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만물상 능선

 

37년만의 개방에 사람 반, 기다림 반

 

2010년 6월 13일 (일)

에스테반과 산거북이

 

 

 

 

 

출발은 비교적 이른 시각에 했는데, 원했던 대로 새벽은 아니었다. 전날 월드컵축구

의 즐거움으로 늦은 잠을 잔 때문이었다. 37년만의 개방 첫 일요일이라 혹시 붐비지

나않을까 염려했는데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보이고 만져지고 밟히고 느껴지는 것이랑 모두 꼭꼭 씹어서 온갖 맛을 다 볼 참으로

쉬며 놀며 올랐더니 얼마지 않아 여러 산악회 회원들 틈에 꼼짝없이 묻히게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심원골과 용기골 사이 

서성대 남쪽 서장대에서 이어진 화려한 능선

얼마나 화려했길레 '만물상'이라 이름을 얻을을까. 

  

 

 

1999년 지도에는 서성재-서장대-사자암-1054봉-백련암-해인사 등로 뿐 아니라

심원골 등로, 동성재, 동장대까지 잘 표기되었다. 눈여겨 볼 것은 현재 1443 m로

칠불봉 정상석이 만들어진 지점보다 훨씬 동쪽(상왕봉과 도상거리 약 1 Km거리)

에 원조 칠불봉이 능선상에 뚜렷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실과 정립은 관계전문가들의 몫이니 괜한 주장을 내세울 바는 없지만, 가야산

사랑을 몸소 실천하던 어느 野人에 내게 준 저 지도로 나는 어영부영 수도산-가

야산 종주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유난히 저 낡은 지도를 아끼고 있다.

 

 

  그때 이미 서장대와 만물상의 동경을 품게되었다. 참으로 오랜 기다림이었다.

 

 

 

 

 

 등로의 초입은 돌계단으로 다져 놓았으나 이어지는 산죽길 오르막은 좁은 등로로

교행이 힘들정도의 폭이다. 산길은 오래 묵어 푹신푹신한 부토로 축적이 되었고,

간간히 잡고 올라서야하는 경사진 곳의 손잡이 나무는 반질반질하게 느껴졌다. 그

사이에도 많은 산인들이 알게모르게 다녔던 흔적일게다.

 

 

하지만 많은 구간의 흙길은 아직도 다져지지 않고 푸석푸석하여, 장마기간이나 호

우에 등로의 손실이 염려되었다. 게다가 일시에 몰린 많은 등산객들의 발길은 연약

한 등로를 다지기보다 되려 쉽게 패이는 현상을 보이는 듯도 하다.

 

 

 

숨없는 오름이 지겨울 정도가 되면 조망이 트인다.

 

 

 

우(右)로 용기골과 동장대 아래능선

 

 

 

좌(左)로....., 복원 중인 심원사인가 보다......

 

 

 

심원골 계곡 위로 사자바위 암릉...... 위세가 대단하다.

뒤로 이어지는 연봉은 백련암 방향으로 흘러내리는듯.

 

 

 

이런 등로가 확보되기 전에는 당연히 난코스였으리라.......

 

 

 

7-8년 전에만 해도 가야산에 올때 가끔은 백운지구에서 주말숙박을 겸했던 적이

있었다. 도로사정이 지금과 같지 않아 부산서 거리가 먼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도 백운리의 새벽이 좋았다.

 

 

경험하기 힘든 해발 600의 고지대의 이른 아침이 주는 상쾌함은 가야산의 또 다

른 멋이었다. 지금도 위에서 바라보니 정말 쾌적하고 평화로운 지대다. 저곳에서

땀흘리며 생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겐 죄송한 이야기지만, 정말 살아보고픈 곳

이다.  

 

 

 

위로보니...... 암릉이 당차게 버티고 있다.

바위에서 내려다보는 검은 옷의 산객은 나중에 내가 만나게 될 분이시다.

이미 카메라에 들어와 계셨던 운명(?)이었다.^^

 

 

 

소나무가 바위에서 자라나니

바위가 나무같고 소나무 몸이 흡사 돌덩이와 같아보인다.

 

 

 

나도 저 끝에 한번 올라가 봐야지......

 

 

 

정말 잘 자랐다......

탐스럽게 자란 잣방울. 저 푸른 방울 속에 하얗게 알알이 박혀 영글 잣을

생각하면 앞으로 한알한알 귀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바윗길이 이어진다. 저 바위 끝에는 꼭 올라 봐야지......

 

 

 

결국 그 바위에^^

예전에 비해 두려움이 줄은 셈.

 

 

 

상왕봉은 여전히 구름에 덮혔는데도 머리 위의 하늘은 파랗다.

 

 

 

아직도 갈길이 멀다.

 

 

 

바위 위에서 홀로 한참을 주변 산세를 보는 이가 있었다. 당연히 내 시선을 끈다.

서둘러 갈길 바쁜 자가 아니라 가야산 만물상을 만나러 온 산님임을 쉬 알 수 있다.

