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14일.

  오전 6시30분 화곡역에서 출발하기로 예정, 얼굴에 매서운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친다. 예보엔 날씨가 오늘쯤 누그러진다고 했으나, 생각보다 훨씬 추웠다. 먼저 온 산우들도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회장 매천 선생은 물론 산신령도 벌써 도착, 허연 수염에 흰 입김을 토해내고 있다. 다들 추위를 녹이려 차 한 잔씩 들고 호호 불고 있다. 영하 7도라는데...

  예약된 인원보다 한두 분이 무작정 나와 만원이다. 간부 몇 사람은 부득이 매운탕 당번이 되었다. 겨울 산행지론 약간 멀긴 하지만 전북 진안 완주군 3개면에 걸친 진안고원에 속해, 서울에서 웬만해선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이고, 더구나 겨울 산행의 즐거움도 있어 모처럼 멀지만 목적지로 결정되었다.

 

     少無適俗韻

      性本愛丘山

      誤落塵網中

      一去三十年(-후략-)

                     -陶 潛-

   (내)젊어서부터 세속의 풍속이 마음에 들지 않아.

   천성이 애초에 구산(자연)을 사랑하였거니,

   어쩌다가 그만 진망(관계)에 발을 들여,

   어느 덧 삼십 년의 세월이 지나가 버렸구나.

 

 그래서 조금 멀긴 해도, 도연명이 전원에 돌아가 자연을 벗 삼으려던 그 생각과 궤를 같이한 것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그 동안 잊었던 산이지만, 이제라도 찾아 그 안에서 산을 닮아보면 어떨까.

 

  어슴프레한 아침을 뚫고, 차는 경부고속도를 거쳐 대전-통영 간 고속도를 타고 금산 휴게소에 닿았다. 한숨 돌리기 위해 잠시 내렸다. 오래 전 금산 인삼 시장을 잠시 다녀가곤, 강산이 두 번이나 지나서 와보니 상전벽해란 말을 실감했다. 너무도 많이 변한 모습에, 잠시 여기저기 둘러봐도 눈에 익은 곳이란 없었다. 찾아들기조차 어려웠던 오지의 금산이 이렇게도 많이 발전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9시 반쯤 목적지(외처사동)에 도착, 도로가 많이 확장 정비되었다곤 하지만 역시 오지의 농촌이다. 촌가들이 하얀 눈에 덮인 채, 또 저만치 몇 채씩 흩어져 더욱 춥게 느껴졌다. 서리가 채 녹지 않은 농로를 따라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매천 선생은 보이질 않는다. 뒤돌아보니 따르는 일행 사이 종종걸음을 치는 게 보였다. 다들 급한 일이 있었나 보다.

  동쪽으로 우뚝 막아서는 것이 운장산이란다. 선두 그룹은 벌써 들머리를 오르고 있다. 날씨가 꽤나 추웠다. 웅크린 채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산을 오르는데 퍽이나 가파르다.

  서울에선 이즈음 눈이 내리지 않았는데, 여긴 제법 많은 눈이 등산로를 덮고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자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더구나 속에다 쫄바지란 걸 입고 나왔더니 걷기가 더욱 힘들다. 어지간해선 땀을 흘리지 않던 내가 땀으로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따라가느라 뭐 볼 시간도 없었다. 보다못해 산우들이 템포를 늦추고 기다리길 몇 차례, 드디어 할목재에 올랐다. 거기에서부터 부드러운 능선이 이어지고 조금은 고갤 들어 경관을 살필 수 있었다.

 

   산새는 왜 우노 시매 산골

   영 넘어 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 길은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소월-

 

  미끄럽고 가파른 등로를 오를 땐, 소월이 다시는 오지 않겠다던 삼수갑산이 여기 운장산보다 험했을까. 그래도 못잊어, 되돌아 육십 리를 찾아가던 심정으로, 오늘 정상을 꼭 내 발로 오르고 말 것이다.

 

  서봉을 바라보면서, 곧장 중봉(정상 1,125.9m)으로 길을 잡아 오르는데

허리까지 자란 산죽이 군락을 이루어 마치 터널을 지나듯, 등로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서 좌우를 바라보았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나무들은 하나같이 상고대로 꽃을 피웠는데, 햇살을 받아 영롱한 빛을 발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휘력의 부족을 또 한 번 실감했다. 상여바위를 지나니 군데 군데 눈과 얼음이 있어 아이젠을 맨 발이 자꾸만 미끌어지긴 해도 로프가 설치 돼 있어 다행스러웠다.  

 

  오후 1시쯤 숨이 턱에 닿을 때쯤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뜻하지 않게 놓여있는 벤치 두어 개. 모두들 쉬고 있다가 우릴 반겨주었지만 조금은 쑥스러웠다. 번번이 뒤처지는 것이... 정상석에 올라 추억 한 장. 그러고 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 사방을 조망했다. 두고온 서봉이 오히려 멋진 모습으로 우릴 부르는 듯했다.

  정상에서는, 동으로 덕유산, 월봉산, 거망산, 황석산으로 이어진 연봉들이 물결치듯, 또 겹겹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멋진 장관을 연출하였고, 가까이로는 나뭇가지에 수정처럼 피어난 서리꽃에 겨울 했살이 보석 같이 반짝인다. 황홀경에 그만 물아일체, 내가 산이 되고, 산이 내가 된 듯 몰아의 경을 맛보았다. 장자(莊子)의 호접몽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동봉을 바라보면서 양지바른 곳에서 전화로 연락했던 산신령과 합류, 김밥으로 대충 요기하고, 산죽이 군락을 이룬 후미진 곳,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오르고 내리면서 젊은 우리 일행과 조우했다. 그들이 권한 얼큰탕 한 술에, 감로주 한 잔이 언 속을 따뜻이 녹여주었다.

 

  오를 때와 달리 수월하게 내처사동으로 하산하면서 해가 반나절 밖에 안 비친다는 반일암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버스가 기다리는 곳에 여유롭게 도착, 일행 너댓이 송어회 한 접시로 노독을 풀었다. 귀경 시간인 4시 귀로에 올랐다. 

                                목  어  백 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