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 소문난 스릴 만점(여우굴 염초봉 백운대 칼바위능선) 산행 코스를 찿아서[사진]

 

 

 

  

 

 

백운대 정상

 
 
 

 

북한산성 北漢山城
지정번호
:
사적 제162호
지정연월일
:
1968년 12월 5일
  시 대
:
조선시대
  규모·양식
:
543,795㎡ 석축
  재 료
:
석조기단, 목조
  소 유 자
:
국유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 1-1 외, 서울특별시
     
은평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일원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 때 한성의 관망을 위해 도성을 축조하고, 그 방어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삼각산에 산성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북한산성이란 이름은 ≪삼국사기≫에 백제 개로왕(蓋鹵王) 5년(132)에 이미 나타나고, 신라는 이곳의 비봉(碑峰)에 진흥왕(眞興王)이 순수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진평왕(眞平王) 25년(603)에는 고구려 장군 고승(高勝)이 북한산성을 포위 공격하자 왕이 1만명의 군사로 구원한 기록이 있고, 661년에는 고구려의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말갈군과 함께 북한산성을 20여일간 포위 공격하자 성주이던 동타천(冬陀川)이 성안의 주민 2, 800명과 함께 필사의 결전으로 물리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북한산성은 오늘날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북한산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한산성(漢山城) 즉 한산 지역의 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한편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자 고려 현종(顯宗)은 고려 태조의 재궁(梓宮)을 삼각산에 옮겨왔다. 고종(高宗) 19년(1232)에는 삼각산에서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으며, 우왕(禑王) 13년(1387)에는 삼각산에 중흥산성(重興山城)을 쌓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을 자주 당하자 도성의 외곽 산성을 마련하자는 축성론(築城論)이 일어나 효종 10년(1659) 송시열(宋時烈)에게 명하여 수축하게 하고, 숙종 37년(1711)) 왕명으로 대대적인 축성공사가 시작되었다. 그 해 4월에 착수한 이 공사는 훈련도감(訓鍊都監)·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의 3군문이 담당하였고, 그 아래 각 군문에는 책임 감독관으로 낭청(郞廳)을 두었으며,

 

또 그 아래에 내책응(內策應)·외책응(外策應)·독책장(督策將)을 두었다. 공사별로 부석패장(浮石牌將), 축성패장(築城牌將), 수구패장(水口牌將), 운석패장(運石牌將), 치도패장(治道牌將)과 이장변수(泥匠邊首), 야장변수(冶匠邊首), 석수변수(石手邊首), 목수변수(木手邊首) 등으로 공사를 감독하도록 하였다. 축성에 필요한 노동력은 3군문의 군사는 물론 서울의 주민과 승려들이 동원되었고, 그 밖에 모역군(募役軍)과 각종 공장(工匠)이 동원되었다.

 

서울의 주민은 경상가(卿相家) 이하 각 호(戶)를 대·중·소로 구분하여 대호는 3명, 중호는 2명, 소호는 1명씩 식량을 지참하고 취역에 나섰으며, 모역군은 한 달에 쌀 9두와 면포 2필씩이 지급되었다. 이때 이룩된 것이 오늘날의 북한산성이다.약 6개월에 걸쳐서 완성을 보게 된 북한산성의 성기(城基)는 보현봉·만경대·백운대·원효봉·대서문·의상봉·증취봉·나한봉 등을 연결하는 선으로 길이는 모두 7, 620보, 즉 21리 60보가 된다.

 

그 중에서 수문(水門) 북변에서 용암(龍岩)까지의 2, 292보는 훈련도감이, 용암 남변에서 보현봉까지의 2, 821보는 금위영에서, 수문 북변에서 보현봉까지의 2,507보는 어영청에서 각각 담당하여 쌓았다. 성문은 모두 13개로 수문 북변에서 용암까지 사이에 수문(높이 16척, 폭 50척), 북문(높이 11척, 폭 10척), 서암문(西暗門, 높이 7척, 폭 7척), 백운봉암문(높이 6척 3촌)이 있고, 용암 북변에서 보현봉까지 사이에 용암봉암문(높이 6척 5푼, 폭 7척 5푼), 대동문(大東門, 높이 9척, 폭 10척), 보국문(輔國門, 높이 6척 6촌, 폭 6척 5촌), 대성문(大成門, 높이 13척, 폭 14척)이 있으며, 수문 남변에서 보현봉까지 사이에 대서문(大西門, 높이 11척, 폭 13척), 청수동암문(높이 7척, 폭 7척), 부왕동암문(높이 9척, 폭 8척), 가사당암문(높이 7척, 폭 7척), 대남문(大南門, 높이 11척, 폭 11척)이 있었다.


