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칠선계곡


▶일시 : 2008년 10월 06일(월) 07:00-17:00

▶장소 :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지리산 칠선계곡(추성리주차장에서 중산리주차장까지)

▶인원 : 전국신청자 29명(공단 가이드 4명, 천왕봉까지만 안내)

▶기상현황

날씨 : 햇볕이 내리 쬐는 맑은 날씨, 아침에는 구름안개 약간 낌

진주일월출몰 : 일출 06:26, 일몰 18:05, 월출 12:52, 월몰 22:22

지리산온도 : 최저10, 최고19

강수확률 : 오전 30%, 오후 20%

▶이동시간

<10월 05일>

10:00 성남(분당)출발

12:00 함양행 고속시외버스탑승

15:08 함양터미널 도착

15:30 함양시외버스터미널 출발(함양터미널에서 도로건너 20m 거리 위치)

16:30 추성리주차장 도착

16:40 민박집 check in(지리산 추성휴게소 허상옥 전화 055-962-5494)

<10월 06일>

06:25 민박집 check out

17:05 중산리주차장택시탑승(덕산개인택시 최상열 011-833-1113)

18:05 진주고속버스터미널도착(진주시외버스터미널과 다른 곳에 위치)

19:00 광주행고속버스 탑승

20:50 광주터미널 도착

▶탐방시간

07:00 추성주차장 출발

07:26 두지마을 농가앞에서 잠시 휴식

08:12 옥녀탕

08:48 비선담

09:25 칠선폭포

09:44 대륙폭포(등로에서 20-30m 안쪽에 위치)

10:10 삼층폭포

11:45 마폭포

11:45-12:30 점심식사

14:10 천왕봉 도착

14:25 천왕봉 출발

14:53 개선문

15:31 법계사

15:58 망바위

16:27 삼거리 갈림길

17:00 중산리 야영장

 

▶칠선계곡 주행

칠선계곡은 천불동계곡, 탐라계곡과 함께 대한민국 3대 계곡으로 불려지고 있다. 칠선계곡에는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沼 : 물이 떨어지면서 회오리치는 웅덩이)가 있다. 칠선계곡은 지난 10년간 특별보호구로 지정되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입이 금지되어 왔는데 금년부터 제한적ㆍ한시적으로 탐방예약ㆍ가이드제를 시행하게 되었다. 금년의 경우 처음으로 5-6월, 9-10월등 4개월을 운영중인데 탐방신청은 15일전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여야 한다. 대개 예약 시작 15-20초안에 마감이 되어버린다. 상반기에는 번번히 실패하다 하반기에 들어서서 번개같이 자판기를 두들겨서 드디어 2008년 10월 06일 월요일 칠선계곡 올라가기 인터넷 탐방예약에 성공하였다. 출발 당일 비가 오거나 출발 전날 30밀리 이상 비가 온 경우 안전사고 위험이 있어 탐방은 취소된다고 하는데 2-3일전 일기예보가 안 좋게 예고되었다. 일단 6일 하루 연가를 내었다. 탐방 하루 전날은 인근에서 민박을 해야 할 것 같아 일요일인 5일 10시에 집을 나서 동서울 터미널에서 12시 발 함양행 버스를 탔다. 경북고속도로를 달여 대진 고속도로로 진입을 하자 잠시 비가 고속버스 앞 유리창을 적신다. 탐방이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3시를 약간 지나 함양터미널에 도착하니 하늘에는 잔뜩 구름이 끼어 외지인의 내방을 반기지 않는 것 같다. 길건편 함양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칠선계곡 들머리에 위치한 추성행 버스를 타고 16:30에 추성리 주차장에 도착하다.

 

    △추성리 주차장

 

