시며 사시다 최근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두분 스님은 우리 국민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시며 국민들에게 힘을 주신 큰 스님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정스님의 유해는 생전 스님의 유언에 따라 화장을 모셔 산하에 뿌려진다고 하는데 이와같은 법정스님의 그 큰 뜻을 우리네 서민들이 이해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내 생각에는 이렇게 고명하신 법정스님의 업적을 오래오래 세상에 기리기 위하여 가능하면 화려하지 않은 법정스님 사리탑 정도라도 모셨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곧게 자라는 소나무를 다래 덩쿨이 칭칭감아 볼상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것 보면 사람도 자연도 이웃 잘만나야 하는것 같다. 불량한 이웃 다래넝쿨 때문에 소나무의 일생이 꼬여 버리고 말았다.

 

 

 가야산 하산길에 후미 일행들을 기다리며 거북이 산행을 하다 보니 해묵은 풀숲에 새싹이 솟아 꽃이 피고 있는데 얼마나 작은지 1-2cm 접사로 간신히 촬영을 하여 보지만 산행할때 마다 곁에서 갑장산님 들풀사랑님들이 야생화 이름을 알려 주지만 이미 도영할베 머리는 하드가 다되었는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버러 돌아서면 이름을 알 수 없다.

 

 

 

 

 

 

 

 

 

 

해인사 성보박물관을 지나는것으로 이날의 가야산 산행은 모두 마치고

 

우리들은 다시 300여 미터 더 올라가 주차장 인근 식당에 들어 이날 "수도 가야산 종주"를 마치신 (연산님, 파랑새님, 뭐야님) 종주 축하겸 저녁식사를 하면서 곁들여 시원한 맥주에 이슬이 한 잔 건배를 하고 귀경길에 오른다. 그러데 원체 장거리 산행 관계로 사당역에 도착하니 이미 밤 10시 반이 지나고 있어 차에서 내리자 마다 일행과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귀가 하니 밤 11시 반이 지나고 있다.

 

이때부터 다시 업무 인계받아 새벽 2시까지 서부전선 이상없이 근무 마치고 귀가하여 토끼잠 자고 새벽 6시 다시 핼스클럽에서 2시간 뛰고 나니 제정신으로 돌아온듯 생동감이 돈다. 그리고 또 그넘의 산 다녀온 흔적 남기려 이틀에 걸쳐 산행기 긁적거리는 내모습이 내가 생각하여도 정말 웃기는 짜장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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