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일시 : 2011년 9월 13일 12시 02분 - 21시 30분

산행   구간 : 송림사에서 가산산성 진남문으로..

산행   거리 : 21.2km

총소요시간 : 9시간 29분

   평균이동속도 : 시간당 약 2.2km

산   행   자 : 나홀로..

주요 구간별 산행 시간:

 송림사(12:02)- 서산(14:00)- 달분재(14:34)- 수림사(15:01)- 치키봉(16:10)- 가산(17:07)- 유선대능선 들머리()- 산당저수지(18:37)- 북문, 서문, 팔공지맥길 삼거리(19:51)- 중문(20:38)- 동문(20:53)- 가산산성 진남문(21:30)

 

산 행 지 도

 

 

 

 어제가 추석이다.

명절이 뭔지 하는 일도 없이 바쁘다.

하하! 그런네.. 이산 저산 벌초하러 다니고, 여기저기 인사치레 한다고 조금 쏘아 다니기는 했네. ㅎ

명절이랍시고 기름진 음식과 맛난 술들로 찌든 육신을 조금이나 정화하고자 가까운 송림사와 가산산성을 연계한 산행을 하고자 집을 나선다.

새벽같이 나서야 할 산행이 이런 저런 이유로 늦은 아침을 먹고, 송림사에 도착하니 벌써 정오가 지난다.

송림사 공양간에서는 식사 못하신 분들은 식사하러 오시라 하고..

낮 12시부터 13시 사이가 공양시간이라 하네. 

요즘 웬만한 사찰에서는 불특정 신도님들을 위해 점심 공양을 무료로 대접하는 게 일상화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사월 초파일 하루만 가능했었고

갓바위 부처님 전에나 가야  1년 365일 무료 공양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만큼 우리네 살림살이가 풍족해 지는 것일테지..

 

 송림사를 배경으로 한장 찍고..

여기 저기 송림사를 둘러 봅니다.

 

 송림사 경내

송림사는 서기 544년(신라 진흥왕 5년)에 각덕조사(명관)께서 진나라 유학 후 귀국하시면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 4과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그 후 1092년(고려 선종 9년)에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였으나 1243년(고려 고종 30년) 몽고군에 의해 폐허가 되었으며 다시 조선시대에 중창했으나 1597년(조선 선조 30년) 임진왜란 때 왜병들의 방화로 가람이 소실되었고 1686년(조선 숙종 12년)에 기성대사에 의해 대웅전과 명부전이 중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송림사 대웅전내 삼존불(보물 1106호)

송림사 대웅전 수미단 위에 봉안된 이 삼존상은 석가여래와 문수·보현보살로 구성된 석가삼존형식으로 본존불(277cm)의 높이가 3m에 육박하는 거대한 목조불상이다. 이 삼존상은 규모가 큰 불상임에도 불구하고 신체비례가 적당하고 안정적이며, 당당한 형태미를 보여주고 있다. 본존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무릎 위로 올려 구부린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다. 본존과 거의 흡사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좌·우협시보살상은 양손의 수인의 위치만 달리하여 두 손으로 긴 연꽃줄기를 잡고 있는데, 연꽃줄기는 보관과 함께 후대에 보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송림사 삼존상은 양식적으로 건장하고 당당한 형태미, 엄숙한 얼굴표정에 입가를 눌러 만들어 낸 생경한 미소, 간략하고 단순화하지만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옷주름 등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양대전란 이후 17세기 전·중엽경의 재건불사 과정에서 제작된 불상들과 양식적으로 상통한다. 이 삼존상은 조선후기 17세기를 대표할 만한 대작(大作)으로서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을 통하여 정확한 조성연대와 발원자, 조각승을 알 수 있다. 특히 17세기 전반에 활약했던 조각승 무염(無染)계에 속하는 수화원 도우(道祐 또는 道雨)를 비롯하여 18명의 조각승들이 참여하여 제작한 대형작품이다. 따라서 이 삼존상은 17세기 전반과 후반을 잇는 기념비적 작품이자 조각유파 연구에도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송림사 대웅전 목조건물과 삼존불상이 비범해 보이더만, 나라의 보물이었군요.

그런데 이 대웅전 전각도 보물급인 것 같은데..

 

 

이 5층전탑도 보물입니다.

국사책에도 나오지요.  이  탑내에서 많은 보물들이 발견되었답니다.

지금도 송림사는 큰 절이지만, 옛적에는 굉장히 큰절로 보여 집니다.

이 송림사에서 많이 떨어진 장소에 부도탑과 작은 사당이 보이고, 산길로 오르기 위해 돌담길을 돌아가는데 비석같은 큰 돌이 들 가운데 하나 서있네요.

자세히 관찰해보니 무슨 글자들이 쓰여 있는 것 같군요.

