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稚岳山, 1,288m)』

▲ 향로봉을 지나 전망바위에서 비로봉을 조망하며...

▷ 산행일시 : 2004년 10월 16일
▷ 누구누구 : 반쪽과..
▷ 산행위치 : 강원도 원주 소초면, 횡성 강림면
▷ 산행거리 : 구룡사매표소<<─5.7km(2:56)─>>비로봉<<─4.8km(2:19)
─>>곧은치<<─1.1km(0:44)─>>향로봉<<─4.6km(2:43)─>>상원사<<─2.5km(2:00)
─>>영원사<<─2.1km(0:30)─>>금대 매표소
▷ 산행거리 : 약 21 Km
▷ 산행시간 : 약 11시간(촬영및 휴식포함)
▷ 산행날씨 : 맑음


▶ 산행 일정 및 시간안내

▷ 구룡사 매표소 출발 : 2004-10-16 오전 05:42
▷ 삼거리 갈림길(계곡길)도착 : 2004-10-16 오전 06:43
▷ 비로봉 도착 : 2004-10-16 오전 08:38
▷ 삼거리 갈림길(입석대)도착 :2004-10-16 오전 09:39
▷ 곧은치 도착 : 2004-10-16 오전 10:57
▷ 향로봉 도착 : 2004-10-16 오전 11:41
▷ 남대봉(만경봉)도착 : 2004-10-16 오후 2:02
▷ 상원사 도착 : 2004-10-16 오후 2:24
▷ 상원사 출발 : 2004-10-16 오후 2:47
▷ 영원사 도착 : 2004-10-16 오후 4:42
▷ 금대 매표소 도착 : 2004-10-16 오후 5:08

◈ 산행 개념도

◈ 치악산 개요

치악산 곳곳에는 산성과 수많은 사찰 사적지들이 있다. 남대봉을 중심으로 꿩의 보은지라는 상원사를 비롯해서 서쪽으로 세존대, 만경대, 문바위, 아들바위 등 유래깃든 경관이 있다. 그외 영원산성, 해미산성, 금두산성, 천연동굴과 북원적 양길이 궁예를 맞아들여 병마를 정돈했다는 성남사가 또한 이곳에 있다.

치악산은 단풍으로도 유명하다. 우뚝우뚝 하늘로 치솟은 침엽수림과 어우러져 자아내는 치악산 단풍빛은 신비하리만치 오묘하다. 구룡사입구의 우거진 단풍은 한폭의 수채화같은 풍경을 연상시킨다. 하얀 폭포 물줄기와 어우러진 울긋불긋한 단풍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치악산은 가을단풍이 너무 곱고 아름다워 본래 적악산이란 이름으로 불려왔다.

10월 중순께 단풍이 절정을 이루면 치악산은 또다른 운치를 자랑한다. 특히 구룡사계곡은 설악산, 오대산 못지않게 단풍이 곱게 물드는 곳. 폭포와 바위가 멋진 조화를 이뤄 쾌적한 단풍을 즐길 수 있다. 겨울의 치악산 정상 일대는 온통 만발한 설화와 상고대가 또한 장관이다. 가지에 눈 내린 것이 두툼하게 감싸인 것이 눈꽃, 눈가루와 서리가 내려 녹다가 다시 얼어서 투명하게 된 것이 상고대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 중에서 특히 눈꽃과 상고대로 이름난 산은 소백산, 덕유산, 치악산 이다.

구룡사에서 출발하는 코스 중 사다리 병창 코스와 쥐너미 코스, 배너미 코스로 해서 비로봉에 이르는 등산로가 눈에 쌓이면 나뭇가지에 쌓이고 얼어붙은 눈은 "환상의 세계"이다. 치악산 주 능선의 허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고둔치고개는 가족산행이 가능하다. 늦가을이면 넓은 억새풀밭이 펼쳐지는 고둔치는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풀이 수만 자루의 촛불을 연상케 한다.

고둔치코스는 원주시 행구동을 기점으로 고개를 넘어 향로봉과 남대봉을 오른 뒤 상원사로 내려온다.

