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대전의 보문산(寶文山 457.6m)

<대전시 대사동,사정동,호동>

산행구간---봉소루~보문산성~시루봉~보문사지~사정공원~청년광장~송학사~보문대~마애여래좌상~봉소루
산행시간----약 5시간30분
산행일자----2004년 2월14일,토요일
산행날씨---맑음

<시간별 산행구간>

봉소루-보문산성(40분소요)
보문산성-시루봉(35분소요)
시루봉-보문사지(30분소요)
보문사지-사정공원(35분소요)
사정공원-청년광장(40분소요)
청년광장-케이블카(1시간 소요)
케이블카-보문대(25분소요)
보문대-보문산성(30분소요)
보문산성-봉소루(35분소요)

<산행기>

해발 457.6m인 보문산(寶文山)은 대전의 남쪽시 중심부에 근접해 있는 곳으로 대전의 역사와 함께한 산으로 각종 유적과 사찰이 산재한 산으로 보물이 묻혀있다 하여 "보물산"으로 부르다가 보문산으로 되었다는 산입니다.보문산 그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봅니다.

공설운동장(충무체육관) 사거리 와 부사동 사거리 지나서 바로 금산을 잇는 17번 도로 (옥계로)우측으로 석교동 새마을 금고와 신가네 고기촌이 있습니다.

그 앞으로 시 지정문화재 자료 제35호 봉소루 150m 파란색 이정표 표지판이 있습니다.이정표 방향으로 들어가면 바로 봉소루가 있습니다.조선 인조 때의 학자 남분붕(南奮鵬)의 호를 따서 붙인 이름입니다.봉소루는 본래 봉소재라 불리웠습니다. '봉소'란 새들의 보금자리란 뜻으로 봉소재란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도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경내에는 360여 년이 된 느티나무 두 그루와 남분붕유허비(南奮鵬遺墟碑)가 있습니다.잠시 봉소루 경내를 둘러보며 시간을 뒤로 되돌려 봅니다.댕기따고 앉아 훈장선생님 앞에서 조는 모습을 그려봅니다.봉소루 조상님네들의 여유로운 멋이 넘쳐남니다.

이곳에다 주차를 하고 봉소루를 바라보고 왼편도로을 따라 돌다리길을 거쳐 가느골 넘아가는 길에 문수암이 있습니다.문수암을 거쳐 대한불교 조계종 금강사에서 왼편 능선을 잡아 올라갑니다. 마을 곳곳이 보문산 들머리입니다.

약수터가 나오는데 약수터 안내판의 글이 모두 지워져 약수터 이름을 알수가 없네요,오르막에 조망바위가 나오고 식장산이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왼편 아래로 절터가 있습니다. 절은 온데간데 없고 조그마한 돌 부처님 만이 말없이 반겨줍니다. 왼편 골짜기로는 샘터가 있는데 물이 말라있습니다. 다시 경사지를 오르니 조망바위, 식장산이 여전히 그 자리입니다.

전망 바위를 지나 오르니 보문산성입니다.역사의 숨결을이 느껴지는 산성을 따라 누각 자리에 오르니 대전시가 한눈에 들어옵니다.예전엔 누각이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만이 남아 있습니다.봉소루에서 보문산성까지 약 40 분이 소요됨니다.

봉성(鳳城)이라고 일컫는 이 보문산성(기념물 제10호)은 역사지리적(歷史地理的) 관점에서 일찍부터 학자들의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1300여년만에 백제산성중 전국 최초로 복원한 귀중한 문화재입니다. 즉 백제시대 말기 신라와의 전투가 치열하던 시기에 축조(築造)된 산성으로서 성 둘레는 300여m에 불과하지만 인근의 산성들과 쉽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요시되어 왔던 것입니다.

보문산성을 내려와 시루봉으로 향합니다.시루봉 오르기전 로프가 설치된 경사지 오른편 아래로 내려가면 역사가 깊은 고촉사가 있습니다.대웅전과 나한전그리고 대숙광전이 있습니다. 대숙광전 뒤로 미륵상을 닮은 자연 암석이 있고,대웅전 앞에서면 대전시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고촉사를 둘러보고 다시 시루봉으로 오름니다.

로프를 잡고 계단길을 따라 올라가면 시루봉에 도착합니다.보문산에서 제일 높은 봉이지요(457.6m) 삼각점과 보문정이 있습니다.시루봉에 서면 북쪽 방향으로 계룡산 천황봉과 빈계산 그앞으로 구봉산 왼편으로 눈을 돌리면 향적산 능선과 대둔산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정기봉과 만인산 능선 그 뒤로 서대산, 동으로는 식장산과 동북방향으로 계족산,계족산성 그옆으로 금병산이 대전시가와 어우려져 아름다음을 뽐냄니다.보문산성에서 시루봉까지 약 35분이 소요됨니다.(고촉사 왕복 시간 포함) 보문사지로 향합니다.