탐방안내소가 위치하고 있고 공단 직원 몇 분이 모여있기에 내일 일정에 대해 잠시 안내를 받다. 계곡 방향으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민박집으로 이동하다. 계곡 물소리가 우렁차게 들리고 집채만한 돌덩이가 계곡 물길을 가로 막고 있는 작은 다리를 지나 며칠 전 공단 안내전화로 소개받은 민박집에 도착. 호젓한 2층 방으로 안내되어 무거운 배낭을 벗었다. 방마다 단독 화장실이 있고 자그마한 TV도 갖추어 놓았다. 배낭 무게를 달아보지는 않았지만 족히 7-8kg는 나갈 것 같다. 아무래도 미련하게 배낭을 꾸린 것 같다. 우천을 대비해 우의와 3단 우산을 챙겨왔는데 생각해보니 우천시 탐방이 취소된다고 했으니 굳이 챙길 필요가 없었다. 옆방에 나이 지긋하신 나홀로 한 분이 먼저 도착하여 계신다고 한다. 민박집에서 차려준 저녁 밥을 먹은 후 내일 점심을 담을 보온밥통과 보온병을 넘겨주었다. 내일 탐방후 중산리로 하산하여 진주고속터미널에서 19시 광주행 막차를 타야 하기에 시간계산상 천왕봉에서 중산리주차장까지 최대한 빨리 이동을 해야 할 것 같다. 진주는 시외버스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리 따로 있다. 진주고속터미널까지는 택시로 이동해야 할 것 같다. 안내받은 택시기사와 통화를 하여 시간약속을 하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뒤척이다가 선잠이 들어 새벽 5시 경에 기상을 하여 산행준비를 하고 6시에 1층으로 내려와 아침을 하다. 어제저녁 늦게 도착한 부산 팀 4명과 함께 식사를 마치다. 날씨는 비올 확률은 거의 없고 화창하니 매우 지오오디 하다. 6시 30분경에 추성리 주차장으로 이동하다. 공단직원 4명이 나와서 참석인원을 확인 중이다. 신분증과 여행자보험증을 제시하여 본인 확인을 받고 깃발을 배부 받다. 오늘 탐방 참여인원은 총29명, 최고령자 33년생 1분을 포함해 내 연장자가 5분이고, 여성분이 3명인데 한 여성분은 부부 참가자로 보였다. 75세의 최고령 어르신이 아마도 지난 밤 옆방에서 주무신 분 아닌지. 인원 점검후 가벼운 스트레칭을 마친 후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다. 주행대형의 선두와 후미 간격을 시간적으로는 5-10분 간격, 거리로는 100-200m를 벗어나지 않도록 안내를 한다. 전에 간혹 참가자 중에 등로를 벗어났던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

 

▶07:00 추성리 주차장 출발

7시에 추성리주차장을 출발하다. 들머리 등로가 돌을 다져 만든 가파른 포장길이 두지터 마루고개로 이어지고 있다. 찝차 한대가 내려오다 우리 일행이 지나가도록 잠시 정차를 하고 있다. 초장부터 너무 빠르게 걷는 것 같다. 가쁜 숨소리를 내며 잘들 오른다. 산행을 주로 나홀로 하기에 오늘처럼 무리를 진 일행들과 함께 산행하는 것이 낯설어서 처음에는 잘 적응이 안되었다. 지나치는 풍광들을 눈 여겨 보고 감상을 하며 지나쳐야 하는데 무리들과 떨어지지 않게 앞 사람과의 간격에 신경을 쓰다 보니 이런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후미에 위치하여 몰이하는 공단 직원들의 재촉하는 듯한 눈초리도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갖는데 부담이 되는 부분이다. 등로의 날씨는 봄 날씨 처럼 화창하여 햇빛이 나뭇잎에 부딪혀 부서지고 있다. 보약삼첩(補藥三貼)이 불여(不如) 추일등산(秋日登山)이라, 보약 세 첩 먹는 것보다 청명한 가을날에 등산하는 것이 났다고 했던가. 들머리 출발후 26분만에 첫 휴식을 취하다. 앞뒤 간격은 1-2분 거리를 유지하며 걸어 올라온 것 같다. 농가 앞인데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인적은 아직 없다. 여기가 두지마을이다. 주민등록상 5명의 주민이 거주하는데 실제 거주는 11명이라고 한다. 몇 사람밖에 안 사는 마지막 마을이란다. 근처에 보이는 저 집이 마지막 민박집이란다. 휴식을 끝내고 다시 출발하여 계곡으로 이어지는 산죽길로 접어들다. 등로는 아직까지는 인적으로 길이 나서 확연히 구분이 된다.

 

▶08:12 선녀탕 도착

선녀탕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다. 선녀탕에는 일곱 선녀와 곰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 선녀탕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즐기던 일곱 선녀의 옷을 훔친 곰은 옷을 바위 틈 나뭇가지에 숨겨 놓는다는 것을 잘못해서 사향노루의 뿔에 걸쳐 놓아 버렸다.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본 사향노루는 자기 뿔에 걸려 있던 옷을 가져다 주었다. 이에 선녀들은 옷을 입고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그 후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는 칠선계곡에서 살게 해 주고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았다고 한다. 옥녀탕은 그 중에 가장 대장 선녀가 혼자 목욕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가이드는 설명을 한다. Believe it or not. 다시 출발하다. 오늘 탐방에 참여한 분들 대부분이 산을 많이 오른 사람들 같다. 주행속도가 매우 빨라 다른 때보다 20-30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가이드들이 말한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철교를 건너다. 철교 중간부위가 사람들의 움직임에 힘을 받아 출렁거림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이 조심스레 건넌다.