-- 강원도청 제공 --


◈ 구룡사(龜龍寺)의 유래(由來)

아득한 옛날 한 천삼백 년 전의 일이다. 메마른 품이 학 같은 늙은 스님 한 분이 원주지방에 찾아와 절터를 두루 고르고 있다가 관서의 거산(巨山) 치악산(雉岳山)을 향해 떠났다.

이 스님의 이름은 무착대사라고도 하고 의상조사라고도 하나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으며 원주서 치악산을 향해 육십여 리 길을 가던 대사는 그곳에서 다시 시오리 길을 더 가서 지금의 구룡골에 멎었다.

스님이 사방을 살펴보니 동쪽으로는 주봉인 비로봉이 솟아있고 다시 천지봉의 낙맥이 앞을 가로지르는 데다가 계곡의 경치 또한 아름다웠다.

"절을 세울 만한 곳이군. 그러나 대웅전을 세우려면 저 연못을 메워야겠는데..."
대사는 발을 옮겨 연못가로 갔다. 그때 그곳에 있던 큰 연못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

"연못을 메우자니 모처럼 용들이 사는 것을 쫓아야겠고 난감한 일이구나..."
대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연못에 살던 용들이 들었다. 그리고는 대사를 향해,

"대사님이 벌써 우리를 내쫓을 생각을 하시니 우리도 마음이 안놓여 살 수가 없소. 대사와 우리가 서로 내기를 해서 우리가 이기면 대사가 이곳에 절을 못지을 것이요, 지면 선뜻 자리를 내어드리리다" 했다. 대사가 "너희들이 무슨 재주를 부리려느냐?" 하니, "그것은 잠시 두고 보시면 압니다"하고 대답한 용들은 연못에서 날아 하늘로 치솟더니 뇌성벽력과 함께 우박 같은 비를 쏟아놓았다.

이 바람에 근처의 산들은 삽시간에 물에 잠기고 대사 또한 물 속에 빠져 죽는가 했으나 대사는 태연하게 앉았다가 비로봉과 천지봉 사이에 배로 건너 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비를 퍼부은 용들은 이만하면 대사가 물 속의 귀신이 되었겠다 생각하고는 비를 거두고 내려왔다.

그러나 뜻밖에도 대사는 배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홉 마리의 용들이 다 내려오자 부시시 일어난 대사는,

"너희들의 재주가 고작 그것뿐이냐 이제 내가 조화를 부릴 것인즉 너희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잘 지켜보아라." 하고 부적을 한 장 그려 연못 속에 넣었다. 얼마 안있어 연못에서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오르며 큰 연못의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물 속에서 뜨거움을 참다 못한 용들은 뛰쳐나와 한달음에 동해바다로 달아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아홉 마리의 용 가운데 한 마리의 용이 눈이 멀어서 미쳐 달아나지를 못하고 근처에 있는 조그만 연못으로 옮겨 앉았다.

용들이 달아나자 대사는 못을 메우고 지금의 구룡사 대웅전을 지었다. 한편 뜨거운 물에 쫓겨 달아나던 용들은 얼마나 다급했던지 구룡사 앞산을 여덟 개로 쪼개놓으며 도망했다 하는데 지금도 구룡사에서 동해를 향한 능선은 여덟 개의 골이 치어있으며 이때 미쳐 도망하지 못한 눈먼 한 마리의 용은 구룡사 옆에 있는 용소에서 지난 왜정 때까지 살다가 그해 여름 장마 때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한다.

