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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령- 삽당령에서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빤한 길인데도 같은 장소를 세번이나 돌아올 정도로 많이헤멨다.

등산용어로 링반데룽이라하는데, 한참을 가도 아까 그 자리, 또 한참 갔다 싶었는데 도로

그 자리, 그렇게 나는 같은 자리를 세 번이나 확인해야했다. 무언가 씌웠나 싶어 세 번째

같은 자리를 갔을 때,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딴짓을 했다. 길을 찾으려고 기를 쓰지 않고

그냥 그자리에 앉아 먹고, 놀고, 노래부르고, 딴 짓을 했다. 이십여분 산에 대한 생각

길에 대한 생각등을 다 접고 딴 짓을 한 후 주변을 돌아 보자, 드디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은 바로 옆에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길을 보지 못하고 나는 뱅뱅 원을 그리며 같은 자리를

돌고 돌았다.



오늘 계획된 산행 시간은 7시간 이었는데, 링반데룽 덕분에 9시간을 넘겼다.



부지런히 가지 않으면 해가 진 다음에 목적지에 도착할 듯해서 걸음을 재촉했다.

3시간 넘게 가야할 길을 2시간만에 도착한다.

아마 누군가 옆에서 보았다면 발에 발동기를 달았나 싶을 정도로 내 달렸다.



석병산 근처에 가자 인기척이 났다. 반가워 인사를 했더니, 사람과 산 2월호에 기사가 올랐던

녹색연합의 백두대간 보존팀이었다. 같은 지면에 함께 오른 사람들이 만난 것이다.

자병산 복구를 위한 탐방중에 만난 것이다.

인연이란 묘하다. 만약 내가 링반데룽에 걸리지 않고 계획된 시간에 갔더라면 아마 이 팀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만나서 반가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가는 방향이 같으면 하산해서 소주라도 서로 기울일텐데

나하고 내려가는 길이 다르다. 길이 다르면 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서로에게 가야할 길이니 순응할 수 밖에 없다.

다음에 서울에서 소주라도 한 잔하자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이제 내일 모레면 대관령에 도착한다.

대관령에서 설악산까지는 그리 긴 시간 걸리지 않아 도착할 듯하다.



그러나 산에는 언제나 변수가 많다.

최대한 날씨가 좋고 최대한 몸 상태가 좋을 때

갈 수 있는 한 멀리 가자.

그러나 무리는 하지말자. 끝날 때까지 나는 끝까지 가기 위해 끝까지 가는 모든 방법을 찾아 노력할 것이다.



내일도 해가 뜰 것 같다. 바람이 조금 심할 듯하지만 이제 바람이 고맙다. 날이 따듯해지면서 바람까지 불지 않는다면 산에서 흐르는 땀을 누가 식혀줄 것인가?



태백산 전 까지만해도 나는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죽음과 삶을 넘나들었는데, 그 사이에 바람까지도 땀을 식혀주는 존재로 바뀌게 되었다. 봄기운이 산에 가득차 오르기 시작한다.



그 봄을 나는 걸음마다 느끼며 걷는다. 다만 아직도 텐트에 얼음이 얼고, 등산화 끈이 얼어 붙어

푸르거나 다시 묶을 때 마다  애를 먹어야 하는 일은 계속되지만 한 낮 태양빛이 제법 따스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내일은 한 걸음 더 목적지에 다가 서는 것 만큼 봄도 할 걸음 당겨 올 것 같다.

그 봄 다 모아 가슴깊이 담아 놓았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

사랑하고 싶은 계절이 온다.

온통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것이다.

나는 그 길을 걸으며 어지러이 느껴져 오는 현기증같은 봄길을 걸으며

내가 느꼈던 이 모든 백두대간의 경험을 나눌 누군가를 생각할 것이다.



사랑한다.

모든 사람을 그리고

이 길 걷고 있는 힘들어 하는 나의 뒷 모습과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볼 모든 사람까지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