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5월은 이상하게 맑은 날이 거의 없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이 아니면 비 오는 날이 거의 전부인 5월.


산행지로 선택한 연인산은 산철쭉이 유명하다고 해서 백둔리로 가는 코스를 선택하여 5월 14일에 가게 됐다. 그런데 상봉터미널에서 7시 40분발 가평행 버스를 타고 망우리 고개를 넘어서 구리시를 거쳐 청평으로 향하는 버스의 차창으로 내다 본 풍경은 지척에 있는 산의 능선도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고 해는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당장 비라도 올 듯 흐리기만 한 하늘...


더군다나 소요시간이 1시간 20분이라는 안내와는 달리 정확히 1시간 47분이 경과한 9시 27분에야 가평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는 게 아닌가. 결국 오전에는 한번 밖에 없는 9시 20분발 백둔리행 버스를 놓치고 택시를 타고 갈까 하다가 날씨도 흐린데 맑은 날에 다시 오기로 마음 먹고 가평역으로 향했다. 성북역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어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자니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해지고 있었지만 이미 11시가 다 돼 가고 있어서 늦었다고 생각되어 다음을 기약하며 귀가했다.


수일내로 다시 가기로 마음 먹었지만 좀체로 맑은 날이 없고 웨더뉴스의 주간예보상에 맑을 예정이라던 날도 막상 그 날이 임박하면 일기예보가 흐린 날씨로 바뀌어지는 것이었다. 결국 산행일로 결정한 5월 18일의 가평 날씨는 "구름 조금, 오후 한때 구름 많고 비 조금"이라고 예보돼 있었지만 약간의 이슬비 정도는 각오하고 성북역에서 8시 1분발 가평행 경춘선을 탔다.


아침에 집 근처에서 산 김밥 다섯줄 중에서 두줄을 차내에서 아침으로 먹는다. 남은 세줄은 점심용. 백둔리가 워낙 후미진 산촌이라서 식당도 없을 것 같아 준비해 온 것이다. 그런데 9시 9분 도착 예정이라는 기차 운행 시간표를 믿고 탄 것인데 이 기차도 연착을 해서 가평역에 도착하니 9시 21분. 급하게 버스 터미널의 위치를 물어서 뛰어가니 23분이었지만 버스는 조금 전에 떠났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백둔리의 자연학교 입구 삼거리까지 오니 택시 요금이 미터기 금액으로 일만 팔천원이 나온다. 택시 요금을 지불하고 산행을 시작한 시각은 10시 정각.


10분 만에 소망능선과 장수고개의 갈림길에 오니 연인산 등산 안내도가 보인다. 부부 한 쌍이 소망능선 쪽으로 가는데 자신은 예정했던 대로 장수고개를 향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다가 오르막길이 되어 완만한 경사의 산림도로를 구불구불 돌아서 한참 올라가다보니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비가 오기 시작한다. 산중에서 비를 만나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삼분간 가랑비가 오다가 그치고 말아서 안도하면서 장수고개에 당도하니 11시가 다 됐다. 장수고개에는 단체로 온 사람들의 마이크로버스 두대가 주차돼 있었다.



장수고개로 올라가는 산림도로에서 내려다 본 백둔리 - 날씨가 흐려서 맞은편 산의 조망이 뿌옇다.


장수능선으로 가는 오르막의 오솔길로 접어든다. 산림도로를 벗어나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육산의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약간 가파른 곳도 있지만 대체로 완만한 경사의 흙길을 걸어 가니 산철쭉은 이미 꽃잎이 다 떨어지고 꽃이 피어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장수능선의 호젓한 오솔길 - 산철쭉은 거의 다 꽃이 지거나 시든 모습이다.


장수능선과 청풍능선의 갈림길인 장수, 청풍 삼거리에 도착하니 12시 5분경. 음료수와 간식을 조금 먹으면서 10분간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장수봉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보기 드물게 시들거나 지지 않고 아직도 피어 있는 장수능선의 산철쭉.


갑자기 후다닥 소리에 깜짝 놀라 오른쪽을 보니 청설모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서 나무 줄기를 타고 올라간다. 장수봉을 지나서 소망능선과 장수능선의 갈림길인 소망, 장수 삼거리에 도착하니 12시 50분경. 수십 미터 아래에 장수샘이 있다. 날벌레도 몇 마리 날아 다니고 샘물 밑바닥이 바위가 아니라 흙이라서 그리 정갈해 보이지 않는 샘터에 놓여진 낡은 플라스틱 바가지로 샘물을 퍼 마시니 옹색해 보이기만 한 샘물이지만 꽤 맛이 있다. 수통에 샘물을 하나 가득 채우고 해발 1068 미터인 연인산의 정상에 오르기 시작하는데 오르막길에 멋진 경관이 있어서 몇장의 사진을 찍느라고 십여분 이상 시간을 지체한다.



그리 정갈해 보이지는 않지만 보기보다는 맛있는 장수샘의 약수.