축성이 끝난 후 숙종 38년(1712) 10월에 이르러서는 북한산성의 주관부서로 경리청(經理廳)을 설치하고, 여기에 도제조와 제조관을 두었다. 행궁(行宮)의 수호ㆍ관리는 관성장(管城將)이 맡았으며, 수성장병(守城將兵)으로는 대성문ㆍ동문ㆍ 서문에 수문장 각 1인과 갑사둔(甲士屯), 점암둔(點岩屯)에 둔장 각 1인을 배치하였고, 수첩군관(守堞軍官)은 266인, 별파진(別破陣) 200인, 아병(牙兵) 635인이 항상 거주하였다.

 

그 후 영조 23년(1747)에는 총융청(摠戎廳)으로 하여금 관리토록 하였고, 이듬해에는 상원봉(上元峰) 아래에 130칸의 행궁과 140칸의 군창(軍倉)을 지었다. 성내에는 승군(僧軍)을 위한 136칸의 중흥사(重興寺)가 승군 총섭(摠攝)이 있는 곳이었고, 이 밖에도 11개의 사찰과 2개의 암자가 있었다. 성안에는 8개소의 창고가 있었으며, 99개소의 우물과 26개소의 저수지가 있었다.


현재 성의 둘레는 12㎞, 성 안의 면적은 200여만평으로, 성벽은 아직도 잘 남아 있는 부분이 많다. 성곽의 여장은 허물어졌으나, 현재 대서문이 남아 있고 장대지(將臺址)·우물터·건물터로 추정되는 방어시설의 일부가 남아 있다. 1990년부터 훼손된 동장대·대남문·대성문·대동문·보국문과 성곽들을 보수·복원하여 거의 완공 단계에 있다.

 

- 서울시문화재 홈피에서 발췌 -

 

 

 산행일시 : 2006년 1월 25일(수요일0

 산  행 지 : 삼각산 (836m) 서울특별시,경기도 고양시

 산행코스 : 청담골능선 = 전망바위 = 원효봉 = 염초봉 = 설인장 = 시발크럽 = 여우굴 = 위문 = 동

                      장대 = 칼바위능선 = 아카데미 매표소

 산행인원 : 17명

 산행시간 : 5시간 40분 정도

  

 

산행기

 

수요일이면 늘 산행을 하는날로 정해져 있는데 지난주에 이어 또 연거퍼 실 수를 하고 말았다 월요일 저녁 내일이 산행을 하는날로 착각을 하고 아르바이트생을 불러 내일 내가 산행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니 자리 좀 잘 지켜달라는 당부를 하고나니 아르바이트생 왈 원장님 매주 수요일날 산행 하시더니 이번에는 화요일날로 가시느냐고 되 질문을 한다 ㅋㅋㅋ내가 뭔가에 미쳐도 단단히 미쳐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지요  

 

그도 그럴것이 2년전인가 나와 절친한 일행 3사람이 북한산 원효봉을 올랐다 그땐 솔직히 그 코스가 어디인줄도 모르고 백운대로 이어지는 산행로가 있기에 한번 모험 산행을 해보자고 일행들과 의견을 나누고 원효봉에서 바라 보이는 백운대 등로를 따라 산행을 하려 하니 이날 따라 산행 인파도 안보이더니 우리 일행들이 가는 방향에서 원효봉쪽으로 오시는 산님들에게 등로가 우리들 산행이 가능하겠느냐 질문을 하니

 

이 산님들 쉽지 않을껍니다 전문가들이 아니면요 하는 소리를 듣고 질겁을 하여 가던길을 멈추어 되 돌아 상원사 방향으로 내려와 다시 대동사를 지나 백운대에 올랐던 경험이 있어 늘 그곳 등로에 대한 궁금을 더했었는데 우리산내음 수요산행길이 원효봉 염초봉 시발크럽 여우굴 백운대 칼바위능선 아카데미 매표소로 계획된것을 확인을 하니 그렇치 않아도 늘 북한산을 오를때면 꼭 한가지 못다한 숙제를 빼먹은듯한 껄꺼로운 기분이었는데

 

