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요 ,유 (逍搖遊)

백두대간 여원재~복성이재 종주기.

9시50분 양재역에 부천에서 출발한 좌석버스는 이른 시간에 도착한다. 잔뜩 찌뿌린 날씨에 간간히 흩날리는 비바람을 막기위해 재우에게 씌워준 괜잖은 마라톤 모자를 두고 내리고 말았다. 버스요금 때문에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정신이 분산된 탓이다. 재우요금을 현금으로 750원을 요금통에그냥 넣고 내요금은 교통카드로 계산했는데 왜 말없이 현금을 넣었느냐고 짜증을 낸다.  지난주 사랑도 지리산 무박 갈때도 이 버스를 이용했는데 그때는 카드이용 써비스 자동화기기가 고장났다고 해서 그냥 현금을 냈다고하자 왜 물어 보지도 않고 돈을 넣느냐는 예기다. 그럼 버스요금 낼때마다 기계 멀쩡하냐고 물어야하나?

 

3만원 가까운 모자를 아니 그것보다 이모자와 같이 풀코스를 같이한 나의 혼이 배인 물건인데 아쉽다. 쓸데 없이 무가치한 실랑이 결론도 인과적 당위성도 없는 무지몽매한 짓거리다. 불요불급한 논쟁으로 흘러가는 세월의 허망함이여! 


 늦가을을 밀어버린 싸늘한 대지는  낙엽 부대끼는 낮은 음자리의  흔들림을 가볍게 삼켜낸다. 겨울의 고요함은 붉게 물들었다가 쓰러진 낙엽의 풍진의 세월을 이겨내는 냉엄함이다.


 40분을 밖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4000원 정종 한잔 싸늘한 위장에 청신호다.

10시40분 버스는 지리산을 떠나 덕유산으로 흘러가는 유순한 노년의 부드러운 마루금의 들머리를 향해 떠난다. 4명의 진행요원을 포함하여 30명 남짓 많지 않은 인원이다.


 3시20분 해발 400미터 조금넘는 여원재에 도착한다. 랜턴 불빛은 한 밤중 대열의 무단함을 일깨우고 마을의 임도와 논길을 걸어 몇 번 알바 끝에 반가운 대간길 표시기가 주렁주렁 걸려있다. 낙엽송 가루와  활엽의 입새는 층층이 미증유인 세월의 고단함을 거둬내고 편한데로 가루가 되어가고 있다. 인간이 밟아가는 데로 밟혀지고 바람 이는데로 날려져 흙이 되어가는 생성과 가사(假死)의 순리됨을 확인한다. 작은 시간의 이전에 붉게 물들어 인간의 눈을 흔들어 깨우고 발목을 붙들고  가파른 심장의 고동소리에 일렁였던  낙엽과 먼지의 필연됨이여! 인간의 발에 깊이 밟히고 짖이겨져 우리의 다리는 호텔 카펫 위를 걷는듯하다.

 

산행거리는 도상 19키로 실거리 24~25키로 정도이고 고남산까지 2시간~2시간30분 매요리까지 4시간(10.4킬로) 사치재(3.5킬로)까지 5시간30분 복성이 재까지 8시간30분 정도가 예상된다. 휴식시간 1시간30분 포함하여 10시간30분을 예상했는데 오늘은 정확히 맞췄다. 오후1시 이전에 하산하였다.


 대간기 재목을 소요유(逍搖遊)라고 하였다. 구속이 없는 절대의 자유로운 경지에서 노니는 것을 소요유 라고 한다. 놀소 노닐요 거닐유다.

 

壯者集解(장자집해)이하 에서 “사물에 얽매인 현실을 초월하여 대 자연의 무궁한 품속에서 자유로이 노님을 뜻한다.고 편 제목 밑에 주(注)하고 있다.

여섯날을 노동했으니 하루는 놀아야 생이 비로소 살아 가는것 이라 생각되어 산에서 나의 노는 방식을 이와 비유 했는데 적절한지 모를 일이다.

 

明의 陸方壺(육방호)가 장자의 시를 인용하여 “옷깃 천 길 벼랑위에 휘날리고 발을 만리 강물에 씻는다. 대장부 이런 기개가 없이 어찌하랴. 바다 끝없이 넓으니 물고기 뛰놀아도 아랑곳없고, 하늘 뎅그렁 비었으니 새 나는대로 맡겨 둔다. 대장부 이런 도량이 없이 어쩌랴. 라고 읊은 경지이다. 장자의 시대는  전국시대, 곧 전쟁과 살육, 권모와 술수가 소용돌이치는 불안과 절망의 시대를 살았다.  음모, 모략, 폭력이 가장 세상적인 시대였다. 장자는 세상의 유혹과 권력의 단네를 밀어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초(楚)의 위왕(威王)이 장주의 어짊을 듣고 사자(使者)에게 후한 금품을 보내 재상이 되어달라고 청한 일이 있었다. 장주는 웃으면서 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금(千金)은 엄청난 이득이요, 경상(卿相)은 존엄한 지위이다. 그러나 그대는 아직도 교제(交際)의 제삿소(際牛)를 보지 못하였는가? 몇 년을 잘 먹여 기른 다음 에는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혀 태묘(太廟)로 끌려가게 마련이다. 이 때야 비로소 한 마리 더러운 돼지가 되고 싶어한들 될 뻔이나 하겠는가 . 그대는 빨리 돌아가라. 나를 더럽히지 말라. 내 차라리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노닐며 스스로 유쾌하게 지낼지언정 나라 다스리는 사람에게 얽매이지는 않겠소, 죽는 날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뜻을 편안케 지켜 나가겠소.