시루봉 보문정 밑으로 (보문사지,호동,범골,)이정표 방향으로 내려갑니다.만인산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헬기장을 지나 보문사지 갈림길 가기전 조망지에 서면 보문산성이 손아잡힐 듯 합니다. (보문사지→ ,이사동 ↑,)갈림길 이정표에서 보문사지 방향 오른편으로 내려갑니다. 묘지와 조망바위를 지나 계단식으로 잘 정리해놓은 등로를 따라 내려가면 사거리 안부에 도착합니다.이정표가 없어 망설여 지는 구간입니다. 오른편 → 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거대한 보문사지(대전시 기념물 제4호)에 도착합니다.보문사는 흔적이 없고 보문사지 석조와 괘불지주(掛佛支柱) 그리고 샘터(맑은 물이 있음)와 수많은 와편만이 번창했던 과거를 되새기게 합니다.보문사지 석조는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며 대전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0호 지정되어 있습니다.세월의 무상함을 느낌니다. 사정공원으로 향합니다.시루봉에서 보문사지 까지 약 30분 소요됨니다.

보문사지에서 왼편 등로를 따라 능선을 넘어 사면길을 따라 갑니다. 좁은 사면길이 이어짐니다. 능선분기점에 도착합니다.(윗사정 ←) 이정표가 있습니다. 우측 방향은 시루봉길 →,직진 ↑ 으로 내려갑니다. 경사가 급합니다. 이동통신탑이 있는 포장길에 도착하고 공원 관리사무소 앞을 지나 보문산 황토길과 사정공원 식물원을 지나 출렁다리를 건너 남보살 약수터에 도착합니다. 보문사지에서 남보살 약수터 까지 약 35분 소요됨니다.

남보살 약수터에는 보물천이라는 돌탑과 쉼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약수한잔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습니다.남보살 약수터에서 왼편의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오른편 능선을 잡아 오라가면 다시 넓은 등로와 만남니다.

쉼터 정자을 지나고 왼편으로는 조망이 트이면서 대전시가 한눈에 들어옴니다.(문화동←,시루봉↑,사정공원→ )이정표를 2군데를 지나 과례정 못미쳐 우측으로 반공 건국 청년 운동 순국 기념탑 과 심헌영 선생 학덕 추모비 가 있어 내려감니다.반공탑 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며 빛이 퇴색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과례정으로 되돌아 올라감니다.

과례는 문화동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고려 때 노기재 우징복이 여기에 거주하면서 문필봉에서 서당을 열고 마을에서는 차례를 잘 지키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든 제사나 제삿상에 정성을 다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되므로 사람들이 이 마을을 과례라고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포장도로를 따라 청년 광장에 도착합니다.청년광장에 시각장애인 산책로 안내도를 따라 송학사로 향합니다.남보살 약수터에서 청년광장까지 약 40분이 소요됨니다.(반공탑 갔다온 시간포함)

보문산 안내도에서 왼편 포장도로를 따라 갑니다.망향탑에 도착 합니다. 우리민족의 가슴아픈 망향 역사의 현장입니다.다시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송학사 약수터와 대한불교 조계종 송학사에 도착합니다.금동 미륵 부처님 과 대웅전 산성각을 둘러보고 나서 보문산 야외음악당(6.25 전적비도 있음)을 거쳐 다시 케이블카 있는곳으로 내려감니다.

보문산 케이블카 어릴적 그렇게 타보고 싶던 것이었습니다.무척 오래된 케이블카인데 지금은 토요일,일요일만 운행 한답니다.대인 1500원 소인 1000원입니다. 보문산의 오리지날 들머리입니다.보문 오거리에서 케이블카 있는 곳 까지 좌우로 상가와 보살집그리고 점치는 집들이 많습니다.20~30년 전만 해도 한창 번창 했지요 대전시민들이 쉬는 날이면 보문산 오는 것이 최대의 낙이던 시절입니다.쇄퇴 해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합니다.청년광장에서 케이블카 까지 약1시간 소요됨니다.

케이블카 광장에서 위쪽의 대한불교 조계종 덕수암과 불광사을 둘러보고 다시 보문대로 올라갑니다.그린타워 웨딩홀옆을 지나 보문산 공원 표지석을 지나 보문사와 보문그린랜드에 도착합니다.지금은 영업이 중지되고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보문랜드를 보면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보문대에 도착합니다.새롭게 단장한 보문산 전망대인데 낙서들이 너무 많습니다.대전시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케이블카에서 보문대까지 약 25분 소요됨니다.보문대에서 충북휴게소 방향으로 해서 보문산성을 오름니다.케이블카에서 보문대까지는 포장도로이지만 보문대에서 부터는 비포장 등로입니다.

