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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모든 사람 앞에 평등하다

나이 사십에 도전했던 백두대간 무지원 단독 연속종주 후기

 

조령삼관문- 마패봉-하늘재-차갓재

    정성필(jluv) 기자   
▲ 북암문에서 배낭을 놓고 사진 찍다
ⓒ 정성필
백두대간 만남의 집에서 일찍 일어났다. 몸이 개운하다. 오늘은 멀리까지 갈 것 같다. 서둘러 아침을 먹는다.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가려니 문이 잠겼다. 자는 듯하다. 잘 자고 갔다는 인사를 혼자 한다. 떠나야할 사람은 떠나야 한다. 잠을 방해할까봐 마패봉을 향해 떠난다. 마패봉을 오르는 길은 초입부터 높은 경사도에 바위지대로 험하다.

줄을 잡고 올라야 하고 길도 없는 암릉지대를 통과해야한다. 안개는 가득히 끼었다. 몇 번인가 암릉에서 미끄러진다. 자칫하다 발목이라도 삐끗하면 큰일이다. 조심하지만 안개가 가득해 길도 분간 안 된다. 길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정신을 가다듬는다. 마패봉에 도착하니 안개가 부슬비로 바뀐다. 며칠째 비를 맞고 있다. 비가 귀찮고 힘들다. 그쳤으면 좋겠다.

하지만 산에서는 비도 안개도 다 있어야 할 소중한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이지 사람의 마음대로 움직여지는 존재가 아니다. 비가 부슬거리는 길을 걷다 보니 바지가 젖는다. 머리카락도 몸도 젖는다. 젖는 것은 몸 뿐 아니다. 집 떠난 지 20일이 넘었다. 떠나기 전 가능하면 삶의 자리에서 멀리, 가능한 오래 떠나 있을 생각을 했다. 떠나야 내가 있던 자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이만큼 멀리 이만큼 오래 내 자리를 비워 놓으면 내 삶의 자리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을 법도 한데, 나는 떠나온 자리에 연락조차 해보지 않았다. 궁금하지만 산에서는 산 아래의 소식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산 아래의 소식에 귀 기울이다 보면 끝까지 갈 수 없다. 나는 인간관계의 그물망 속의 나일뿐이다. 연락이 되는 순간 나는 아이들의 아빠로, 친구로, 내가 살아온 신분의 옷을 다시 입어야 한다.

지금 산에서의 나는 완벽하게 혼자다. 나는 나일뿐이다. 산에서는 다른 누군가를 통해 확인받는 것이 아니다. 산에서는 오직 내가 나를 보아야 한다. 누군가의 음성으로 확인 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 나의 걸음이 부딪히는 산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북암문에 도착한다. 북암문은 완벽한 성터로 길이 나 있다. 산속에 완벽한 성터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보아왔던 수많은 성터중 하나 일 것이다. 성은 방어용 진지다. 침략을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방어용진지다. 옛날 전쟁을 대비해서 이 성터를 정기적으로 순찰을 했을 옛 군인들을 생각해본다. 그 시절에는 이 곳으로 사람이 다녔을 것이다. 이름이 북암문인 것을 보면 이곳으로 사람들이 넘어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충청도에서 경상도를 향했을 것이다.

이곳을 지켰을 관원과 말단 군인들, 그리고 이곳을 지나기 위해 험한 고개를 땀 흘리며 걸어왔을 선조들의 사투리가 들리는 듯 하다. 길에 서면 그 길을 밟고 다녔던 사람들의 체취가 느껴진다. 내가 걸었던 이 길을 누군가가 또 밟는다면 백두대간에 흘렸던 나의 땀과 선조들의 땀 그리고 나를 앞서 걸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땀 위에 그의 땀이 포개어질 것이다. 나는 땀이 배인 돌 성을 걷는다. 걷는 길이 행복하다.