 

    △ 출렁다리 철교

 

▶08:48 비선담 도착

비선담에 당도하다. 칠선계곡 출입 통제 구역 시작점이다. 해발 900m지점.오늘 참여자 모두가 통제출입문앞에 모두 멈춰 섰다. 칠선계곡이 비록 제한적이지만 한시적으로 가이드제를 통해 개방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선두 가이드를 맡고 있는 공단직원이 간략하게 설명을 하였다. 칠선계곡은 지리산에서 가장 원시림 훼손이 적은 구역으로서 생태보존을 위해 출입을 통제해 왔다. 전에도 생태조사 등 학술적인 목적에 의해 공단의 공식적인 허락을 받는 경우 공단직원을 동행시켜 탐방을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을 하였다. 그러나 이곳 비선담까지는 개방이 되어서 등산객들의 발길을 계속되어 왔다. 많은 등산객들이 이곳 비선담까지 왔다가 출입통제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 다시 하산을 하면서 대부분 아쉬움을 달랬을 것 같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그동안 수차례 칠선계곡 기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나 일부 등산가로부터 개방요구가 있어 왔다. 그래서 공단에서는 칠선계곡 주민들과 개방론자들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금년부터 한시적으로 가이드제를 운영하게 되었다. 만약 가이드제를 통하지 않고 무단으로 칠선계곡 출입통제 구역을 넘어서 탐방을 하다가 적발이 되면 과태료가 부가되고 전국 국립공원에 명단을 통보한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날씨가 화창한 가운데 주행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칠선계곡을 따라 천왕봉에 이르는 등로가 참으로 아늑하게 느껴졌다. 개방초기에는 숲이 우거져 안내를 하는 공단 가이드들조차 가끔 등로를 찾느라 잠시 헤매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칠선계곡은 해외원정대들이 동계훈련캠프를 차릴 정도로 험준하다고 했다. 또한 비가 올 경우 등로가 미끄러워져 다칠 우려가 있어 칼같이 탐방을 취소시킨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좋은 날씨덕분에 어머니품속 같은 온화한 느낌을 받으며 주행을 하는 것 같아 매우 해피했다. 계곡을 오르면서 붉게 타오르는 단풍의 모습들이 눈앞에 전개된다. 공단에서는 10월 초순께부터 칠선계곡 단풍이 물들기 시작해 말일 경에는 '삼홍'(三紅 산이 붉게 물들어 계곡의 물과 이를 바라보는 사람까지 붉게 만든다는 뜻)을 이룰 것이라고 한다. 가쁜 숨 내쉬며 올라온 길 돌아보니 붉은 단풍들이 계곡을 타고 넓게 번져가고 있다. 출입통제문이 열리고 밧줄이 길게 늘어진 직벽에 가까운 오르막 된비알을 올라타다.

 

    △ 현위치 번호표지판


현위치 번호 표지판 <지리09-09>를 지나다. 비선대 직전 표지판이 <지리09-08>이고 천왕봉 직전 마지막 표지판이 <지리09-19>이다. 잠깐 안내를 하면 현위치 번호 표지판은 산불,불법행위(취사,상행위),조난 등 긴급신고 구조요청 편의를 위하여 탐방로상 매250-500m 간격으로 사진과 같은 표지판을 설치하였는데 유사시 표지판에 표기된 신고처에 현위치 번호를 신고하면 된다. 그리고 참고적으로 덧붙이면 혹시 낯선 산을 찾았다가 일몰 전 하산을 하지 못하고 밤중에 조난을 당했을 경우 인근에서 전봇대를 발견하여 전봇대에 기록된 내용을 구조대에게 알려주면 자신의 위치가 정확히 추적될 수 있다고 한다.