천천히 돌아서더니 나를 쳐다보고는 2초 후에 반색을 한다.

 

 

산거북이님 아니세요? 한국의산하에......

(뜨끔!...... 엉겹결에)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재밌으라고 몰골 사진을 가끔 올린 것이 눈썰미 좋으신 분들에게 표적이 되어버렸다.

산행기를 잘 읽고 있으시단다.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식고 나서야 존함을 여쭈었다.

세상에.....!! 글도 잘쓰시고 사진도 워낙 깔끔하여 단정한 분이라여겼는데..... 역시

실물 또한 못지 않으시다. 산을 닮아 준수하시고 물을 닮아 선량하시다, 정말 반갑습

니다.!! 너구리님~ 

 

 

 

홀로 산행을 즐기는 분이라 동행은 청하지 않고 가던대로 가시자고 하니

역시나 꺼리낌이 없으시다. 나중에 쉼터에서 다시 만나 간단한 요기도 나눴지만

작별인사는 하지 못했다. 다음에 또 어느 산에서 만나겠지......

 

 

 

무더위와 등로에 꽉찬 대열......

마치 가을 설악산 같다.

 

 

앞뒤로 동료와 호기있게 고함지르며 크게 이름 불러대고 대화하고 농짓거리하는,

그런 것 좀 안했으면 좋겠다. 낯선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몸에 베이지 않았다면

산에서 만나는 들풀과 초목에 대해서는 오죽하겠는가. 

 

 

 

인파에 섞여 거의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좁은 등로에 등산객은 붐비고, 곳곳의 구간에 정체되고 암반 빈틈에는 햇살이

뜨겁게 내려쬐고, 그늘진 구석에는 어김없이 삼삼오오 쉬고 있다. 

 

 

 

그러니까, 만물상 개방 소식은 작년부터 기대에 차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틈틈히 들여다본 가야산 국립공원 공단 홈페이지에는 6월 1일 첫날까지만

해도 6월 중순에 개방한다는 원칙적인 답변만 이어지고 있었는데, 월 초에

6월13일 토요일에 전격(?) 개방발표가 되었다.

 

 

그러니까 오늘이  토요일 첫 개방날에 이어 첫 일요일이 된 셈이다.

 

 

 

게다가 간혹 역으로 하산하는 팀들도 적잖이 있어, 좁은 등로에 정체가 반복되었다.

 

 

 

이곳 너럭바위의 전망이 가장 좋다.

 

 

 

아래,  경험 많으신 풍경소리님과 브리뜨니님 산행기에 의하면 대장경바위라고도....

 

 

 

다시한번 내려다보고.....

 

 

한봉우리 두봉우리 세봉우리 저 끝에 맨 꼭지가

서장대......!!

 

 

 

 

바위 곳곳에 한번씩 올라서 봐야지......

 

 

 

상왕봉은 구름 속에 잠겼다.

 

 

 

 

산친구 에스테반도 이번에는 카메라를 챙겼다.

 

 

 

쳇! 서성재에서 정상 오르는 비지땀 길이 왜 저렇게 완만하게 보이냐??

산책길처럼 미끈하네.....

 

 

 

오늘은 이런 줄산행을 했다......

생애에 몇 번 없는 일이라 군말없이 끄덕끄덕 망아지 새끼모냥 따라갔다.......

 

 

 

서장대 꼭대기점은 설 수가 없나??

이쯤에서 뒤로 한 컷......

 

만물상 능선의 종지부를 찍는다! 

 

 

 

서성재에서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햇살과 더위와 암릉과 인파에 적잖이 지쳤다^^)

용기골로 내려갔다. 함박꽃 그늘 아래 계곡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서늘한 계곡 바람

과 손시린 계곡수와 함께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함박꽃의 소박하면서도 정결한 아름다움. 큰 가지에도 한송이 조용히 피어나고, 곁에

소담스런 봉우리 두어개 맺고...... 누렇게 시들즈음이면 다시하나 소리없이 피어나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미모다.

 

 

 

키높은 쪽동백나무 꽃들은 다 떨어지고, 키낮은 때죽나무 꽃들은 여전히 총총하다.

와르르~ 짹짹짹짹....... 작은 새들이 일제히 지저귀듯 피어난다.

 

 

우리동네는 이미 열매가 영글기 시작하는데.....

 

 

 

때죽나무 낙화로 장식된 길을 밟아 오늘 여정을 마친다.

하얗게 떨어져...... 마치 깔깔거리던 웃음이 내려앉아 상기된 시무룩함 같다.

 

 

 

유월은 유난히 흰꽃들이 많은데, 그게 다 가지에 핀 햇살의 은유라고 생각든다.

소박한 정결함일지, 경박한 깔깔거림일지는 다만 산을 걷는 자의 선택이다.

 

 

 

나는 오늘 산에서 어떤 꽃으로 피었는가?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