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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산 정상석, 약사암 대좌불-

 

 

와룡지맥 3<막달동산-약사암-무이산(문수암)> 失敗談(실패담)

2019049034호     2019-07-28()

 

자리한 곳 : 경남 고성군.

지나온 길 : 달막동산-돌구산(405.1m)-약사전-수태산갈림-무이산(545.6m)-문수암-약사전

거리및시간 : 4시간 11(08:08~12:19) : 도상거리 약 5.6km <9,110>

함께한 이 : 3사람(고송부님, 쵀재순님, 계백)

산행 날씨 : 흐림(가스자국 시계 불량)

 

삼천포앞바다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이는 고급모텔 7층에서 이틀간 편안하게 묵었던 추억을 간직하고 늘어놓았던 개인용품들을 꼼꼼하게 확인하며 배낭을 꾸린데 최재순님께서는 어제 저녁 사왔다 마시지 않고 냉장고에 보관했던 생맥주와 안주까지 알뜰하게 챙긴다. 모텔 밖으로 나가니 승용차가 기다리고 있다. 음주가 잦음을 훤히 알고 있는 고송부님 후배님께서 눈치 빠르게 해장국으론 최고인 복요리 집으로 안내해 까치복지리국에 아침식사와 반주로 소주2병을 3사람이 사이좋게 나누어 마시고 계획대로 좌이산으로 가나 했는데 어제 들머리 했던 달막동산 고갯마루에 정차한다.(08:30)

일요일이라 귀경시간을 감안해 진분계(비운치)까지라도 이어가라는 '고송부'님의 사려 깊게 배려하는구나 생각되어 너무 고마워 말문이 막힐 지경이라 진심어린 마음으로 감사인사를 전하고 복장을 꾸려 기쁜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한다.(08:35)

전신주를 관리하느라 잡초를 깔끔하게 제거해 걷는데 불편이 없었으나 짧은 거리나 달막동산 정상까지는 약간의 경사각도가 있는 지형이긴 했으나 이걸 어쩌나!~~ 들머리해 몸에서 한방울의 땀도 흘리지 않았는데 땅바닥에 주저앉아 배낭을 풀어놓고 모텔에서 챙겨온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마시고 있다. 정상 산행이 가능할까?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아침에 마신 해장술도 깨지 않아 얼얼한데......

산행도중에는 금주를 원칙으로 지키는 사람이라 동참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혼자서 달막동산 정상에 도착, 상당시간을 기다려 두사람과 동행해 50분이면 충분한 거리(2.5km)의 돌구산(405.1m)1시간 40분을 투자해 무선저수지 갈림길에 올라선다.(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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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지맥 약 2.5km 구간에서 만난 풍경-

 

태풍이 지나간 뒤의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에 늘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앞장서서 보현암 약사전(약사여래대불)에 도착해 사찰을 한 바퀴고 돌아보고 두사람과 만났는데 우려했던 걱정이 현실로 다가온다. 불교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는 '쵀재순'님께서는 불공과 108배를 해야 하기 때문이고, 고송부님께서는 오늘산행은 이곳(보현암 약사전)까지만 산행하고 오늘은 그만하기로 결정했으니 계백님이나 무이산과 문수암에라도 다녀오란다. 한번 고집을 세우면 꺾이지 않은 의지의 한국인이라 어쩌겠는가? 배낭을 벗어놓고 작은 물병만 들고 터벅터벅 무이산과 문수암을 다녀오니 '고송부'님께서 후배님을 호출해 세사람이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12:19)

 

