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길산-적갑산-예봉산 종주

 


    프롤로그

 

  오늘은 운길산과 예봉산을 종주 산행하는 날입니다. 물론 필자는 개별적으로 운길산과 예봉산을 이미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두 산을 연계하여 종주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 다행히 오늘 행운이 찾아온 것입니다. 


  2007년 2월 17일 아침, 설날 연휴가 시작된 첫날이어서 그런지 서울 잠실역에서 출발한 산악회버스가 천호(千戶)와 강동을 거쳐가는 동안 전혀 막힘이 없습니다. 이렇게 가면 금방 운길산 산행 들머리인 경기도 남양주시 송촌리 연세중학교에 도착할 것이라고 콧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버스가 팔당대교입구에 근접하자 사방에서 밀려든 귀성차량들로 그만 주차장이 되고 맙니다. 팔당대교를 건너가는데 무려 30분 이상을 지체하고 나니 한숨이 나옵니다. 다행히 운전기사가 팔당대교를 넘자마자 도로상태를 육안으로 확인 한 후 꽉 막힌 넓은 길(6번 국도)을 벗어나 구 도로를 따라 간 덕분에 곧장 45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진입합니다. 오른쪽으로는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가 보입니다.


 

  <등산 경로, 옅은 하늘색 표기>

 

 

    양수리(兩水里)와 두물머리

 

  두물머리는 강원도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화천과 춘천을 거쳐 371km를 흘러 내려온 북한강물과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영월과 충주를 거쳐 흘러 내려온 남한강물이 서로 만나는 곳으로, 한자어로는 양수리(兩水里)입니다.


  실제로 두 강이 만나는 지점에는 섬처럼 생긴 육지가 있는데 지도를 보면 그곳에 두물머리 기념물이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필자가 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섬의 남쪽 끝에는 대한요트협회 요트장이 있고 인근에는 연꽃단지인 세미원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이한 게 없습니다. 다만 멀리서 바라보면 능수버들이 많이 자라고 있어 제법 운치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두물머리의 진수는 물안개에 있습니다. 봄 또는 가을 일교차가 큰 날, 아침 일찍 두물머리를 찾으면 마치 온천에서 김이 솟아오르듯 모락모락 피어나는 신비스러운 물안개에 정신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두물머리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명소가 되었으며, CF 또는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여기 두물머리 연가 한편을 소개합니다.         

 

 


  두물머리 연가/최태선
 
그대와 나의 마음에
흐르는 물줄기
두 마음이 만나
하나의 강이 되어 흐릅니다.

 

지나온 계절에 삶의 여정이
고난과 역경 인생의 파고...
깨달음 뒤에 남는 것은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자 함입니다.

 

그대에게 흐르는 것이
맑은 샘물이라면
제게 흐르는 것도
순수하게 솟구치는
깊은 산 속 옹달샘입니다.

 

그대와의 만남
영원을 말하지 말아요
계절이 흐르듯
사람도 언젠가는
흘러 갈 것입니다.

 

그대의 마음에
실개천처럼 물이 흘러가듯
제 마음의 물길도
그대로 인해 마음의
강이 하나가 됨을 느껴봅니다
(자료 : 다음까페 "시와 글 사랑")
            

 

 

  수종사(水鍾寺)에 얽힌 전설 

 

  두물머리를 지난 버스는 순식간에 산행들머리인 연세중학교에 도착합니다(09:31). 도로변에는 동치미국수로 이름난 음식점의 큰 간판이 보입니다. 간단하게 준비운동을 하고 도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갑니다. 조용한 마을로 들어서는 이방인을 보고는 매어둔 개들이 짖기 시작해 정적을 깨뜨립니다.


  마을을 지나 산길로 이어진 등산로는 고도를 점점 높이기 시작합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2주 연속 산행을 쉰 후 3주만에 나왔더니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습니다. 숨이 다소 거칠어지려는 순간 수종사에 도착합니다.


  운길산 중턱에 자리잡은 수종사는 동방사찰 제일의 전망이라 일컬어질 만큼 시원한 전경이 압권입니다.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조선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곳 수종사에는 세조에 얽힌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세조가 만년에 지병인 나병으로 오대산까지 갔다가 수로로 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도중, 이곳 양수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날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은은한 종소리를 따라 발길을 옮겨보니 지금의 수종사 자리에 있는 토굴에서 18나한상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바위틈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세조는 나한을 모신 절을 짓고 수종사라 이름지었다고 합니다(자료 : 투어가이드).


