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대산(馬垈山) 1,052m

위 치 :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산행코스 : 김삿갓묘 - 처녀봉 - 마대산 - 김삿갓유적지 - 김삿갓묘
산행일자 : 2004년 10월 17일/아내와 나

 

 
◐마대산 가는길
08:58 풍기출발
09:28 고치령
09:53 김삿갓묘 도착
 
◐산행기록
10:11 김삿갓묘 출발
10:17 갈림길(김삿갓 유적지, 선낙골) 선낙골쪽으로 오름
10:36 선낙골 콘크리트 도로에서 오솔길로 접어둠
11:02/11:09 무명봉에서 휴식
11:11 선낙골에서 올라오는 등산로 만남
11:59/12:03 전망대
12:38/12:58 마대산
13:40/13:50 김삿갓 유적지(주거지)
14:18 김삿갓묘 도착

◐산행시간 4시간 7분(휴식기간 포함)
 
◐집으로 오는길
16:02 김삿갓 묘 출발
17:00 집 도착

 

◈ 방랑시인 김삿갓의 흔적을 찾아서... 영월의 마대산
올해가을은 유난히도 짧다는데...
별생각없이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또 마음이 동한다.
준비가 없었으니 먼곳은 갈 수 없을테고 그래 마대산으로 가자.
김삿갓묘에 몇 번이나 놀러 다니면서도 시간이 맞지 않아 등산을 못해본 마대산 아닌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이것저것 뒤돌아 볼 여유가 없어 아직 곤히 잠자고 있는 아내를 서둘러

깨우니 왠 일인가 싶어 의아해한다.
산에 가야되니까 빨리 일어나서 준비하라고 하니
산에 갔다온지 몇일 되지도 않았는데 또 무슨 산이냐며 오늘은 집안 볼일이 있으니 그냥 쉬자고한다.
김삿갓유적지가 있는 마대산엘 갈건데 여기서 멀지도 않고 등산시간도 3시간이면 충분하니까 빨리갔다와서

볼일을 봐도 될거라며 채근을 하니 못이기는 척 일어난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은행나무 가로수가 물들기 시작하는 도로를 따라 단산을 지나 고치령으로 내달린다.

백두대간길에 위치한 고치령까지는 이제 거의 포장이 되어있어서 수월하게 오를수있지만 고치령에서

김삿갓묘까지는 아직 먼지가 펄펄 날리는 비포장 길이다.

심하게 덜컹대는 비포장길의 떨림을 온몸으로 느끼며 달리길 30여분...


이제는 제법 관광지 티가 나는 김삿갓 묘에 도착한다.

차를 갓길에 주차하고 김삿갓 시비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니 관광객 몇분이 김삿갓유적지를

갈것인지 말것인지 망설이다가 30여분 이상 걸릴거라는 내말에 이내 발길을 되돌린다.
등산안내도를 보며 오늘의 산행코스에 대해서 아내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한 후 느릿한 첫걸음을 떼어 놓는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등산로엔 가을산의 주인인 단풍이 고운옷을 차려입고 등산로 입구까지

마중나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인사에 좋아진 기분 때문일까?
잠시 걸으니 갈림길에 도착한다.

 

한쪽은 김삿갓 유적지, 한쪽은 선낙골...
처녀봉을 오르려면 선낙골로 가야 하기에 김삿갓 유적지 가는 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방향을 트니 어느덧 겨울 준비를

하는지 등산로에 낙엽이 가득하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의 질서에 신비함을 느끼며 걷는 발끝에서 전해오는 낙엽의 사각거림이 듣기좋다.

울창한 산림으로 그늘진 계곡엔 쉼없이 재잘거리며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넓직넓직한 바위들이 사방에 널려있으니

아무곳에나 자리를 잡고 잠시 쉬어가도 좋으련만 그리 급한일도 없는 난 괜히 바쁜척하며 걸음만 재촉한다.

 

얼마를 그렇게 올랐을까?
몸에서 땀이 스멀스멀 배어나오기 시작할즈음 산에서 흰 개 한마리가 우리의 모습을 한참 쳐다보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이 산중에 왠 개?
의아해 하며 걷는데 조금전 사라졌던 개가 다른 한놈을 더 끌고 와서는 맹렬한 기세로 우리에게 달려드는게 아닌가.
얼른 아내의 지팡이를 한손에 움켜잡고 한손으로는 돌맹이를 던지며 개들을 향해 달려가니 역부족을 느꼈는지

금새 꽁무니를 빼며 줄행랑을 쳐버린다.
도망가는 모습에 안도하며 가만히 생각하니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저것들도 뭘 안다고 혼자서는 안될것 같으니까 동료를 대동하고 왔었나?
한바탕 힘을 쏟았더니 안그래도 줄줄 흐르는 땀이 장맛비를 방불케 한다.

 

잠시후 선낙골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길 우측에 걸린 마대산 등산로를 알리는 안내판을 따라 오솔길로 접어드니

본격적인 급경사 길이 시작된다.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는 급경사길...


