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교교한 달빛은 흐르고

안개마저 없는 산마루에

옷깃을 여미며 종주의 부푼 꿈을 안은 산님들로 부산하고

이미 떨어져가는 단풍잎의 색갈이

저들의 옷빛과 같을까..

 

새벽3시..

그들사이에 나도 한무리의 산꾼들을 내려놓고

서둘러 어둠속으로 사라져가는 그들을 본다

조금은 추울텐데...

 

쏟아질듯 총총한 별빛도

흐르는듯 비추는 달빛도

저들의 장도를 북돋우어 주는 듯 하고

어느새 눈길은 어둠속의 그들을 따라서 간다

넓다랗게 포장된 그 길을 돌아서면

조금은 추위가 가시는 때가 되면

어느새 나타날 노고단대피소..

 

밝은 전등불 아래로

조금 더 숨을 헐떡이면

차가운 바람이 반겨주는 노고단

아직은 여명이 없을터..

그래도 남녁으로는 은은한 달빛아래로

우리가 살아가는 또 다른 터전이 보일것이며

 

이내 걸음을 재촉하여 한시간여

이미 더워져버려 걷옷을 벗어버린 지나는 이들에게

시원한 물 한모금을 주는곳..임걸령 샘..

지리는 그렇게 우리를 품어주고

즐겨 지리를 찾는 우리는

"안 온듯 다녀가소서"

 

두어차례 숨을 헐떡이면 노루목

종주팀은 예외없이 반야를 지나치는 갈림길

아직은 어둠속의 지리를 걷는 산꾼들은 그래도 자꾸만 왼편을 올려다보며

자신을 북돋우며 그저 걷는다

남녁으로는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사는 불빛과

저무는 달빛과..

여명과..

 

삼도봉

삼도의 경계를 이루어 붙여진 이름

삼각의 뿔로서 각도를 가름하는

아마도 서늘한 바람은 잠시의 땀을 씻어줄터이고

이내 나타나는 마의 550계단

무릎이 좋지않은 이들에게는 정말 마의구간이지요

 

화개재

뱀사골과 피아골을 이어주던 고개

지금은 피아골쪽으로 갈 수 없으나

예전에는 이 고개를 넘어 서로의 필요를 교환했다는..

해방후 혼란기때 이 고개를 넘어다니며 '살 만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한참을 땀을 쏟고나서야 오르는 토끼봉

봉우리 부분을 잘 다듬어 놓아 한낮에 산행하는 이들에게는 '한숨'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곳

이제는 북녁으로도 사람의 불빛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침노을이 발갛게 물들어 있고

일출은 아직이어서 이내 걸음을 재촉하고

명선봉 오름길은 멀기도 하고..

 

사위는 밝아져 렌턴을 챙겨담으며

연하천 1.6키로를 알리는 이정목을 지난다

한참을 더 헐떡이고서야 나타나는 나무계단!

연하천이 코 앞이다

부산스러운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나 또한 그들의 틈새를 비집으며

한끼의 식사를 하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지리의 베풀음을 잠시 느껴보며

이내 베낭을 메고 또 다시 걷는다

이미 말라버린 단풍잎을 보며

'한 여름의 오만'을 생각해보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나무도 생각해 본다

겨울을 준비하는..

 

삼각고지를 지나면

형제봉을 돌아가는 바위틈길이

전에는 아슬아슬한 나무다리가 있던곳

'장군'이 덕택으로 간판도 없어져버린 형제봉을 지나고

멀리 천왕봉밑에 장터목은 보이는데 코 앞에 있는 벽소령은 보이지 않고

그러나 꾸준한 걸음앞에는 따뜻한 햇볕이 내려쪼이는

많은이들이 그토록 찬사를 보내는 빨간우체통은 어김없이

내 앞에 나타나고

 

보름달이 뜰 때에는 지리십경에 드는 벽소명월은

언제쯤이면 볼 수 있을까..

오른편으로 '이현상'의 최후를 알리는 간판이 서있다

그들은 과연 '살만한 세상'이 올것이라고 믿었을까

믿었기에 그토록 어려운 삶을 살다 갔을까

지금은 그들이 생각했던 그런 세상일까..

 

모처럼 넓다란 길을 간다

음정과 의신을 잇는 비상도로를 따라

왼편으로 비상도로는 꺽이어 가고 산길로 들어 이내

또 한번의 지리의 베품을 맞는다.. 선비샘

이제는 따뜻함이 더위로 느껴져 한모금의 물로 목을 적시고 다시 걷는다

 

칠선봉 오름길

마음으로만 가고있지만

그래도 힘이 드는곳

잘 만들어 놓은 계단이 더욱 힘을 빼는곳

쉬며가며 마지막 철계단까지 오르면

정말로 '칠선'이 있기는 하였던가

멋들어진 바위가 반겨주고

오른편 끝으로가면 멀리 천왕봉이 손에 잡힐듯 하고

뒤돌아보면 걸어온 능선이 한눈에 보이는

어쩌면 이곳이 지리의 백미가 아닐까

 

한고개를 다시오르면 영신봉

바로밑에 우람한 산장을 거느리고

뒷산으로는 촛대봉을 이고 앞마당에는 철쭉밭을 이루는

세석평전..두어해전 겨울의 이곳 모습을 마치 동화속의 집처럼 찍은 사진을 보며

지금은 눈속이 아니니까.....

 

언제와도 힘드는 촛대봉 오름길

빤히 보이는데 도무지 올라가지지가 않는것 같다

이제부터 지리의 절경이 시작되고 어느분이 '우리 애인' 좀 찍어서 보여달라시던

반생반사인 주목도 지나며 끝이 없을것 같던 종주길도 거의 끝나간다는 아쉬움으로

장터목으로 들어선다

 

천왕봉은 눈앞에 있고

아마도 지친몸을 추스리려 하루의 쉼을 이곳에서 하겠지

소란스러운 산꾼들 사이에서 그렇게 꿈나라로 가겠지..

 

이 글은

근간에 산행써퍼터를 한다고

산에는 제대로 오르지도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적어본 것 입니다

똑같은 길을 걸으며 힘이 더 들고 덜 드는 사람은 있겠지만 마음도 또한

넉넉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차이는 있는듯 합니다

저도 '산그림자'처럼 넉넉하고자 합니다만

워낙에 수양이 부족한지라...

 

끝까지 보아주시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