이 호기를 어찌 내가 빠질 수 있나요? 북한산에는 숫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등로 코스가 많고 많은데 내가 늘 수요산행을 함께하는 우리산내음 산행대장 조대흠 대장은 같은 코스를 정하드라도 언제나 스릴과 낭만이 늘 함께 하는 코스를 정하기에 이에 반한 산님들이 그렇치 않아도 우리들 산행길에 동행을 하시는 산님들의 숫자가 날로 증가를 하고 있는데 이 절호의 스릴 만점을 경험 할 수 있는 산행길을 간다고 생각을 하니

 

수요일 새벽 2시반 퇴근하여 토끼잠으로 눈을 부치고 벌떡 일어나니 6시 정각이다 그러고 보면 차떼고 포떼고 잠을 잔 시간은 간신히 서너 시간이나 겨우 잤을 뿐인데 그렇다고 조금 더 잠을 청하려 하였다간 아무래도 그루잠을 잘것같아 반사적으로 이불을 차고 일어나 아내가 저녁에 준비하여 놓은 밥솥에 불을 부치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하여 걸망을 질머지고 부평역에 도착을 하니 8시를 넘고 있다

 

아침 출근을 서두르고 있는 직장인들에겐 조금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으나 서둘러 전철을 타고 일반석에 앉으려 하니 경로석은 텅텅 비어 있는데 일반석은 피로에 지친듯한 출근 손님들이 서있는것을 보니 아무래도 안되겠다 내가 경로석으로 자리를 피해주면 한 사람의 출근 인파라도 편의를 보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슬그머니 경로석으로 가서 텅빈 자리에 앉아 버리지요 그런데 마음은 좌불안석이지요 아직 덜 늙은이가 된 탓일까요 ㅋㅋㅋ

 

그리고 전철에서 또 다시 토끼잠을 자다 깨어보니 어느덧 시청앞이네요 정신을 차려 종로 3가역에서 3호선 전철을 갈아타고 수요산행팀들과의 약속 장소인 구파발역에 도착을 하니 흐미 약속 시간 35분 전이다 언제나 목마른 넘이 샘을 판다더니 젤 나이든 꼰댕이가 밤잠도 설치구 이른 첫새벽 열차를 타고 달려와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생각을 하여 보아도 너무 치신 머리가 없는 짓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지만 그러나 어쩌겠어요?

 

그토록 산에 빠져들어 버린 나의 주책인걸요 그거이 나의 성격이고 생활 습관인눔의 것을...이제와서 애써 고치려 하여 보아도 잘 안되네요 그래도 이런 나를 타내지 않고 늘 나를 감싸주는 든든한 마음에 벗 일행들이 있으니 나 정말 얼마나 호강인지 모르지요 요즘 세상 어디 어른이라고 대우 받기를 기대하기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도 우리산내음 산행길 동무들은 이런 날 아주 복에 겹도록 돌봐주며 잘두 델구 다니지요 그러니 내 어찌 이 산행길에 빠저들지 않을 수 있나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한참을 기다리니 드디어 하나 둘 셋 일행들이 집합을 하기 시작을 하더니 어느새 열 일곱 사람이나 모여 결코 작지않은 식구들이 한 뭉텡이가 되어 지하역에서 가벼운 인사를 나눈후 다시 버스를 타고 효자비 정류장에 도착 하차를 한후 이곳에서 산행대장 조대장에게 가벼운 산행 안내를 들은후 일행들은 날씨는 약간 흐리기는 하였지만 그다지 춥지 않은 날씨가 산행을 하기에는 안성 마춤이라는 생각을 하며 등로를 들어서 산행을 시작을 하지요

 

 

들머리 구간을 들어서고 있는 일행들

 

 

크고 작은 소나무 숲길로 된 삼림욕장 방불케 하는 등로를 가볍게 올라

전망바위 앞에 안자 함께 한 일행들이 염초봉 백운대 인수보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들이 오를 코스가 저기 보이는 염초봉을 지나 시발크럽을

경유 여우굴을 통과 하고 백운대를 오를껍니다 [조대장의 설명]

 

 

 

북한산성의 성곽이 깔끔하게 보수를 끝앴어요

 

 

인수,염초,백운,만경,노적봉까지 잘보입니다

 

 

인수,염초,백운,만경,노적봉까지 잘 보이는 곳에서 다시 기념촬영을 하지요

 

 

 

2년전 기억을 되새기며 상원사로 내려가지 않고 염초봉으로 가지요

 

