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단상 4>  반야봉 신선을 꿈꾸며-(지리산)

  

  오랜만에 아내의 토요휴무와 맞물려 황금 주말을 만들었다. 며칠 전부터 아내는 파도가 들숨 날숨을 쉬는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감칠 맛 나는 싱싱한 회가 먹고 싶었겠지. 그런데 갑자기 정읍에 사는  고종 사촌형의 큰 아들 결혼 청첩장이 날아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여행 행선지가 바닷가에서 남도 여행으로 바뀌었다.

  

 결혼식이 오후 1시여서 예식에 참석하기 전 내 고향 땅을 방문하고 싶었다.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려 금산사 미륵불(미래불)을 친견했다.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대적광전도 둘러보았다. ‘대적광전’(大寂光殿) 현판은 이젠 작고 하셨지만 고창출신 서예가 석전(石田) 황욱(黃旭) 선생이 93세때 쓰신 글씨로 용트림하며 하늘로 힘을 뻗쳐오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들린 고향 땅은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더니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내가 어릴 적에 살았던 집터를 아내에게 가르쳐주며 옛날을 회상하니 감개가 무량하다. 어릴 적 가재잡고 뛰놀던 넓은 시냇가는 왜 이다지도 좁아졌는지. 이웃 집 종술이와 상곤이랑 미역 감고 물장구치던 그 용소 같던 그 자리는 아파트 욕조 넓이 두 배로 작아져버렸다. 세월이 냇가의 크기까지 줄이나보다. 그래도 모악산은 예나 지금이나 저만치 홀로 높이 솟아 있었다.

  

  다음날 지리산 등반 계획이 있어 아내와 나는 깜깜한 시골길을 달려 화엄사 절 밑까지 왔다.  그런데 숙박이 문제였다. 한화콘도와 호텔을 들려도 방이 없다.  스위스 호텔엔 일반 객실은 없고 스위트룸만 하나 남았단다. 30만원인데 할인해서 18만원을 호가한다.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싫다고 한다.  일박에 18만원이면 우리 같은 서민에겐 너무 사치스럽다. 차를 돌려 동구 밖에서 빈 방을 찾았다.  모텔 한곳이 깨끗해 보이기에 들렸더니 일박에 4만원이란다. 최근에 지은 모텔이라 방도 침구도 호텔처럼 깨끗하다. 보일러 시설이 잘 되어서인지 방이 몹시 후끈하다. 아내가 아주 좋아한다.

  

 꼭두새벽에 잠이 깨어 아내가 깨기만 기다렸으나 도무지 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마 어젯밤 찐한 사랑 때문인지 곤히 자는 모습이 깨우기가 애처롭다. 새벽 일찍 성삼재에 주차하고 노고단을 거쳐 지리산 반야봉까지 산행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아내에겐 반야봉까진 무리일 듯 하다. 새벽 6시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성삼재엔 컵라면 하나 파는 곳도 없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산을 오른다. 한 참을 오르니 호롱불 모양의 돌탑 노고단이 가까이는 반야봉을 그리고 멀리는 어슴프레하게 천왕봉을 올려다보고 있다.  반야봉을 바라보니 노루목, 임걸령이 능선을 이루며 샛길을  내 주고 있다.  임걸령 능선길에 산죽이 떡갈나무, 서어나무, 참나무 사이에 잔디처럼 펼쳐져 바람결에 사그락 소리로 합창을 해댄다. 구상나무 군락도 눈에 띈다.

  

  임걸령 샘터에서 약수 한 잔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비탈길을 오른다. 노고단 산장에서 잔 젊은이들 몇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샛길을 걷는다. 젊은 연인끼리 오는 산행은 우리의 젊은 날을 회상케 한다. “우리에게도 등에 풀물 들이며 즐기던 젊은 날이 있었지” 하며 아내를 바라보니, 빙그레 웃을 뿐 말이 없다.

  

 반야봉(해발 1,734 m)은 지리산 주 능선과 뱀사골을 조망하기엔 아주 좋은 위치에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성삼재에서 반야봉 까진 편도 8.2km라고 기록되어 있다. 왕복 16.4 km인 셈이다. 아침, 점심도 굶은 채 베낭 속에 단감 두 개로 허기를 채우며 산길을 걸었다. 겹겹이 둘러쳐진 산, 산, 산.......장대한 그 모습에 그만 넋을 잃을 정도라면 과장일까.

  

 뒤 따라 오던 아내는 갑자기 ‘조정래’의 <태백산맥> 얘길 꺼낸다. 빨지산 들의 겨울나기와 지리산 토벌작전에 관한 얘기들을 산길을 걸으며 나에게 들려준다. 산이 깊어 숨기도 좋고 토벌하기도 어려웠으리라. 피아골 전투 모습이 상상된다. 여름 홑바지를 입고 겨울 산악 길을 다람쥐처럼 뛰고 굶주렸을 그들의 모습들이 계곡 저편에서 어른거린다. 빨지산 들의 사상까지도 어머니 품속처럼 그렇게 포용했던 산, 바로 그 산을 나는 온 몸으로 호흡하고 있다. 반세기 전의 일이었음에도 먼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같이 느껴진다.

  

 지리산은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과 더불어 4대 명산으로 친다. 지리산은 3대 주봉인 천왕봉, 반야봉과 노고단 그리고 뱀사골, 피아골 등 10여개의 긴 계곡을 갖고 있다. 경남 함양, 하동, 산청과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5 개 군을 품에 안은 광활한 지리산은  그 경관이 빼어나다.  반야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지리산 능선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광대하다. 아내와 나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마주 바라본다. 지리산 같은 포근함과 인자함 그리고 어머니 같은 온화함을 닮고 싶다.

  

 이탈리아 등산가 라인홀트 매스너는 지구상의 8,000 m 이상의 14개 희말리아 봉우리를 모두 등정하고, 1978년엔 산소마스크 없이 알파인 스타일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했다. 그는 말한다. ‘행복이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 할 때 싹튼다’고.  나는 힘이 닿는데 까지 산을 벗 삼을 것이다. 무심으로 오르는 산은 나에게 묵언 할 것을 암시한다.

  

 오후 2시에 성삼재로 돌아와 정령치를 돌아 남원을 경유 정읍에 도착했다.  우리 부부가 왔다고  최원장 부부가 오수에서 약국을 하는 이약사에게 연락하여 함께 모여 고창 명물 풍천 장어와 밤에 요강을 뒤집는다는 복분자 술로 피로를 씻었다.  최원장 집에서 백련차 대접을 받고 숙식까지 제공받으니 마음까지 편안하다.  백련 꽃봉오리에 24시간 숙성시켰다는 백련차의 향은 잠자리까지 그윽한 향을 뿌린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 부부는 최원장 부부와 고창 선운사 도솔암에 올라 마애불을 친견하고, 격포 해변으로 차를 몰아 어시장에서 전어회와 우럭회를 시켜 소주를 곁들이니 이태백이 부럽지 않구나. 오는 길에 변산 온천에 들러 몸을 온천물에 담그니 강행군한 여행의 피로가 사르르 눈 녹듯 녹아난다. 졸리는 눈을 비벼대며 밤 10시에 귀경 길에 올랐다. 아내와 핸들을 교대하며 달리다 보니 새벽 1시에 서울 톨게이트가 보인다. 2박 3일의 여행길이 열흘 정도의 시간흐름으로 착각이 든다.  반야봉을 꿈꾸며 신선이 됐던 몇 시간의 산행길이 나를 행복의 문으로 인도하였구나. 후일 다시 한번 지리산 종주를 기약하며 꿈나라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