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유, 그 그리운 품에 안겨...   ( 2005. 8. 14 )
 
 
오락가락하는 빗줄기 탓만은 아닌데 어쩌다가
8월초 3~4일의 황금같은 휴가를 어영부영 흘려 버리고 말았다
별렀던 덕유산행도 못하고...
빡시게, 오지게 땀을 쏟아가며 큰 산을 다녀와야 남은 더위도
수월케 지나는 법인데...  
남은 막바지 더위의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질 않는다
8월도 중순을 넘어서건만...
 
8월 14일 ...
그렇게 별르던 곳
남편과 단 둘이 남덕유에 올랐다
육십령에서 할미봉을 거쳐 교육원삼거리-서봉,-남덕유-영각사 하산까지...
 
할미봉과 교육원삼거리로 걸을 땐 어디서 그런 바람이 이는지...
능선의 나무들을 한껏 일렁이며 춤추게 만들만큼 바람이 시원했다
덕유는 여름산행길에 가을의 바람을 준비하여 반갑게 맞아주었다 
가슴까지 차가운 바람은 두시간 넘게 이어졌다
 
그렇게 소원하던 주위 조망도 할미봉에서 맘껏 누렸다
한시간 거리의 길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치 육십령 휴게소 정자가 저멀리
아스라히 작아 보이고 지리 천왕봉도 희미하나 분명한 윤곽으로 잡혔다
한껏 고도를 높여 오른 서봉에서도 삿갓봉과 무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한눈에
들어왔다  향적은 구름을 애워싸고 한번에 다 보여줄수는 없노라며 숨어버려
아쉬웠지만...
 
겨울이면 세찬 바람이 하얀눈을 덮어쓴 솜방망이를 사정없이 흔들어댄다는(솔나루님의 산행기에)
야생화 수리취의 큰 꽃방망이도 심심찮게 만났다
여자들의 장식핀 부로치를 연상케하는 '산토끼꽃과'의 솔체꽃은 서봉직전의
바위지대와 능선안부에서 한껏 무리지어 뽐내고 산오이풀의 탐스럽고 풍성하게
아래로 쳐진 진한 분홍빛꽃의 군락은 절정이었다
 
마지막 최고봉 남덕유에 오를땐 지칠대로 지쳐 고행하듯 올라야 했다
저만치 앞서가던 남편이 갑자기 몰려오는 구름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에어컨 바람 열배나 될 듯한 냉기 머금어 휙휙 지나는 구름속을 헤쳐
남덕유에 오르니 바람은 일제히 구름을 불러모아 사정없이 고속으로
날려보내는 바람에 대간쪽의 능선은 한 자락도 볼 수가 없었다   
그나마 할미봉과 서봉에서 맛보지 않았다면 조망은 많이 아쉬웠을 것이다
 
서봉에선 여러팀들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구름속에 오른 남덕유엔
남편과 단 둘 뿐이었다   이상야릇한 기분도 괜찮은데 서방님이
몸살기가 겹쳐 추워서 떠는 바람에 제대로 분위기도(?) 내지 못하고
영각사 방향으로 지루하지만 안전한 쳘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내려섰다
 
남덕유 이후로 남편은 무릎 통증을 호소하고 나역시 심신이 지쳐
영각사 하산로에서 다리에 힘이 빠져 돌계단을 터덜터덜 걷다보니
작년 여름 지리산 백무동 하산길의 지루한 돌너덜길이 떠올랐다 
중간 중간 이삽십분씩 휴식과 탁족을 하며 내려오다보니 꼭 여덟시간이
걸린 산행이지만 그 너른 덕유의 남쪽 품에 안겨 내내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나절을 걸어도 다 못 갈 향적으로 향한 남겨 둔 그리움의 능선길은 언제 다시 밟아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