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의 계획은 족가리봉과 미인봉, 신선봉을 종주한 후에 이어서 금수산과 망덕봉을 종주하려는 것이었는데 용두사미가 돼 버렸지만 나름대로 인상 깊은 산행을 하고 온 4월 19일(토요일), 긴 종주를 위해 5시 25분에 집을 나와서 전철을 타고 동서울버스터미널의 매표소에 닿으니 6시 20분. 제천행 표를 끊는다. 요금은 9600원.

6시 30분에 출발한 제천행 첫 차는 소요예정시간인 2시간보다 10분 빠른 8시 20분에 제천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에서 걸어서 이삼분 거리인 큰 차도로 나와서 동양증권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니 8시 40분이 다 되어 청풍행 90번 시내버스가 온다. 90번 버스는 보통 청풍을 거쳐 수산과 덕산으로 갔다가 되돌아오지만 이 시간대에는 청풍까지 갔다가 학현리를 들르게 된다. 학현리 입구에서 청풍대교를 건너 청풍까지 들어갔다가 학현리 입구로 되돌아 나온 버스는 학현리로 들어가 영아치를 넘어 달린다. 학현교를 건너 학현관광농원 앞에서 내리니 9시 35분. 버스가 오던 길로 잠시 되돌아가니 왼쪽에 좁은 임도가 나 있다. 그 길로 들어간다.

콘크리이트 포장의 임도는 곧 비포장으로 바뀌고 좁은 산길로 이어진다. 그런데 선답자의 산행기에서 봤었던 돌계단의 들머리는 보이지 않아 의아해 하면서 오르니 잡목의 가지를 헤치며 가파른 흙길에 미끄러지면서 정상적인 등로라고는 볼 수 없는 길을 밟게 된다. 길이 너무 가파르고 정비돼 있지 않아서 산행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중간에 두 번이나 쉰 후에 1시간 20분 만에 궁뎅이바위에 이른다.

궁뎅이바위에 앉아 15분쯤 쉬면서 주변의 산세를 감상하는데 눈앞의 족가리봉을 비롯하여 갑오고개와 미인봉이 조망되지만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아까 오를 때 산 위에서 ‘야호’를 외치던 소리 외에는 인기척이 없는 적막강산의 모습에 슬그머니 불안감이 치민다.

궁뎅이바위를 내려오니 그제서야 등로다운 등로가 펼쳐지는데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나 있다. 이 길이 정규 들머리에서 올라오는 길인 듯하다.

바위전망대 두 군데를 지나, 궁뎅이바위에서 25분 만에 해발 582 미터의 족가리봉 정상에 닿는다. 명칭의 어원이 몹시 궁금하지만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도 찾을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학현교를 건너서 학현관광농원 못미처에 있는 족가리봉 들머리. 
 


오름길에 바라본 족가리봉과 궁뎅이바위. 
 


족가리봉 지능선에서 바라본 작은동산과 동산.

 


궁뎅이바위. 
 


궁뎅이바위에서 바라본 족가리봉. 
 


궁뎅이바위에서 바라본 갑오고개와 미인봉(저승봉). 
 


궁뎅이바위를 뒤돌아보며 한 컷. 
 


족가리봉 정상 - 해발 582 미터. 
 


족가리봉 정상에서 바라본 미인봉과 680봉, 학봉, 학봉능선의 721봉. 
 

족가리봉 정상에서 10분쯤 쉬다가 복잡한 암릉길을 요리조리 돌아 오르내린 끝에 정방사 갈림길이 나 있는 555봉에 이르러 잠시 주변의 산세를 조망하니 비정규등로인 족가리봉 지능선을 오를 때의 짜증이 봄눈 녹듯 사라진다. 바위틈을 비집고 나오기도 하고 묘하게 생긴 바위들을 바라보며 족가리봉에서 한 시간 만에 해발 596 미터의 미인봉 정상에 닿는다. 미인봉은 원래의 명칭이 멧돼지가 올라갔다는 뜻의 저승봉(猪昇峰)이었지만 불길한 명칭으로 인식되어 제천시에서 개명한 듯하다. 미인봉의 정상에는 족가리봉의 궁뎅이바위와 비슷하게 생긴 전망바위가 있다. 미인봉 정상에서 20분쯤 쉬며 점심을 먹는다. 
 