또한 지금 아홉 구(九)자 대신 거북 구(龜)자를 쓰는데 이 글자를 바꾸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본래 구룡사는 스님들의 수양도장으로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을 두고 흥망성쇠(興亡盛衰)에 따른 곡절이 많았다.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치악산(雉岳山)에서 나는 산나물은 대부분 궁중에서 쓰게 되어 구룡사 주지스님이 공납의 책임자 역할까지 하게 되었고, 좋거나 나쁘거나 구룡사 스님의 검사 하나로 통과되는지라 인근 사람들은 나물 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 별도로 뇌물을 받치기도 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아무리 부처님 같은 스님이라 할지라도 여기엔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구룡사는 물질적으로 풍성하기는 하였으나 정신도장으로서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럴 즈음 한 스님이 찾아와 몰락한 이 절을 보고 개탄하면서 이 절이 흥하지 못하는 것은 절로 들어오는 길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 때문이니 그 거북바위를 쪼개 없애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절에서는 그 스님의 말을 믿어 거북바위를 쪼개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후부터 찾아오는 신도는 더욱 적어지고 거찰(巨刹)로서의 명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급기야는 절문을 닫아야할 처지에 이르렀다. 이런 어느날 도승 한 분이 또 찾아왔다.

"이 절이 왜 이렇게 몰락하는가 하면 그 이름이 맞지 않기 때문이오"하고 말했다. 주지 스님은, "그건 무슨 말씀이지요?"하고 물었다.

"본시 이 절은 절 입구를 지키고 있던 거북바위가 절의 운을 지켜왔는데 누가 그 바위를 동강으로 내 혈맥을 끊어버렸으니 운이 맥힌 것이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주지 스님은 재차 물었다. 그랬더니 그 도승은 거북이 이미 죽었지만 다시 살린다는 뜻에서 절의 이름을 아홉 구(九)자 대신 거북 구(龜)자를 쓰라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지금 현판에 새겨진 대로 치악산 구룡사(龜龍寺)로 불리게 되었다(『북원의 자취-내고장 전통 가꾸기』, 원성군 문화공보실, 1981.).

이 전설은 구룡사의 유래를 두 갈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아홉 용과 관련지어 구룡사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거북바위에 얽힌 이야기로 그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구룡사의 유래를 그 발음과 글자를 활용하여 전설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구룡사 창건 전설인 이 이야기에서 용을 쫓아내었다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 그 자리에는 토속신앙적 聖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의 전통 민속문화에서 용이나 거북, 그리고 바위 등은 샤마니즘적 전통의 신앙체이기 때문이다. 九龍寺를 龜龍寺로 쓰게 된 연유를 일러준 뒷부분의 이야기가 그것을 증명하여준다(『원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산』, 강원도 원주군 사단법인 강원향토사연구회, 1994.). 그런 점에서 구룡사의 유래에 관한 전설은 이 두 가지 사실의 복합적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 출처 : 치악산 산악회 *

◈ 치악산(雉岳山)과 상원사(上院寺)

강원도 영동 어느 마을에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는 활 잘 쏘기로 유명하였다. 그는 어느 해 큰 뜻을 이루어 보고자 활통을 메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몇 며칠을 걷기 시작하여, 산을 넘고 물을 건느며, 밤이 되면 나무 아래에서 혹은 절간에서 또는 길가에서 자기도 하였다. 하루는 그가 원주 적악산(赤岳山) 중에서 길을 가는데, 어디서 무엇인지 신음하는 소리가 들리므로 이상히 여겨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까, 그 소리가 자기 옆 나무 밑에서 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가까이 가 보니 그곳에는 두 마리의 꿩이 가엾게도 큰 뱀에게 전신을 감기어서 방금 입 안으로 들어가려는 판이었다. 이것을 본 그는 재빨리 활에 살을 재어 그 큰 뱀을 보고 쏘니, 그 몸 한 가운데가 맞아 뱀은 죽고 말았다. 그러자 뱀에게 감기어 죽을 뻔하였던 두 마리의 꿩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며 서쪽으로 파드득 하고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젊은이는 또 산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자, 인가를 찾아 헤매다가 간신히 집 한 채를 찾아 들어가니, 그 집 안에서 한 어여쁜 여자가 등불을 들고 나오므로 그는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하였다. 그녀가 쾌히 승낙을 하고 자기 있는 맞은 편 방으로 인도하여 주므로 그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새우기로 하였다. 그런데 보니까 그 집은 자그마한 절로서 앞 뜰 기둥에는 종이 걸려 있었다. 그는 들어눕자 전신이 피곤하여 이내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잠을 자다가 숨을 잘 쉴 수가 없음을 느끼자 눈을 떠보니, 뜻밖에도 그 여자가 큰 뱀으로 화하여 자기 몸을 친친 감아 붙이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젊은이에게 "나는 아까 길가에서 너의 화살에 맞아 죽은 뱀의 아내다. 오늘 밤은 네가 나에게 죽을 차례다. 어디 보아라." 하고 곧 잡아 먹으려는 것이었다. 그 때였다. 그 절의 종소리가 땡! 하고 울리었다. 그러자 그 뱀은 그 종소리를 듣더니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만 깜짝 놀라며 아무 소리도 없이 몸을 움추리고 슬며시 자기 몸을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또 종소리가 땡! 하고 울리자 뱀은 어디로인지 달아나고 말았다.(뱀은 쇠소리를 들으면 겁이 나서 움찍을 못한다고 한다.)