  사찰 입구에는 세조가 중창 기념으로 심었다는 경기도 제2호 보호수인 큰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높이가 39m, 둘레가 7m인 이 나무는 수령이 525년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안내문을 언제 세웠는지 확인을 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지금쯤은 수령이 550년을 훌쩍 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종사 은행나무 1>

 

    <수종사 은행나무 2>

 


  해탈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대웅보전, 선불장, 응진전, 약사전, 산신각, 범종각, 부도탑, 삼층석탑, 오층석탑 등이 보이지만 시간이 없어 차근차근 사찰의 경내와 내부를 둘러보는 대신 주마간산 식으로 대충 사진만 찍고 나옵니다. 약 20여명의 등산객들 중 수종사경내를 둘러보는 사람은 4∼5명에 불과한데 이들도 이미 떠나고 없어 마음이 급합니다. 

 

   <해탈문>

 

 <응진전과 선불장>

 

 <대웅보전>

 

 <부도탑, 3층석탑, 5층석탑>


  그러나 수종사 경내에서 바라보는 두물머리의 풍광은 일품입니다. 박무(薄霧)로 인해 시계는 약간 흐릿하지만 북한강철교와 양수교 너머 정암산(403m)을 비롯한 이름 모를 산들이 산그리메를 형성하고 있고, 서쪽으로 한강을 바라보면 북한산의 스카이라인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특히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팔당호의 모습은 일찍이 동국통감을 지은 서거정이 동방의 사찰 중 전망이 제일이라고 격찬했을 정도입니다.  

 

   <북한강철교와 양수교 그리고 두물머리>

 

 <한강쪽의 조망>

 


  구름이 가다가 멈춘다는 운길산(雲吉山)

 

  수종사를 나와 다시 등산로로 접어드니 후미그룹과 합세합니다. 양지쪽의 길이라서 미끄럽지 않아 좋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서니 고사목과 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515봉입니다. 다행히도 선두그룹이 땀을 식히고 있습니다. 내려서는 길목에는 고사목과 노송 한 그루가 멋지게 서 있어 카메라에 담았는데 매우 엉성한 사진이 되고 말아 무척 아쉽습니다.

 

 <515봉 내리막의 고사목과 노송>

 


  안부의 헬기장을 지나 조금 더가니 드디어 운길산입니다(11:00). 양수리 북서쪽에 위치한 운길산은 산세가 부드럽고 등산로가 순탄해 가족 산행이나 가벼운 주말산행지로 소개된 곳입니다. 주변에 다산선생마을·팔당호·서울종합영화촬영소 등의 관광지가 있고 산중턱에 는 이미 지나온 수종사(水鍾寺)가 있어 볼거리도 많은 편이다. 서쪽의 적갑산(561m)과 예봉산(683m)을 함께 종주할 때 기준점이 되는 산이기도 합니다.


  정상에는 운길산 해설도와 화강암으로 제작한 표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필자가 4년 전 올랐을 때 아무런 이정표가 없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서쪽으로는 가야할 적갑산과 그 뒤로 북한산이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예봉산줄기가 지척에 보입니다. 언제 눈이 내렸는지 예봉산 북쪽사면에는 아직도 눈이 남아 있습니다.

 

   <운길산 표석뒤로 보이는 예봉산 줄기>

 

  <운길산 해설판뒤로 보이는 예봉산 줄기> 

 

   <서쪽으로 바라본 가야할 능선>

 

 


    미끄러운 급사면 길

 

  운길산에서 쉼 호흡을 한 후 서쪽으로 내려섭니다. 경사가 급한 데다가 눈길이라서 매우 미끄럽습니다. 운길산을 산세가 부드럽고 등산로가 순탄하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겨울에 이곳을 통과한다면 이런 평가를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리 험한 길은 아니지만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은 채 지나가기에는 다소 신경이 쓰이는 곳입니다. 차라리 눈이 많아 길이 대단히 미끄럽다면 당연히 아이젠을 착용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길이 반복되니 이를 착용하면 오히려 발이 불편해 그냥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안부에 도착하고서부터 그야말로 평탄한 길이 계속되다가 다시 하얗게 눈이 쌓여있는 미끄러운 내리막으로 변합니다.
 