송림사 주변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탐문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대추가 탐스럽게 익어 가네요.

가을이 익어 갑니다.

 

 송림사 주변을 한바퀴 돌아 오늘 산행의 들머리에 섰습니다.

송림사 후문 가까운 곳에도 산길이 열려 있는데, 짐승들 경계 전기철책을 설치해 놓았더군요.

 

 조금 올라서니 모 집안 산소들이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뒤 돌아보니 송림지 못도 보이는군요.

기회가 된다면 송림못 우측 능선으로도 가 볼 생각입니다.

 

 삼각점도 보이고..

 

 2시간여 오르니 서산입니다.

정상석 대신 온갖 음료수 병들이 나무가지에 꼽혀 있습니다.

나무사이로 가산산성 진남문도 보이는군요.

여기에서 우측 마루금을 따릅니다.

 

 내려가는 길에 살아있는 나무에 이런 버섯들이 많이 달려 있네요.

영지같기도 하고..

영지라기엔 두께가 조금 얇은 것 같기도 히고..ㅎ

 

 달분재입니다.

남원동과 기성동을 나누는 재입니다.

 

 달분재 건너 표열각으로 올라 산행을 계속 진행합니다.

 

 기성동에서 가산산성 진입로

날이 너무 덥군요.

땀이 비 오듯이 흘러 내립니다.

물이 너무 쓰여, 물 조달을 위해 수림사로 올라 갑니다.

 

 최근에 지어진 수림사

이 수림사에서 물을 조달하고 가산산성 치키봉을 향해 수림사 오른쪽 능선으로 붙습니다.

 

 이 능선에도 무슨 건물을 짓고 있네요.

산신각인가?

 

 20여분 오르니 가산산성 성벽이 보이네요.

이 성벽을 넘어 갑니다.

 

 이렇게 완전한 성벽도 보입니다.

 

 지나 온 산길

가운데 높은 산이 서산.

 

 성벽을 넘어서 40여분 오르니 치키봉입니다.

저희 사무실에서 매일 보는 산입니다.ㅎ

 

 치키봉 옆 헬기장엔 억새가 키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가을이 자라고 있네요.

 

할아버지 할머니 바위

 

 

 

 하루빨리 가산산성이 복원되어야 겠습니다.

허물어진 성벽을 보니 마음이 아프군요.

 

 유선대 능선

 

 가산산성 성벽 중에서 특이한 점이 여러 곳 있지만, 성벽과 성벽 사이에 이러한 공간을 둔, 해자라고 하나요?  가산산성 성벽 중 이곳만 해자가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외성과 내성을 가르는 성벽입니다.

이 성벽은 동문과 연결되어 있지요.

 

 

 가산산성에서 제일 높은 곳, 가산입니다.

계속 용바위와 유선대 방향으로 나아 갑니다.

 

 아~

이제 가산산성도 종합적으로 개발될 모양이군요.

늦었지만 대환영입니다.

 

 용바위

 

 유선대 펜스가 보이는군요.

 

 

 가야 할 유선대 능선이 구름에 가려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타고 넘어 갑니다.

 

 끝모를 깊이이군요.

 

 유선대 능선은 이끼식물들의 보고입니다.

사람들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순결한 장소이군요.

길은 조금 위험하나,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아~ 조~오~타!

 

 뒤돌아 보는 유선대와 용바위 방향

가산산성만 생각하다가, 이곳 유선대 능선으로 내려오며 뒤돌아 보는 가산은 감탄사가 절로 납니다.

너무 너무 멋집니다.

 

 팔공산 주능

 

 온 사면에 이끼들이 자생합니다.

밟지 않을려고 조심조심 합니다.

 

가산산성 북사면

북사면은 경사가 급하군요.

 

 

 

 

 아~

 

 이 유선대 능선은 사진 속에 있는 저수지에서 끝이 납니다.

길이 불투명합니다.

 

 가산산성 북사면이 굉장히 넓기도 하군요.

 

 오른 쪽에 보이는 저수지 중앙에서 능선은 끝이 납니다.

저수지를 신축중에 있군요.

저는 저 저수지로 내려가, 다시 왼쪽 능선으로 붙어 가산산성으로 되돌아 올려고 합니다.

 

 가산산성 북쪽에 있다고 "북창"

남쪽에 있다고 "남창" 이렇게 부릅니다. 하하!

 

 가산산성 북쪽의 넓은 유역

이 정도면 큰 계곡이 있겠군요.

 

이끼에도 꽃이 피나요?

하얀 이끼들이 넘 보기 좋군요.

 

 

능선을 거의 다 내려왔는데, 내려설 길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서 좌측 계곡 물소리 나는 쪽으로 내려서니 여기도 비경이 펼져 집니다.

 

너른 암반에 이름모를 폭포들이..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보이지 않는군요.

 

참 멋집니다.

