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무와 단풍이 넘실대는 지리산 자락을 넘어

 

산행일 : 2004. 9. 29(일) 날씨 : 맑고 푸른 가을 하늘

기온 : 17~25℃ 산행 거리 : 13km 산행 시간 : 7시간

 

 

너무 멋진 세상

 

앞을 못 보던

내가 처음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그 동안 꿈꾸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졌어요.

정말 그래요.

햇볕이 이토록 빛나고

하늘이 이렇듯 넓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어요.

 

- 앙드레 지드의 《전원 교향곡》 중에서 -

 

<한가위의 새중간에>


 

하늘과 자연의 만남은 어떤 계절에도 있지만 가을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과 그리움 그리고 추억이 있어 더 정겹다.

빨간 고추와 둥그런 호박 그리고 고추잠자리의 맴돎이 시골 텃밭을 수놓지만 세속을 잊고 달리는 산꾼의 마음은 어느덧 산야를 달리는 나그네가 된다.

달리는 버스 창가에는 쉼 없이 지나치는 명절 귀성 차량들로 분주하고, 대진 고속도로를 달려 지리산 자락에 파묻히는 나그네의 마음은 짙푸른 계곡과 신록에 잠겨 세속을 떠난다.

작년 백두대간 종주를 끝내고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던 중산리에는 연휴의 끄트막에서 한가하다.

 

 

<가파른 천왕봉을 향해 인내를 배우고>

 

너무도 맑은 가을 하늘이 지리산 자락에 가득하고, 능선의 줄기찬 이어짐이 중산리 계곡을 흐르는데 산꾼들은 이내 숲으로 잠겨 버린다.

약간의 운무가 계곡을 타고 넘실대고 거친 호흡을 토해내는 산꾼들은 전설이 깃든 칼바위에 다다른다.

칼바위는 태조 이성계가 등극한 후 가신을 노리는 사람이 지리산 중턱에 은거한다는 소문을 듣고 한 장수에게 그 목을 베어 오라고 명령하였다고 한다.

그는 지리산을 헤매다가 이 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칼로 치니 바위는 갈라져서 홈바위가 되고, 칼날은 부러져서 이 곳까지 날아와 꽂히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형상의 바위로 변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우람한 칼바위를 바라보며 권력자의 한없는 이기심과 자신의 주변을 지키려는 아집에 아이러니를 느낀다.

칼바위를 지나 왼쪽 계곡으로 오르면 장터목산장으로 가는 길이다.

 

 

돌계단과 나무 계단의 반복된 이어짐이 대부분의 산객들을 힘들게 하지만 가끔씩 나타나는 조망 바위들은 지리산 자락을 굽어보는 청량제 역할을 하고, 얼핏 다가오는 산중턱의 붉은 단풍 세계는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저 멀리 계곡을 타고 뻗친 능선의 흐름은 바다로 이어지고 흰 뭉게구름을 타고 나타나는 거대한 지리산 자락의 파노라마는 시야를 압도한다.

법계사를 지나며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인 후 개선문에 이르는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1,915m 지리산 자락을 휘도는 구름의 광풍과 넘나드는 운무의 넘실거림이 산을 오르는 이에게 신비의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이 들게 한다.

회오리와 구름의 조화 그리고 붉게 물드는 지리산 산등성이의 단풍은 푸른 하늘의 쪽빛과 어울려 너무도 장엄하고 환상적이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자가 있어 저 아래 세계를 굽어본다고 했던가? 삼라만상 그 모든 업고가 발아래 있어 감히 넘보지 못할 또 다른 세계의 진입인양 다가선다.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남한 육지의 최고봉 지리산 천왕봉에 서며, 지난 6월에 있었던 대장정에서 맛 보았던 일출의 장엄함과 자연의 강렬한 신비가 기억에 새롭다.

모든 산악인들이 찾고 또 종주로 자신을 시험하는 인내의 場, 더불어 어렵고 힘들고 지칠 때 자신을 되돌아보고 의지를 불태우며, 나 아닌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지혜를 배우게 하는 智異山!

저 건너 일출봉에 비켜 빛나는 광채의 눈부심이 홀연히 몰아치는 광풍의 자락에 묻혀 더욱더 신비롭다.

 

 

<지리의 마루는 어느새 붉은 단풍의 세계로>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곱디고운 빛깔의 조화는 바람에 일그러지는 나무의 숨결 마냥 고즈넉이 다가온다.