정방사 하산길이 있는 555봉. 
 


555봉의 정상부분. 
 


555봉 정상에서 뒤돌아본 족가리봉. 
 


등로의 기암. 
 


눈앞에 다가온 미인봉. 
 


작은동산과 그 밑의 마을. 
 


바위틈의 길. 
 


뒤돌아본 555봉과 족가리봉. 
 


미인봉 정상의 전망바위. 
 


미인봉 정상에서 바라본 680봉능선과 680봉, 학봉. 
 


미인봉 정상의 전경 - 해발 596 미터. 
 

미인봉을 내려서면서부터 가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행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너무 보기 힘들어도 산행의 재미가 줄어든다.

미인봉 정상 밑의 넓은 암반이 있는 벼랑 위에서 잠시 조망을 하다가 등로로 되돌아와서 나아가니 약물골 입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545봉에 이른다. 545봉에는 인근의 민박집에서 설치한 듯한 작은 방향표지판이 있다. 545봉에서 35분 만에 수려한 암릉의 하산길이 나 있는 680봉에 닿고 몇 분 더 나아가니 학봉이 눈앞에 보이는 전망바위다.

전망바위를 지나서 사람의 손바닥처럼 생긴 손바닥바위에 이르니 충주호와 함께 지나온 암릉길의 족가리봉과 미인봉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는데 맑은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황사가 잔뜩 끼어 희미하게 보이는 게 안타깝다. 느긋하게 조망을 즐기면서 680봉에서 25분 만에 해발 774 미터의 학봉 정상에 닿는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읽고 금수산과 망덕봉까지 가려고 했었지만 산행속도를 비교해 보니 자신과는 전혀 다른 엄청난 준족이라서 신선봉까지만 가려고 계획을 수정했는데 대중교통이 없는 동금대 삼거리나 갑오고개에서 학현리 입구까지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20분 가까이 쉬다가 로프를 잡고 암릉 한 군데를 넘어가니 벼랑 옆에 로프가 설치돼 있는데 잠재해있던 고소공포증이 불현듯 치밀어 오른다.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더 가면 더 험한 직벽의 로프지대를 통과해야 된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안전한 우회로도 없다. 한참 망설이다가 오늘은 몸의 긴장도 풀어지고 컨디션도 좋지 않아서 그냥 되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미인봉 밑의 바위벼랑지대. 
 


미인봉 밑의 바위벼랑지대에서 바라본 성봉과 중봉, 동산. 
 


미인봉 밑의 바위벼랑지대에서 바라본 680봉과 학봉, 학봉능선. 
 


뒤돌아본 미인봉. 
 


약물골 입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545봉. 
 


오름길에 바라본 680봉과 학봉. 
 


충주호와 지나온 암릉길의 족가리봉, 미인봉, 545봉, 680봉. 
 


손바닥바위. 
 


학봉 정상의 운치 있는 소나무. 
 


학봉 정상 - 해발 774 미터. 
 


학봉 정상의 바위전망대. 
 


암릉의 로프지대가 시작되는 곳. 
 

결국 학봉 정상에서 50분 이상 지체하다가 발길을 돌리게 된다.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18분 만에 680봉에 닿는다. 680봉의 북쪽에 난 암릉길을 내려섰다가 오르니 꼭대기에 바위들이 뾰족하게 치솟아 있는, 680봉의 전위봉에 이른다. 전위봉을 내려와 작은 언덕 같은 커다란 바위를 지나니 이어지는 암릉길 밑으로 남근석 같은 바위가 내려다보이는데 암릉을 따라 내려가보니 표지판은 없지만 외눈박이귀신 같이 생긴 모습이 영락없이 못난이바위다.