 

 

  위치확인이 안 되는 적갑산(赤甲山)

 

  북쪽의 갑산(546m)과 길이 나뉘는 오거리에 도착하니(12:10) 등산로안내도가 세워져 있습니다. 능선 삼거리에 올라 한강변을 바라보니 경기도 남양주시가지가 내려다보입니다. 이제는 능선을 따라 갑니다. 가끔 나타나는 이정표에는 "정상"까지 몇 키로미터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상이란 적갑산이 아니라 예봉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상'이라는 표기대신에 "예봉산"임을 분명히 표기하는 것이 등산객을 위해 좋은 이정표역할을 할 것입니다.

 

 <능선에 올라 바라본 남양주시가지>

 

   <좌측으로 바라본 지나온 운길산>

 


  그런데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지날 때마다 적갑산(561m)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펴보지만 알 수가 없습니다. 맞은편에서 오는 등산객에게 물어보아도 초행이라서 모르겠다는 답변뿐입니다. 그렇다면 저 앞에 보이는 곳이 적갑산이라고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하니 조그마한 돌탑이 반겨주는데 그 옆에 서 있는 이정표에는 이미 적갑산을 통과한지 200m가 지났다고 합니다.


  참으로 허탈합니다. 그 흔한 봉(峰)이라는 이름대신에 적어도 독립된 산 이름을 가진 곳이라면 정상임을 알리는 이정표라도 세워 둘 일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삐죽삐죽한 바위가 솟아 있던 곳이 바로 적갑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V자 형태의 노송> 

 

   <적갑산을 지나온지 200m가 지났음을 알리는 이정표>

 

 


  철문봉과 정약용 3형제

 

  다시 살짝 내려선 안부에는 철쭉군락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서 있습니다. 이어서 쇠줄을 잡고 오른 능선에는 노송 한 그루가 아름다운 자태로 등산객을 유혹합니다. 노송 뒤로는 지나온 운길산이 선명하고, 북한강 뒤로는 용문산과 뾰족한 백운봉(940m)이 보입니다. 

 

 <철쭉 군락지 안내문>

 

 <노송 사이로 바라본 운길산>

 

  <북한강철교 너머 좌측 맨뒤로 보이는 희미한 백운봉>

 


  조금 더 진행하니 간이매점이 있는데 서쪽으로는 한강변의 미사리 방면과 북한산과 도봉산은 물론 불암산과 수락산의 하늘금도 잘 조망됩니다.

 

 <간이매점에서 바라본 미사리 방면의 조망>

 

  <줌으로 당겨본 북한산 줄기>  


  뻐근한 다리를 끌고 올라선 곳은 철문봉(630m)입니다(13:40). 정상에는 "이곳은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형제가 여유당(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마재)에서 집 뒤의 능선을 따라 이곳까지 와서 학문(文)의 도를 밝혔다(喆)고 하여 철문봉이라 한다"라는 안내문이 보입니다.  

 

 <철문봉 안내문>

 


    제사를 올리던 예봉산(禮峰山)      
      
  철문봉을 살짝 내려와 안부에 이르니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三三五五)로 모여 앉아 저마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예봉산으로 오르는 길은 해발이 불과 80여 미터인데도 지쳐서인지 다리가 천근만근입니다. 2주 동안 산행을 하지 못한데 대하여 벌을 받습니다. 드디어 예봉산 정상(해발 683m)에 올랐지만 지금까지 동행했던 같은 산악회소속 몇 명의 등산객들도 모두 떠나고 말아 낯선 사람들의 얼굴만 보일 뿐입니다(14:00). 

 

 <철문봉과 예봉산 사이 안부에서 바라본 검단산>

 


  예봉산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의 검단산과 마주보고 있는데, 검단산과 함께 한성 백제의 강역을 수비하던 산이며, 조선조엔 임금이 친히 기우제를 봉행하던 명산입니다.


  정상에는 한 산악회에서 세운 자그마한 표석이 있지만 산의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은 초라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면 정상에서의 조망은 매우 시원합니다. 남쪽에는 검단산이 손에 잡힐 듯하고, 서쪽에는 북한산과 도봉산 능선이, 북쪽에는 지나온 운길산이, 그리고 동쪽으로는 유럽의 마테호른 같은 모양의 백운봉이 아련하며 남한강의 물줄기가 아스라이 펼쳐져 있습니다.

 

 <예봉산 정상표석 뒤로 보이는 운길산>

 

 <북쪽의 운길산과 북한강>

 

 <동쪽의 팔당댐과 남한강>

 

 <북서쪽의 산 그리메>

 

 <팔당댐으로 이어지는 직녀봉과 견우봉>

 

  <한강과 북한산> 

 


    밤(栗)이 많은 율리봉

 

  예봉산에서 율리봉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은 양지쪽이라 그런지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길바닥이 질펀합니다. 이런 길도 정말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능선안부를 지나 다시 고개를 오르니 율리봉(587m)입니다(14:24). 안내문을 한번 보겠습니다.


