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 - 눈꽃 (여원재-고남산-복성이재)


 


2004년 1월 17-18일                                                                                   포근하고 잔눈발이 간간이


 


 


 


해를 넘긴지 벌써 2주가 지났다. 무심한 세월. 복잡한 일은 대충 잊고 살자하였더니 그새 세월만


파먹는 게으름뱅이가 되가는가.  몸도 마음도 추수릴 때가 된 것 같아 서둘러 산행길에 나선다.


 


 


산행들머리에서


 


4:10 여원재, 백두대간이 아니면 전혀 인연이 없을 듯한 생면부지의 이름이다. 산행 초머리에서부터


몸상태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며칠 전에 다친 왼발 뒤꿈치가 가벼운 걸음에도 속으로 통층이 묵직하게


느껴오는 것이 밤새 걷게되면 어떻게 발전될는지, 반도 못 가서 탈출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하나


은근히 걱정된다. 안되면 돌아오면 되겠지만 아직 격어보지 못한 일이라 그 실망을 예상할 수가 없으니.


 


날씨가 푹하고 습기가 많아선지 열발짝도 못 가서 안경에는 김이 서려 앞을 볼 수가 없다. 전에는 없던


일인데. 허기사 날씨가 의외로 춥지않아 잔뜩 무장한 자켓부터 벗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진작부터


간절했다. 그렇게 자신과 싸우느라 시나브로 지쳐가는 줄도 모르고 오르다 고남산 정상밑에 이르러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서야 깨닫는다. 쌓인 눈 덕에 발바닥에 큰 충격을 주지않는 것이 천만 다행이다.


 


6:10 밤공기가 속까지 시원하다. 고남산 정상에서 보는 야경들이 사방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고즈넉하다. 물 한 모금하며 몸상태를 점검해보니 그럭저럭 버틸만하다.  선두를 보내고 잠시 후 뒤따라


내려가니 넓은 공터에 다시 모여 아이젠을 매느라 어수선하다. 급경사앞에서 나도 맬까 말까를 두고


망서리다가 아이젠을 매면 발바닥의 충격이 좀 더할 것 같아 스틱을 믿고 조심조심 경사면을 내려선다.


 


경사길은 예상처럼 심하지 않아 그런대로 미끄럼타며 내려오는데 미끄러지는 재미마저 솔솔하다.


고만고만한 잘-자란 봉우리들을 뒷동산 넘듯이 넘고넘어 매요마을에 닿는다. 대간길이 마을을 꿰뚫고


지나가는 바람에 여느집 담벼락에도 대간표시리본이 주렁주렁하다. 산과 도로를 들락거리다가 사치마을로


들어가는 고가도로가 나오고 밑으로는 88고속도로가 지나간다. 그래서 지도를 보니 대간길을 벗어나서


사치재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표시되어있는 길로 가고있다. 사치마을을 지나며 보니 대간능선은


오른쪽으로 고속도로를 따라 이어져있고 우리가 가는 마을길과 사치재에서 만나고 있다. 사치재에서


고속도로를 위험하게 무단횡단하는 일이 없어 다행이기는 하지만 대간길을 우회하다니 고의는 아니지만


마음에 걸린다. 다시는 이런 누를 범하지 않으련다.


 


 


사치재를 비켜서며


 


8:30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들과 사치재에서 힘들게 대간길을 오르는 우리들, 모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생활의 양면성이다. 무거운 등짐을 지고 힘겹게 산을 오르는 선택이 어떤 보람과 만족을 준다는 것은


산꾼만이 아는 진리가 아닌가. 눈물젖은 빵의 맛을 먹어본 자만이 알듯이..


그래서 매사 한쪽에 치우치는 어리석음은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






 


 


697고지에 오르면서 보니 산불재해로 민둥산이 되어 버렸다. 곳곳에 타다남은 나무뿌렁이가 널려있고


불에 그을린 바위들도 여기저기 눈에 띤다. 어느새 잡목이 우거져 흔적을 지우고 오늘은 눈에 뭍혀


백색으로 아름답게 치장되었지만 산하가 겪는 이런저런 몸부림을 볼 때는 내살 깍듯이 마음이 아리다.


 


대간길이 이어져 온 모습을 뒤돌아 보니 성삼재로부터 만복대를 거쳐 세걸산으로 이어진 우람한 능선길이


코앞의 사치재에 바로 닿지를 못하고 여원재- 고남산으로 한참을 돌아 잔 봉우리들과 연결되어 오고있다.


물을 넘지않으려는 대간길의 도도함인가 당당함인가.


 


697봉을 넘으면서 축제의 시간이 시작된다. 지난 삼도봉 산행때는 밤의 축제로 끝나 못내 아쉬웠지만


오늘은 그에 대한 보상이 있으려는지 눈길이 점점 깊어진다.


 


 


고사목 정취가 있는 태산준령도 아니고


기암괴석이 즐비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산이


어쩌면 이렇게 줄줄이 눈꽃을 피어놓고선 사람의 마음을 심산하게 하느냐.


 


 





 


솔잎에 앉은 소담스런 눈송이에 뒤질세라


진달래 꽃몽오리는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꽃송이를


주렁주렁 달고있다.


 



 





 


솔가지에 자란 투명한 상고대,


진달래가지에 속살처럼 채색된 눈결,


자연이 창조한 걸작들에 경이감마저 든다.


 


 






 


산짐승들의 흔적은 숲 어딘가에서 자취를 감추고


인간들에게 기꺼이 길을 내주려지 않는가.


 


축복받은 우리들의 대간길에


눈의 자태는 망가질 겨를도 없이 계속해서 새롭게 치장하며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려고 한다.


절대자의 오만함도 인색함도 찾을 수가 없다.


 


 






 


 


옷가지를 쥐어 뜯는 나뭇가지들마져


오늘은 고은 눈사포를 잔뜩 쓰고있으니


이 길을 어찌 헤치고 갈 것인고.


 


 





 


길은 나무사이를 돌아 끝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한번 떠나면 다시는 못 볼 것 같아서


차마 떨어지지않는 걸음을 겨우겨우 달래보낸다.


 


오늘 대간의 한 구간을 걸으며


인고 (忍苦 )의 결실을 어김없이 얻고


또 며칠을 살 힘과 의지를 고추 세우는 소득을 챙기고 온다.


 


시리봉을 돌아내려 어느새 종착지에 이르고 보니


눈길은 밟지도 않은 채 더 가야할 듯 버스앞으로 닿고있는데


이 허전한 마음 웬일인가.


 


에라이 이제 그만하고 이 간사한 마음을 소주로 응징할 것이다.


 


 


산꾼 여러분에게도 오늘처럼 행복하고 즐거운산행이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김석기 드림


 





▣ 고석수 - 힘드는 길을 아쉬움을 남기고 오셨네요..저도 그 구간을 해야하는데...수고로우심을 보며 저 또한 다녀온듯 합니다..잘 보았습니다
▣ 유병복 - 완전히 산을 즐기는 산꾼이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