 

사진으로 보기에 완만해 보이지만 급경사로 이어지는 암릉길 이지요

 

 

이 쒜이덜 더 업드려 기어 오르라닉깡 위험지대에서 의례껏 우리 조대장 더욱 해병대 지옥

훈련 시키는것 못지않게 박박 기게 하지요 ㅋㅋㅋ 아니꼬우면 안 오셔도 됩니다 ㅎㅎㅎ

 

 

으이그 저눔의 조대장 큰 소리 치는 소리 아니꼬우면 내가  안오면 그만인데 그렇치만 놀믄 멀 하나요 이렇게 스릴 만점의 코스들을 늘 안전하게 리드를 해주며 게다가 너무도 친절할 정도로 등로에 대한 해박한 견문으로 설명을 하여 주는데 시상에 회비 2,000원내고 어디가서 이렇게 좋은 산행을 할 수가 있나요 그러니 아니꽈도 꾹 참고 난 조대장 말에는 언제나 모범이되어 따르지요 모두가 우리들 안전을 위한 일인데 들어서 남주나요 나에게 피가되고 살이되지요 ㅋㅋㅋ

 

 

아주 빡쎄게 두어 암릉 코스들을 기어 오른 일행들의 얼굴에 화기가 돌며 또 한편으로는 아직도 멀기만 한 등로를 가야할 생각으로 불안 초초 써스팬스가 중압감을 주지요 그러니 자연적으로 찔끔찔끔 오줌은 더 마렵지요 ㅋㅋㅋ 땀은 펑펑 쏟아 지지요  일행들은 어물쩍 하면 벌써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지요

 

그러다 보니 옛날 시골에서 종종 써먹던 우화가 생각이 나지요 소나기는 펑펑 쏟아 지지요 떵은 마려운데 허리끈은 풀리지를 않지요 천둥은 번덕번덕 우르르꽝꽝 해대지요 그러다 보니 송아지는 이리뛰고 저리뛰고 경거망동을 하지요 꼴지게는 쓰러지고 작대기는 뿌러졌지요 증말 사면초가 이런땐 무얼 어케 해야 하는지요?

 

그런데 정말로 이날 염초봉 백운데 가는 구간에 내가 그 꼴이 났지요 나무잎이 없으니 아무대서나 소피를 볼 수도 없고 급격하게 치고 올라야 하는 암릉구간 산행길은 한시도 한 눈을 팔 수 없는 상황에서 앗따 와 그리 오줌은 마려운지요? 증말 이날 산행길 한구간 정말 씨껍을 했지요 ㅋㅋㅋ

 

그래 그 상황을 어케 넘겼느냐구요? ㅋㅋㅋ 할 수 있나요 조대장이 나보다 산행 경력이 많아 산행 대장일 뿐이지 그러나 인생 계급장은 내가 아주 쫴깨  넙으니 할 수 있나요 어이 조대장! 네 형님 망좀봐! 뭘요? 아니 이런 하고 성질을 내려 하니 아 ~ 아~ 형님 알았슴돠 하는 사이 해결을 했지요 ㅋㅋㅋ

 

 

춘삼월이 지나고 로프를 다루기가 편할때가 되면 조대장이 나더러 염초봉도 형님 함 태워 드릴까요 했지요 그소릴 듣고 난 함구무언 했지요 지가 태워주면 탈꺼고 안태워 주면 안탈꺼야요 내가 사정은 안 할꺼야요 이미 조대장은 내맘 다 읽었으니까요 / 요즘 사람덜 유행어처럼 조대장은 내말에 척 하면 암니다

 

 

다시 약진 앞으로... 선두 고렇게 밖에 못합니까?

 

 

내려가는 구간이 되어서 쉽다구요? 천만에 만만에 말씀이지요

땅속에 얼음이 박혀 벌렁갑오 잡기 똑 참하지요

 

 

시발크럽 아래 약수암 인근 넓은 공터에서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을 먹지요

저 강아진 뭐냐구요 ㅋㅋㅋ 내 애완견이지요 / 주견등록 약수암으로 됬지요

ㅋㅋㅋ ㅎㅎㅎ 개니까 주민등록이 아니라 주견이지요 ㅋㅋㅋ ㅎㅎㅎ

 

 

차츰 겁을 주는 암릉구간이 ...