  "이곳 율리봉은 정화성 선사께서 지은 「강역산유기」에 밤이 많은 산 마을에 있는 산이라 하여 명명한 것이다. 화성(선사)의 속명은 신성(申成)인데 다산의 학문과 도를 따라 세상을 밝히고자 호를 스스로 철문(喆文)이라 하고 다산의 후학을 자처하여 항일의병을 주도하다 익산 용화산 신용사에서 사별하였다. 다산의 형제들 또한 이 산에서 웅지를 키웠다."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는데 후미그룹이 도착합니다. 산행대장이 나누어주는 한라봉을 얻어먹고는 먼저 일어섭니다.  

 

 <율리봉 안내문> 

 


    바짝 마른 계곡

 

  하산 길의 바위능선에 자라고 있는 노송너머로 바라보는 검단산의 모습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합니다. 먼지가 펄펄 나도록 메마른 급경사를 조심스럽게 내려와 율리고개에 도착합니다(14:52).

 

 <노송뒤로 보이는 직녀봉(좌)과 검단산(우)>

 

 <율리고개 이정표>

 


  예봉산의 능선종주를 완벽하게 하려면 여기서 직녀봉과 견우봉을 거쳐 팔당댐까지 가야하지만 산악회 측에서는 회원들의 체력을 감안해 오른쪽의 팔당역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는데 이는 매우 현명한 결정입니다. 여기서부터 길은 서서히 고도를 낮추므로 이제부터 고생길은 끝이 납니다.


  하산로 중간에 율리봉의 이름을 낳게 한 밤나무단지가 있는 듯 떨어진 밤송이들이 지천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그동안의 겨울 가뭄을 상장하듯 계곡에는 하류에 이를 때까지 물 한 방울 흐르지 않습니다.


  축 늘어진 다리를 질질 끌며 경춘선철도 복선화 공사가 진행중인 팔당역 인근 팔당2리로 하산합니다(05:38). 오늘 산행에 6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산행코스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연세중학교/수종사/운길산/오거리/적갑산/철문봉/예봉산/율리봉/율리고개/팔당2리입니다.

 

 <메마른 계곡>

 

  <팔당2리 등산로입구>

 


  엉터리 지하철 안내방송

 

  인근 음식점에서 산악회가 제공하는 매운탕으로 배를 채운 후 버스가 출발합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전혀 막히지 않아 버스를 타자마자 산악회장이 작별인사를 합니다. 필자는 강동역에서 내려 서울지하철 5호선을 타고 까치산역까지 편안하게 갔습니다. 까치산역에서 2호선연결선인 신도림역행 지하철을 타고서는 카메라를 꺼내 오늘 찍은 사진을 보며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역인 신정네거리역에 도착하자 안내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여기는 이 열차의 종착역인 까치산역입니다. 계속하여 방화 또는 마천과 상일동방면으로 가실 손님들은 5호선 열차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금방 까치산 역을 출발하여 신정네거리역에 도착했는데 이런 방송이 들리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음 역인 양천구청역에 다다르자 또다시 들리는 안내방송은 "여기는 이 열차의 종착역인 까치산역입니다."로 시작합니다. 방송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야 승무원이 잘못을 알아차렸는지 녹음된 방송대신 육성방송으로 양천구청역임을 알려줍니다. 승무원은 몇 시간 동안 운전하느라고 피곤하고 바쁘겠지만 잘 못된 안내방송을 두 개의 역에서 계속 내보낸 것은 분명히 승객을 불편하게 한 것입니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방송을 들은 승객들에게 사과 한마디 없는 것도 정상은 아닙니다. 필자는 양천구청역에서 내렸으므로 그 후 실제로 사과방송이 있었는지의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에필로그

 

  그동안 희망하였던 운길산과 예봉산 종주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러나 박무로 인해 깨끗한 조망을 볼 수 없었고, 모든 사진은 겨울의 칙칙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온통 회색뿐입니다. 아무래도 녹음이 우거진 계절에 야생화를 벗삼아 유유자적한 산행을 하면서 수종사의 찻집이라도 들러 전통차라도 한 잔 마신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끝.    

 


펜펜의 나홀로 인생
산행.여행기, 산행후기.자서전 출판, 야생화, 유머, 세계의 열쇠고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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