미인의 얼굴도 이다지 자연스럽지 못함이요, 우람한 남성의 심벌도 이보다 더 강렬하지 않으리라.

제석봉을 지나 장터목에 이르는 고사목의 예사롭지 않은 조화!

능선과 골짜기의 만남에서 우러나는 색의 교차!

그리고 인간이 엮어내는 고뇌의 대장정!

연이어 줄다름치는 지리 능선의 한없는 산줄기는 점점이 반야봉에 이른다.

가을! 정녕 가을은 이 높은 산자락 지리산에서 오는가보다.

 

 

장터목산장의 고즈넉하고 한가한 정경이 이채롭다. 지난 6월 그 분주한 인간의 도전과 자연의 황홀함에 젖어 넘나들던 지리의 봉우리가 밀려온다.

노고단, 반야봉, 삼도봉, 형제봉, 칠선봉, 토끼봉, 촛대봉, 제석봉, 천왕봉...

9부 능선까지 물든 지리의 단풍은 녹색의 배경과 어울려 온 산야를 수놓음이 한 폭의 수채화인양 아름답다.

 

 

<백무동 계곡의 너덜은 멀고도 길다>

 

장터목산장에서 바라다보는 제석봉과 일출봉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바위와 숲의 조화 그리고 구름의 잔잔한 흐름이 어울려 장관이다.

엄청난 배낭을 짊어지고 나란히 걷는 젊은 건각들의 힘찬 레이스가 시야에 클로즈업 된다. 언젠가는 히말라야의 잔등에 서서 지상의 온갖 자연의 섭리를 만끽하고자 하는 산악인의 기대는 그들의 가능성과 견주어 뭉클하게 밀려온다.

 

조망터에서 지리 능선을 바라보며 한없는 포만감을 느끼고 운무에 덥힌 천왕봉과 제석봉을 벗삼는 망바위의 기막힌 시야도 너무 멋있다.

참샘의 알싸한 시원함이 간장까지 서늘하고, 하동 바위를 지나는 흔들 다리의 출렁임에 산행의 피로도 풀어 본다.

 

백무동 그윽한 계곡의 숲 따라 계곡수의 멋들어진 합창은 지저귀는 뭇새들의 어울림과 함께 있어 아름답다.

너덜하면 황철봉을 떠올리고, 또한 한없는 너덜은 귀떼기청봉을 생각하지만 이 곳 백무동의 너덜도 무척 길고도 지루하다고 느껴본다.

 

산행은 무릇 혼자만의 호돗한 무상의 노정이기도 하고, 여럿이 어울려 친밀감과 협동심을 키우는 풋풋한 인정이 넘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가을의 시작에서 지리를 찾음은 행운이다. 온통 물든 지리산 자락의 전부를 보기 보다는 녹색의 바다에 수놓은 비단결 같은 불그레한 색감의 조화가 있어 더 멋있다.

 

 

이 가을!

무언가 추억을 만들고 싶어진다.

아직은 늦더위가 한창이지만 서리 내리는 만추의 길목에 서서 젊음의 활기찬 정력도 발휘하고 싶다.

세월의 흐름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하지만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문턱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변화의 고개를 넘음은 조금의 쓸쓸함도 느끼게 한다.

소중한 시간들이 있어 인생의 참맛은 여유있고 넉넉하다.

언제나 큰 산으로 다가오는 지리의 가을에서 삶의 언저리를 넘나드는 나그네의 한없는 갈증을 느낀다.

운무가 휘돈다.  바람이 거세다.

그래서 지리의 변화무쌍은 아무런 이변도 없이 다가서는 듯 하다.

지리산!

거기 넉넉하고 푸근함이 있어 늘 다가서고 싶고 그리워진다.

 

 

<산행 경로>

 

중산리 매표소

10 : 00

통천문

14 : 35

칼바위

10 : 57

제석봉

14 : 50

망바위

11 : 40

장터목 산장

15 : 02

로터리 산장

12 : 05

망바위

15 : 34

법계사

12 : 07

하동 바위

16 : 35

개선문

12 : 52

백무동 휴게소

17 : 00

천왕봉(1,915m)

13 : 35(점심)

7시간

 

 

<산행 거리>

 

              중산리 - 칼바위 - 법계사 - 개선문 - 천왕봉 - 장터목 산장 - 참샘 - 하동바위 - 백무동

               1.3km     2.1km      1.2km   0.8km      1.7km        3.4km   0.6km     1.8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