 

 

여우굴 가는길

 

 

시발크럽

산행길 내내 조대장이 시발 시발 해서 난 은근히 나 더러 불만을 하는줄 알았지요 그래서 하두 화가나 인적이 드문곳에서 어이 조대장은 아래위 에미 애비도 없어? 하니 아니 형님에게 욕한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암벽훈련을 시작한 등반 크럽명을 따서 이곳코스가 시발크럽이 되었다네요 내가 결국은 오버를 한거지요 ㅋㅋ 실질적으로 암벽에 붙은 현판에 "시발크럽"이라 각인이 되어 있었어요

 

 

여우굴

옛날 내가 어렸을땐 시골에 여우가 참 많았어요 그래서 자연적으로 여우에 대한 좋치못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 내려와 여우 하면 우리 사람들은 호랑이나 사자 다음으로 무서워 하는 동물인데 시상에 백운대 오르는 구간에 정말 간신히 사람 하나 기어 들어갈 만한 구멍(암벽사이)을 배낭을 벗어 앞으로 밀고 그리고 간신히 나같은 작은 사람도 간신히 산고를 겪는 아픔을 체험을 하며

 

요리조리 미로찿기를 한후 겨우 넓어진 구멍을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구멍으로 기어나가 아래를 내려다 보니 시상에 저 아래쯤에 일행들이 줄을 서서 여우굴속으로 들어오기 위하여 대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요 시골에서 장난기가 발동 하던 시절이 유지 될 수 있다면 위에 구멍에서 가랑잎에 불을 피워 소나무 가지를 얹어 놓으면 연기가 여우굴 가득해져 그안에 있던 동물덜 여우던 너구리던 잡는 방법이었는데 함 실험을 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잘못하면 사람잡는 난리를 칠것같아 옛날 이야기를 회상만 하고 꾹 참고 말지요 그런데 이 여우굴 구간을 통과하고 나온 일행들 온통 영광의 상처투성이가 되었지요 나는 손등이 또 누구는 얼굴이 또 누구는 주멍이 까지고 피가 나고 증말 난장판이었지요 그래도 어느누구 한 사람 불평불만 엉 떠는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여우굴 통과 후  급경사로 이어지는 등로를 오르고 있는 산님들

 

 

보이는것은 오직 병풍처럼 드리워진 암릉 구간과 하늘 뿐이었어요

 

 

얼음이고 암릉이고 일단은 우리들 이 구간을 통과를 하여야 하지요

이제는 이미 되 돌아갈 수도 없는 깊은 함정에 빠져 있었어요

 

 

간신히 안심이다 될 정도의 암벽에 의지를 하고

돌아본 우리 일행들이 지나온 원효봉 염초1봉

 

 

만경대

 

 

 

한 시절엔 암릉을 보기만 하여도 찔끔찔끔 했었는데...

 

 

염초봉 방면에서 백운대 정상을 향하여 등반을 하고 있어요

드뎌 백운대 정상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보이네요

 

 

마치 곡예사가 외줄타기를 하는듯한 심정으로

 급경사로 이어지는 암릉구간을 오르고 있는 일행들

 

 

와 ! 야! 정말 쥐긴다 ! 환상이다 ! 오길 정말 너무 잘했다 일행들의

찬사가 하늘을 찌를듯 하지요 그걸 보고 조대장 씩 웃고 있었어요

 

 

와 드디어 위험한 구간을 전원 무사 통과를 하였다는

안도의 환호성이 ... 고생끝에 낙이 온다

 

 

발 아래 내려다 보이는 인수봉 정상

 

 

드디어 일행들이 백운대 정상에 올라 환호를 하고 있어요

휘날리는 태극기는 우리들의 표상이다 힘차게 약진하는 ...

 

 

하지만 아직 긴장을 풀기에는 이르지요 우리들의 가야할길은 아직 멀었어요

 

 

 

 

 

평화의 상징 비들기가 백운대에 등산 인파들이 주는 먹이를 찿아 들고 있었어요

 

 

바로 발아래엔 북한산 명물 오리 바위가

 

 

아쉬움을 달래며 다시 칼바위 능선을 향하여 위문 방향으로 등로를 가고 있지요

 

 

위문을 지나 대동문 방향을 가기 위하여 ...

 

   

 

용암문도 지나고

 

 

동장대도 지나고

 

 

대동문도 지나고

 

 

드디어 이날 산행의 휘날래 산행길 칼바위능선이 보이네요

 

 

칼바위 능선으로 약진 앞으로...