 

또 가난한 그가 떨어진 신발에 누덕누덕한 옷을 입고 위왕(慰王)을 찾아갔을 때,“선생은 어찌하여 그다지도 지쳐 보입니까?” 하고 동정하니까,“지친 게 아니고 가난한 겁니다.” 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외편 산목편(山木偏)에 보인다. 잡편의 열어구(烈禦寇篇)에는 장자 앞에서 자신의 영달을 뽐내는 동향인(同鄕人)에게 “세상의 부귀는 권력자의 엉덩이에 난 치질을 빨아 내는 짓과 같은 정신의 굴욕으로 얻게 마련이다.”라고 일갈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인은 곧잘 이론보다도 생명 그 자체를 좋아한다. 생명없는 질서보다는 생명있는 무질서를 사랑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며, 법칙이 아니라 산다는 문제였다. 장자의 철학은 중국인의 이와 같은 사고를 가장 잘 대표한다.

 

장자는 생명을 무엇보다도 존중했다. 그의 철학은 생명 있는 것을 그대로 생명있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는 생명을 해치는 짓을 무엇보다도 미워했다. 장자는 인간이 만일 생명의 안전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다면 “살아 있는  혼돈(混沌)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라.”고 한다. 생명 없는 질서보다도 생명 있는 무질서의 존중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또한 여기에서 장자만의 해탈의 논리가 생겨난다.    이상. 장자(안동림)


 이라크 전쟁의 근원인 선악의 구별 기독교가 세계의 중심이고 이슬람은  악의 축 이어서 공존할수 없고 멸해야 한다는 “부시”는 장자의 사상을 티끌이라도 배워야 할지 모른다. 세상을 이분화 시키는 의식의 단절은 인간을 죽음과 전쟁의 위협에서 떨게한다. 북한을 칠지도 모른다는 개연성에서  생명에 대한 위협은 극에 이른다. 


 빗줄기는 간간히 뿌려지다 멈추고 검은 구름은 바람에 실려 그 형체는 일렁이는데 입속에서 뿜어내는 하얀샘 은 안개속에 흩어진다. 남으로 내려와서 인가! 추위는 완만한 사면을 오르며 스스로 물러나고 소나무 향기와 낙엽이 흙과 하나되어 바람결로 스미는 채취는 신묘한 자연의 산물이다.

나의 육신이 나를 떠나듯 내가 아닌 나의 새로워짐. 설명이 불가해한 내면 세계는 나의 육신을 이곳으로 밀어 붙이는 듯 하다.

  

4시가 넘어서며 암릉을 만난다. 주의해 건너고 급경사를 힘겹게 오른다. 5시 가 10여분 남은 시간 고남산이다. 훌륭한 전망대다. 구름으로 뒤덮힌 검은 하늘 밑으로 남원시는 별빛을 대신하여 빛난다. 세찬 바람은 해발 750미터를 다행스럽게 느껴지게 한다. 매요 마을 4킬로 표시기가 고남산 정상 나무 팻말위에 선명하다. 여기서 부터는 평지와 내리막이 반복되고 노년의 육산은 뒤둥그는 낙옆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구름과 안개를 마시며 매요마을로 하산을 서두른다. 매요마을 할머니집은 동동주로 유명하고 대간꾼들의 좋은 휴식처다. 위장이 텅 비워지는 시점에 땅거미가 거둬진다. 시공이 전개되는 초겨울 구름위를 걷는듯한 부드러운 촉감은 거친 등산화의 걸음 소리와 좋은 대비다.

 

7시30분 매요리 도착 마을회관에는 진행요원과 먼저 도착한 일행이 소주한잔에 아침식사를 하고있다. 소년들에게 라면을 권하는 인정은 풍요롭다.

인간은 누구나 평화롭고 풍요로운곳 에서 다툼없이 살고 싶은것이다. 김치찌개와 도시락은 가장 평범한 음식이나 더없이 고귀한 만찬이다. 1시간여 충분한 휴식후 8시45분 사치재로 향한다. 88고속도로 직전의 사치재는 우로는 남원시와 좌측으로 경남 함양군을 가르는 경계에 있다. 3.5킬로 1시간 남짓 소요된다.