무이산 문수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인 문수암은 고성군상리면 무선리 무이산에 있는 암자로서 신라 성덕왕 5(서기 706) 의상조사가 창건했다. 창건 이후 이 암자는 수도 도량으로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고, 산명이 수려하여 삼국시대부터 해동의명승지로 유명하였으며 특히 화랑도 전성시대에 국선 화랑들이 이 산에서 심신을 연마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중창 및 중건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현존하는 암자는 사라호 태풍때 건물이 붕괴된 뒤에 지은 현대식 건물이고, 일반 신도들의 성금으로 1973년에 이 절에서 수도한 이청담(李靑潭)의 사리를 봉안하여 세운 청담 대종사 사리탑이 있다. 석벽에는 문수(文殊), 보현(普賢) 두 보살상이 나타나 있으므로 문수단(文殊壇)이라 이름지었다.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석각이고,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은 두자 일곱치 크기의 목각으로 되어 있다. 기암절벽이 암자 뒷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산정에 오르면 남해안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마치 군산봉처럼 부침하고 있는 절경을 조망할 수있어 등산객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는 신라의 고찰이다. 인근에 수태산 보현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사천공항에서 버스편으로 30분 가량 소요 되고 문수암 입구까지 도로가 포장되어 승용차로 산 허리를 감고 돌아 문수암 조금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10분 쯤 가면 문수암이 나타난다.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하고 있다. 의상조사가 남해보광산<지금의 금산(錦山)>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상리면 무선리 어느 촌락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비몽 사몽간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내일 아침에 걸인을 따라서보광산보다 무이산을 먼저 가보라고는 홀연히 사라져 잠을 깨니 꿈이었다. 날이 밝아 과연 한 걸인이 나타났는데, 급히 밥상을 갖다주며 무이산의 주소를 물었더니 무이산에 간다 하기에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걸인을 따라 무이산 중턱에 오르니 눈앞에 수많은 섬들이 떠있고, ...북 그리고 중앙에 웅장한 다섯개의 바위가 오대(五臺)를 형성하고 있어 마치 오대산의 중대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때 그 걸인이 중대를 가리키며 "저곳이 내 침소다"라고 말하자 한 걸인이 또 나타나서 두걸인은 서로 손을 잡으며 바위 틈새로 사라져버렸다. 의상조사는 석벽 사이를 살펴보았으나 걸인은 보이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적인 문수보살상만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의상조사는 홀연히 깨달은 바, 꿈속의 노승이 관세음보살이고 두 걸인이 문수와 보현 보살임을 깨달았고 의상조사는 무이산을 두루 살펴보고는 이곳은 족히 사자를 길들일 만한 곳이며 이곳 이야말로 산수 수도장이다라고예찬하고 문수단을 모아서 문수암을 세우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데 지금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의 문수상이 뚜렸이 나타나 보인다.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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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암, 무이산과 문수암 풍경-

 

에필로그

점심시간에 산행을 접고 삼천포시내로 들어와 중국요리에 빼갈로 하산주 나눈다.

3일동안 봉사해주신 '고송부'님 후배분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삼천포터미널에서 작별한다. 

서울가는 버스표를 알아보니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해서 매표하지 못하고 망설이데 '고송부'님께선 내일()업무 때문에 전북 전주에 가셔야 하는데, 진주시에 가면 전주와 서울가는 버스가 자주 있다는 말에 3사람이 진주행 버스에 오른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해 전주로 가시는 '고송부'님과 작별하고 서울행 버스표를 주문한다. 현재시간 1530분인데 매진되고 1820분 차량예매가 가능하다는 매표원의 답변에 고속터미널이나 진주역으로 이동하기로 '쵀재순님'과 의견을 모았다.

매표원에게 마지막으로 빨리가는 방법이 없는지 한번 더 물어보고 출발하자며 '쵀재순'님이 앞장서기에 그냥 지켜보기로 한다. 몇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며 18시30분 차표를 주문하기에 요금은 내가 지불하려고 뛰어가 2장이라 소리치며 신용카드를 들이 밀었는데, 차표1장과 신용카드를 돌려받는다 한발 늦었으니 내표 한장을 주문하니 매표원이 서울행 홈에서 기다리면, 빈자리가 나면 빨리 탈 수 있으니 유념하시라 귀띔하며 반드시 승차홈에 서 있어야 한다고 일어준다.

화장실을 다녀와 서울행 홈으로 이동해보니 먼저와 대기하고 계신 스님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뒤로 줄을 선다. 1540분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데 빈자리가 많아 승차 가능하겠다는 기대감으로 승차하는 승객이 몆명인지 헤아리며 기다린다. 출발시간이 임박했으니 태워주겠지? 했는데, 빈자리가 많은데도 줄서있는 우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출발시간이 되자 그대로 출발한다.

잠시뒤 서울행 16:00 버스가 홈으로 들어오자 계수원이 나타나서 운전기사와 몇마디 이야기하고 앞에선 스님과 우리에겐 무관심하고 뒷줄에 서있는 사람들을 검표하고 한사람을 태운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지니 계수원이 스님의 표를 받고 승객소지용 표를 뜯어 보관하고 회사회수용 표를 돌려주며 4번좌석에 타란다. 우리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5번과 6번좌석을 배정해 준다. 2시간 이상 앞당겨 승차했으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차가 출발하자 뒤돌아보니 상당수의 빈좌석이 있는데 돈을 마다하고 그냥가다니? 의문점은 30여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풀렸다. 산청읍정류장에 정차하자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로 만석을 이루고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3일간 투자해 迂餘曲折(우여곡절)로 개운하지 못한 산행으로 찜찜하지만 상경시간이 빨라 내일 일정이 순조롭겠구나 마음을 비운.       --.

 

2019-09-20

계백 (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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