길도 없는 이곳에, 알아줄 이 없는 장소에서 이렇게 멋스러운 폭포가 있었군요.

 

wonderful!

 

이런 절경이 계속 이어 집니다.

 

신축중인 저수지

 

이 저수지 제방에서 보는 유선대 능선

해저녁에 보는 능선이지만 예사 모습이 아닙니다.

 

제방 좌측 금지줄을 넘어 좌측 마루금으로 붙어 갑니다.

 

1시간여 치고 올라오니, 삼거리 지점이 나오는군요. 팔공지맥길과 북문, 서문 갈림길..

카메라에 문제가 있는 지 사진이 찍히지를 않습니다.

이후 북문으로 진행을 하여 주변을 둘러 보고, 북문 주변의 집터들을 확인합니다. 절구도 보이네요. 예전에는 이곳에 산성내 마을자리 같습니다.

다시 서문으로 나와서 가산바위를 지나고, 중문으로 진행을 합니다.

 

중문

여기에서 등산배낭을 내려놓고, 사진기를 이리저리 한참을 만져 보고, 찍어 보고... ㅎ

어라! 사진이 찍히네요..^^

 

 

동문으로 내려 갑니다.

 

동문

진남문에서 동문까지를 외성, 동문에서 중문까지를 내성, 중문에서 나머지 공간을 중성으로 나누는 것인지..

 

옛길따라 진남문으로 내려 갑니다.

 

가산산성에는 이런 암괴군이 아주 많습니다.

두고두고 보존해야 할 자산일 것 같군요.

이곳 산성내가 아니더라도 가산 주변에는 이런 암괴군들이 많지요.

철저히 조사하여 보존하면 좋겠습니다.

 

 

 

 가산산성 진남문

가산산성

내성, 중성, 외성 등 세겹으로 축조된 가산산성(사적 제216호)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인조 18년(1640년) 경상도 관찰사 이명웅이 축조한 성이다. 이때 내성만 축조했다. 내성은 성벽 둘레가 약 4km. 성곽에는 동, 서, 북문과 8개 암문, 포루 4개소, 장대 1개소가 있었고, 성안에는 우물과 샘 21개소, 4개 사찰이 있었다.

성은 내성·중성·외성을 각각 다른 시기에 쌓았고, 성 안에는 별장을 두어 항상 수호케 하였다.

내성이 완성된지 60년 후인 숙종 26년(1700년) 당시 관찰사 이세재가 외성을 축조했다. 외성은 성벽 길이 약 3km에 문루 1곳, 암문 3곳, 군기고 등으로 이뤄졌다.
이듬해에는 천주사를 짓고, 이곳에 승창미를 보관했다. 당시 천주사에서는 승려들에게 궁술을 연습시켜 이들로 하여금 성 일부의 수비를 담당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내성와 외성 사이 중성은 영조 17년(1741년) 관찰사 정익하가 축조했다. 길이 약 460m.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을 겪은 후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서 세워진 성이다.

 


하양, 신령, 의흥, 의성, 군위의 군영과 군량이 이 성에 속하며 칠곡도호부도 이 산성내에 있었다. 내성은 인조 18년(1640)에 관찰사 이명웅의 건의로 쌓았으며, 칠곡도호부가 이 안에 있었다. 중성은 영조 17년(1741)에 관찰사 정익하가 왕명을 받아 쌓은 것으로 방어를 위한 군사적 목적이 크다. 중요시설은 내성 안에 있으며, 중성에는 4개 고을의 창고가 있어 비축미를 보관해서 유사시에 사용하게 하였다. 외성은 숙종 26년(1700)에 왕명에 의해서 쌓았다.

성은 외성 남문으로 들어가게 되고, 성의 주변에는 송림사를 비롯한 신라때 절터가 많이 남아있다. 1960년의 집중 폭우로 문 윗쪽의 무지개처럼 굽은 홍예문이 파손되고 성벽의 일부가 없어졌으나 그 밖에는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가산산성은 험한 자연지세를 이용한 조선 후기의 축성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산성이다.

 


 

 

가산산성 수구

 

늦게 시작한 산행인지라 밤 9시가 넘어서야 산행이 끝납니다.

날이 너무 덥군요.

땀이 비오듯 합니다. 길지 않은 산행인데도, 땀으로 사타구니와 목둘레가 쓰라려 힘이 드는군요.

조금 일찍 산행을 했더라면, 좋은 기록들을 남길 수도 있었을텐데..

 

여기에서 시원한 알탕으로 하루의 여독을 풀어 봅니다.

그렇게 더위로 못견뎌하던 몸이, 이 물속에 들어서니 또 춥다고 아우성이군요.

허허!

사람의 마음 만큼이나, 몸도 간사하군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마지막 늦더위 잘 보내시고요, 늘 즐산 안산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