 

아직도 잔뜩 흐린 날씨에 간간히 빗방울이 강풍에 떠밀리듯 뿌려지나 검은 구름이 멀리 물러나며 푸른하늘에 한줄기 햇살이 구름을 거둬내는 풍경은 한폭의 수묵화다. 임도를 100미터 지나고 능선에 진입한다. 빛이 뿌려지자 그 향기는 그윽하여 발걸음은 이를  뒤쫓는 듯하다.

소나무의 흔들리는 가지에 엹은 푸르름을 더한다. 소나무 숲에 빛이 뿌려지자 그 향기는 그윽하여 발걸음은 이를  뒤쫓는 듯하다.

 

1시간뒤 사치재에 내려선다. 여기까지도 소나무 숲이고 복성이재 까지도 몇군데 억새밭을 만나나 온 천지가 솔밭이다. 해발 400미터 여원재와 비슷하다. 여기까지 오르막과 내리막은 정확히 비긴 셈이다. 오르막에서 거친 호흡과 가파른 심장의 소용돌이는 내리막에서 가지런하고 일정해진다. 출렁이던 세상의 욕정은 능선의 가장자리에 비켜서며 그 뒤편으로 내려서면 바람은 숨죽이고 타오른 정열은 순간 주저 않는다. 여기서 나는 무한의 평화에 고요하다. 유한의 생에  찾아온 寂寞(적막)은  정지될수 없는 대자연의 세월이  뇌세포에 각인된다. 기억의 뒤편에 더욱 멀었던 세월이 정지되었다 살아나듯 낮아졎던 능선은 숨을 고르고 다시 출렁임을 준비한다.


 복성이재 4.8킬로 매요마을 3.5킬로 표시기를 보며 잠시 숨을 고른다. 그런데 복성이재 까지의 거리는 엉터리다. 고도표에 6킬로 이상, 지도상 3시간 거리인데 실거리는 7킬로 정도인 것 같다.

대간길 표시기는 잘못 기재된 것이 많아 실제 믿어야 될 것은 백두대간 고도표 이다.


 88고속도로를 건넌다. 여기서 고속도로로 100미터 하행하여 마루금으로 향하지 않고 직접 오르막을 향한다. 코가 땅에 닿을 지경인 급경사를 15분 정도 오르고 능선을 만난다. 좌우로 억새는 물결치고 소나무 숲은 능선의 뒤편 저너머로 물러서있다. 우측으로 고속도로 휴게소는 손에 닿을 듯 가까운데 우리가 넘어온 고남산은  구름이 걷히는 하늘에 부드러운 정상을 드러낸다. 세찬 바람에 한바탕 몸이 휘청하고 기념촬영한다. 거친 바람이 우리를 몰아 세우나 때마침 따스한 햇살은 식어가는 체온을 되찾아준다.


 30분 바람을 마시며 오르니 억새밭이 사라지는 곳에서 묘지를 만난다. 지난 구간에서도 무명묘지를 여러번 보았고 오늘도 여러곳의 묘를 만난다. 인간은 태어나서 일해야 하고 늙어지며 휴식이 주어지고 죽어가며 비로소 평안히 잠드는 것이다.  태어나는 일도 죽어가는 일도 내 의지 대로 될 수 없으며 살아가는 것도 내 뜻과 무관할 때가 많다. 죽음과 삶은 자연의 모습이며 살아있는 모든것들 에게 주어지는 운명이다. 生은 필연으로 滅한다.  空虛(공허)의  공간에 작은 먼지되어 없어지는 것이 살아있는것 들의 운명이다.

 

새맥이재를 만난다. 11시가 넘어간다. 여기서 잠시 휴식하며 포도주를 한잔한다. 강풍에 식은 몸이 술기운에 체온은 회복된다. 재우 에게도 추울 것 같아 한잔 줬는데  어지럽고 졸려서 고생 했다고 한다. 오르막을 올라 평지에 닿으면 다시 오르막이 계속되고 힘이 부친다고 느낄즈음 아막성터에 도착한다. 12시20분이 다 돼간다.

폐허한 성터에서 일어섰던 왕조와 쓰러져간 왕조의 전화에 바쳐진 수많은 인간들의 덧없는 주검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메우는 가치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급경사를 30여분 내려가 복성이재에 다다르니 1시에 조금 못 미친다.

 

끝없는 소나무 숲에 강풍을 맞으며 완전한 자유 속에 하루를 멋지게 소,요,유, 하였다. 더불어 힘든 길을 한번의 불평없이 같이한 재우의 인내심에 더 평화로왔던 산행이었다.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오세영, “12월” 전문


 

2004년 12월 8일

신 광 훈