 

    △ 칠선폭포

 

▶09:25 칠선폭포 도착

드디어 칠선폭포다. 칠선계곡의 첫 폭포라서 칠선폭포라 부른다고 한다. 가이드 다시 한번 평소보다 20-30분 정도 빨리 주행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기념촬영을 하였다. 가이드가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잔소리를 한다. 후미에서 주행을 했는데 정말 선두 따라잡기가 힘에 겨웠다. 심장박동과 호흡이 빨라지면서 사점(死點, dead point)에 도달한 느낌이다. 사점에 대해서 어느 산악인의 주의말씀을 인용해 본다. 산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심장박동과 호흡이 빨라지는데 운동량이 자신의 심폐능력 이상으로 커지면 더 이상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가빠지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증상이 온다. 이 같은 증상은 근육에 피로물질인 젖산이 쌓여 통증이 생기는 사점이라고 하며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사점에 도달하는 운동량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산행중에 한번씩 겪게 되는 증상이기도 하지만 심근경색의 신호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상식적으로도 사점에 빨리 도달하는 것보다는 서서히 도달하는 것이 좋다. 사점에 가까워진다고 느껴지면 걷는 속도를 늦추고 심호흡을 하여 사점을 극복해야 한다. 이때 오랫동안 휴식을 취하면 다시 사점을 겪게 되므로 휴식시간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사점을 극복해 나가면 적응되어 순탄한 산행을 계속할 수 있다. 보통 젊은 남성의 경우 초반에 의욕을 앞세워 빠른 속도로 산행을 하다가 사점에 이르러 금방 지치는 경우가 많으며 여성들의 경우 사점을 느끼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사점을 극복하고 나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기분이 상쾌해지고 호흡이 안정되면서 무한정 걷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런 현상을 마라톤에서는 런닝 하이(running high) 또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하며 이 현상은 몸 안의 베타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의 농도가 상승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조절을 잘해서 산행을 계속한다면 상쾌한 산행을 지속할 수 있다. 일부에서 사점과 런닝 하이를 혼동하기도 하는데 런닝하이는 상쾌한 느낌이 들며 사점과는 달리 가슴에 극심한 통증은 없다. 다시 주행을 계속하여 잠시 대륙폭포인근에 도착. 대륙폭포는 주행등로에서 20-30m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부분 배낭을 주행등로에 대포해 놓고 대륙폭포에 다니러 갔다. 나는 가쁘게 몰아 내는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것 같아 엉덩이를 나무 등걸에 걸친 채 심호흡을 하며 휴식을 취해 본다. 젠장 침이 질질 흘린다.

 

▶10:10 삼층폭포 도착

휴식을 끝내고 다시 산죽 숲을 헤치며 주행을 하여 삼층폭포에 다다르다. 잠시 휴식을 갖은 후 주행을 계속하여 무명폭포를 지나다. 주변 풍광을 디카에 담고자 조금 뭉그적거리다 보면 앞서가던 사람 모습이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11:45 마폭포 도착

드디어 마폭포에 도착하다. 칠선계곡의 마지막 폭포라서 마폭포라 불리워진다고 한다. 12:30까지 점심시간을 준다. 햇볕이 화창하게 내리 쬐지만 그늘진 곳은 오래있으면 약간 한기를 느끼게 한다. 민박집에서 준비한 보온밥통 도시락을 펼치고 맛있게 식사를 하다. 둘러보니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지만 나홀로 식사하시는 분도 꽤 된다. 자켓과 등산화를 벗어 햇볕에 말리다. 땀에 흠뻑 젖은 버프모자를 비틀어 짜니 거짓말 보태서 녹차 반잔 분량이 나온다. 보온통에 담아준 따듯한 옥수수차를 한잔 따라 마시니 참으로 만사가 형통이 될 것 같은 충만감이 넘쳐 흐른다. 바로 위에서 나홀로 식사하시는 어르신께 옥수수차 한잔 권해드리려고 접지력이 없는 이너양말을 싣은 채 바위를 딛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정강이를 다쳐 피를 보다. 밴드를 꺼내 붙이다. 접지력이 없는 이너양말을 신을 때는 요주요. 바위에 기대어 내리쬐는 햇볕을 맞으며 칠선계곡의 정기를 들어 마시니 이런 호연지기가 어디 있을 쏘냐. 옛날 선인들이 산천경계를 찾아 주유하며 풍유를 즐긴 맛이 이런 맛이렸다.

 

▶12:30 마폭포 출발

즐거운 휴식시간을 마치고 다시 출발 준비. 가뭄으로 인해 천왕샘과 장터목 샘터의 식수사정이 안좋다고 마폭포에서 식수통을 채워가라고 안내를 한다. 계곡물 수질의 산도(PH)가 8.1, 용존산소량(DO)7.5로 바로 먹을 수 있는 청정수 수준이란다. 손으로 떠 마시면 이빨이 시릴 정도이고 손을 담그면 뼈까지 스며드는 한기로 인해 금방 손을 빼게 된다.