드문드문 보이는 곱게 물든 단풍나무에 위안을 삼으며 힘든 걸음을 한걸음 한걸음 옮겨 급경사길로 접어든지

30여분만에 조그만한 봉우리에 닿는다.

여기가 처녀봉인가?
1평 조금 넘을것같은 봉우리엔 사방을 빽빽히 두른 나무로 앞쪽의 곰봉만 겨우 나무가지 사이로 보일뿐 앉을 자리조차 변변치가 않다.
하지만 목도 마르고 힘도 들어 이것저것 가릴것 없이 솔갈비위에 푹 무질러 앉으니 명당이 따로 없다.

잠시 한숨 고르고 사과 반쪽을 나누어 먹는 사이 시원한 바람이 스쳐지나가니 식은 땀에 추위를 느낀 아내는 이내 길을 나서고,

외톨이가 되기싫은 나도 미련없이 툭툭털고 아내 뒤를 쫓는다.

 

100m 정도 걸으니 선낙골에서 올라오는듯한 등산로를 만나고 또다시 이어지는 급경사길을 숨을 헐떡이며 20여분 넘게 오르고서야 처녀봉에 도착한다.

멋진 노송 두그루가 정상을 지키고있는 처녀봉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는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는 것같아 금새 발길을 재촉한다.

이제부터는 높이가 그만 그만한 능선길이니 걸음엔 속도가 붙어 금새 전망대에 도달한다.


어떤 전망이 펼쳐질까?
잔뜩 기대를 가지고 전망대에 올랐으나 희뿌연 개스로 조망이 별로 좋지 못하니 실망스런 발길을되돌린다.

실망스런 조망에 힘이 빠져서일까?
갑자기 배가 고프다며 점심을 먹고 가자는 아내에게 가까이 보이는 정상을 가리키니 아무말없이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전망대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엔 의외로 고운 단풍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금새 실망스럽던 조망도 배고픔도 잊어버리고 어떤 말로도 형용할수 없는 아름답고 선명한 단풍빛깔에 그저 가슴만 두근거릴뿐...
단풍의 황홀한 아름다움에 풍덩빠져 한동안있은 후에야 마대산 정상에 오를수 있었다.
   
첩첩산중!
산이 산을 감싸고 그산뒤에 또다른 산이있고...
북쪽으로는 멀리 산허리를 감싸고 구비구비 도는 남한강의 모습이 아련하다.

우리가 마대산 삐끼도 아니건만 아무도 없던 마대산 정상엔 우리의 뒤를 따라온 단체 등산객들로금새 만원을 이룬다.
자의가 아니게 정상을 내준 우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다가 소박한 우리만의 식탁을 차려 얼른 점심을 해결하고 조금

조용해진 틈을 타서 기념사진 한장만 찍고는 미련없이 내려선다.

 

오르는 길이 급해서였을까?
내림길도 역시 만만치 않은 급경사 길이다.
다시 온신경을 집중해서 몇번의 고비를 넘기며 어렵게 어렵게 내려가는데 앞서가던 아내는 불안한 눈길로 힐끔힐끔 뒤돌아 본다.

마침내 다리가 후들거리는 30여분간의 급경사 내리막길이 끝나고 10여분 편한 길을 더걸어가니 김삿갓유적지가 나온다.


몇년전에 왔을때에는 다쓰러져가는 집한채가 있어서 진짜 김삿갓이 살던 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질수도 있었는데 건물을

새로 지은 지금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옛날 건물로는 대궐이다 싶을 정도로 번듯하게 지어놓은 집을 관광객들이 보면서 어떤생각을 할까?
과연 김삿갓의 가족들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해 여기서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릴수 있을까?

 

◈김삿갓◈

허망한 생각에 죄없는 디딜방아만 몇번 힘주어 밟아보고는 이내 발길을 돌려 김삿갓묘역으로 내려왔다.

큰 삿갓을 쓰고 대나무 지팡이 짚고 한평생을 떠돌아다닌 방랑시인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이었다. 세도가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나 다섯 살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고 할아버지의 잘못으로 집안이 온통 죽음을 당하게 되는 고난을 겪게 된다. 역적의 집안으로 전락되어 멸족을 우려한 부친이 형과 함께 그를 곡산으로 보내 노비의 집에서 숨어살게 된 김삿갓은 여덟 살에 조정의 사면으로 집으로 돌아오나 그 가족들이 온전히 터잡고 살 곳이 없었다.

 여주, 가평, 평창을 거쳐 영월에 정착을 해서 집안을 다시 일으켜보려는 모친의 후원에 힘입어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김삿갓은 글공부에 힘썼다. 나이 스물, 결혼한 그 해, 운명을 다시 바꾸게 한 시골에서의 백일장을 보게 되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공교롭게도 시험의 제목은

"가산군수 정시의 충성을 찬양하고 역적 김익순의 죄를 한탄하라" 였으니 자신의 할아버지를 욕보이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써야만 했다.