그 젊은이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이 빈 집에 종이 울리는 것이 더욱 이상하여 밤이 새기를 기다려 새벽녘에 그 종 있는 곳으로 가 보니, 그곳에는 어제 구원하여 준 꿩 두 마리가 주둥이와 뼈가 부러지고 전신에는 피가 묻히어 무참하게도 죽어 있었다. 그 젊은이는 이 꿩의 보은을 보고, 그 꿩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그 근처 좋은 땅에다 그 꿩을 고이 묻어 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뒤 서울 가는 것을 그만두고 그곳에다 길을 닦고 절을 세웠는데, 그 절이 지금의 상원사라고 하며, 그래서 그는 중이 되어 오랫동안 절을 지키며 꿩의 영혼을 위로하였다고 하는데, 그런 뒤로 이 적악산을 치악산(雉岳山)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출처 : 최상수, 한국민간전설집, 통문관, 1958, 413-415면. 1936년 1월 강원도 원주군 원주읍에서 박동필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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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악산 산행후기...

얼마 전 업무차 강원도 장평을 다녀오던 길에 주마간산처럼 지나친, 창 밖의 치악산이 넘~멋져보여..무모하게 종주 계획을 세워 본다.

새벽3시 인천을 출발, 새말 나들목을 빠져 원주 방면 42번 국도에서 학곡리를 통과 구룡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가을, 구룡사 방향 사다리병창의 오름길은 비로봉을 오르는 인파로 밀린다 해서 일찍 서둘러 도착 / 05:30)

아직 어둠이 깔린 구룡사..고요한 적막이 감돌던 사찰은 산객의 발자국 소리로 새벽을 깨우기 시작한다. 사찰 입구에 놓여진 촛불 단 앞에서..간절한 소망을 빌어본다.. 무탈 완주를...

▲ 구룡사 매표소..
▲ 사다리병창..
구룡교, 구룡사, 구룡소, 구룡야영장이 연이어 나타나고 한참을 오르니 세렴통제소가 나오고 계곡길과 사다리병창 갈림길이 나오면서 계단으로 이어진다.('치악이란 이름은 치가 떨리고 악에 받친다는 뜻' 이라는 우스갯소리는 바로 이 사다리병창길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체 어느 정도 길이길래 그리 엄살인가 싶다면 한번 올라보라. 병창은 벼랑이란 뜻의 강원도 방언이다. 이 병창처럼 가파른 사다리길 중 어떤 곳은 허공에 매달린 듯 스릴 만점이며, 한 걸음 오를 때마다 뒤로 펼쳐지는 조망이 점차 좋아진다.*출처:월간<산> 2003년 5월호)
▲ 구룡골 계곡 오색 단풍..
▲ 단풍 1..
▲ 단풍 2..
▲ 사다리병창 철재 계단...
▲ 단풍 3..
협로를 지나면 계단이 이어지고..꼿꼿하게 세운 날등 위에 상큼한 아침햇살이 떠오르며.적악산의 단풍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고.. 계곡 길 저 너머 무명봉 능선에 오색 단풍도 가을색으로 넘치고 있다.
▲ 비로봉 정상을 지척에 두고...
▲ 삼봉, 투구봉 방향 조망..
▲ 신선탑...
▲ 용왕탑...
▲ 비로봉 정상석에서...