 

    △ 생섭 모니터링 모습


천왕봉을 향해 마지막 된비알이다. 거리로는 1.7km 마의 구간이란다. 이 구간은 정말 원시림상태다. 나무에 고정조사구를 설치해 정기적으로 생섭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모니터링 결과 통제 이전보다 포유류 2종, 파충류 4종, 양서류 1종, 식물 60종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왕성한 주행력을 자랑하는 선두주자들은 잠시 후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 고사목

 

10명 정도가 후미를 이루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른다. 눈으로는 낯익어 보이지만 이름은 생소한 바위말발도리와 딱총나무가 지나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니 2-3명이 쳐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7-8명이 다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다가 한 순간 앞서나가다 보니 뒤따라 오르는 사람 흔적이 안 느껴진다.

 

    △된비알 낙엽송

 

아래 먼 발치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는 나는데 사람모습은 보이지 않아 잠시 서서 쉬고 있는데도 인기척이 없다. 내가 등로를 잘못 잡았나 하고 GPS를 살펴보니 방향은 제대로인데 왜 뒤따르는 사람들이 안 보이는 거지. 아 저기 보인다. 4사람의 일행 중 한 분의 주행이 더디다 보니 모두 함께 주행을 함에 따라 조금 더디게 올라오고 있었다.

 

   △ 두류봉 능선

 

천왕봉을 직전에 앞두고 가파른 철계단이 나타난다. 계단 꼭대기를 쳐다보려니 고개가 한참 뒤로 제켜진다. 노래가사 말마따나 아주 그냥 죽어줘요다. 평소 산에서 계단을 만나면 습관적으로 그 숫자를 헤아려 왔는데 거칠어진 호흡과 어깨를 짓눌리는 배낭무게로 여유를 잃어버려 계단 수 헤아리는 것을 놓쳐버렸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바로 대답을 못하고 뒤따르던 탐방객이 149개라고 일러준다. 드디어 천왕봉발치에 올라서다.

 

    △ 칠선계곡 내려가는 통제지점


가이드에게 탐방깃발을 반납하고 서로간 격려를 건넨 후 천왕봉을 향하다. 오늘 참석 탐방객 대부분이 장터목쪽을 향해 내려간다. 나는 중산리쪽으로 하산하여 중산리주차장에 적어도 6시 30분 전에는 도착을 해야 한다.

 

   △ 천왕봉 표지석


   △ 천왕봉 표지석

 

▶14:10 천왕봉 정상

천왕봉 표지석 앞에서다. 해발 1915m. 천왕봉에 올 때마다 대부분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별로 없이 한가하다. 사방팔방 시원하게 조망된다. 노고단, 왕시리봉이 은은하게 손짓하는 것 같고, 진주 방향도 아스라이 조망된다. 중봉쪽 대원사 방향을 보며 몇 년 전 겁 없이 폭우속을 뚫고 대원사부터 화엄사까지 2박 3일의 대종주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주위 경관을 디카에 담고 사과 한 개를 꺼내 반으로 쪼개어 사진을 찍어준 젊은이에게 반을 건넨 후 맛있게 먹으며 오늘 올라온 칠선계곡을 내려다 본다. 7시간여 긴 주행이었다. 그러니까 한반도 남쪽 땅에서 하늘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셈이다. 그대는 왜 산에 오르는가. 무념무상에 잠길 수 있어서. 세속에 찌든 속물을 정화시키기 위해. 이유 없이 솟구치는 울분과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건강과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낭인생활의 찌꺼기를 털어버리기 위해.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깨닫기 위해. 조국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해.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리기 위해. 수능을 앞둔 자녀들의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대자연의 섭리에 합장배례하기 위해. 편입시험을 앞둔 딸아이의 소원성취를 축원하기 위해. 졸업을 앞둔 자녀의 취업을 기원하기 위해. 자기정화를 위해. 다산은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 이 네 가지를 올바로 하도록 자신을 항상 경계하였다. 생각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를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 말(언어)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 할 것을 스스로 주문하였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일상이 되풀이 되리라.

 

    △ 중산리 계곡

 

▶14:25 천왕봉을 뒤로 하고

휴식을 마치고 중산리를 향해 출발. 너덜 비탈길에 보호망을 설치해 놓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니 너덜 비탈길의 훼손이 매우 심각하다. 너덜 비탈길 일부 구간을 철계단으로 바꾸면 이렇게 심각하게 훼손되지는 않을 것 아닌지 생각해본다.

