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사-재약산 수미봉-알프스목장-능동산 -배내고개


 


 

(7시 반)표충사-층층폭포-재약산 수미봉-고개-알프스 목장-능동산-배내고개(오후 2시)


 

                                   2004년 9월 26일 일요일

                                       

                                         나홀로 산행


 


  


 

가벼운 산행을 목표로 이른 아침에 표충사로 향했다. 정처 없이 홀가분한 산행을 하기에 내게 이곳만한 

곳이 없다.


 

수미봉-사자봉 이어 원점회귀도 가능하고 산내면 얼음골로도 내려 갈 수 있고, 능동산 이어 가기도 하

며 힘 닿으면 다시 배내봉 올라 간월, 신불 취서까지 종주를 할 수도 있는, 마음편한 출발점이다.


  

명절준비를 해야 하는 집사람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표충사까지 왔다가, 가는 길에 구천리 새 길을 

둘러보고 가리라한다. 7시가 갓 넘은 시간이라 산길에는 아무도 없고 고요적적한 홀로 산행이 스산한 

바람에 짐짓 움추려드는 느낌이다.


 

작년 9월말은 사자봉에서 무척 추웠는데 오늘은 옷가지의 여분도 없이 춥지 않을까 걱정이다. 비올 바

람인지 속살에 그대로 바람이 파고들어 땀은 절로 마른다. 이대로 바람이 차고 메말라 그대로 깊은 가을

이 되는 것이리라.


 

초입의 돌길을 15분 쯤 지나 푹 꺼진 계류를 가로지르면 잠시 평탄한 흙길이 된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

운 곳이다. 볼펜의 잉크가 말라 메모를 포기한다.


  

출발한 지 45분 만에 홍룡폭포의 전망대에 도달하니, 여기서 잠시 간식을 하고 사진을 찍어본다. 오늘

은  수량이 풍부하고 힘차다. 늘  찍고 찍지만 왜 이곳에만 오면 카메라를 들이대는 지 혼자서 실소한

다.  백룡이나 청룡 혹은 비룡의 이름이 어울릴 것 같은 데 홍룡이라하니 신비감은 더해지는 듯 하다.


 

태풍에 뿌리 뽑힌 흔적들이 아직도 그대로다. 지난해 매미의 상처가 아니고 그 전 해인 루싸의 상흔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고도 500이 되는 즈음에 무명폭포를 지난다. 이곳은 진불암 쪽 계류를 타고 내린 작

은 물줄기지만 구름다리가 있어 초보시절 층층폭포와 헷갈리기도 했다.  


  

무명폭포에서 오른쪽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정면의 암봉을 크게 오른 쪽으로 돌아 오르니 층층폭포와

구름다리에 다가선다. 몇 해 전, 층층폭포가 왜 층층폭포인 지 아래쪽으로 내려가 보고서야 이유를 알았

다. 나만의 생각었는지 모르지만 홍룡폭포가 상단, 하단으로 층층이 되어 있는데 단 한개의 넓은 폭포

가  왜 층층일까 궁금하였던 것이다.


  

층층폭포 구름다리 못 미쳐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데 거기에 더 높은 폭포가 하나 더 내려 꽂힌다.

위로 보면 구름다리가 아름답게 구도 잡히고.... 그래서 층층폭포라고 하는구나! 무릎을 치며 감탄했었

다.


 

물론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나만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겠지만(살면서 그런 경험을 무수히 하기에),

그 뒤로부터 홍룡과 층층을 헷갈리지 않게 되었다.


 

층층폭포는 사자평의 폐교 앞을 흐르는 계류의 연속인데 이 줄기가 무명 폭의 줄기와 암봉을 사이로 두

고 흐르다가 합쳐 홍룡폭포를 이룬다.


  

층층폭포를 올라서니 임도가 이어진다. 지난 주 엄청난 알바의 뒤끝이라 풀섶이 싫어 그대로 임도로 진

행한다. 아직도 수풀 내음이 진저리 나고, 조그만 벌만 보아도 오금이 저린다.


  

임도가 크게 돌아가니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길이라 설레이고 신기하다. 얼핏 큰 동물이 바스락거리며

도망을 간다. 머리가 쭈뼛해지며 스틱을 곤두세우고 전방경계를 하면서 이번엔 말벌 대신 멧돼지인가...

갈수록 태산이로군... 심장이 두근거리는데 사라지는 뒷모습이 검은 염소인 듯하다.


  

옛날에 향로산 능선 아래 칡밭에 살던 이가 흑염소를 방목해 놓고 더 이상 거두지 않고 터전을 포기한

덕에 흑염소 몇 마리가 제법 향로산 주위에 출몰한다고 하였는데...... 염소겠지......


  

10여분 임도를 걷다가 본격적으로 산으로 오르니 금방 전망나무 그늘아래에 이른다. 오히려 가파르게

치고 올라 땀을 흘리는 것 보다 편한 맛이 있다.(알바와 말벌침의 후유증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탁 트인 전망.

키 작은 억새사면을 오르면서 뒤 돌아보면 전열에 코끼리봉과 953봉이 향로산으로 이어지고 그 뒤로 신

불-취서산과 채이-시살등의 능선이 푸른 빛의 산그리메를 이루고 있다. 신불산은 구름을 가득 머금고

있고 재약산 꼭대기도 구름에 덮혔다가 이따금씩 드러나기도 하는 궂은 날씨다.