비로봉 0.7Km 지점에서 부터 비로봉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고..좌측 능선에 주목 한그루가 정상이 지척에 있음을 알린다. 마지막 된비알 철계단을 오르면 정상에 도착한다. 불탑 3개(칠성탑, 신선탑, 용왕탑--낙뢰로 훼손됐던 것을 복원함)가 인상적이며, 가슴이 확 터질 만큼 시야가 천지사방 막힘이 없다. 이미 도착한 산님들 사이를 피해 정상 표지석에서 기념 촬영을 마치고 오늘의 목적지 남대봉을 바라보니 까마득하다....

북동방향으론 천지봉을 이으며 매화산(1,085m)이 자리하고, 북서향으로 쥐너미재를 살짝 올려 삼봉, 투구봉의 윤곽이 또렷하고, 날등으로 뚝~ 떨어져 다시 오르면서 오뚝한 향로봉(1,043m)이 가늠된다. 언제나 처럼 골골이 이어지는 숨은 계곡들이 무척 궁굼해진다.

혼을 쏙빼고 둘러보는 사이.. 반쪽의 투정이 시작된다. "우리도 밥 먹자!!" "벌써???"정신없이 따라 올라와, 정상에 오르면.. 더~ 바빠진 남편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심하고...능선을 아무리 둘러 봐도 아직은 잘~ 모르겠고..힘들게 올라왔으니.. 허기도 질테고.. 점심 먹는 걸로 착각..ㅎㅎ "@#$%"

▲ 삼봉 갈림길에서 조망한 비로봉 정상 3개의 미륵불탑...
계곡과 샘터 갈림길을 지나면서..반쪽의 성화에 쉬어 가기로 하고 자리를 잡는다. 과일 화채(히어리님 산행기에서 전수)당분으로 열량도 보충하고, 따끈한 커피한잔으로 몸을 녹이며 기분도 전환한다...산행 거리에 관해 아직 감이 없는 반쪽이.. 잘은 모르지만 '종주'라는 말에 관심을 표명한다."정말 끝까지 갈거야??" "가는데 까지 가 보고.." 고둔치와 향로봉 등 도피 할 수 있는 갈림길이 있어 별반 걱정은 없지만..

향로봉에서 남대봉까지의 거리가 4.6Km이므로 사이 지점에서 혹 탈이 난다면 고민이다. 해서 향로봉 부터는 반쪽 의사에 따르기로 잠정 합의를 보고 출발한다. 이제 부터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로는푹신한 육산으로 대체적으로 유순하고 부드러운 편이다

▲ 삼봉 등산로 출입금지 표지판...
▲ 곧은치...
산정에서 부터 이어지는 굴참나무와 잔 가지에 걸려 조망이 좀처럼 트이질 않지만, 오던 길을 가끔씩 돌아보면 비로봉의 석탑 3개가 뽀죽하게 솟아 보일 뿐이다.

입석사 가림길에서 우회를 하던 등로가 고도를 낮추면서 좌로 휘고, 억새평전을 지나 떠들석한 분위기로 다가서면서 고둔치 안부에 도착한다. 부곡리, 행구동, 향로봉, 비로봉에서 출발한 산님들이 이 곳에 모여 다소 복잡하다.(오늘 전체 산행의 절반 지점)
▲ 향로봉 정상에서..
반쪽의 컨디션을 살핀 뒤~ 향로봉을 향한다. 완만했던 등로가 이곳부터 가파라진다.( 10 Km이상 계속된 운행으로 다소 힘들었던 구간...)1 Km를 지나 국형사와 남대봉의 갈림길이 나오면서 향로봉 정상 도착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반쪽의 표정을 보니 이상없슴이다. 다시 운행을 계속하여 2km 지점에서 서남 방향 전망이 좋은 장소를 잡아 모처럼 등짐을 내린다. 뻐근해진 왼쪽 종아리 부분의 근육도 풀고, 고푼 배도 달래며 한동안 푹~ 쉬면서 반쪽과 망중한을 즐긴다.