 

    △ 훼손방지 보호망


학생산악회원들, 중장년팀, 커플팀, 나홀로 등 이 가쁜 숨 내뿜으며 오르고 있다. 중산리계곡에도 단풍물결이 번져가고 있다. 장터목으로 이어지는 유암폭포 계곡이 조망되어 보인다. 아까 천왕봉에서 보았던 비무장 커플이 앞질러 내려간다. 지팡이 달랑 하나씩 들고 잘도 내려간다. 옷차림도 보니 등산복이 아니고 일상복이다. 그러니까 저들은 저 차림으로 중산리에서 천왕봉까지 왕복하는 격인데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모한 행위로도 느껴진다. 만약 돌변하는 악천후라도 조우하게 된다면 어쩔 것인지. 아까 천왕봉 정상에서 보니 김밥도시락을 어떤 사람에게 얻어먹던데. 처음에는 사양을 하다가 자꾸 권하자 받아 먹던데. 산악마라톤하는 사람들을 볼 때도 느끼지만 산을 무시하고 정복의 대상으로 경시하는 행위 같아 영 개운치가 않다. 등산학교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포천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어느 중년의 남자가 어느 겨울 모처럼 포천 부모집을 찾았다. 어려서 자주 오르내리던 인근 산을 부인과 어린 자녀 둘을 데리고 올랐다. 고향산에는 고향사람을 반갑게 맞이하듯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눈 내리는 풍광에 취해 너무 깊숙이 들어갔던 것인지 그 이튿날 네 식구가 어느 골짜기에서 서로 보듬어 안은 채 숨진 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에서는 이 가족들이 눈이 쌓여 하산 길을 찾지 못해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을 했다고 한다.

 

    △ 숲속으로 법계사, 그 뒤로 천왕봉 정상이 보인다

 

 

▶15:31 법계사 도착

법계사를 지나 로타리 휴게소에 도착하다. 천왕봉을 뒤로 한지 1시간만이다.휴게소는 오후 햇살을 받으며 지나치는 등산객들을 지켜보고 있다. 친환경 화장실에서는 인분과 인뇨를 분쇄시키는 모타소리가 나고 있다. 3명이 휴식중이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곧바로 하산을 계속하였다. 오르내리는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내리막 등로를 만만디(천천히의 중국어)하게 걸어 내려간다. 흙길 등로에는 흙먼지가 일어난다. 가뭄이 느껴진다. 망바위_15:58, 로타리방향과 장터목방향 갈림길_16:47를 지나 느릿느릿 하산을 계속한다. 중산리 야영장을 얼마 앞두고 어제 저녁 예약한 택시의 도착을 확인하다. 야영장이 보이고 훨씬 앞서 하산했던 4사람의 장년팀 일행의 지친 발걸음이 시야에 잡힌다.

 

▶17:05 중산리 주차장도착, 진주행 택시 탑승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하다. 마폭포 출발전에 늦어도 6시 30분까지는 도착해야 하는데 하고 걱정을 하고 걸었는데. 다행이 걸으면서 서서 쉬는 나만의 보법으로 내려오다 보니 내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도착한 것 같다. 주행 총시간 10시간 5분. 칠선계곡 오르는데 7시간 10분. 천왕봉 정상체재 15분. 천왕봉에서 중산리매표소까지 2시간40분. 중산리 매표소를 지나쳐 주차장에 대기중인 택시에 곧바로 탑승하여 진주고속버스터미널을 향하다. 1시간 걸려 터미널에 도착. 19:00진주발광주행고속버스탑승. 20:50광주터미널도착. 19:00광주발목포행 시외버스탑승. 목포집에 20:15분 도착.

 

 

PS 몇년전에 이동하드디스크에 저장시켜놓은 10여년간의 산행기록들을 다 날려 버렸답니다. 물론 다른 개인기록들까지 잃어버렸습니다. 몇날 몇일을 끙끙 앓았습니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사지 힘이 다 빠져 버립니다. 결국 이곳 <한국의 산하> 산행기에 게재된 기록만 남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산하>운영자께 감사드립니다. 그후 컴퓨터저장 장치가 미덥지 않아 CD에 구워서 보관하는 습관이 생겼답니다. 산하가족 여러분들께 참고하시라고 제 경험을 말씀드렸습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