"한 번은 고사하고 만 번 죽어 마땅하고 / 너의 치욕스러운 일동국의 역사에 유전하리."

 

그는 조부를 규탄하는 명문으로 장원에 급제하나 할아버지를 팔아 입신양명 하려고 한 자신에 부끄러움을 느껴 글공부를 포기하고 농사를 지으며 은둔 생활을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백일장을 보기 전에는 그의 조부가 김익순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인데 아직 뚜렷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러나 김삿갓은 신분 상승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지만 부패한 과거 제도에 실망을 하고 어느 세도가의 집에서 식객으로 지내던 중 그의 출신 성분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제도권 진입을 포기하고 스물 다섯에 기나긴 방랑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김삿갓의 살림이라곤 얼굴을 거의 가리다시피 하는 큰 삿갓, 개나리 봇짐 하나, 그리고 대나무 지팡이가 전부였다. 어느 날 지나가던 사람이 특이한 복장을 한 김삿갓에게 물었다. "어찌 그렇게 큰 삿갓을 쓰고 다니오? 불편하지 않소?" "하늘 아래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몸이라 그러오. 허허허" 김삿갓은 할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으로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것이었다. 바로 이때부터 그의 본명인 김병언으로 불려지지 않고 김삿갓이라고 된 것이다. 방랑 초기에는 지방 토호나 사대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나름대로의 품위를 유지하나 세상 인심이 한결 같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는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고 서민들 속에 섞여서 날카로운 풍자로 상류 사회를 희롱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읊으며 일생을 보낸다. 타고난 글 솜씨와 영리함으로 급제까지 했던 김삿갓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즉흥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산과 들 그리고 사람에 얽힌 그의 시는 한 수 한 수 철학이 깃들여져 있으며 풍자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정부패를 일삼는 세도가와 거만한 부자들의 허풍을 마음껏 풍자하고 조롱하는 그의 시 속에는 당시 부당하게 대우받고 사는 가난한 백성들의 한풀이로서 충분했다. 때문에 김삿갓의 시는 가난한 백성들의 안식처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나이 쉰 일곱, 전라도 땅에서 눈을 감음으로써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일생을 마감하고 아들 익균이 유해를 영월로 옮겨 장사를 지냈다. 영월 와석리에 그의 생가 터와 묘지가 있다.


 
 

 


 

 


 

 

 


 

 


 

 


 

 

 


 

 


 

 


 

 


 

 


 

 


 

 

 

 

 

 


 

고을 이름은 '문을 연다'는 개성인데 어찌 문이 굳게 닫혔으며
산 이름은 '소나무가 많다'는 송악산인데
땔 나무가 없다는 게 웬 말인가
석양에 나그네를 쫒는 것은 사람의 인사가 아닐진데
예의 동방의 나라에는 그대만이 진나라 진시왕이더냐

 


 
허연 머리 너 김진사 아니더냐
나도 청춘에는 옥인과 같았더라
주량은 점점 늘어 가는데 돈은 떨어지고
세상 일 겨우 알만한데 어느새 백발이 되었네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싶어도 옛사람은 가고 없고
꾀꼬리 울음소리만이 울적한 마음을 괴롭히네
강 건너 버들가지는 마냥 싱그럽기만 한데
산꼴짜기 돌아가니 매화 향기가 봄같구나
이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목이라
날마다 우마차 수레에 티끌이 이는구나
임진나루 강북에는 잡초만이 무성한데
나그네의 시름은 수많은 생각으로 새롭구나

 


겨울 소나무 외로운 주막에
한가롭게 누웠으니 별세상 사람일세
산골짝 가까이 구름과 같이 노닐고
개울가에서 산새와 이웃하네
하찮은 세상일로 어찌 내 뜻을 거칠게 하랴
시와 술로써 내 몸을 즐겁게 하리라
달이 뜨면 옛 생각도 하며
유유히 단꿈을 자주 꾸리라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다면 옳거니 그러면 그러려니 그렇게 아세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하고
장터에서 사고 팔기는 시세대로 하세
세상만사가 내 마음대로 안 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살아 가세
 

천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체 떠돌다 보니
남은 돈 엽전 일곱 푼이 아직도 많은 것이니
그래도 너만은  주머니 속 깊이 간직하려 했건만
황혼에 술집 앞을 이르니 어이 할거나

소슬바람에 나뭇잎이 소리없이 우수수 떨어지니
산골짜기에도 쌓이고 시냇물 위에도 떨어지누나
새처럼 아래위를 훨훨 날다가는
바람결 따라 저마다 동과 서로 흩어지네
본디 잎새야 푸르르건만 누렇게 병들어
푸른빛 시샘하는 서리를 맞고 가을비에 더욱 애처롭구나
두견새야 너는 어찌 그다지도 정이 박약하여
지는 꽃만 슬퍼하고 낙엽에는 안 우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