 

정상 아래 안부에서 일박이일 홀로종주를 하고 내려오는 산객 한분을 만나고 이어 올라오는 완전무장의

젊은이들을 만나 사자평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좀 아는 것 가지고 유달리 유세가 많아지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몹시 부끄러워하며 자리를 뜬다. 수미봉

에 사람들이 대여섯 있어  그냥 아래로 지나쳤다.


  

맞은 편 사자봉은 완전히 구름에 가린다. 사면을 내려서 억새를 카메라에 담는데 햇볕이 없어 맘에 들지

않는다. 늘 그렇고 그런 사진이다.


 

사자봉 쪽 운무가 벗겨질 기미가 없어 오늘은 그냥 알프스 산장 쪽 임도로 트래버스 해보기로 하였다.

이 길로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차량을 위한 길이기도 하고 한때 사륜구동차들이 활개를 쳐 크게 문제

가 되었던 길인지라 어떤가 가보기로 했다.


  

길은 좁고 거칠어 교행은 알프스 목장터까지 불가능하고, 그나마 알프스 목장 못미쳐서는 길이 완전히

여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소형트럭으로 그곳을 지나기 위해 다시 돌을 놓고 있었다. 얼굴이 익은 운

자는 수미봉 아래 삼거리에서 주막을 운영하는 아저씨다. 트럭에 목재와 시설재가 가득이다. 


  

수미봉에서 보이는 폐건물 두 채와 빨간지붕을 한 막사가 있는 곳 까지 진행했다. 염소사육장이다. 생각

보다 염소냄새가 진하지 않았으나 이곳이 바로 사자평 억새지역의 한 가운데인 것을 생각하면 염소들로

서는 행운이다.


 

영남알프스!  언제쯤이나 도립공원 이상의 면모를 세워 진정한 산악보호를 하고 흔적 없이 다녀갈 수 있

는 아름다운 곳이 될 수 있을런지. 사람살이도 중요하지만 참으로 가슴 아프다.       


 

가지산릉과 임도가 갈라지는 요지의 샘물상회까지 차량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얼마전 사륜구

동 차량 문제로 배내골 입구에 바위로 막아놓고선 다시 슬그머니 차량진입을 허락해 둔 모양이다.


   

산길로 진입을 하였으나 마른 풀과 나무를 헤지고 진행하기가 싫어 다시 내려와서 임도로 걸었다. 겨울

에는 저 산길 능선이 정말 좋았는데...... 그때는 반대방향으로 진행하여 가지산의 험한 북사면과 부드러

운 능선을 바라보며 차거운 겨울바람을 즐거이 받아들이면서 얼마나 매혹적인 산행을 하였는 지.......

 

 

전망좋은 헬기장 정상에 올라보았다. 뒤로 펼쳐진 아름다움이 겨울의 그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다만

녹갈색의 컬러링이 다를 뿐이다. 오늘은 잘 가봐야 간월재까지 겠다. 신불산 쪽 종주는 당연히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집사람의 위치를 확인하니 이유불문 배내고개로 오겠단다. 시간도 많은 데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되지만

진정한 원점회귀처는 집사람이니.....(팔불출 같은 소리지만^^) 산행은 자연히 여기서 접어지겠다.


  

임도와 산길이 거의 평행하지만 능동산 입구에부터는 달라진다. 이곳은 의당 산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임도의 굴곡도 많고 길 상태도 안좋다. 오랜만에 초입의 쇠점골 약수터(쇠점골이라.... 이름이 좋다.)에

드니 빛바랜 세 개의 플라스틱 쪽박이 가지런한 모양새로 귀엽다.


 

능동산에 오르니 한시 35분여....  5분 후 석남고개 갈림길에 도착하여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시간을 맞

추려고 슬슬 내려선다. 마주친 가쁜 호흡의 두 건장한 산객은 통도사 극락암에서 지금 이곳 능동산을 오

르고 있다한다.


  

나도 앞으로 삼사년 후 쯤이면 저런 파워와 끈기 있는 산행이 가능할 것 같다. 지금이라도 맘먹고 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런 상태로 점차 체력이 늘다보면 그야말로 빡센 산행이 가능하리

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도열도 정연하십니다.

일단의 사람들이 질서정연이 올라 오길레 산행을 거의 마친 여유로 농을 건넸더니.....

-어?? 어?? 혹시 부산 아저씨 아잉교??

틈 속에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습니다만.....

-와.. 반갑심미데이.....  지난번 덕유산 종주할 때 마지막으로 남덕유 정상에서 만났다 아임미꺼.

다른 사람들도 나와 함께 맞다 맞다를 외치며 악수를 나누면서, 역시 혼자 다니시냐는 둥 정말 대단하다

는 둥(혼자 다니는데 무에 그리 대단한건지 원..... 길 잃고 말벌에게나 쏘는 줄도 모르고) 한동안 서로 들

떴다.


  

기약 없는 작별을 하고 다음에 또 만날 소망을 나누었다. 대구의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데 이참

에 자기들 팀에 끼는 게 어떻냐는 농담도 즐겁게 들었다. 산이 주는, 참으로 반가운 만남이었다.


  

배내고개 주차장은 어느새 시멘트 포장이 되어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두시에 마친 오늘 산행의 산

뜻함이 그 만남으로 더욱 즐거웠다.


 

<끝>
 

(저도 사진 없는 산행기를 써 보았습니다. 한쪽으로는 산이 잘 보존되지 못하고 있는 느낌도 들었고, 한

편 거기서 무슨 억새의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사진도 별로

좋지도 않았습니다. 날씨 탓인지 음울한 일기 같은 산행기를 용기를 내어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