북암문을 지나 하늘재를 향한다. 성터를 따라 가는 길이 즐겁다. 오늘은 긴 산행을 해야할 듯하다. 며칠 너무 많이 쉬었다. 쉰 덕분에 몸 상태가 좋다. 비도 그쳤다. 나뭇잎마다 물방울을 가득 가지고 있다가 내가 지날 때마다 떨어뜨린다. 아침만 해도 차갑게 느껴졌던 물방울이 해가 나자 시원하게 느껴진다. 손수건을 흠뻑 적셔 얼굴을 문지른다. 시원하다.

하늘재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포함산을 향한다. 길 상태는 좋으나 온통 바위투성이다. 멀리서 보았던 포함산은 위압적이다. 뾰족한 봉우리가 우뚝해 보이는 거대한 바위덩어리처럼 보이는 포함산을 지난다. 내리막 내내 무릎이 아프다. 아직 무릎이 정상은 아니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지만 비가 그친 날씨 탓인지 기분은 상쾌하다.

대미산을 향해 간다. 가톨릭성지가 있는 산. 삼각형의 아름다운 산. 대미산으로 가는 길은 그동안 걸었던 암릉길에 비해 훨씬 편하다. 다만 잡목이 많은 곳이 있어 배낭과 옷이 가끔 걸리고 팔이 긁힌다.

팔이 긁혀도 기분이 좋다. 몸의 아픔이야 마음의 아픔보다 더 아프겠나? 산을 걸으며 나는 마음의 텅 빈 공간에 무언가 넉넉히 채워지는 체험을 한다. 왜 일까? 아마도 산은 자연이기 때문이다. 산은 문화가 지배하는 영역이 아니다. 백두대간은 여전히 사람의 발길을 허락지 않는 자연의 땅이다. 사람의 땅에서 산을 보면 산은 멀리 있는 거대한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산에 들어오면 산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모든 문화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백두대간은 휴대폰도 인터넷도 상관없다. 그래서 대간길을 걸을 때는 사람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말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야한다. 비를 맞으며 바람을 맞을 때도 나는 자연 속에 담겨져 있는 인간임을 깨닫는다. 땀 흘리며 올라간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아래의 풍경은 인간의 풍경이기보다는 자연의 풍경일 뿐이다. 인간의 세상은 작게 보일 뿐이다. 작은 저 땅덩어리에서 살아갔던 내 모습을 산은 객관화 시켜 보여준다.

산에서는 내가 알고 있던 철학이나 문화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백두대간을 끝까지 걸으려면 내가 알고 있는 철학이 내가 알고 있는 인간의 문화가 얼마나 무기력한지 깨달아야한다. 자연에 있으면 자연에서의 생존법을 다시 배워야한다. 그래서 자연 앞에서는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 그래야 이 산에서 저 산까지 갈 수 있고 그 다음 산까지 갈 수 있다. 산에서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까닭은 산은 여전히 문화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을 걷고 있는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리고 텅 비워 맑고 투명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맑고 투명해야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꽉 차있으면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다. 비워야 새로운 것이 채워진다. 나는 지금 이 길을 걸으며 땀으로 비워내고 있으며 눈물로 나를 비워내고 있다. 백두대간을 걸으며 뜻 모를 눈물을 흘리는 까닭은 나를 비워 겸손하게 자연의 가르침을 채우려 하는 까닭일 것이다.

산은 게으름을 허락지 않는다. 권력이 있어도 힘이 있어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산을 자기에게로 끌어올 수 없다. 산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산에서 위로를 받으려면 산에서 가르침을 얻으려면 산으로 가야 한다. 가야만 배울 수 있고 가야만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꿈적도 하지 않는 산, 그 누구의 꼬임이 있어도 부화뇌동하지 않는 산, 그 산은 조용하게 제 품을 열어 모든 사람을 오라 할 뿐이다. 제 스스로 고개 숙이며 사람에게 기어들어가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산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
2004년 5월 16일 부터 7월 4일까지 백두대간 무지원 단독 연속종주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