못난이바위를 지나서 암릉길을 따라 구불구불 내려가니 커다란 기암인 물개바위 앞을 지나게 되고 그 이후로 잠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제 길로 찾아들어 말바위를 보고 그 밑의 로프가 설치된 슬랩지대를 내려선다. 이어서 작은 나무들의 줄기를 붙잡으며 가파른 흙길을 내려서니 비닐로 채소를 싸 놓은 넓은 밭이 내려다보인다. 이끼 낀 돌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계곡으로 내려와서 밭을 지나니 비포장의 임도가 나 있는 학봉 날머리에 이른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학봉(오른쪽). 
 


되돌아온 680봉 정상. 
 


680봉의 전위봉인 암봉. 
 


못난이바위로 가는 암릉길. 
 


방금 내려온, 680봉의 전위봉. 
 


못난이바위. 
 


못난이바위의 뒷모습. 
 


전위봉과 680봉. 
 


물개바위. 
 


말바위. 
 


말바위 밑 슬랩지대의 로프. 
 


로프 옆의 기암. 
 


680봉 날머리. 
 

차도로 가서 몇 분 내려가니 차도 옆에 포장을 해 놓은 짧은 샛길로 학현계곡의 계류가 흐르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차갑다 못해 시린 계류에 발과 무릎을 냉찜질하고 간단히 씻으며 30분쯤 머무르다가 차도를 따라 내려온다.

미인봉 들머리 두 군데를 지나서 한참 내려오니 자신이 아까 올랐었던 족가리봉 들머리를 지나게 되고 학현교를 건너기 전에 왼쪽으로 차도의 갈림길이 있다. 학현교를 건너 영아치를 향해 올라가니 아까 차도의 갈림길에서 한참 들어간 길에 돌계단의 족가리봉 들머리가 나 있다. 멀리서 봐도 잘 나 있는 등로가 어렴풋이 보인다.

영아치를 넘어서 구불구불 내려가니 붉은 노을을 머금은 해가 서산에 걸려 있다. 그리고 학현리 입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니 붉은 저녁노을 밑으로 충주호가 주변의 산들에 포근하게 에워싸여 있다. 족가리봉 들머리에서 학현리 입구의 버스정류장까지 삼십 여 분이 걸렸고 680봉 날머리에서부터는 천천히 걸어서 한 시간 남짓 걸렸다.

기나긴 차도를 한 시간 이상 걸어 내려왔지만 시리디 시린 계류에 간단히 몸을 씻고 발을 한참 담그고 내려온 탓에 개운해진 몸으로 도로 주변을 감상하며 천천히 내려오니 전혀 지루하지 않다. 버스정류장에서 10분 가까이 기다리니 청풍에서 18시 55분에 출발한 시내버스가 19시경에 도착한다.

19시 50분경에 제천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내려서 근처의 식당에서 알탕 뚝배기 한 그릇을 시켜 먹고 20시 30분발 동서울행 버스를 타니 21시 50분경에 동서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오늘의 산행은 비록 계획의 절반 정도 밖에 완수하지 못했지만 미련하게 얻은 성취감보다는 유유자적한 즐김과 안전 추구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자기과시나 영리추구를 위해서 하는 산행이 아니니 더 행복하고 만족스럽지 않은가. 
 


차도 옆의 학현계곡.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폭포의 힘찬 물살. 
 


폭포와 소의 정경. 
 


약물골 입구의 미인봉 들머리. 
 


금수산가든 앞의 미인봉 들머리. 
 


성황당. 
 


영아치와 학현교, 그리고 족가리봉의 정규 들머리로 가는 왼쪽 갈림길의 차도. 
 


줌으로 당겨 찍은 족가리봉의 정규 들머리. 
 


영아치. 
 


차도에서 바라본 황혼. 
 


붉은 저녁노을과 충주호. 
 


학현리 입구의 버스정류장. 
 


오늘의 산행로 - 푸른 색 선은 왕복한 구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