정상에 오르니 오후 1시 20분경. 단체로 온 여러 팀들이 진을 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자신도 식사를 하는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가랑비가 오다 그치고 오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정상에서 주변을 조망하자니 잔뜩 찌푸린 하늘과 가랑비 탓에 사방에 진을 친 명산들의 경관이 희뿌연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여러 팀이 식사를 하고 있는 연인산의 정상.


마일리로 가는 우정능선의 첫 봉우리만이 지척인 관계로 선명히 보인다. 비가 심하게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하산을 서두른다. 장수샘에서 수통에 다시 샘물을 가득 채우고 떠날 채비를 하니 장수샘 위의 등산로에서 백둔리에서 만났던 부부가 용추계곡으로 하산할 것이라면 동행하자고 한다. 원래 청풍능선을 거쳐 용추계곡으로 하산하려고 했었지만 비가 오고 악천후가 예상되어 오던 길로 되돌아가든지 소망능선을 타려다가 길동무가 생겼으니 흔쾌히 응했다. 다른 팀들은 마일리 쪽으로 가기 위해 우정능선을 향하고 있다.



마일리로 내려가는 우정능선 코스 - 봉우리의 가운데에 등산로가 보인다.


장수봉을 넘어서 다시 장수, 청풍 삼거리에 도착해서 청풍능선으로 향한다. 청풍능선은 덤불이 무성한 곳이 많아서 두 손으로 덤불을 헤치면서 나아가는데 또 가랑비가 오기 시작한다.청풍능선을 절반 쯤 오니 우정고개와 장수고개로 가는 산림도로가 있고 그 사이의 오솔길로 내려가서 청풍능선을 계속 가는 길이 있는데 아쉽게도 안내 표지판이 없다. 사람들이 장수능선과 소망능선, 우정능선은 많이 이용하는데 청풍능선과 용추구곡 쪽은 상대적으로 덜 이용하기 때문에 안내판을 친절하게 만들어 놓지 않은 듯하다.


청풍능선으로 계속 내려가다보니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다보니 비에 젖은 내리막길은 미끄럽기 짝이 없어서 두어번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고 바지는 진흙이 묻어 지저분해지고 소나기로 온몸이 젖어 있다. 정신 없이 내려가다보니 청풍협에 도착할 때 쯤에는 빗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한다.


청풍협에 도착하니 곧 이어 용추계곡이 나타난다. 비를 만난 계곡은 성난 급류가 바위들을 피해 굽이굽이 물살을 이루며 하류로 내려가고 있다. 계곡의 중류 쯤 돼 보이는데 물살이 상당히 세다. 징검다리로 돌들이 놓여져 있는 곳을 깡충깡충 건너 뛰며 계곡을 대여섯번 횡단하며 주변 경관을 살펴 보니 이런 장관이 또 없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비도 조금씩 오고 하산을 재촉하는 마음에 사진을 찍을 여유가 나지 않는다.


하류에 도달하니 계곡의 폭이 넓어지면서 물살의 기세도 서서히 수그러든다. 가늘게 내리던 비도 서서히 그친다.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계곡의 하류와 안개로 희미하게 가려진 산봉우리들을 열 장 정도 찍고 나서 승안리의 버스 종점이 있는 곳까지 오니 5시 30분.



소나기가 멎은 후의 용추계곡 하류와 그 옆의 호젓한 오솔길.



계곡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모습.



비가 멎은 직후의 계곡 하류의 시원한 물살.



민가가 보이기 시작하는 곳의 차량 통행용 다리.


이 산에는 잣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유독 다람쥐가 많아서 산행 중에 대여섯번 다람쥐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용추계곡 부근에서는 녹색 바탕에 푸른 얼룩의 개구리들이 많이 눈에 띠었다.


버스 종점에는 먼저 내려온 부부가 기다리고 있다. 6시에 가평 버스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오지만 조금이라도 더 일찍 가기 위해 일인당 이천원씩 내고 민박집의 차에 올라 가평 버스 터미널까지 간다. 부부는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해서 헤어져 자신은 가평역에서 경춘선을 타고 귀가했다.


육산일 망정 자신으로서는 폭우를 맞으며 가장 높은 산을 가장 긴 시간 동안 등산했기에 추억에 길이 남을 산행이었다. 용추계곡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 해서 조만간 연인능선을 통해서 용추구곡의 전구간을 다녀 오고 싶다.




▣ 물찬제비 - 가평방향의 산들은 조금 부지런해야 다닐 수 있죠.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상에서의 식사는 좀... 정상은 후등자를 위해 비워 두시고 식사는 다른곳에서 하셨으면.....
▣ 산초스 - 부드럽고 포근한 연인산과 경기도 제일의 용추계곡 정말 좋은곳이지요. 우중에 고생하며 긴 산행 수고하셨습니다.^^**
▣ 이강복 - 네. 앞으로는 정상에서의 식사는 피해야겠습니다. 이 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