 

 

얼음이 있으면 빙벽 훈련 하는셈치고 오르란 말이야

조대장의 지상 명령에 깩 소리 못하고 이를 갈지요

으이그 저 순악질 조대장 ㅋㅋㅋ ㅎㅎㅎ

 

 

마치 도둑넘이 되어 월담을 하듯이 조심조심 칼바위 능선을 오르고 있는

우리산내음 산행길  아!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여보! 나 드디어 해내고 말았어요 / 은영님

 

 

증말 칼바위 능선 장난 아니더라구요

 

 

이제 부터는 하산이다 아카데미 매표소 방향으로...

 

 

하산길이라고 얏보았다간 큰 코를 다치기 싶상이지요

 

 

아카데미 하우스 방면으로 가야 그런데 구천폭포는

凍死中 ㅋㅋㅋ 꽁꽁 얼어 있었어요

 

 

거울속에 비친 나를 돌아보듯 개울물에 비친 나무들을 바라보며

아! 이 길고 긴 겨울도 머지 않아 녹아 내리겠지 생각을 하지요

 

 

아카데미매표소에 도착을 하니 오후 4시반 그렇게

 말달리듯 했는데 근 여섯시간 산행을 했지요

 

 

아카데미 하우스

후미에 오는 일행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수유리 4호선 전철역에 하차하여 헤어지기 섭섭하여 가볍게 순대에 감자탕을 시켜놓고 이슬이를 나누어 마시고 설명절 모두 즐겁게 보내시고 새로운 마음으로 춘천 오봉산에서 만날것을 기약을 하며 형님 아우님 잘가요 아쉬운 작별의 손을 흔들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 가지요

 

 

성북구 관내 등산로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나라 태극기가 365일 내내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무슨 이유 때문일까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확실한지는 모르지만 4.19탑과 그 외에서 다 수의 위대한 분들의 위령탑이 있어서 경모차원에서 계양을 한다고 했어요

 

이건 순전히 나의 일방적인 생각인데 모든 지자체들이 이렇게 서울시 성북구청처럼 내 지방의 선현들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이어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현대를 살아가는 세상은 솔직히 고도성장을 하느라 너무 빠르게 빠르게 성장한 문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 세상매사 뭐 하나가 술술 그냥 잘 넘어가는 일이 드물다

 

국가의 정책이 일관성이 없이 칠라당 팔라당 왔다리 갔다리를 하지않나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네 서민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새것도 버리고  헌것은 아예 통째로 갖다 버리려 하고 이제는 한 수 더 떠서 그동안 수천년 대대손손 이어오는 가정의례 마져도 생략을 하고 멋대로 변칙으로 산 사람들 편의 위주로 변형하여 그나마 유지가 되고 있는것을 보아 오면서

 

민족의 고유명절을 맞이 하는 마음이 네집 내집 누구랄것 없이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게다가 각종 개발이다 뭐다 하면서 때묻지 않고 변화를 하며 발전하여 오던 우리 농촌 마져도 그 우라질눔의 보상으로 인하여 한 부모의 아픔으로 태어난 형제들끼리 그눔의 돈 싸움질로 남남 보다도 멀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왕왕 보면서 명절을 맞이 하는 모습이 조금은 을씨년 스럽다는 생각을 해 보지요

 

이런때 일 수록 정부도 국민들도 넓게 이해를 하는 너그러운 모습들이 되어 서로를 배려하며 하나되는 마음이 필요한데 위정자들은 위정자들 대로 대가리통이 터져나가라 서민들의 당면 과제는 나 몰라라 팽개처두고 지들 목소리 내기에 급급하고 있으니 이눔도 믿을넘이 못되고 저눔도 믿을넘이 없으니 덩달아 우리 고향떠난 형제들 마져도 이렇게 흥겨운 민족 고유의 명절에 고향찿는마음이 움츠러 들고 있지요 거참 세상 증말 코메디 같네요

 

그래서 저의 산행기를 읽어 주시는 산님들 우리 산을 다니는 사람들 만이라도 우리 대자연의 품에서 배운 그 터득처럼 우리 모두 다 한 발 내가 양보하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즐거운 설 명절 그동안 그리던 가족들 만나뵙고 마음껏 즐거운 설 보내시고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와 또 우리들의 마음에 고향같은 산으로 즐산 이어 가시기를 간절히 기원 합니다 / 여러분 새해 福 많이 받으세요

 

저의 길고 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산님들에게도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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