▲ 향로봉에서 남대봉 방향 중간지점 개미목(?)...
▲ 남대봉 정상(만경봉 으로 추정)..
대충 짐을 정리하고 다시 출발, 넓은 헬리 포터가 나오면서 구석에 조그만 스텐레스 표지판이 남대봉을 알린다.(이 곳이 만경봉이고 바로 앞에 보이는 정상이 남대봉인 듯) 기념 촬영을 마치고, 10여분을 진행하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상원사 방향으로 10여분을 내려가면 상원사다.
▲ 상원사 일주문...
▲ 상원사 대웅전 뒤..
▲ 보은의 종을 배경으로...
일주문을 지나니 아늑하게 상원사가 웅지를 틀고 자리 잡고 있다.거북등 약수물로 갈증을 풀고.. 찌든 마음도 닦고.. 경내에 들어선다. 많은 산님들로 북적거리고..반쪽이 불공 드리는 사이 '보은의 종'을 둘러보며 30여분 시간을 보낸다.
▲ 상원사에서 동치악을 배경으로...
속세를 잊은 것도 잠시, 영원사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왔던 길을 백하여 삼거리에 도착, 5분거리에 영원사로 떨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시명봉 방향은 출입금지)

내림길이 가파르게 이어지면서..오히려 사다리병창 등로보다 험하다. 급경사 너덜길을 약 1시간정도를 내려오니 붉은 단풍이 서서히 피어 오르기 시작한다. 가을 단풍을 쫓아 이 곳에 온 보람을 느끼면서 하나 둘씩 디카 카피를 시작한다.
▲ 영원골...
▲ 영원골 단풍...
▲ 人紅...
▲ 水紅...
▲ 山紅...
▲ 영원골 단풍 1...
영원골은 깊고 좁아..오후의 긴 햇살이 살포시 내려 앉아 영롱한 오색 단풍이 손에 닿으면 터질 듯~ 시리다. 물도, 사람도, 빨간 피빛으로 물들어 온 계곡이 벌겋게 물들고 .. 노랑, 빨강, 갈색, 연두색, 감색 형형색색.. 울긋 불긋한 단풍 꽃이 장관이다.
▲ 영원골 단풍 2...
반쪽도 감탄사 연발.. 지금껏 힘들던 산행의 피로가 풀리는 순간이다..30분을 내려오다보면 가파른 길도 완만해지면서 영월산성계곡에서 흐르는 지류가 영원골로 모여 계곡 물소리가 제법이다.

하류로 내려 가면서 수량도 풍부하고, 붉게 물든 고인물에 쌓인 낙엽은 저무는 가을의 발목을 잡고 그 자리만 맴돌고있다.
▲ 영원골 계곡에서 탁족을..
적당한 장소를 잡아 물 속에 발을 담그고 탁족을 즐기면서 이제야 긴장을 푼다. 영원사를 지나 면서 포장 도로가 이어지고. 지나는 화물차를 얻어 타고 금대 매표소에 도착한다.

구룡사까지 가기위해 매표소에 들려 친절한 안내를 받고, 이번엔 지나는 승용차를 얻어 타고 버스 종점에 도착한다. 41번 버스가 구룡사 입구가 복잡하여 장시간 지연..영업용 택시(22,000원)로 구룡사에 도착, 차량을 회수한다.
▲ 영원사 입구의 가을...

▲ 금대 매표소를 지척에 두고..

무모한 계획인 줄 알면서 아직은 서툰 산행 경험으로 중도에 포기 않고 끝까지 같이해준 반쪽이 왠지 대견스레 느껴지는 하루...

영동 고속도로로 접어 들면서 잠에 골아 떨어진 반쪽을 보니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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