보문산성 못미쳐 왼편 으로 (장수천 약수,복전암 ← )이정표가 있습니다.보문대에서 복전암 이정표 까지 약 30분 소요됨니다.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장수천 약수가 나오는데 부적합 이라 되있습니다.조금더 내려가면 보문산 마애여래좌상에 도착합니다.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된 이 마애여래좌상의 머리는 나발(螺髮) 위에 육계가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매우 뚜렷합니다. 통견의(通肩衣)의 법의(法衣)를 걸쳤으며, 오른손은 가슴앞에 들었고 왼손은 배 위에 얹었으나 수인(手印)은 마멸이 심하여 뚜렷하지 않습니다. 광배를 단순하게 처리하고 옷주름이나 불상의 윤곽을 간략하게 처리하였는데 조각수법은 우수합니다.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역사의 숨결이 이 무심한 곳에서 다신한번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다시내려가면 보석천 약수터에 도착합니다.신라선덕 여왕께서 보석천 약수물로 피부병이 완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올만큼 유명한 약수터입니다. 약수터에는 운동시설과 가로등 그리고 등로를 잘 정비 해 놓았습니다.

보석천을 뒤로 하고 경사지를 직진하여 내려갔더니 보광사에 도착했습니다. 복전암으로 알고 내려왔는데 잘못 내려왔습니다. 보광사 무량수전을 둘러보고 다시 되돌아 올라가 조그마한 양철지붕 쉼터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갑니다. 그러니까 보석천에서 내려올때는 왼편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보석천 약수터,보문산성,마애여래좌상 ←)(복전암 →)이정표가 있는곳, 복전암에 도착합니다.복전선원이라 들어갈수가 없게 되있는 모양입니다. 높은 담과 철조망으로 들어갈수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웅장한 보재루 모습에 압도가 됨니다. 다시 일주문을 지나 봉소루로 향합니다. 보문산성에서 복전암 까지 약 30 분이 소요됨니다.

복전암은 신일여자 상업고등학교 정문과 접해 있습니다. 차도를 따라 봉소루에 도착합니다. 이것으로 보문산 역사의 발자취길을 마감합니다.복전암에서 봉소루 까지 5분이 소요 됨니다.

봉소루에서 차량을 회수해 옥계동,이사동 ,소호동을 거쳐 어남동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선생 생가를 둘러봅니다.<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1936) 선생이 태어나 8세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을사조약 후 일제(日帝)의 식민통치에 맞서 언론을 통한 민중계몽운동과 민족의식고취를 위한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항일비밀단체인 신민회(新民會) 사건에 연루되어 1910년에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 독립활동을 전개하였다. 선생은 192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여순(旅順)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57세 되던 해인 1936년 2월 21일 옥사(獄死)하였다.>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보문산 시루봉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무수동 유회당 을 둘러봅니다.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인 유회당은 1707년에 유회당(有懷堂) 권이진(權以鎭, 1668∼1734)이 선친인 증(贈)찬성(贊成)권유(權惟)의 묘(墓)를 모신 후, 부모 묘소의 첨배소(瞻拜所)로 제사를 지내고 아울러 독서(讀書), 강마지소(講磨之所)로 쓰기 위해 세웠습니다. 그리고 시묘소(侍墓所)인 삼근정사(三近精舍)와 지금은 장판각으로 쓰이는 별묘(別廟)를 지으니 모두 선친을 생각하는 뜻, 즉 유회이인(有懷二人 ; 부모를 생각함)이라는 뜻으로 집을 짓고 스스로 호를 유회당이라 하였습니다.

유회당을 둘러보고 유회당 뒤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거업재와 여경암에 도착합니다.개 2마리가 만이 여경암 거업재를 지키고 있습니다.여경암, 이 암자 명칭의 유래는 권이진이 자찬(自撰)한 『거업재기』에 적혀 있습니다. 즉 송나라 때 주자와 동시대인의 사마온공(司馬溫公)이 자제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강당을 지어 여경사(餘慶寺)라 지은 이름에서 취해 왔다고 합니다.현재는 불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거업재,거업(居業)' 2자에는 성실지심(誠實之心)의 거경(居敬)과 성현지업(聖賢之業)의 득도(得道)를 통해 춘추정신(春秋精神)을 부축하고 삼강(三綱)을 바르게 하는 올바른 군자의 길을 걷게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거업재는 이와 같이 조선시대의 중요한 유학의 도장이었던 유교 유적입니다.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호 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여경암 옆으로는 보문사지 석조와 똑같은 석조가 있습니다.햇볓이 따스하게 드는 곳이 포근하게 느껴 짐니다.포장길을 되돌아 내려와 연고개을 지나 대전 동물원 앞을 지나 유성으로 향하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마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